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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스 딜리버리 ㅣ 안전가옥 쇼-트 4
전삼혜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8월
평점 :
씨엘즈는 보라와 주인이 좋아하는 걸그룹이었다. 이번 9월에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해서 며칠 전 콘서트 티케팅을 위해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새로고침을 시도했고, 결국 주은이 R석 두 자리를 성공했다. 좌석 예매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은의 카드로 좌석 두 개를 질러버린 것 까진 좋았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보라에게는 돈이 없었다.
9만 9천원에 굿즈랑 응원봉을 사려면 대략 30만원 정도는 필요했고, 아르바이트가 시급했다. 주은은 보라와 다르게 극성인 부모님 덕에 11시까지 학원 뺑뺑이를 도는 일과를 보내는 결과 30만원이라는 거금이 시급하지 않았고 보라는 다급해졌다.
원동기 면허가 있긴 했지만 미성년자는 안된다. 여자는 안된다는 이유로 몇몇 가게에 연이어 퇴짜를 맞고 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그때, 팔랑하고 하늘에서 명함이 떨어졌다.
백발의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가 떨어뜨리는 명함은 남자들은 쳐다보지 못하는 듯 보였고, 땅에 떨어지면 사라지는 신비한 명함이었다. 명함에는 QR코드와 여성전용이라는 두 가지만 적혀 있어 퇴폐업소 인가 싶었지만 호기심에 큐알을 스캔했고, 화면에는 '위치스 딜리버리, 여성전용 배달 아르바이트, 청소년 가능'이란 문구가 나타났다. 급한 보라는 내친김에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게 된다.
사이트에 접속한 것만으로 백발의 윤정에게 보라의 핸드폰 번호, 학교까지 털려버렸다. 배달 한 건에 만 원, 원동기는 빌려주고 한 달 관리비 3만 원에 하루 한 건이나 두건을 배달하며 비가 오면 포장 업무를 돕는다는 속사포 같은 말을 대강 흘려듣고 주문이 밀려있다는 이유로 계약서부터 써버렸다.
얼떨결에 계약으로 예비 마녀의 자격을 획득해버렸다. 예비 마녀용 청소기를 지급받고 해가 진 김에 실제 청소기까지 타보게 되었는데, 마녀가 흔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배달 다닐 때는 은신 망토를 입고 배달을 한다는 걸 듣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배달 아르바이트의 임무는 정말 배달일이었다. 임산부 마녀에게 애플망고 치즈빙수 하나를 배달해 주기도 하고 드링크를 담은 텀블러를 판교에 배달하기도 했다. 고도 450m의 하늘 아래서 바라보는 밤길, 탄천길은 보라에게 쏠쏠한 취미 생활이 되어 있었을 즘, 봇들공원 허공에 보라색 수면 잠옷을 입은 금발의 천사 같은 아이를 발견하고 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미카엘라와의 첫 만남이었다.
평화롭던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던 어느 날 절친 주은이 점점 심해져 가는 불면증으로 오컬트 숍의 샌드맨 캔들 등 물건을 주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배송 물품에 관심 없던 보라였지만 주은은 걱정이 되었다. 결국 윤정에게 어떤 물건인지 물어보게 되었고, 마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약간 위험한 물건도 판매함을 알게 된다. 이다음번에도 오컬트 숍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주은을 예의 주시하게 되는데...
마녀와 초능력자, 그리고 빌런 마녀의 등장까지 빵빵한 스토리 전개가 꽉 차있던 이야기였다.
내가 살고 있는 성남을 배경으로 하며 집 근처에 흐르는 탄천 근처에 투명 망토를 두르고 배달하는 마녀를 상상하면서 읽었더니 뭔가 말도 안 되게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당황스럽지만 한층 더 재밌었다.
마녀와 예비 마녀 사이의 계약에는 간단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점, 투명 망토는 오래 입으면 잊히는 제약이 걸려있다는 것, 김앤장 드림학교의 존재와 그곳에 재학 중인 세이와 보라 미카엘라의 복잡하게 얽히는 관계의 시작, 절친 주은의 불면증으로 구입하는 물건에는 파면된 마녀 안마리의 야심이 담겨 있었고, 결국 윤정이 보라에게 물들어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는 포인트였다.
나에게 마녀란 소재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미지였는데 보라 역시 사랑스럽고 용맹하며 정직한 예비 마녀 그 자체였다. 빗자루 대신 청소기를 타고 다니고, 덕질하는 친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정의로운 캐릭터의 탄생을 엄청나게 환영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