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9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서평 강의에서 다룬 김에 밀의 <여성의 종속>(책세상)에 대해 적었다. 다른 번역본으로는 <여성의 예속>(이대출판부)으로 나와 있다. 이번주에 나온 책 가운데서는 드루드 달레룹의 <민주주의는 여성에게 실패했는가>(현암사)가 <여성의 종속>이 던지는 질문을 검토하는 데 유익한 참고가 될 듯하다... 



주간경향(18. 09. 17) 남녀평등은 얼마나 실현되었나


여성주의 고전으로 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은 그의 대표작 <자유론>에 견주어 ‘평등론’이라고 불려도 좋을 에세이다. 그 평등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으로, 밀은 사회적 관계에서 남녀 간의 불평등이 인간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며 “이것은 완전 평등의 원리로 대체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19세기에 쓰인 <여성의 종속>을 오늘날 다시 읽는다면 그것은 자연스레 과연 밀의 주장이 이후에 얼마만큼 실현되었는지 확인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먼저 따져볼 것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성의 시대인가, 반이성의 시대인가. 밀은 자신의 확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당대 다수의 견해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토로한다. 그것은 정확하게는 반대되는 의견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릇된 감정과의 싸움이어서다. 그러한 감정은 편견에 대한 검토를 차단하고 비판을 봉쇄한다. 가령, 남성은 명령하고 여성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여 어떠한 문제제기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밀은 이러한 경향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도 후퇴한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의 보편적 이성에 대한 믿음이 밀의 시대에 와서는 본능에 대한 숭배로 대체되었다.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경도와 함께 온갖 거짓 신앙이 판을 친다. 그렇게 귀를 막고 있는 다수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한 어려움과 비교하자면 밀의 남녀평등론은 매우 간명한 논리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는 힘의 법칙에 지배되어 왔지만 그것은 도덕의 법칙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덕의 법칙은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를 때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물건으로 대하는 노예제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의 악명 높은 흑인노예제가 남북전쟁의 결과 폐지된 것은 1865년의 일이고 <여성의 종속>은 1869년에 발표되었다. 이러한 순서는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데, 밀은 노예해방의 바로 다음 단계가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해방, 곧 여성해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밀이 보기에 노예제가 힘의 법칙에 따른 정당화였을 뿐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종속도 근거가 없다. 

“인간 삶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밀은 말한다. 이 행복에 대한 접근과 추구의 권리가 인류의 절반에게는 봉쇄되어 있다면 부조리한 일이다. 밀의 문제제기로부터 150년이 지난 오늘날 그러한 부조리는 얼마만큼 제거되었을까. 제도상의 차별 철폐와는 별도로 우리의 관념 속에서 남녀 간의 평등의식은 얼마만큼 확고해졌을까. <여성의 종속>이 던지는 질문이다.


18. 09. 13.



P.S. 한 가지 교정사항을 적어둔다. <여성의 종속> 해제에서 <여성의 종속>이 여성주의 이론사의 출발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1792)의 출간연도가 1702년으로 잘못 적혔다. 오타이긴 한데, 리커버판에서도 교정되지 않은 상태라 눈에 띈다. 이 책도 완역본은 <여권의 옹호>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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