올해가 '한국 SF'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창작 SF를 기준으로 한 건 아니고 SF소설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해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고. 장르소설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나의 관심은 장르가 아니라 작가이다) 흥미를 끌기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지난 2002년 쥘 베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컬렉션 가운데 완역판 <해저 2만리>는 벌써 절판이다. 완역본에 대한 수요가 이렇게 없는 것인가?). 

문화일보(07. 01. 03) 꿈과 상상력 키워준 ‘한국 SF’ 100주년 맞다

한국 과학소설(Science Fiction·SF)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1907년 프랑스 작가 쥘 베른 원작의 ‘해저 2만리’가 ‘해저여행기담’이란 제목으로 재일유학생 학술지인 태극학보에 번안, 연재된 것이 본격 한국 SF의 효시. 한국의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1950, 1960년대에 인기를 끈 SF 만화 ‘라이파이’(김산 작)를 보며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의 세계적 로봇 공학자들이 어린 시절 공상과학만화 ‘아톰’을 보며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최초의 산업용 로봇 제작회사 ‘유니메이션’의 대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을 보며 상상력을 길렀다고 고백했다(*예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아시모프의 자서전은 그의 소설들 이상으로 재미있다). 이처럼 과학을 주제로 한 허구적 이야기, 즉 SF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의 과학을 가늠해볼 수 있는 꿈의 놀이터다. 만화, 영화, 드라마 등으로 변주되고 있는 SF의 본 바탕은 물론 소설이다.

한국 SF의 역사가 100년으로 결코 짧지는 않지만 그동안 창작물이 거의 없이 번역물에 의존, 소수의 마니아 독자에 의해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SF 전문가들은 올해가 국내 SF의 사활을 좌우하는 중요한 전기로 보고 있다. 창작 SF가 쏟아지는 한편 월간 전문잡지가 탄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출판사들이 수지 타산을 이유로 SF 출간을 속속 포기하고 있고, 신인 발굴 등용문에 대한 지원 기금도 폐지될 위기여서 향후 SF의 활로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한국의 척박한 땅에 긴 생명력 = 1907년 ‘해저여행기담’에 이어 1908년 이해조가 역시 번안작품 ‘철세계’를 출간했다. 1925년엔 박영희가 세계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이 나타난 카렐 차페크의 작품 ‘R.U.R’를 번역한 작품을 선보였다(*차페크의 <로봇>이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한데 이 책 또한 품절이군).

1929년에 김동인이 ‘K박사의 연구’라는 SF단편을 발표했으나,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해방 이후 청소년용 과학소설인 한낙원의 ‘금성탐험대’와 문윤성의 ‘완전사회’가 인기를 끌었으나, SF 전체로 보면 순수문학작품에 비해 문학계뿐만 아니라 대중적 주목도가 크게 떨어졌다.



1987년에 나온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작)는 국내 창작 SF의 전기를 이룬 작품. 이후 1990년대 PC통신을 통해 아마추어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요즘도 각광을 받고 있는 ‘듀나’가 이때 등장한 SF 작가다.


그러나 국내 독자들은 여전히 소수 마니아에 불과해서 창작물 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했다. SF를 주로 펴낸 출판사 행복한책읽기 대표 임형욱씨는 “2004년에 SF잡지 ‘해피 에스에프(HAPPY SF)’를 냈는데, 창작물 작가와 독자가 없어서 결국 2년 만에야 2호를 냈다”고 전했다. 그는 “20세기 말까지는 국내 SF출판물이 90% 이상을 번역물에 의존했다고 보면 된다”며 “21세기 들어서 국내 창작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들어 국내 창작 SF가 잇달아 나와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배명훈, 김보영, 박애진씨 등 신예작가의 작품집 ‘누군가를 만나서’가 나왔다. 내달에는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편집주간으로 있는 웹진 ‘크로스로드’(http://crossroads.apcp.org/)가 출판사 황금가지를 통해 창작 SF단편집을 펴낸다.

◆“사느냐, 죽느냐” 올해가 기점 = 올해 국내 SF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SF전문잡지인 월간 ‘판타스틱’의 창간이다. ‘판타스틱’은 SF 작가이자 편집자인 박상준씨가 창간 준비팀장을 맡아 3월말 창간을 목표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팀장은 “황우석 스캔들에 이어 우주인 선발, 한국형 인공위성 개발 등의 소식으로 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SF 독자층도 두꺼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SF 중흥의 요인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비관적인 조짐들도 있다. 3년 전부터 시행해 온 ‘과학기술창작문예’가 올해 과학기술부의 예산 삭감으로 폐지된 것이 SF계를 낙담시켰다. 한 SF작가는 “신예 작가의 산실인 ‘과기문예’가 부활되지 않는다면, 작가 지망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나쁜 조짐은, 그동안 SF소설을 출간해 왔던 15, 16개의 출판사들 중 일부 대형사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 대형사의 출판 포기는 다른 중소형사에도 영향을 미쳐 창작물 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임형욱 대표는 “월간 발행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는 ‘판타스틱’이 성공한다면 국내 창작 SF뿐만 아니라 해외 우수 작품의 수입도 활발해질 것이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아무도 이 분야에 투자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SF계는 암흑기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장재선기자)

07. 02. 03.

P.S. 러시아 SF하면 생각나는 작품은 내 경우엔 단연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Stalker)>(1979)이다. 스트루가츠키(스뜨루가쯔끼) 형제의 SF소설 <길가의 피크닉>(1971)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이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열린책들)은 작년 여름에 재판이 나왔다.

소개를 옮겨오자면, "스뜨루가쯔끼 형제는 일본 문학을 전공한 형 아르까지(1925-1991)와 천체 물리학자인 보리스(1933- )로, 둘은 반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SF소설의 걸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196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구소련 정부의 냉대로 침묵을 강요받고, 작품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1974년작인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은 현대의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외계로부터의 압력을 받는 과학자들을 그렸다. 학자들이 정체모를 외계의 압력을 받는다는 것은 학문이 정치의 지배를 받는 구소련의 상황을 풍자한 것. 생존을 위해 타협할 것인가, 자신과 가족을 희생해가며 학자적 양심을 지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러므로 단순한 픽션만은 아니다."

그들 형제의 또다른 대표작 <길가의 피크닉>도 그런 의미에서 소개됨 직하다. 한번 강력히 추천해봐야겠다.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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