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차를 태워보내고 곧장 편의점에 가서 한겨레와 한국일보를 손에 들고 왔다. 최장집 교수와 작가 이문열의 인터뷰를 읽어보기 위해서였다(최장집 교수의 인터뷰에 대한 기사는 여기저기서 다루기에 있기에 페이퍼를 만들다가 그만두었다). 곁가지로 읽은 기사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한겨레에 실린 '세계의 창'. 중국의 언론인 저우창이가 '샤오바오' 부리는 중국과 장이머우를 꼬집고 있는 칼럼이다(덕분에 '샤오바오'란 중국어 단어를 익히게 되었다). 이번주 개봉예정작인 장이머우의 <황후화>에 대해선 부정적인 영화평들은 미리 접한 바 있고 또 최근에 인터넷에 떠도는 영화를 미리 보기도 했다(집중해서 보진 않았지만 집중해서 볼 만한 영화도 아니었다). 장이모의 '변신'이 그 자신의 탓만은 아니라는 필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이 칼럼과 영화 <황후화>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22) 장이머우와 샤오바오

중국에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 우쭐대는 것을 ‘샤오바오’(燒包)라고 한다. 중국에는 아직 가난한 사람이 수억 명에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벼락부자가 되어 샤오바오를 부린다.

2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반지’였다.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끼고 다니며 유세를 부렸다.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것을 한탄할 정도였다. 10년 전,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연회’로 바뀌었다. 식탁 가득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고 호사를 부렸다. 이 바람에 베이징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의 음식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이런 식당에서 기꺼이 바가지를 썼다. 이때는 거리의 건달들도 샤오바오를 부렸다. 이들은 홍콩 조폭영화에 나오는 깡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며 ‘황금영’(상하이 폭력조직 흑사회의 두목)을 되뇌었다.

요즘 부자들의 샤오바오는 ‘황금첩’이다. 뇌물로 돈을 번 탐관오리나 장사로 부자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첩을 거느린다. 한둘은 기본이고, 첩을 열이나 데리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이들 첩의 샤오바오는 ‘황금장신구’다. 몸에 주렁주렁 금붙이를 달고 다니며 위세를 떤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긴 아내들은 ‘황금통장’이라는 샤오바오를 부린다. 이들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해 비상금을 저축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젠 정부도 샤오바오를 부린다. 정부의 샤오바오는 ‘황금성’이다. 백성들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관청을 자금성처럼 호화롭게 꾸민다. 자기 돈이 아니라고 건물을 장식하는 데 마음껏 호사를 부리는 것이다. 이러니 백성들도 샤오바오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백성들의 샤오바오는 ‘황금무덤’이다. 요즘 같은 호시절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위해 무덤을 궁전처럼 호화롭게 지어주는 것이다.

과거엔 세상이 모두 샤오바오를 부려도 지식인들만은 예외였다. 이들은 청빈을 얘기하며 고고함을 지켰다. 샤오바오라는 말을 만들어 부자들의 속물근성을 풍자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 뒤에 있는 여론도 상인이나 관리들의 샤오바오를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인들마저 샤오바오에 빠졌고, 여론도 샤오바오를 문제삼지 않는 지경이 됐다.

요즘 지식인들의 샤오바오를 대표하는 게 장이머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황금갑>(당나라 말기 황궁의 암투를 그린 영화. 한국에선 <황후화>로 번역)이다. 그는 원래 중국 계몽영화의 기수였다. 그의 영화 <국두> <귀주이야기> <홍등>에는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듬뿍 배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 그는 중국 상업영화의 선두에 서 있다. 그의 최근 작품, 특히 <황금갑>에선 사상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두 개의 단어 ‘사치’와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 중국 영화에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금갑>과 동시에 개봉한 자장커 감독의 <삼협호인>은 중국 영화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과거 중국 계몽영화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협호인>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황금갑>이 3억위안을 벌어들여 중국 영화사의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 <삼협호인>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는 장이머우의 잘못이 아니다. 사치와 탐욕에 눈먼 중국 관객의 잘못이다. 장이머우가 샤오바오하게 된 것은 결국 중국 국민들이 샤오바오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잘살게 되면서 샤오바오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땐 샤오바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장이머우가 총감독을 맡은 올림픽 개막식이 샤오바오의 거대한 의식이 될까 걱정스럽다.(저우창이/중국 월간 <당대> 편집인)

마이데일리(07. 01. 22) 장예모의 '황후화'는 대국민 반란 경고메시지!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이 만든 대작 ‘황후화’가 오는 25일 국내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국서 지난 17일을 기점으로 3억위안(약 360억원)의 흥행을 돌파, ‘영웅’의 2억5천만 위안의 권위를 무너뜨린 ‘황후화’는 아직도 줄지어 영화관을 찾는 중국관객들 탓에 오는 설까지 1998년 ‘타이타닉’이 세운 3억5천만위안의 최고기록 갱신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중국인들을 영화관에 불러모은 중국 블록버스터 중 최고의 대표작이 이제 국내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력뿐 아니라 세계적인 배우 공리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이야기구성이 탄탄하고 관객의 진지한 고민과 참여를 요구하는 영화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황후화'는 “관객의 분노를 고려하지 않는 장이머우와 중국의 자본”(왕즈민 베이징영화대학 교수)이라는 혹평 뿐 아니라 중국의 모 인터넷 논단에서는 “영화를 보고 구역질이 나왔다”면서 “어서 장이머우를 (중국을 대표하는) 베이징올림픽 총감독 직에서 끌어내리라”는 비난도 동반하고 있다.

450억원의 자본이 영화 곳곳에 투입돼 화려하고 웅장한 그림을 자신있게 그려냈지만,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장면과 호화로운 영상으로 넘실대는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중국관객들은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미학적 가치판단 기준을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최저점으로 떨어뜨렸다”(인훙 칭화대 교수)는 ‘황후화’는 관객을 조롱하는 허무맹랑한 상업영화가 아니고 형식만을 강조한 중국식 블록버스터의 극단으로 치닫지도 않았지만 웬지 관객들과의 욕망의 접합에서 실패하고 있다. 

이 영화는 중국의 강력한 전제부권질서가 자유가 없는 아랫세대들에게 초래한 참담한 비극을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군관출신으로 혁명을 통해 왕권을 쥔 저우룬파(주윤발)이며 그는 영화 속에서 무력과 권위의 상징이면서도 어지럽고 출로가 보이지 않는 황실의 모든 잘잘못의 근원지다.



장이머우는 이러한 저우룬파에게 억압을 당하는 황후(공리 분)와 세 아들들이 갖가지 이유 때문에 저우룬파를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데 가담하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이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되게 됨으로써 현실생활 속의 중국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우선 태자(류예 분)라는 인물은 왕을 두려워하고 왕에게 복종하는 전형적인 유형으로 기존의 권력질서에 순응하지만 나라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왕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반란에 끌려간다. 황후와는 불륜이고 여동생과 난륜을 저지르는 그는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둘째(저우제룬 분)는 왕의 신뢰를 받아 차기왕권을 계승받는 것이 시간문제이지만 황후의 편에 서서 쿠데타에 가담해 왕권을 쟁취하려 드는 판단실수를 저지른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스레 권력을 인계받을 수 있으나 황후의 꼬임에 넘어가 쿠데타를 일으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장이머우는 그를 죽음으로 끝맺게함으로써 감정에 치우친 반란을 통한 정권교체 욕망을 강하게 경고한다.

셋째는 가장 사욕과 과오가 없는 중국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듯 하면서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계승자로 급부상하지만 결국은 권력을 위해 왕도 형제도 모두 단숨에 부정해버릴 수 있는 자가 돼버린다. '너희들이 모두 잘못이 있는 이상 너희는 모두 죽어야한다'는 생각을 펼치는 셋째는 태자도 죽이고 왕도 죽여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하나 장이머우가 이미 그를 중국이 가장 경계해야하는 젊은이의 유형으로 정해놓은 뒤의 일이다.

장이머우는 결국 이렇게 세 아들이 유일한 출로로 주장하는 반란을 참담한 실패로 귀결지음으로써 왕이 비록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누구도 왕만한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고 왕을 탓하며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실은 왕보다 더 저열한 자들이라는 것을 관객들이 깨닫게 만든다. 중국인들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한 장이머우는 다시 관객의 차오르는 욕망을 분쇄시켜버린다.

피비린내나는 쿠데타는 반란을 일으킨 이들의 처절한 죽음만을 불러오고 황실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시체더미의 참상 뒤로 남겨진 것은 권력을 지켜냄으로써 미쳐가는 왕과 모든 것을 잃어버려 미쳐버린 황후 뿐이다. 하지만 장이머우는 세 아들의 쿠데타가 왜 실패해야 하는지를 관객들에게 따끔하게 일러주며 쿠데타를 경고하는 데 머무르지는 않는다.



반은 미쳐버린 황후의 마지막 비명과 절규를 통해 어찌할 수 없는 황실의 현실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장이머우는 관객들이 저우룬파가 그려낸 왕이란 인물을 혐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관객들이 황실의 미래를 그려내는 데 참여해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변화를 요구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욕망만이 아닌 보다 냉철한 현실 판단을 주문한다.(이용욱 특파원)

07. 01. 22.

P.S. 매일경제의 기사를 보충하면 이렇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중국에서 매우 유명한 비극작품 중 하나인 '뇌우'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이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1990년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중국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러나 '영웅'(2003년)이나 '연인'(2004년) 등 최근 들어 방대한 스케일을 강조하는 액션에 탁월한 연출력을 자랑하며 또 다른 신화를 개척해 가고 있다.

장 감독은 "내 과거 영화들이 주로 예술성에 주목했다면 최근에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영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많은 중국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 쪽으로만 가고 있어 그 대항적 측면에서 선택한 장르"라고 강조했다. 예술영화 거장으로 잘 알려진 그가 상업성을 강조한 대목이 특히 눈에 띄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예술성과 상업성, 이 둘을 모두 잡는 게 지금 중국 영화인들이 가장 고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첸카이거의 <무극>과 함께 장이머우의 <황후화>는 중국 5세대 영화가 이젠 정말로 '과거의 영화'가 되었음을 입증해준다. 혹은 5세대 영화의 예정된 '몰락'인가. CG와 황금갑으로 덧칠하여 호화롭기 그지 없는, 그러나 몰락 혹은 말로...

P.S.2. 중국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기획은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시리즈의 첫권으로 나온 <중국의 세기>(북폴리오, 2006)의 사진들을 출판사와의 협의하에 한겨레에서 게재하기로 한 것. "<중국의 세기>는 중국사가 거쳐 온 격동의 세기를 감동적인 사진으로 정리한 연대기다. 300여장의 사진 대부분은 중국 바깥에서 출판된 적이 없는 것들이다. 개인 소장품, 사진작가 등에게서 입수한 사진들로 중국의 감춰진 얼굴에 전에 없던 생생함을 부여한다. <한겨레>는 7차례에 나눠 사진들을 소개할 예정이다."라고 소개돼 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20세기'가 되겠다(http://www.hani.co.kr/arti/SERIES/110/185752.html). '러시아의 세기' 같은 책도 나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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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2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오늘 <수면의 과학>을 보다가 허우 샤오시엔의 Three Times의 예고를 보았습니다. 그저 저는 저 장이머우의 영화보다는 <쓰리 타임즈> 같은 영화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정말 뜬금없는 소릴 하고 갑니다.

로쟈 2007-01-2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지아장커의 영화도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도 사람들이 안 본다는 것이죠...

클리오 2007-01-2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책에 대해선데, 러시아, 아일랜드 등 5권이 나온다고 들었었는데, 언제 나올런지요... (아! 황후화는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영화 볼 처지는 못되었으니.. ^^)

로쟈 2007-01-2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나중에 '러시아 편'이나 소장하고 있어야겠습니다...

paviana 2007-01-2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후화는 보고는 싶어요.볼 수 는 있을지 모르겠지만..ㅎㅎ

로쟈 2007-01-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평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역시 장예모!'란 평도 있으니까 참조하세요(특히 <영웅>과 <연인>을 재밌게 보셨다면)...

urblue 2007-01-2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 이후로 장이모에게 무슨 컴플렉스가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화려한 화면을 만들어내는데 집착하는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점에서 '샤오바오'에 빠졌다는 지적이 딱 맞는 말로 들리는군요.

로쟈 2007-01-2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귀주이야기>와 <황후화>의 두 공리만큼이나 두 사람의 장이머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