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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평점 :
팬으로서 작가님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올해가 사랑스러웠다.
우선 소감만 먼저 말하자면 단편들이라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읽기는 쉬웠으나, 각 편마다 여운이 오래 남았기 때문에 아껴 읽었음에도 마지막 장이 아쉬웠던 소설이었다.
애정 하는 SF 장르 중에서도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작가만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작품마다 무한한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것보다 더 멀리 우주까지 날아간 작가님의 상상력에 감동하며 한편씩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에서 <선인장 끌어안기란 이야기>였다. 마흔 살 경력을 가지고 최고점을 달리던 건축가가 수술의 후유증으로 하루아침에 어떤 물체와도 닿을 수 없게 되어버리자 그를 보조하는 로봇을 고용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 보조 로봇의 시점으로 그려졌다. 한번 로봇을 고용하면 그 로봇과 오래 같이 살아가던 건축가는 사고 이후, 처참하게 로봇들을 손상시켜버렸고 이번에 6번째로 불려간 (로봇) 주인공은 파손을 피하던지 아니면 건축가가 왜 로봇에게 그런 식으로 굴기 시작한 건지 이유를 알아오라는 지시를 받아 건축가의 집에서 살아가게 된다. 건축가가 유일하게 키운 선인장들과 그가 후원했던 자신의 병과 같은 질병을 가진 아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로봇에게 들려주며, 선인장 끌어안기만큼이나 고통스럽지만 그것과 동일한 아픔을 가진 사랑에 대해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인 <행성어 서점>도 정말 재밌게 읽은 이야기였는데, 우선 이 세계에서는 사람들에게 전뇌 임플란트가 삽입되어 있어 웬만한 언어는 통역이 필요 없지만 행성어는 직접 배우지 않는 이상 통역기로는 해석하기 힘든 그런 언어였다.
행성어를 아는 사람은 이제 은하계 전역에 수백 명 밖에 안 남았고, 사람들은 낯선 외국어를 체험하고 싶거나 장식용으로 책을 사기 위해 이 서점을 이용하며 행성어로 된 책을 사 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주인공은 이 서점의 점원으로 굉장히 따분한 자신의 일에 지쳐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었다.(이게 뭔가 비현실 속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느껴져서 재밌었다.)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지루하지만 걱정이 되는 이 서점에 일주일 전부터 키가 크고 번쩍이는 선글라스를 쓴 특이한 여자 손님이 방문하면서 소설의 긴장감이 생긴다. 한번 가보고 싶은 그런 서점, 왠지 우주 어딘가에 있을법한 서점에서 이 위험한 여자 손님은 어떤 존재인지 소설에서 직접 확인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나와 가장 비슷한 생각을 해서 놀랐던 이야기는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였다.
주인공은 대화를 글자로 바꿔주는 기계를 소지하고 있었다. 데이지는 주인공이 왜 이런 기계를 사용하는지가 의문이었다.
기계가 없이도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 의문에 주인공은 왜 이 이상한 기계가 필요한지에 대해 장황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에 대해 상대방이 같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이점이 가장 궁금했는데 우주만큼이나 신기한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지만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의 일상을 느끼게 해줘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기계가 존재한다면 외국어 뿐 아니라 외계어, 그리고 우주 안에 모든 것에서 서로 다른 대화의 결을 찾아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기계가 꼭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이외에도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 다소 개그 코드를 가진 20년 주기로 오는 발라드의 유행 비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미래인들의 이야기, 아름다운 레몬색 안개를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우주만큼이나 복잡한 지구의 가장 작은 단위들로 이루어진 늪지의 이야기, 마스크 쓰고 사는 우리의 이야기와 뭔가 닮은 듯한 시몬을 떠나며라는 이야기 등.. 책 속의 14편의 이야기가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독특했고 이야기의 유기성도 느껴진 단편들이었다.
새벽마다 유튜브로 우주 이야기를 찾아서 듣다가 잠들곤 하는데 왠지 앞으로는 행성어 서점의 이야기를 한편씩 곱씹으며 잠을 청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