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주중에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부랴부랴 고른다. 지난주에 시작은 했다가 중단했었다. 저장된 걸 보니 이렇게 적었다. "독서의 달이면서 마지막 주엔 추석 연휴도 껴 있는 9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렸던 한달 전과 비교하면 너무도 '친'독서적인 계절이다. 조건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친해지는 건 각자의 몫이다." 이어서 적는다.
1. 문학예술
문학 쪽으로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2차분으로 나온 시집 여섯 권을 고른다. 1차분과 다르게 이번에는 하드카바로 나왔다.김행숙부터, 오은, 임승유, 이원, 강성은, 김기택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김행숙, 오은, 이원, 김기택은 구면이고, 임승유, 강성은은 초면이다. 시집 독서가 밀린 분들에게는 반년치 몰아 읽기로도 의미가 있겠다.
편혜영과 박형서의 소설로 시작한 소설선은 지난 여름에 세 권이 추가되었다. 김경욱, 윤성희, 이기호의 신작들이다. 이 시리즈의 책들을 모아놓으니 표지에 꽤나 공을 들였구나 싶다. 시인선이건 소설선이건 적당히 골라서 읽어보면 되겠다.
예술 분야는 오랜만에 음악 쪽에서 고른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나온 유윤종의 <푸치니>(아르테), 그리고 조르주 무스타키의 대담집 <알렉산드리아 고양이>(한국문화사), 2015년에 세상을 떠난 팝칼럼니스트 김광한의 유고 자서전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북레시피) 등이다. 조르주 무스타키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불어시간에 처음 소개받았으니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리고 팝스다이얼이 언제적 FM 프로였던가. 오후 2시면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와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시그널 음악이 울려퍼지던 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다.
2. 인문학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은 이달의 필독서다. 이언 골딩 등의 <발견의 시대>(21세기북스), 과학자가 쓴 빅히스토리 책으로 월터 앨버레즈의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아르테) 등도 비교해서 읽어볼 만하다. 북극과 남극의 빙산이 녹고 있다는 불길한 뉴스를 접하다 보면, 호모 데우스의 시대나 4차산업혁명보다 지구 종말이 더 빨리 닥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여하튼 당장에라도 해야 하는 일은 역사를 좀더 긴 안목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준비가 되어 있건 그렇지 않건, 그래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새로 나온 <한국현대사>(전2권, 푸른역사)와 <한국 현대사와 사회경제>(경인문화사)도 추석용 읽을 거리로 미리 주문했다. 세계사와 함께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볼 만한 시간이다.
3. 사회과학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다룬 책들로 <세계불평등 보고서 2018>(글항아리)와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 문제>(소와당)도 읽을 거리. 거기에 박노자의 칼럼집 <전환의 시대>(한겨레출판)도 고른다. 남북관계뿐 아니라 국제관계, 더 나아가 지구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전환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래저래 읽어야 할 것도 많고 고민할 주제도 많다.
예판으로 뜬 고 노회찬 의원의 <우리가 꿈꾸는 나라>(창비),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의 저자인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인터뷰집 <거리의 인생>(위즈덤하우스), 그리고 시카고대학 사회학과 교수 야마구치 가즈오의 <직장에서의 남녀 불평등>(연암서가)도 덧붙인다.
4. 과학
과학 쪽으로는 원제대로 다시 나온 스티븐 제이 굴드의 <원더풀 라이프>(궁리)를 고른다.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경문사)란 제목으로 14년 전에 나왔던 책이다. 김홍표의 <가장 먼저 증명한 것들의 과학>(위즈덤하우스)은 "역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의 발견과 증명의 과정을 엮은" 책이다. 댈러스 캠벨의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세상)는 말 그대로 '진짜 안내서'다. "우주 탐사의 과거·현재·미래, 우주인의 실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이 책은 우주과학·천문학·항공학 등의 전문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전해준다."
5. 책읽기/글쓰기
과학책 이야기이면서 과학 이야기로 <이명현의 과학책방>(사월의책)과 노승영, 박산호의 번역 이야기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세종서적), 번역가 조영학의 번역특강, <여백을 번역하라>(메디치) 등을 고른다.
<장미의 이름> 리커버판이 알라딘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언젠부턴가부터 지속되고 있는 리커버판에 대한 이런 반응은 분석 거리다) 도서관을 주제로 한 책으로 스튜어트 켈스의 <더 라이브러리>(현암사)도 나로선 관심도서다. 거기에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교유서가)도 슬쩍 올려놓는다...
18. 09. 09.
P.S.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대표작 <유한계급론>(에이도스)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한가한 무리들>(동인, 1995)로 처음 나왔던 번역본까지 포함하면 서너 종의 번역을 갖고 있는 듯싶다. 1899년에 나왔으니 내년이면 출간 120주년이 된다. 요즘 발자크와 드라이저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읽다 보니 자연스레 베블런의 통찰과 만나게 된다. <유한계급론>과 함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도 다시 책상(식탁)에 펼쳐놓았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이달의 읽을 거리로는 결코 모자라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