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9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아구스틴 푸엔테스의 <크리에이티브>(추수밭)에서 주로 '전쟁과 평화'의 장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전쟁과 평화'는 '기후변화'와 함께 올해 관심을 갖게 된 주제여서 앞으로도 관련서들을 더 읽게 될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와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저자가 논박하고 있는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핑커가 논거로 삼고 있는 로렌스 킬리의 <원시전쟁>(수막새) 등이 있다...
주간경향(18. 10. 08) 이제는 공존의 힘을 말할 때다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으로의 여정이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다. 장애와 변수가 많이 남아있지만 평화와 공동번영에 대한 남북 정상의 의지가 확고하고 국민적 지지가 더해진다면 분단체제의 극복이 꿈만은 아니다.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연스레 전쟁과 평화라는 화두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는 인류학자 아구스틴 푸엔테스의 <크리에이티브>를 읽으면서도 가장 주목한 대목이 전쟁의 진화를 기술한 부분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견해를 펼친다. 핑커는 국내에도 소개된 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의 역사가 특정한 경향성을 보이며 그 핵심은 폭력의 감소라고 주장한다. “현대 인류에게 폭력성이 본성으로 존재한다 해도 과거에는 내면에 존재하는 짐승의 천성 때문에 훨씬 더 폭력적이었으며, 현재는 문명이 진보하면서 폭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핑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폭력을 지속적으로 줄이려고 애써 온 역사다. 심지어 그는 ‘왜 세상에는 전쟁이 있을까?’라고 묻는 대신에 ‘왜 세상에는 평화가 있을까?’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푸엔테스는 핑커의 주장이 일부 보고서에만 근거한 편협한 견해라고 반박한다. 영장류학과 고고학 자료에 대한 재검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영장류의 극심한 공격 행동이 전체 활동에서 1%도 되지 않는 보기 드문 행동이라는 점이다. 영장류는 폭력을 행사하기보다는 휴식을 취하거나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우리의 몸에서도 폭력 지향성을 뒷받침할 만한 생물학적 체계는 발견되지 않는다. 핑커의 견해와 달리 폭력은 상시적이지도 자연적이지도 않다.
푸엔테스는 대신 인간이 전쟁을 창조했다고 본다.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7500년 전까지는 치명적 폭력이 일어난 사례가 매우 드물고 사례가 있더라도 전투행위의 근거로는 미약하다. 체계적인 대규모 살육의 증거는 6000년 전에서 7000년 전부터 많아진다. 이때부터 폭력의 빈도와 강도가 현저하게 증가하는데, 이 시기는 정착생활과 함께 사회규모가 커지고 그 구조가 복잡해져가는 시기다. 정치적·사회적 불균등이 심화하면서 전쟁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역사에서 전쟁이 창조 내지 발명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인데,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인간이 가진 창의성의 일면이라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대규모 살상을 가능케 하는 협력행동은 거꾸로 평화를 위해서도 쓰일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키는 능력은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 즉 혁신하고 함께 어울리며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련들에 맞서 응대하는 능력에서 자라났다.” 남북의 오랜 군사적 대치상황을 가져온 능력을 이제 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한 능력으로 전환하는 데 힘을 실어주는 주장이다.
18. 10.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