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9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서평 강의를 하면서 읽은 스티븐 슬로먼, 필립 페른백의 <지식의 착각>(세종서적)을 다루었다.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가 부제. 집단지능과 지식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교육에 대해 갖는 함의를 깊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소감이다...



주간경향(18. 10. 22)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미국의 인지과학자 두 사람이 공저한 <지식의 착각>은 제목이 출발점이다. 우리들 각자가 똑똑하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막상 변기나 커피메이커가 작동하는 원리,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원리를 질문하게 되면 대부분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서 막연히 안다고 착각하는 걸 '이해의 착각'이라고도 부른다. 그렇지만 저자들이 겨냥하는 건 무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해명이다. 


애초에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기술자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변기나 커피메이커를 이용할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면 주변에 자문을 구하거나 전문가에게 문의할 수 있다. 길게 보면 이러한 협력이 인간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다수의 사람은 많은 것을 안다. 그렇게 우리는 지식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지식을 공유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무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지식 공동체 안에 살면서 자기 머릿속에 든 지식과 외부의 지식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이 지식 공동체에 의존한다면 지능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능은 더 이상 개인이 문제를 추론하는 능력이 아니라 집단의 추론과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정도를 뜻한다. 즉 지능은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팀(집단)의 자질이며 만약 가능하다면 집단지능이 평가와 측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특히 교육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교육의 목적인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주입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개인의 지식과 기술을 넓히는 것이고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머릿속에 정확한 지식이 더 많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가정"을 문제 삼는다. 교육의 목적으로서 잘못 되었거나 최소한 불충분하다. 학습에 대한 편협한 관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지식 공동체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학습에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개발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제공해야 할 지식은 무엇이고 남들이 채워넣어야 할 틈새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지식의 착각'에 빗대어 말하자면 '교육의 착각'에 대해 눈뜨게 한다. 진정한 교육은 소크라테스의 오래된 가르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말은 더 구체적으로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는 뜻이었다. 교육의 첫 단계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고, 두번째는 나는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 누가 아는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해줄 것 같은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대입 수능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사회는 교육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교육과정을 실행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1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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