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9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번 여름의 과제 가운데 하나가 제발트의 작품들을 읽고 강의하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작품 <아우스터리츠>(을유문화사)를 오늘 강의했다(다음주에 한 차례 더 지방에서 강의하게 된다). 절판된 <이민자들>을 제외하고 <현기증>과 <토성의 고리>, 그리고 <아우스터리츠>를 차례로 읽었고, <공중전과 문학>도 참고로 읽었다. 리뷰는 <공중전과 문학>의 메시지를 간추린 것이다. 어제가 광복절이라는 점도 고려한 책선정이었다. 한편, 한국전쟁에서의 공중폭격을 다룬 문학작품이 있던가 궁금하다...



주간경향(18. 08. 20) 전쟁의 공정한 평가는 문학적 책임


200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W. G. 제발트는 동시대 가장 경이로운 독일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생전 몇 권의 시집과 비평집 외에 단 네 권의 소설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진작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고, 현재는 독문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작가다. <공중전과 문학>은 1997년 취리히대학 초청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강연과 그에 대한 반응, 그리고 강연 이후의 소회 등이 담겨 있다.  


제발트는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와의 짧은 여행에 대한 친구 카를 젤리히의 묘사를 읽고 강연의 주제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1943년 발저가 환자로 있던 스위스의 정신병원을 나선 한여름 날 밤에 독일 함부르크시는 영국 공군의 야간공습으로 철저히 파괴된다. 그렇지만 젤리히의 회고에서 이 우연의 일치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거꾸로 제발트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우연이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역사적 기억이다. 그 기억은 공중전에 대한 것인데, 좀 더 정확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영국 공군의 폭격에 의해 초토화된 독일 도시들에 대한 기억이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영국 공군은 40만 번의 출격으로 100만톤의 폭탄을 독일 전역에 투하했고, 공격을 받은 총 131개의 독일 도시 가운데 드레스덴을 포함한 몇몇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공습으로 희생된 민간인 사망자만 6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일은 당사자들의 회고뿐 아니라 전후 문학에서 기이할 정도로 망각되었다고 제발트는 지적한다. 게다가 전범국가로서 독일의 책임은 이 과도한 폭격과 학살을 문제삼지 못하게 만든다. “독일 국민 대다수가 함께 경험한 극에 달한 파괴의 참상은 그렇게 일종의 터부에 묶여, 스스로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가정사의 비밀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 비밀의 소환과 환기가 제발트 문학의 비밀이고 핵심이다. 1944년생이고 알프스 북부지방이 고향이기에 제발트는 당시의 폭격과 파괴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쟁 당시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통해서 그는 전쟁세대로 재탄생한다. 그 끔찍한 사건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제발트의 작품에서는 사진이나 이미지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참혹한 역사적 기억과 그에 대한 문학적 책임을 되새겨보게 하는 에세이를 통해 제발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 독일은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독일 자신이 공중폭격의 원안자였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는다.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나치스의 공군은 최신형 화염폭탄을 통해 런던을 거대한 불바다로 만들고자 했었다. 또한 게르니카와 바르샤바, 베오그라드 등의 도시를 공습함으로써 도취적인 파괴의 선례를 보여준 것도 독일이었다. 제발트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무자비한 폭격과 파괴행위를 공정하게 역사의 법정으로 소환하고자 할 뿐이다. 그는 그것이 여전히 문학의 몫이고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작가였다.


18.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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