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시장 2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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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에 비해 좀 지루했다. 작가가 좋아하는 도빈과 아멜리아의 연애사는 도무지 재미가 없다. 흥미진진하기로는 레베카의 모험담이 훨씬 낫지만, 레베카에게 당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그것도 재미있다고 말하기가 좀 망설여진다. 스타인 후작이 며느리들을 구박하는 장면이 재미있어서 옮겨 놓는다. 사정 모르는 남들은 엄청 좋은 집안에 시집갔다고 부러워했겠지. 

크롤리 중령처럼 살아가는 재주 좋은 사람들 때문에 실로 얼마나 많은 가족이 파산을 당하고 시련을 겪는지 알 수 없다. 신분 높은 귀족들이 얼마나 자주 소상인들을 등쳐먹고 얼마 되지도 않는 하인들 임금을 떼어먹고, 몇 실링 때문에 사기를 치곤 하는 것인지.
- P71

"아버님, 그렇다면 저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겠어요." 곤트 부인이 대답했다. "저는 친정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그리고 거기 죽 있는 것이 좋겠다. 거기 가면 바르아크르 댁의 빚쟁이들이 좋은 친구가 되어줄 테니. 그 덕에 나도 네 친척들에게 돈 빌려주는 일에서 좀 해방되고, 음침한 네 얼굴이며 잘난 척하는 꼴도 안 봐도 되겠구나. 이 집에서 누가 누구한테 명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너는 돈도 없고, 머리도 영리하지 않아. 아이를 낳으러 이 집에 왔으면서 아이 하나도 낳지 못했지. 곤트도 너한테 아주 진절머리를 내고,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마 조지의 아내 하나뿐일 게다. 네가 죽으면 곤트는 바로 다시 결혼을 할 걸."
- P273

"네 시어머니 되는 양반도 잘 알고 계시지만, 사람들이 공연히 헐뜯는 크롤리 부인은 순박하고 마음씨 좋고 아주 순진한, 심지어 우리 집사람보다 더 순진한 부인네야. 남편 되는 이는 형편없는 작자지만 그래도 뭐 바르아크르 백작보다 못한 위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도박을 하고 진 빚을 갚지도 않고 네 앞으로 되어 있던 얼마 안 되는 유산마저 모조리 갖다 쓴 다음 너를 알거지로 내 손에 넘겼으니. 물론 크롤리 부인은 혈통이 좋지 않다. 그렇다 해도 패니의 잘난 선조, 초대 드 라 존스보다 더 나쁜 것도 아니지."
"제가 이 집에 가져온 돈은, 아버님...." 조지의 아내가 소리쳤다.
"넌 그 돈으로 상속권을 산 셈이야." 후작이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곤트가 죽고 나면 네 남편이 장자가 될 테고, 네 아들들이 그 돈을 다 물려받게 될 게다. 그리고 또 더 있을지도 모르지. 그 전에는 제발 밖에서는 얼마든지 고상을 떨고 잘난 척을 해도 좋지만 내 앞에서만은 그렇게 거들먹거리지 말아다오."
- P274

선장과 의사, 한두 명의 승객들이 배에서 내려 그들과 함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다. 조는 호기롭게 일행을 위한 저녁을 주문한 다음, 내일 소령과 함께 런던으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호텔 주인은 세들리 씨가 흑맥주 첫 잔을 시원하게 비우는 모습이 호방하다고 찬사를 던졌다. 시간 여유가 있어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된다면 나는 외국에 나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처음 마시는 한 파인트의 흑맥주 맛을 묘사하기 위해 한 장 전체를 기꺼이 할애하고 싶을 정도다. 아, 그 맛이란! 오직 그 한 잔의 맥주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영국을 일 년 정도 떠나 있어볼 만하다 할 수 있다.
-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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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1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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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가씨들의 결혼이 단순히 로맨틱한 사건이 아니라, 삶을 지탱할 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절박한 투쟁임을 일깨워 준 책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었다. 교활하고 인정머리 없는 거짓말쟁이인데도 왠지 미워할 수가 없는, 레베카 샤프 양의 분투를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식자공 농담이 여기에도 나와 있어서 놀랐다. 영국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농담이었나?

사실 레베카 양은 전혀 온화하거나 다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젊은 염세가는 세상이 언제나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사실 세상으로부터 언제나 불공평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세상이란 거울과도 같아서 모든 사람에게 그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비춰 보여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인상을 쓰면 세상 역시 찡그린 얼굴을 보여줄 것이며, 세상을 향해 미소 짓고 밝게 웃는다면 세상 역시 명랑하고 친절한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각자 나름의 선택을 내릴 일이다.
- P32

한때 큰 은혜를 입었던 사람과 이후 사이가 틀어지면, 대개의 경우 은혜를 입은 사람은 이 기회에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개선하기 위하여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보다 상대방에게 훨씬 더 고약하게 굴기 마련이다. 또 자신의 매정함과 배은망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상대가 나쁜 짓들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 입증하는 데 골몰한다.
- P311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그를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욕을 마구 해대고 스스로도 자신의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12

레베카와 그녀를 반하게 만든 남성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장군이 나지막하게 내뱉은 저주의 말들이 어찌나 섬뜩한 것이었던지 설사 내가 그 말들을 이 원고에 기록한다 해도 이 책의 출판사 브래드버리 앤 에반스의 식자공이 감히 그 말들을 인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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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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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The Shallows>를 번역 제목이 잘 살려내지 못한 느낌이다.

인터넷에 매여 책을 읽지 않는 생활 방식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얄팍한 인간'을 만든다는 내용.

공감은 가는데, 썩 인상적인 책은 아니다. 

만프레드 슈피처의 <디지털 치매> 쪽이 훨씬 훅 다가왔다.

(영문학 전공자와 정신의학 전공자의 내공의 차이인가.....)

심리학자 William James는 뇌의 적응력에 대해 비슷한 관찰을 한 바 있다. 그는 기념비적인 저서인 "심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에서 "신경조직은 매우 놀라울 정도의 가소성(可塑性, platicity)을 지니고 있다"고 적었다. 또 그는 다른 물체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 또는 내부로 가해지는 힘이나 긴장은 이 구조를 처음과 다른 무언가로 변화시킨다"고 말했다.
- P43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형성하는 정신적 능력, 즉 신경 회로가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책에 담긴 이야기나 주장을 파악하는 훈련을 통해 보다 사색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성향을 갖게 되었다. 매리언 울프는 "독서가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재배치하는 법을 이미 배운 뇌는 새로운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인다"며,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촉진된, 점차 더 섬세해지는 지적 능력이 지적 활동의 목록에 추가되었다"고 했다.
- P115

전자책의 연결성과 그 외 다른 특징들이 새로운 기쁨과 오락성을 안겨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켈리가 말한 대로 우리는 심지어 문자를 종이에서 자유롭게 하는 해방의 행위로서 디지털화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겠지만 고독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친밀하고도 지적인 애착 관계는 훨씬 약화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고요함이 의미와 정신의 일부였던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계속 감소하는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 P163

오늘날 10대는 보통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몇 분 만에 한 번씩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정신과 의사인 Michael Hausauer가 언급했듯 10대를 포함한 청년들은 "동료들의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무리에서 낙오되는 데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메시지 보내기를 멈춘다면 유령 인물로 전락할 위험을 감수하는 셈이다.
- P177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해독은 독자의 인지적 부하를 상당 수준 증가시키고, 구에 따라 독자들이 읽는 대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 P189

이 결과는 또한 닐슨이 온라인에서의 읽기에 대한 첫 번째 연구 후 서술했던 결과를 더욱 확고히 한다. 그는 당시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라고 질문했었다. 답은 간결했다. "읽지 않는다"였다. (Jakob Nielsen, "How Users Read on the Web", 1997)
- P202

구글이 서둘러 건립하려는 이 거대한 도서관을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도서관과 혼돈하면 안 될 것이다. 이는 짧은 발췌문만 가득한 도서관이다.
- P244

균형 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그리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정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구글의 ‘숫자의 세계’에서도 일해야 하지만 슬리피 할로우에서의 휴식도 필요하다. 오늘날의 문제는 우리가 이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사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능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 P247

우리가 온라인에 있을 때마다 받아들이게 되는 서로 다른 메시지의 유입은 우리의 작업 기억에만 과부하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전두엽이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억의 강화 과정은 아예 시작될 수도 없다. 또 신경 통로의 가소성 덕분에 인터넷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우리의 뇌는 더욱 산만해지도록 훈련받는데, 이를 통해 정보를 매우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하긴 하지만 지속적인 집중은 불가능하다. 이는 왜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컴퓨터에서 멀어져 있을 때조차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를 어려워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 P282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일련의 심리학 연구는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가까이 하며 일정 시간을 보낸 후 사람들은 더 높은 집중력과 강력한 기억력, 그리고 보편적으로 향상된 인식을 보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의 뇌는 고요한 동시에 더욱 예민해진다. 집중력 회복이론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에 따르면 그 이유는 사람들의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가 실제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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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7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mizuaki 2021-08-27 07:27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리커버 특별판)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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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이란 오로지 인간 공동체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반면, 지능은 어느 정도까지는 모든 門과 目에서(심지어 거미류도 포함해서) 발견되었다. 어쩌면 감정이입 능력이 손상되지 않은 집단 본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거미 같은 단독형 유기체에는 그런 본능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 만약 거미가 그런 본능으로 인해 기껏 고생해서 잡은 먹이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살고자 하는 상대방의 열망을 인식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모든 포식자는 (제아무리 고양이처럼 고도로 발달된 포유류라 하더라도) 굶주리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감정이입 능력은 오로지 초식동물에게만, 또는 (고기라는 식단에서 멀어질 수 있는) 잡식동물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언젠가 이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감정이입 능력은 궁극적으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그리고 성공한 자와 패배한 자 사이의 경계를 흐려버리기 때문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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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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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가 쓴 기억의 상실, 왜곡, 날조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

풍부한 사례를 들면서 흥미롭게 설명하고, 친절하게 정리해 주는 아주 멋진 책이다.

특히 각 장의 서두에서 문학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 굉장히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필자는 개인의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

나의 평소의 관심사였던 집단 기억의 상실, 왜곡, 날조와 관련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의 쓰레기 더미이다ㅋ. 

소멸(transience)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흐려지거나 손실되는 것을 뜻한다. (중략)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은 주의와 기억 간의 접촉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일어난다. 열쇠나 안경을 찾지 못하는 것, 점심 약속을 잊는 것과 같이 깜빡 잊는 기억 오류는 보통 다른 쟁점이나 관심에 몰두해서, 기억해야 하지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세 번째 죄악인 막힘(blocking)은 어떤 정보를 필사적으로 인출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낯익은 사람의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한 적이 있다. 이러한 좌절스러운 경험은 우리가 그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에도 일어나며, 원하는 이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도 일어난다.
- P10

오귀인(misattribution)은 잘못된 출처에 기억을 할당하는 것을 말한다. 환상을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나, 실제로 신문에서 읽었던 사소한 것들을 친구가 말했다고 잘못 기억하는 것 등이다. (중략)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어떤 사람이 과거 경험을 상기하려고 할 때 유도 질문이나 추가 설명, 암시를 한 결과 새롭게 생겨난 기억들을 말한다. 오귀인도 피암시성도 조사, 증언, 진술 등 법적인 분야와 특히 관련이 많다. 편향(bias)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어떻게 이거하는지에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무심코 과거 경험을 지금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에 비추어 수정하거나 완전히 다시 쓴다.
- P10

일곱 번째 죄인 지속성(persistence)은 마음에서 모두 사라져 버리기를 원하는 고통스러운 정보나 사건들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 P11

얼마나 많은 다른 사건들이 무고한 사람을 유죄 판결로 이끌면서 부정확한 목격자 증언을 만들었겠는가? 어느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해 보자. 첫째, 1980년대 말에 내놓은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해마다 7만5000 건이 넘는 형사 재판이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둘째, 잘못 투옥되었다가 DNA 증거로 무죄가 선언되었던 40건을 최근 분석한 결과 그들 중 36건이 잘못된 목격자 확인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직 바로잡지 못한 같은 유형의 실수들이 있을 것이다. 이 무서운 숫자들은 목격자 오귀인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오귀인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절박하게 느끼도록 해 준다.
- P133

기억에서의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외적인 출처(다른 사람들, 재료들이나 그림, 심지어 미디어)에서 나온, 잘못 유도하는 정보를 사적인 기억으로 합치려는 개인의 성향을 의미한다. 피암시성은 암시를 부정확한 기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오귀인(misattribution)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오귀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오귀인은 외부로부터의 암시가 없을 때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피암시성이 하나의 독립적인 기억의 죄가 된다.
- P163

암시된 기억들은 원래 기억만큼 사실같이 느껴질 수 있다. 2000년 5월 31일, "뉴욕타임스" 1면에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에드워드 달리(Edward Daly)의 당혹스러운 사례가 실렸다. 그는 실제로는 참가한 적이 없는 대학살에 참여했다는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전투 공적에 대해 상세하게 설며했는데, 이 모든 이야기가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망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동안, 달리는 그 대학살에 참가했던 참전 용사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을 ‘상기시켰다’. 달리의 암시들은 그들의 기억에 스며들었다. "나는 달 리가 거기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요." 한 참전 용사가 탄원했다. "맞아요. 기억해요."
- P163

피암시성은 여러 이유들 때문에 걱정스럽다. 질문을 유도하는 것은 용의자 오확인을 일으킬 수 있다. 유도적인 심리 치료 절차들은 오기억을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학령 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는 선생이나 다른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신고된 아동 학대에 대해 왜곡된 기억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개인들이 영향을 받을 위험이 높기 때문에, 피암시성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심리학적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법적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 P164

1908년에 나온 그의 고전 "증언대(On the Witness Stand)"에서 먼스터버그(Hugo Munsterberg)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사회적 압력과 암시에 결합되어 자기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잘못 믿을 정도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정치범들의 허위 자백은 전체주의 지배의 절정기 동안 구소련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죄수들로부터 정보를 추출해 내고, 죄수들이 명령을 따르도록 만드는 데 노련하다." 공산주의 심문 기술에 대한 1956년 논문의 저자들은 관찰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한 다음, 공공연히 자백의 진실성을 믿고 자신을 감옥에 넣은 사람들을 향해 동정과 감사를 표현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172

점점 많아지는 실험실 연구들의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출처 정보를 기억하는 데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행동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특별한 사건에 대해 반복해서 질문을 받을 때, 그 사건들은 단순히 실험자가 그들에게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수 있다. 학령전 아동들은 친숙한 느낌의 출처에 대한 상세한 기억이 부족하므로 여러 조각의 서로 다른 과거의 일화들을 함께 섞거나 심지어 공상과 상상의 요소들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 P192

편향(bias)의 다섯 가지 주요 유형은 기억이 자기 주인을 섬기는 방식을 나타내 준다. 일관성(consistency) 편향과 변화(change) 편향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론이 어떻게 과거를 현재와 지나치게 비슷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다른 것으로 재구성하게 만드는지 보여 준다. 사후 과잉 확신(hindsight) 편향은 과거 사건들의 기억이 현재의 지식으로 걸러진다는 것을 알려 준다. 자기중심적(egocentric) 편향은 현실의 지각과 기억들을 조화시키는 데 있어 자기(self)의 강력한 역할을 예증한다. 그리고 전형성(stereotypical) 편향은 어떻게 일반적인 기억들이, 심지어 그것들의 존재나 영향을 알지 못할 때조차 세상에 대한 해석을 조형하는지를 입증한다.
- P198

기억에서 자기중심적 편향은 ‘자기(the self)‘가 심적 생활을 조직하고 규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기를 풍부하게 상호 연결된 지식 구조(개인적인 속성들과 경험들에 대해 저장된 정보의 전체 합)로 여긴다. 새로운 정보를 자기와 관련시켜 부호화할 때, 그 정보에 대한 이후 기억은 다른 유형의 부호화와 비교해 증진된다는 것을 수많은 실험들이 보여 주었다. (중략) 그러나 자기는 세상을 중립적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기 자신을 더 높이 생각하고, 종종 자기의 능력과 성취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아첨하는 의견을 갖도록 동기 부여된다.
- P215

현재의 질서에 맞추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수정한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진실부처럼, 일반 지식은 기억이 예상에 잘 들어맞도록 이야기의 회상을 편향시킨다.
- P224

다양한 형태의 편향들이 인간의 인지에 매우 깊이 심어져 있어서 그것들을 모두 함께 극복하거나 피할 수 있는 좋은 구제책은 아직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재의 지식, 신념, 감정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현재의 사람들과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충분히 조심하고, 과거와 현재 모두에 대한 확신의 가능한 출처를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기억이 그 주인을 위한 담보로 작용할 때 일어나는 왜곡을 줄일 수 있다.
- P228

안전한 상황에서 외상 기억을 반복해서 재경험하는 것은 그 외상에 대한 초기 생리 반응을 둔화시킬 수 있다. 괴로운 경험에 대한 기억을 억압하려는 시도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인 습관화를 막는다. 그러므로 억압된 기억은 결국 지속성을 증대시키는 여분의 충동을 갖게 된다.
- P252

자기에 대한 아주 낙천적인 견해는 정신 건강을 해치기보다 증진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착각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은 손상되거나 부적합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대신, 보통 그들 인생의 많은 면에서 잘 지낸다. (중략) 매우 왜곡된 낙천적 편견은 결국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가 제한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테일러가 지적한 것처럼 긍정적인 착각은 우리를 가볍고 평안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따라서 기억 편향이 우리의 인생에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인지 체계의 적응 요소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 P277

일곱 가지 죄악은 축소시키고 회피해야 할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기억이 어떻게 과거를 끌어와서 현재에게 알려 주는지, 그리고 미래에 참고할 수 있도록 현재 경험의 요소들을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드러내 주며, 또한 뜻하는 대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기억의 악덕은 또한 기억의 미덕이며 우리의 마음을 세상과 연결시키기 위해 시간을 가로지르는 다리 같은 요소인 것이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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