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한 잔 마시다가 문득 책장에 있는 책 한권을 꺼내들게 되었다. 독일의 문예학자 한스 로베르트 야우스(1921-1997)의 <미적 현대와 그 이후>(문학동네, 1999)가 그것이다. 독어본이 1989년에 나온 걸로 돼 있으니까 10년 안쪽으로 '발빠르게' 번역소개된 문예이론서이다. 이번에 찾아보니까 영역본도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이다.

흔히 수용미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야우스는 그의 대표작인 <도전으로서의 문학사>(문학과지성사, 1983)를 통해서 비교적 일찍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후에 몇몇 글들이 더 번역된 걸로 기억되지만 단행본은 그 두 권이 전부인 듯하다. 나는 영역된 그의 책을 2-3권 더 갖고 있다.

  

<미적 현대와 그 이후>는 "수용미학의 창시자이자 독일의 대표적인 문예학자가 쓴 근현대 서유럽의 철학, 예술적 담론에 대한 학문적 탐색"이다. 러시아 모더니즘에 대한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까닭에 그 '미적 현대'를 되짚어볼 필요성이 생겼는데, 야우스의 책은 요긴한 준거점이다. 그 모더니즘/모더니티에 대한 이야기는 내년에 자주 하게 될 듯하고, 다만 이 번역서의 책갈피를 들여다보다가 이 책이 속해 있는 '모더니티 총서' 목록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진리와 방법>부터 시작된 총서는 9번째 책으로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책 <세계의 독서가능성>을 '근간'으로 적어놓고 있다. 그게 7년 전 일이고, 책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아마도 '엎어진' 기획인 듯싶다.

야우스란 이름과 함께 곧잘 떠올려지는 독일 철학자/문예학자의 이름이 한스 블루멘베르크(1920- )인데, 두 사람은 연배도 비슷하고(비록 야우스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또 이름도 똑같이 '한스'이다(한스 vs 한스?). 모처럼 블루멘베르크의 주저 한 권을 읽어볼 수 있겠구나, 라고 기대를 걸었던 일이 목록을 보면서 다시 상기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어와는 아직 인연이 없는 것을. 도서관에 있는 영역본으로 당분간은 만족해야겠다(책을 복사해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블루멘베르크의 책으로 내가 읽어본 건 'Shipwreck with spectator : paradigm of a metaphor for existence'(MIT Press, 1997)이란 얇은 책 한권이다. 흥미는 갖고 있었지만 대개의 그의 책들은 잘 엄두가 나지 않는 방대한 부피를 자랑한다. 영역본 <세계의 독서가능성>과 함께 같은 시리즈(Studies in contemporary German social thought)의 책으로 출간된 <코페르니쿠스적 세계의 발생(The genesis of the Copernican world)>(1989)만 하더라도 본문만 772쪽에 이르는 책이다(블루멘베르크의 책으론 그밖에 'Work on myth'(MIT, 1985) 정도가 더 영역돼 있다). 

독일 현대 문예이론의 봉우리들을 이루는 이러한 저작들이 조만간 번역/소개될 수 있을까? 블루멘베르크의 '독서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여기에 적어두도록 한다...

06.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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