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분명 닫고 잠들었던 방문이 열려있었다. 조금 이상했지만 "꽉 닫지 않았던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거실로 나가 털푸덕 바닥에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주방의 창문이 이상하게 열려있는게 아닌가....분명 잘 닫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주방으로 가는 순간...
아뿔싸....내 바지와 그 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일본돈과 뉴질랜드 달러....분명, 방안의 의자에 걸쳐두었던 바지가 저절로 걸어나온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하여 이동이 되었고, 그 속에 들었던 수표와 현금은 고스란히 사라져 버렸다. 밤 사이...곤히 자는 동안 서생원이 찾아들었던 것이다. 열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니 벽면에는 온통 가스배관으로 가득하다...
보통은 문을 잠그는데 도시가스를 이용한 난방을 시작하고나서는 혹여라도 가스 누출시의 안전을 위하여 바깥 공기가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5cm 정도 열어두었는데, 이 열린 창문이 도둑의 침투루트로 이용된 것이다. 그런데 비교적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는 민감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내 방안을 휘젓고 다니는 도둑이 들었음에도 전혀 모르고 잠들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머리가 조금 띵~ 하다. 잠에서 깨어나는것을 우려한 도둑이 수면제 같은것을 뿌리기라도 한 것일까? 내집을 찾은 손님은 단순 도둑이었고 착한 도둑이었는지 카드와 외화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몇 대의 카메라나 노트북 등등 현금이 아닌것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일본돈 1만엥은 10만원의 교환가치가 있음에도 너댓장의 일본돈은 그대로 두고 간 것이다.
아침에는 출근을 해야하는지라 창문과 현관문을 확실하게 닫고 나갔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 4층에 사는 주인댁을 찾아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동일한 피해세대가 없는가고 물었더니, 아직 다른 특별한 내용은 없다며, 그렇지 않아도 어제 낮부터 이상한 사람 두 사람이 집 주위를 배회하여서 주인집 아저씨에게도 이상하다고 말했었고, 더구나 이들의 서성거림은 초저녁에도 계속되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두 사람이 아마도 도둑으로 변신을 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들은 낮동안 어디가 어설프기에 들어가기 좋은지를 미리 사전 정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것은 내 목숨이 아직까지 붙어있다는 것이다. 그 도둑은 초범이나 잡범인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당장 현금화되는것 이외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과감하게도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서 바지를 가지고 나갔음에도 잠을 깨우지 않는 배려도 한 것이다. 만약 예민한 내 신경이 작동하여 잠에서라도 깨었다면 결과가 어찌되든간에 격투 내지는 살상의 위협에까지 다다랐을 것이다. 예전에도 도둑을 잡은적이 있었지만, 일단은 도둑으로 들어왔다가 발각이 될 경우에는 흉악범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도둑맞은 액수는 목숨값에 비하자면 싼 편이다. 실력으로야 도둑을 제압할 수 있다 하겠지만, 일단 발각이 된 도둑은 사력을 다해 피신을 하여야 하므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것이니 섣불리 자신을 믿다가 큰 일을 당할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그저 얼굴이 마주치지 않고 다녀간 도둑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는 예민한 신경을 믿을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침대 머리맡에 호신용 둔기라도 놓고 잠들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차적인 방법은 모든 문의 철저한 점검일 것이다. 오늘 사무실에서는 수시로 홀쭉해진 지갑을 꺼내보고는 "허~~참~~"하는 탄식을 많이 내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단속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결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쳤지만말이다. 정말....착한 도둑님과 대면하지 않은것이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