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20년만에, 길게는 30년에 읽는 시인들이 있다. 청마 유치환도 그러한데(미당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로 묶이지만 나는 미당과 청마가 정확히 대별되는 두 진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려고 하니 허다한 시집이 절판되고 몇 종 눈에 띄지 않는다. 시집으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시인생각)와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중앙출판공사)를 아쉬운 대로 주문했다. 제목은 물론 청마의 애송시 ‘행복‘에서 따온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시 전체가 편지이고 또 편지가 시가 된 경우다. 궁금한 건 마지막 행이 왜 시집과 서간집 제목에서 다르게 표기되었을까, 라는 점. ‘사랑하였으므로‘와 ‘사랑했으므로‘. 어느 한쪽이 오기이거나 아니면 실제로 시와 편지에서 다르게 표기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에서는 모든 기표가 의미화되는 사정을 고려하면 7음절의 ‘사랑하였으므로‘는 6음절의 ‘사랑했으므로‘보다 더 오랜 사랑을 표현한다. 뒤따르는 6음절의 ‘행복하였네라‘와 연결해본다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방점이 ‘사랑‘에 찍히고,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에서는 ‘행복‘에 찍힌다. 예민하게 구별하자면 둘은 다른 사랑이고 행복이다. 혼동해서는 곤란한. 주문한 서간집이 도착하는 대로 제일 먼저 확인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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