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는 겨울에 따뜻한 물로 씻기 위해서는 물을 데워야 했다. 자하실에 연탄불을 태워두고 거기에 통을 올려둔 뒤 물이 끓으면 그걸 퍼서 1층으로 올려 찬 물과 섞어 씻어야 했다. 매일 엄마는 우리를 씻기기 위해 이 일을 반복하셧다. 우리가 스스로 씻을 수 있게 됐을 때에는 물만 떠다주셨다. 내 기억에 아빠는 지하실에서 뜨거운 물을 퍼오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돈을 벌러 나갔다 집에 들어온 날도 마찬가지. 아빠는 돈을 벌지 않고 누워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뜨거운 물을 떠오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내가 직접 씻겠다고 뜨거운 물을 푸다가(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내 배에 쏟아버려 자지러지게 울고 기절한 적이 있다(뭐든 혼자 하려고 하는 성질은 어릴때부터..). 다행히 흉은 남지 않았다.


고3때 대학교 원서를 넣기 위해 엄마랑 같이 집을 나섰다. 그 때는 직접 대학에 가서 줄을 섰다가 원서를 넣어야 했다. 내가 입학하던 시절에는 총 세군데의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었는데, 그래서 아이들은 오늘 한두군데 넣고 다음날 한군데 넣거나 사흘에 걸쳐 한군데씩 넣거나 하면서 바삐 돌아다녀야 했다. 나는, 엄마 덕분에 하루만에 그 긴 줄을 서면서도 세 군데를 다 돌아다니며 원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이동하고 한참 긴 줄을 섰다 원서를 접수하는 일을 세차례나 반복하다보니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우리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늦은 저녁을 사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니 시간은 밤 아홉시었나 열시였나. 나는 지쳐 널브러지려는데 엄마는 돌아오자마자 방 청소를 시작하셨다. 아마 내가 엄마의 끝나지 않는 가사노동을 가장 무겁게 느꼈던 날이 그 날이었던 것 같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여기에 방청소를 더 한다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몇해 전에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엄마는 당시 여동생네 집에 가 계셨고, 저녁 식사를 혼자 마치신 아버지는 '설거지 있는데 하기 싫으면 하지마' 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먹은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설거지를 해?"


내가 너무 머리가 컸고 아버지는 감히 내게 강제하지 못하셨다. 그 뒤로 내가 퇴근한 저녁에는 설거지 하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혼자 식사하시면 그릇을 다 씻어두셨다. 그 그릇이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씻긴 날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됐어 내가 씻을게 하지 않는다. 



왜 힘든 가사노동은 엄마의 몫인데 큰소리는 아빠의 몫일까. 대부분의 경우 아빠이자 남편이 부양을 하기 때문이라지만, 우리집을 놓고 보더라도 그리고 우리집이 꼭 아니더라도, 굉장히 많은 집이 사실 남자가 제대로 부양을 하지 못해도 가장이라며 큰소리를 내는걸 보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물론, 우리 집은 지금 아주 크게 풍경이 바뀌었다. 집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언젠가부터 아빠가 아니게 되었다. 그런지 좀 오래 되었다.



한창 젊은 시절, 엄마가 내게 결혼을 하라고 재차 말씀하셨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니 엄마, 내가 회사 다니면서 돈을 벌었는데, 그걸 다 결혼하느라 쓰란 말이야? 그거 너무 억울한데? 난 결혼하느라 돈 쓰기 싫어."


아아, 나는 내가 번 돈 나 혼자만 쓰고 싶은 사람.. 결혼보다 돈이 좋은 사람..


그 때 엄마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결혼하려고 돈 버는 거라고 하셨고,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거기에 반발하고 있다. 그거 너무 내 타입 아니라서. 내가 누누이 말해왔고 앞으로도 말할테지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나왔을 때부터 몇 년간 천 번쯤 말한것 같지만, 아무리 그레이 만났어도 아나스타샤는 일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레이 집이 아무리 크고 다른 회사 합병하는 거 넘나 우습고 원하는 드레스 수십벌 사줄 수 있어도, 아나스타샤여, 일해야 합니다. 유 가 릿? 인생 어차피 혼자다. 그레이 돈 믿고 있지말고 네 자신의 일할 능력을 믿어라. 



같은 부양을 받더라도 여성은 남편의 필요에 따라 상이한 종류의 노동을 제공하게 된다. 가령, 부르주아의 아내는 사회적 체면유지라는 업무를 제공함으로써 가정 내 노동의 업무는 더 적게 수행한다. 제공한 노동과 무관하게 보상받기 때문에, 여성들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더 부유한 남성에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상향혼을 향한 경주는 여성 노동의 무가치성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에 속한 남성과의 결혼으로 여성의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 해도, 이것이 여성을 그 계급에 속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여성은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이 삶의 수준은 프롤레타리아와 계급 생산과의 관계가 아닌 남편에 대한 예속 생산 관계에 달려 있다. 

부르주아 여성의 결혼 관계가 끝나는 경우, 압도적인 수의 여성이 임금노동자로서 밥벌이를 하게 된다. 이로써 그들은-나이와 직업 교육의 부재라는 추가적인 불리를 경험하면서- 마침내 원래 그들이 속한 계급이라 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로 거듭나게 된다. -p.51~52


비정상체중이지만, 약과나 먹어야겠다.

‘사회주의적‘ 사회를 비롯해, 현재 모든 사회는 자녀 양육과 가정 내 봉사라는 여성의 무급노동에 기초한다. 이 서비스는 남편이라는 개인과의 특정한 관계하에서만 제공된다. 이 서비스는 교환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따라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이 서비스는 보수를 지불받지 못한다. 여성이 받는 수당은 제공한 노동과 독립적이며, 노동에 대한 교환으로, 즉 임금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리가 아니라 증여로 취급된다. 남편의 유일한 의무-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자명한-는 아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아내의 노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 P13

대부분의 ‘가정‘이 음식을 원재료 형태로 구입하기를 선호하는 까닭은 가사노동이 무료이고, 이 노동이 전적으로 여성에 의해서 제공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써, 남편이 자신의 봉급으로 가사 전체의 소비를 책임지고 가정 주부는 ‘밥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이데롤로기는 반박될 수 있다. - P36

기혼 여성 대부분은 독립적 소득을 가지지 않은 채 부양을 대가로 일한다. 이러한 생산 양식과 자본주의 임금 생산 양식 간의 차이는 노동에 대한 수당의 양이나 임금과 부양 간의 가치 차이보다는 생산 관계 자체에서 기인한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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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4-24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글을 읽으니 드라마에서 매날 술을 드시며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른 백일섭님이 생각나네요.60~70년대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인데 실제 70이 훨 넘으신 백일섭님도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해서 결혼하신 따님과 쉽게 정을 나누지 못한 모습을 요즘 TV에서 보여주시는 것 같더군요.
근데 이 가부장이란 단어는 현재에는 거의 소멸되는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개인적인 생각에 가부장제의 전제조건은 남성이 가정의 경제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여겨지는데 실제 여성의 사화적 진출이 일어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고 또한 요즘은 결혼시에도 가정의 경제권이 남편에게서 부인으로 대부분 넘어가기에(뭐 용돈 20~30만원 타는 남편이 대다수죠) 지금은 ㅏ과거의 같은 의미의 가부장제란 단어가 거의 쓰일 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그러다보니 요즘 20~30세 남성들은 자신들과 가부장제르 엮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죠

다락방 2024-04-26 14:47   좋아요 0 | URL
2,30 대가 아니라 온 세상 남자들이 다 불쾌해해도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잠자냥 2024-04-24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정상체중이지만, 약과나 먹어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정상체중 선물한 사람 눈에는 이런 구절이 잘 들어오네요.

다락방 2024-04-26 14:23   좋아요 1 | URL
약과 다 먹었습니다! 물론 동료 직원들에게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엣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혼자 비정상체중일 수 없다, 같이 비정상체중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4-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삶의 수준은 프롤레타리아와 계급 생산과의 관계가 아닌 남편에 대한 예속 생산 관계에 달려 있다.

부르주아 여성의 결혼 관계가 끝나는 경우, 압도적인 수의 여성이 임금노동자로서 밥벌이를 하게 된다. 이로써 그들은-나이와 직업 교육의 부재라는 추가적인 불리를 경험하면서- 마침내 원래 그들이 속한 계급이라 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로 거듭나게 된다.

저도 이 책에서 여기 52쪽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대요. (글은 못 썼음, 자진납세) 여성이 원래 속한 계급이 프롤레타리아라는 점인게 제일 주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상태라면 영원히 노동자일 수 밖에 없을 거고요. 결혼에 대한 거부, 대규모의 그러니까 같은 세대 여성 집단이 함께 연대해 이루어낸 현재 상태, 대규모의 ‘출산 거부‘는 결혼, 출산, 양육으로 인해 그 생산수단의 일부 혹은 전부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결의를 숫자로 보여줍니다. 소멸 수순인데도 놀라지 않는 우리....
다만, 저는 노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왜 일해야 하는가, 혹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또는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 것이 적당한가,의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4-04-26 14:22   좋아요 1 | URL
‘오직 여성에 대해서만 우리는 결혼 여부를 사회 직능적 지표로 활용한다. 그러니 여성들이 사회 직능 범주(CSP)에 따라 평가받는 ‘남편과 같은 계급‘에 속하게 된다고 해서 놀랄 일이 어디 있겠는가. - P34‘

이 책의 서문에서도 이 얘기를 하잖아요. 여성의 계급은 여성의 독자적인 계급이 아닌 남편을 따라가는 것이요. 그래서 여성이 상향 결혼을 원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는. 계급사회에서라면 더 높은 계급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런 욕망일테고 여성이 저 혼자 이루어낼 수 없다면 그걸 결혼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손가락질할 건 못되고요. 그렇다면 다시 단발머리 님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는거죠. 왜 여성은 저 혼자 스스로 계급을 달리할 수 없는가, 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혹은 남자와 헤어지고 나서는 부르주아일 수 없는가 하는거요. 그런 사회를 바꿔나가고자 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지향하는 바이겠지요.

저 역시 노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은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내가 먹을 밥을 위해서라면 쌀을 재배하는 노동, 그 쌀을 씻어 밥을 해내는 노동들이 반드시 필요하잖아요. 다만, 저 역시도 그런데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결국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라고 한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노동이란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돼요. 어느 순간 노동은 먹고 사는 일을 넘어서서 더 많이 갖고 더 편리해지기 위해서가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나 노동도 편중되어 있잖아요. 부가 편중되는 사회는 노동도 편중되는게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버트런트 러셀이 말한 것처럼 모두가 네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게 아닌가 싶어요. 버트런트 러셀이 모두의 네시간 노동을 주장했을 때 저는 정말 참신하고 바로 이거다 싶었거든요. 모두가 네시간씩만 노동하면 모두 그만큼의 경제력을 갖게 되고 또 모두 그만큼의 여유를 갖게 되잖아요.

저는 비혼의 싱글여성이라 저를 제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다고 보면 계속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체력이 딸리기도 하고 이제 좀 쉬고 싶어요. 지금처럼 노동하기가 너무 싫어요. 네 시간만 노동하고 그만큼만 돈벌어서 어느 정도만 먹고 살고 싶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