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대해서 말하는 건 중언부언이지만 한여름 독서의 최대 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음주에는 사정이 나아질는지, 당장 오늘밤은 어찌해야 할는지 자다말고 일어나서 몇 자 적는다. 잠깐 잠들기 전에 읽은 책은 요즘 강의하는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문학동네)이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놀라운 제목이라고 경탄만 하고 바로 읽지는 않았는데, 막상 읽으니 아무래도 제목이 오역 같다.
독어 원제는 ‘Luftkrieg und Literatur‘(1999)인데, ‘문학‘이야 오역의 여지가 없고 문제는 ‘공중전‘이다. ‘Luftkrieg‘를 검색하면 ‘군사 항공전, 공중전‘이라고 나오는데, 국어사전에서 항공전과 공중전은 ˝항공기끼리 공중에서 벌이는 전투˝를 뜻한다. 하지만 제발트가 이 단어로 뜻하는 건 항공기를 통한 폭격을 가리키는 ‘공습‘이다. 짐작에 독어의 ‘Luftkrieg‘는 우리말 ‘공중전‘보다 의미역이 넓어서 공중전과 공습까지도 포함하지만, 한국어 공중전에는 공습의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한국어 ‘공중전‘에 잘 대응하는 것은 영어의 ‘dogfight‘다).
2차세계대전 말기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인한 피해를 말하면서 ˝독일 민간인 60만 명이 이 공중전으로 희생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나는 ‘공중전‘이란 말이 눈에 거슬린다(민간인 60만 명이 공중전에서 사망한다?). ‘공중폭격‘이나 ‘공습‘이라고 해야 맞다. 독어에 ‘공중폭격‘을 뜻하는 단어가 따로 있어서 역자가 구분해서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제발트의 이 책(강연)에서는 같은 뜻이다. 제발트가 문제삼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폭격이지 결코 공중전이 아니다.
번역본이 반양장본과 양장본으로 두 차례 나오면서 제목이 교정되지 않은 것은 특이하게 여겨진다. ‘공중전과 문학‘‘이라는 제목이 멋있게 여겨져서였을까? 하지만 나로선 ‘공중폭격과 문학‘이라는 의미가 가려지는 바람에 제발트에 대한 이해에 혼동을 준다고 생각한다. 불만스럽다는 뜻이다. 폭격은 공중전 같은 쌍방간의 전투가 아니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의 일방적인 폭탄 투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독일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제발트가 문제삼는 건 그 트라우마와 그에 대한 문학적 망각이다. 그리고 이는 제발트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한편 같은 책의 영어판 제목은 ‘On the Natural History of Destruction‘(2003)이다. 직역하면 ‘파괴의 자연사에 관하여‘가 될 텐데 우리말 번역으로는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리고 아마도 제발트 생전이라면 동의했을지 의구심이 든다(제발트는 영어판이 나오기 전인 2001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좀 풀어서 얘기하면 ˝폭격으로 인한 파괴를 자연스러운 것처럼 간주해온 역사를 비판한다˝는 뜻을 담아야 한다. ‘파괴의 자연사에 관하여‘는 아무래도 불충분하게 여겨진다. 사정은 ‘공중전과 문학‘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