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바삐 골라놓는다. 알려진 대로 출판계에서는 여름이 성수기다. 영화계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급 책들이 주로 여름에 출간되는 이유다. 지난달과 이달에 베스트셀러 저자들의 책이 여럿 출간된 사실에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데, 동시에 이 목록은 현재 가장 주목받는 저자가 누구인지도 가늠하게 해준다.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상으로는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돌베개)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 지난 5월에 나왔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열린책들) 등이 여름시장의 경합작들이겠다. 그런 사정도 고려하여 '7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랐다.



1. 문학예술
올 여름 한국문학은 젊은 작가들이 대세다. <쇼코의 미소>의 작가 최은영의 신작 <내게 무해한 사람>과 함께 <너무 한낮의 연애>의 작가 김금희의 신작 <경애의 마음>(창비)이 문학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상대적으로 중견 작가들의 신작이 별로 없기도 하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도 한발 앞서 지난 5월에 <그녀 이름은>(다산책방)을 내놓았는데, 전작만큼의 폭발력은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조남주표 소설이 새로운 도약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첫 소설집으로 선전하고 있는 작가는 김봉곤이다. <여름, 스피드>(문학동네)에 대한 문단의 지지가 얼마만큼의 확산성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선정된 바 있는 베르베르의 <고양이> 외에 관심을 끄는 작품은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현대문학)다. 나로선 제목에 반응하게 되는 작품이지만 처음 소개되었던 <우아한 연인>(은행나무)이 진작 절판되었을 정도로 작가 토울스는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하다. <모스크바의 신사>가 인지도를 갖게 해줄 만큼 선전할지 궁금하다.



2. 인문학
올 여름의 대세 저자는 유시민이다. <역사의 역사>가 출간되면서 <국가란 무엇인가>와 <나의 한국현대사>까지 3종 세트로 묶여서도 판매되고 있는데, 앞선 두 책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역사>도 '2017년 올해의 책' 등극이 확실시된다(<나의 한국현대사>도 내년에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정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유시민표 글쓰기의 고비로도 여겨진다. <역사의 역사>는 <국가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시민적 교양수준을 높여주는 데 기여하겠지만, '여기까지'인가란 느낌도 갖게 해준다. 방송 썰전에서도 하차한 것은 저자 스스로 어떤 고비에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 단계가 마무리되면서 저자 유시민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 분야에서 좀 묵직한 책으로는 찰스 틸리의 <유럽 국민국가의 계보>(그린비)를 고른다. 990-1992년까지 무려 1000천년의 시간대를 다룬 책이다. 더 짧은 시간대를 다루면서 그보다 더 묵직한 책으로는 '하버드-C.H.베크 세계사' 시리즈로 나온 두 권이다. 하버드대출판부와 독일 체.하.베크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6권으로 출간한(출간할) 시리즈로 이번에 번역돼 나온 건 <1870-1945>(민음사)와 <1945 이후> 두 권이다. 구미의 정상급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으로 세계사 기술의 현단계와 수준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원서들도 주문해놓은 상태인데, 나로선 올여름 독서 과제다.



교양서로는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를 부제로 한 브라이언 페이건의 <피싱>(을유문화사)과 에릭 샬린의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이케이북), 그리고 백승종 교수의 <신사와 선비>(사우)를 고른다. <신사와 선비>는 '오늘의 동양과 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부제다.



3. 사회과학
모처럼 (사회)인류학 분야의 책들을 고른다. 어빙 고프만의 <수용소>(문학과지성사)는 '정신병 환자와 그 외 재소자들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에세이'다. "고프먼은 이 책에서 정신병원, 교도소, 군대, 기숙학교 등 훈육과 통제가 일상화, 집단화, 전면화된 폐쇄적 공간을 “총체적 기관”이라고 칭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밀하게 기술한다." 사회학 전공자이기도 한 심보선 시인의 번역이다. 브라질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의 <식인의 형이상학>(후마니타스)은 '빠우-브라질 총서'의 하나로 나온 책으로 '탈구조적 인류학의 흐름들'이 부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점주의와 다자연주의라는 새로운 시각을 엿보게 하는 책이지만 짐작에 교양서라기보다는 전문서로 분류해야 할 듯싶다. 조금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로 존 모나한 등의 <사회문화인류학>(교유서가) 같은 책으로 미리 워밍업을 하는 게 좋겠다.



국내서로는 김시덕의 <서울 선언>(열린책들), 김동하의 <나의 주거 투쟁>(궁리, 2018), 그리고 장애인 변호사로서 쓴 변론서이자 소송이유서 <실경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을 고른다. 모두 사회문제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켜주는 책들이다.



4. 과학
과학책으로는 먼저 프랭크 윌첵의 <뷰티풀 퀘스천>(흐름출판)을 고른다. '세상에 숨겨진 아름다움의 과학'이 부제. "MIT 교수이자 현존하는 최고 과학자 중 한 사람인 프랭크 윌첵은 이 책에서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추구해온 ‘아름다움’과 ‘진리’를 하나로 엮는다. 윌첵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 속에 숨은 심오한 원리가 무엇인지 밝혀내기 위해 과학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찰스 퍼니휴의 <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에이도스)는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특이한 현상을 실마리로 인간 의식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책이다". 원저는 재작년에 나왔고, 가디언지가 '올여름 읽어야 할 책'으로 꼽기도 했는데, 우리에게 올여름은 2018년의 여름이다. 오랜만에 나온 '오파비니아 시리즈'로 도널드 프로세로의 <진화의 산증인, 화석 25>(뿌리와이파리)도 이 분야의 독자들에겐 선물 같은 책이다.



국내서로 몇 권 고른다.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어크로스)는 별도의 소개가 필요 없겠다. 여름이면 등장하는 천문학 책으로 천문학자이자 천체사진가 전영범의 밤하늘 사진기록,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에코리브르)와 <코스모스>의 번역자 홍승수 교수의 에세이 <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며>(공존)도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5. 책읽기/글쓰기
<밤은 선생이다>의 저자로 책읽기와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황현산 선생의 신작과 번역서를 고른다.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난다)과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번역이다. 오랫동안 절판되었던 로트레아몽의 시집은 비로소 새롭게 '존재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더불어, 번역 문제에 오랫동안, 그리고 집요하게 몰두해온 조재룡 교수의 신간 <번역과 책의 처소들>(세창출판사)도 내게는 올여름의 책이다. 번역가 정영목 교수의 책들과 함께 번역의 표정과 운명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자극한다...
18. 07. 08.



P.S. 내게는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이 강의차 또 한번 읽게 되는 <모비딕>이지만, 미국문학 강의를 기념하여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아카넷)를 고른다(<모비딕>의 주제도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민주주의>로 나와 있는 책의 새 번역본으로 불어판 원전을 옮겼다. 해설서로는 양자오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유유)도 얼마 전에 나왔다.



나는 물론 한길사판을 갖고 있는데, 아카넷판까지 구입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민주주의 사상사에서 토크빌이 갖는 압도적인 의의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런시먼의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후마니타스)도 참고할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런시먼의 책은 몇 권 더 소개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