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28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안 그래도 오전에 서울역에서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했는데(줄을 서지 않아도 돼서 최단시간 투표를 했다) 리뷰에서 다룬 책도 함규진의 <개와 늑대들의 시간>(추수밭)이다. 저자가 옮긴 책들로 토마스 프랭크의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갈라파고스)나 최근에 나온 야스차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와이즈베리) 등도 선거의 의의와 위험성을 다룬 책들로 참고해볼 수 있다.



주간경향(18. 06. 11) 선거의 결과가 역사를 배신한 사례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고른 책이다. 기원전 60년 로마부터 1987년 대한민국까지 선거의 결과가 역사를 바꾸거나 배신한 사례를 되짚는다. 때로는 역사적 진보의 한 걸음이기도 했고 때로는 뒷걸음질이자 광기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 선택의 순간이 선거라면, 선거에 임하는 자세도 한 번 더 가다듬게 된다.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선거의 문제성이다. 단순히 민의의 대변자를 선택하면 되는 게 아니어서다. “그들은 저마다 우리의 충견이 되겠다고 하지만 훗날 탐욕스러운 늑대였던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늑대들에게 속지 말아야 하고 개가 날뛰지 않도록 목줄은 단단히 쥐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고대 로마는 약 150년의 왕정과 200년의 공화정을 거쳐서 500년의 제정시대로 마감되었다. 왕정을 타도하고 수립된 모범적인 공화정이 어찌하여 제정으로 넘어가게 되었던가. 로마 공화정은 귀족들이 모이는 원로원과 평민들의 민회라는 두 권력기구를 갖고 있었다. 왕정을 막기 위해 최고권력인 집정관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했고 반드시 2인이 겸임하되 귀족과 평민 대표가 한 사람씩 맡았다. 완벽한 권력 통제체제를 갖고 있는 듯 보였던 로마 공화정도 기원전 88년 집정관 술라가 토벌군 사령관으로 파견되었다가 마리우스의 간계에 반발하여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가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는 40여년 뒤에 카이사르의 독재체제로 귀결되었다. 공화주의자들의 반발로 카이사르는 암살되지만 그의 죽음 이후에 로마는 곧장 제국으로 진입한다. 

프랑스에서 1848년 2월혁명의 결과로 수립된 제2공화정은 또 다른 전락의 과정을 보여준다. 1830년의 7월혁명으로 복고왕정이 무너지고 루이 필리프가 ‘프랑스 시민의 왕’이 되지만 7월 왕정은 최악의 금권주의 정권이었다. 이를 타도한 프랑스 시민들은 두 번째 공화정을 이끌어내게 되지만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들이 뽑은 지도자는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었다. 공직 경력은 없고 쿠데타 시도와 해외추방을 밥먹듯이 했던 인물이다. 그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것은 상대 후보들이 함량 미달이었던 데다가 나폴레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있어서였다. 루이 나폴레옹은 대통령이 된 지 4년 만에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된다. 그것도 국민 투표를 통해서였다.

1차 대전의 패배 이후에 수립된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은 동시대에 가장 진보적인 헌법을 가진 국가였다. 그렇지만 미성숙한 민주주의와 베르사유 조약, 그리고 경제대공황이 주요 원인이 되어 히틀러와 나치당이 집권하는 제3제국으로 넘어간다. 군중심리를 파고든 현란한 선전술로 1933년에 바이마르공화국의 총리가 된 히틀러는 곧바로 비상사태법을 만들어 헌법을 무력화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명실공히 독재자가 된다. 루이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어리석은 선택이 가져온 결과는 세계사적 재앙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도 본질상 다르지 않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매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18.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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