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뮌헨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슈투트가르트로 이동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슈투트가르트에 대한 아침인사는 잠시 보류. 뮌헨에서 슈투트가르트까지는 3시간 정도의 거리인데 교통체증으로 한 시간 이상 더 소요되었다(우리의 명절 귀성길 같았다). 여러 번의 문학기행에서 처음 겪은 일인데 도로공사구간이 있었던 데다가 화물차 하나가 공사장으로 진입하면서 빚어진 일이었다.

문학기행의 일정은 도시의 주요 명소(뮌헨에서는 구시가지의 광장과 시청사, 대성당 등)를 방문하고(마치 문안인사를 하는 것처럼) 문학과 관련된 옃몆 장소를 들르는 일로 구성된다. 바이에른 주의 수도이자 남독일의 중심도시 뮌헨은(베를린과 함부르크에 이어서 독일에선 세번째로 큰 도시. 인구는 140만 가량) 경제중심지이면서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다. 하지만 음악과 미술에 비해서 문학과 관련한 명소는 드문 편이다.

구시가지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뮌헨대학 거리로 가서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에 나오는 셸링거리를 관통하여 카프카가 1916년 작품(‘유형지에서‘)을 낭독했다는 서점 자리에 가보고 슈바빙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혜린의 수필들 때문에 기억하는 이름인 슈바빙 지구는 우리의 대학로쯤에 해당. 이어서 뮌헨이 자랑하는 영국정원을 가로질러(말은 정원이지만 실제는 큰 규모의 공원이다) 우리가 향한 곳은 한 시립도서관이었다. 그곳에 토마스 만 전시관이 있기 때문. 뮌헨이 토마스 만이 30년 동안 살면서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낸 도시라는 사실을 조촐하게 알려주는 전시공간이었다. 도서관답게 토마스 만과 그의 가족, 그리고 시대상과 관련한 책들 다수가 별도로 서가에 꽂혀 있기도 했다.

영국정원에서 가진 짧은 자유시간에는 전혜린과 관련한 장소로 카페 제에로제에 들렀다. 전헤린의 책을 다시 보지 않아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일행 중에 꼭 가보고 싶어한 분들이 계셨다. 지금은 이태리 레스토랑이 돼 있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그렇지만 뜻밖의 발견은 그곳 건물이 토마스 만이 1899년부터 1902년까지 3년간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 전혜린이 아니어도 토마스 만 때문에 일부러라도 찾아갔을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단체사진을 찍고 현판사진도 찍었다. 1900년 여름에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01) 원고도 쓴 곳이라고 나온다. 23세부터 쓰기 시작하여 26세에 발표한 토마스 만의 대표작. 20대에 이런 대작을 쓴 문학적 천재는 세계문학사에 희소하다. 그에 비하면 <마의 산>(1924) 같은 대표작도 나는 놀랍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덕분에 뮌헨에서의 일정이 더 풍성해진 느낌이 들었다.

슈투트가르트로의 이동 중에는 릴케에게서 뮌헨이 갖는 의미와 그의 시세계에 대해 짤막하게 강의했다. 나는 <말테의 수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탕아의 이야기‘가 릴케의 문학과 그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집과 조국이 없는, 언어 외에는 아무런 소속을 갖지 않았던 보헤미아의 시인 릴케를 독일 시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독어로 시를 썼다는 것밖에 다른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에 걸맞게 뮌헨은 릴케를 기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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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1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밖의 발견~보물찾기에서 선물 찾은 기분이지 않았을까~
(글에서 그런 느낌이 ㅎ)
토마스 만과 함께? 찍은 사진 멋지네요.
흑백사진이라 더.

로쟈 2018-10-19 12:13   좋아요 0 | URL
네 서프라이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