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출간된 책 중에 <기억 - 제3제국의 중심에 서서>(마티, 2007)가 '리콜'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접했는데(작년말에는 그린비출판사가 <자본주의 역사강의>를 리콜한 바 있다), 내일자 한국일보에 자초지종에 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기에 옮겨온다. 거의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가격 또한 상당해서 감히 손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책이었다. 그런 만큼 구입자들에게 '의미있는 책'이었을 텐데, 출판사측에서는 이런 점도 고려한 듯하다. 가장 바람직한 건 물론 한번에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내는 것이지만, 차선의 방책은 책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책임'을 지는 태도이겠다. 신뢰할 수 없는 책들을 내고선 입 닦는 태도가 가장 나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알고 보니 '마티'는 1인 출판사인데,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손해를 감수한 대표의 결단에 격려를 보낸다(사실 '30여 개의 오자'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출판사들 적지 않다).      

한국일보(07. 01. 31) ‘마티’ 정희경 사장 “오자 30여개… 다시 찍기로"

정희경(30)씨는 <마티>라는 1인 출판사의 사장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출판사 대표이고, 마티는, 1인 출판사로는 유일하게 인문서적만 내는 곳이다. 그는 2005년 4월 출판 등록한 이래 지금껏 17종의 책을 냈고, 그 책들을 찾는 이들이 적으나마 꾸준히 있고, 타산 앞세워 단 한 권도 절판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한다(*출간된 지 2-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절판된 책들 적지 않다).

가장 최근에 낸 책이 나치 독일의 군수장관을 지낸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 서서>(957쪽ㆍ3만7,000원)이다. 그런데, 출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이 책을 그 스스로 절판 시켰다. “오자가 30여 개나 돼 독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수정판을 찍어 구매자에게 다시 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유가 있나 보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돈 안 되는 인문서만 고집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 결정도 무모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땅이 좀 있어요’라고 말하고 웃어줘요. 문을 닫네 마네 하는 판인데 말이죠.”(*실제로 땅 밑천으로 책장사하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손실이 큰가.

“들인(일) 돈만 쳐서 약 2,500만원 정도 돼요. 제 책은 초판 2,000부를 1년 안에 소화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재판 찍으려면 또 목돈 들고, 그 돈 회수하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고…. ‘투자- 회수- 재투자’의 아슬아슬한 균형에 이처럼 치명적인 변수가 터진 거잖아요.”

-대안은 없었나. 가령, 정오표를 따로 낸다든가.

“이틀 동안 고민도 하고, 조언도 구했어요. 그런데 내용상의 오류가 아니라 단순 오ㆍ탈자가 대부분이에요. 마티 이미지에는 그런 오자가 더 치명적일 수 있거든요. 후회하진 않아요.”(그는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이번 사태의 경위를 설명했는데, 그 역시 어이 없는 피해자였다. 그렇다고 책임이 경감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이자 책임자인 당사자는 이중의 고통, 곧 피해의 상처와 책임의 하중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아마도 편집/교정을 외주에 맡겼던 모양이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제가 사는 오피스텔 보증금(2,000만원)을 빼기로 했어요. 사무실(보증금 500만원)은 빼봐야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현재 진행중인 책만도 10종이 넘고, 집필이나 번역이 거의 마무리된 것도 있어요.”

대학 96학번인 그는 수습 월급 150만원의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4개월 만에 월급 50만원 주는 출판사로 이직했다. “기업 안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과 역량을 오롯이 책에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 했다. 독자층이 적은 분야에 기약 없이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차린 게 마티다. 그는 자신의 모든 책의 기획ㆍ편집ㆍ디자인을 해왔다.

“우리 근대 형성에 일본 못지않게 영향을 준 서양 근대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아요.” 세기말 파리의 시각문화 양상을 분석한 책 <구경꾼의 탄생>이나, 20세기 초 상용화된 최초의 항공 운송수단인 비행선이 대중 문화에 미친 영향을 살핀 <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 등이 그렇게 출간됐다. 서양 미학사의 고전인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도 그가 낸 책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의 논리가 출판시장을 장악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먹이 피라미드 안에, 돈 없이 돈 안 되는 인문서만 내는 마티의 자리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없다. 주거와 사무를 겸할, 보증금 싼 집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며 털고 일어서던 그는 “다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제가 낸 책이 모두 살아있잖아요. 뜨겁게 활활 타지는 않아도 가장 오래 타는 출판사를 만든다는 게 제 모토랍니다.”(최윤필 기자) 

겸사겸사 <기억>에 대한 언론 리뷰도 하나 옮겨놓는다. 조만간 수정판의 '속살'이 드러나길 고대하면서.

서울신문(07. 01. 20) 침묵했던 제3제국 속살 드러내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서(김기영 옮김, 마티 펴냄)’는 96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우선 독자를 압도한다. 이처럼 두꺼운 자서전을 펴낸 슈페어(1905∼1981)는 과연 누구인가.‘히틀러의 건축가’로서 그는 히틀러의 과대망상적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긴 장본인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재판에서 나치 독일의 장관 중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20년 징역형을 언도 받고 복역을 마쳤다.



독일 만하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슈페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되었다. 그는 1931년 베를린의 대학생을 상대로 맥주홀에서 가진 히틀러의 연설을 처음 들었다. 히틀러에 대한 첫인상은 “열광에 넘치는 분위기 자체만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의 모습 또한 나를 놀라게 했다…모든 것이 적절한 겸손함을 풍겼다.”란 것이었다.

조금은 쑥스러운 듯 유머를 섞은 그의 연설이 풍기는 분위기와 열정에 빨려든 슈페어는 나치의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가입한다. 나치당 청사 공사에 참여한 슈페어는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장식과 시각적 장치를 맡아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히틀러의 신뢰를 얻는다. 히틀러의 대중선동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나치 정권에서 최연소인 37살의 나이에 군수장관에 오른 슈페어는 전시경제를 장악한다. 또한 점령지 강제수용소의 노동력을 군수생산을 위해 착취했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모든 시설을 파괴하라고 명령하는 히틀러에 맞서 독일의 문화유산과 산업시설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종전과 함께 연합군에 체포된 슈페어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히틀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다른 피고인들과 달랐다. 자기반성과 변호를 절묘하게 뒤섞은 태도를 보이며 ‘선량한 나치’ ‘최고의 피고인’으로 불리며 교수형을 면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자신의 서명이 들어 있는 서류가 제시되면 무조건 히틀러의 명령이었다고 설명하는 피고들을 향해 “엄청난 월급을 받는 우편배달부들!”이라고 외쳐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그는 자살을 하려고 수건으로 아픈 다리를 묶어 정맥염을 유발하거나, 니코틴도 물에 녹으면 치명적이란 내용을 기억하고 부서진 시가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나 자살 시도를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슈페어는 메모광이었다. 감옥에서 군수장관으로서 작성한 업무일지, 편지, 전보 등을 바탕으로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히틀러의 내밀한 모습을 담아낸다.



히틀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전문성이었다든지, 체중을 항상 걱정했다는 일화 등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히틀러는 독학으로 자수성가를 이루었기에 모든 분야에 문외한이었지만, 재빠른 두뇌회전으로 전문가가 시도하기 어려운 특별한 방식을 고안했다. 전쟁 초기에는 과감성으로 승세를 잡았지만, 패배가 확산되면서 비전문성은 아집으로 변했다.

“끔찍하군! 배를 불룩 내밀고 걸어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그건 바로 정치적 파멸이야.”라고 외치며 채식을 고집했던 히틀러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조롱했다.1943년 이후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히틀러는 “슈페어, 요즘은 친구가 둘뿐이군. 브라운(히틀러의 연인이자 비서었던 에바 브라운)과 개라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치 정권의 ‘속살’을 보여주는 ‘기억’은 유일한 내부 증언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럼에도 슈페어의 가장 두꺼운 자기변명이란 비난이 뒤따르는, 여전히 논란 속에 놓인 책이다.(윤창수기자)

07. 01. 30.

P.S. 둘러 보니 오드리 설킬드의 <레닌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2006)이 또한 마티에서 낸 책이다. 그러고 보니 그 책 또한 젊은 여사장의 '열정'이 낳은 산물이었다. 내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은 <혁명을 팝니다>와 <구경꾼의 탄생> 정도이다. 1인 출판사가 출판계에 드문 건 아니지만 이만한 실적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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