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들이 농활에서 호칭 문제로 농민들과 다툼을 벌이다 급기야는 농활을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촌로가 칭하는 "아가씨...아줌마"라는 용어가 언어적 성폭력이라며 철수하고야만 서울대 농활팀의 결정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대학때 "경암회"라는 농활 써클에 몸담고 4년간 매 방학때마다 농촌을 찾아 농민을 위해 소위 농활이라는 활동을 했었기에 농활이 어떤것인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농촌이나 도시나 별로 생활상의 격차가 없던 시절이 아닌지라 정말 농촌은 변변한 농기계 하나 없이 매번 수작업으로 벼를 심고, 소쟁기질을 해야하며, 제대로 된 탈곡기나 타작기가 없어 손으로 벼를 털어야했던 가난했던 농촌을 찾는 일이기에 20여일 농활을 다녀오면 피골이 상접하는 정도였지만 뿌듯함이 가슴속에 가득 찼던 그 느낌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대 농활팀의 철수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문제는 과연 그들이 농활에 어떤 문제의식으로 접근을 했을까? 라는 의문입니다. 농활은 대접받기 위해 가는것도 아니고, 대학시절의 추억과 낭만 만들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몇 년전, 농활을 하는 학생들과 잠시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미리 준비한 돼지고기와 술로 하루를 마친 피로를 달래고 있었는데, 제가 농활을 다닐때는 그런 사치란 아예 금기의 대상으로 감히 일을 도와주러 가는 주제에 호의호식 할 수 없다는 것이 불문률처럼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학생들은 오후 휴식시간이라고 느티나무 밑에서 여기저기 누워 낮잠도 자고는 하였습니다.

 잠이 부족하고, 낮 동안의 농촌 일손을 거들고도 시간이 모자라 밤 시간에 모여 앉아 그날 있었던 봉사활동에 대한 토론과 내일 행할 봉사활동에 대해 논하며 깊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했던 농활이 이제는 너무도 변해버린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농활을 다녀오면 마치 월남인처럼 새카맣게 타버린 얼굴에 하얀이를 드러내고 웃던 그 모습이 이제는 놀러가듯 농촌을 찾으니...실제 농민들인들 속으로 제대로 반기기는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농활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겠다는 각오로 출발을 한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사태는 주와 객이 바뀐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아닌가 합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이에 대한 설문조사가 진행이 되기에 잠시 제 의견을 표하고 결과를 보았는데 80%가 넘는 사람들이 서울대생의 철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농민회의 말처럼 도시민과 농민...더군다나 급진적인 학생과 보수적인 촌로의 사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서울대생들이 촌로들의 사고를 자신의 사고에 맞춰달라고 하였다면 이것은 농활이 아니라 대접받으러 간격입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준다는것은 도움을 받을 사람의 입장에서 무엇을 필요로하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봉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런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그들의 선배로서 지금도 농활을 나간 학생들을 보는일이라도 생기면 유심히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았지만, 입이 백개라도 그들의 농활은 선배들의 농활에서 보여줬던 노력보다 결코 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배웠다는 학생들...더구나 우리 나라 최고의 지성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행동이 전혀 배우지도 못한 촌로들을 상대해서 철수라는 결정을 내렸다면...앞으로 이들이 사회에 나와 타협이나 상생의 길을 찾기보다는  "'모아니면 도 "식의 사생결단만 추구한다면...오늘의 철수 사태는 단순히 농활 철수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고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아무리 머리가 좋은들 타협과 순응과 참음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뭉친 행동밖에는 달리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들의 이러한 행동이 경솔했음을 분명히 밝히며, 그들의 선배로써 충고를 하고 싶습니다. 농활을 행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분명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의 농활은 정말 여러곳의 감시속에 행해졌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가운데서도 데모가 극심할때도 농활팀은  농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절대 금하는것이 철칙으로 받아들여졌었고, 감시기관에서도 그런면은 안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봉사라는 차원에서 오로지 농민만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후배들이여....그대들은 농민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여 농활을 갔던것이었나?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차마 그대들에게 털어놓고 말하지는 못하겠다는 어느 농민의 하소연처럼 그대들의 농활 행태가 봉사보다는 오히려 누가되는것은 아닌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나....우리때는 집안에서 잔다는것은 생각도 못했었다네...어디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가서 농민의 집에 버젓하게 등대고 잠잘 생각을 했겠나? 쓰지않는 곳간에서 옹기종기 등대고 모기쫒으며 겨우 짧은 잠은 이룰수가 있었네....그대들이 제대로 자고 제대로 먹고, 피둥피둥 살이라도 쪄서 온다면....그대들은 한 여름 농촌에서 재미있게 피서나 하고 온것일세... 그대들이 농활을 마치고 떠나온 자리에서 농민들은 그대들의 흔적을 지우며 두번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네....겨우 호칭문제로 그대들은 떠나왔지만 그대들의 잘못된 판단은 단지 그대들이 서울대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도 신문의 기사거리에 충분히 오르내리라는것도 염두에 두게나....그리고..많은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는것도 염두에 두고....농민을 위한 배려를 할 마음을 갖지 않았었다면 두번 다시는 농활을 간다는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게나....

 정말.....농민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배려하고 이해해야할 입장에 있는 대한민국의 지성이라는 학생들의 작태에 울화가 치밀어 몇 자 적어봅니다...그렇게 떠나와서는 창피함을 알아야지 이런 저런 이유를 단다는것 조차도 못마땅합니다. 늦었지만 그들이 진정한 지성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반성의 소리를 듣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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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08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저 기사보고 조금은 황당했더랬습니다..

호랑녀 2004-07-0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년대의 대학생(저는 87학번)과 2000년대의 대학생은 참 다르구나 생각했더랬습니다.
저희때는, 저희들의 행동이 혹시라도 대학생이라고 티낸다고 생각하실까봐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도 조심했었지요. 난생처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의 보모노릇을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밥 먹었던 게 체했던, 그래도 평가와 반성을 하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꼿꼿이 앉아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생 조카아이를 보니 농활을 굉장히 낭만적으로 생각하더군요. 거의 엠티 수준인 것 같아요. 신문에 나지 않은,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스무살 아이들에게 아줌마 아가씨라는 호칭이 굉장히 기분나빴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친구들은 벌써부터! 대접받는 데 익숙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선인 2004-07-0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황당한 일이네요.
호칭이 문제가 되다니 농활간 건가요, 부킹간 건가요.
전 여대를 나왔는데 계집들끼리 집나와 싸대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마을 주민들 입장 때문에, 입촌을 허락받지 못해서 할수없이 주말마다 밤차타고 내려가 일요일 하루 일하고 다시 밤차타고 올라오는 걸 반복하던 끝에 결국 농활대 입촌을 허락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허락을 갈구했던 건 봉사를 하러 가기 위함도 아니고, 브나로드를 위함도 아니요, 그곳에 배움의 길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을산 2004-07-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기상이변에 의한 재해가 아니라면 '도와주기 위해' 농활을 갈만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갈만한 곳이 없는데도 전통대로 어디건 꾸역꾸역 가야한다니, 준비하는 학생들로서도 힘들겁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봉사'나 '활동'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준비가 필요하겠죠.

몇 년 전 '자원봉사 거부선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한 장애인이 쓴 것이었는데, '자원봉사'를 한다고 하면서도 클라이언트(복지상담이나 자원봉사의 수혜자)에 대해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전혀 사전 지식이 없이 와서 오히려 상처를 주고 가는 자원봉사자가 많아서 경각심을 주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안가느니만 못한 요식적인 활동은 과감히 통폐합해서 정말 제대로 할 사람들을 위한 활동만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수수께끼 2004-07-09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저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농촌의 고통과 어려움...그리고 농촌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편인데, 농활을 떠나는 대학생들이 농활을 가서 발생될 수 있는 제반 문젯점에 대해 사전에 스터디를 하지 않은것 같아 답답했습니다.
저학년일때는 호랑녀님 말씀처럼 하루 일과를 결산하면서 제대로 숨도 못쉬고 선배들로부터 농활에서 범했던 실수에 대해 엄하게 꾸짖음 당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농촌에서 정말 일손 이외에 특별한 도움을 받을 여지가 없어 점차 농활의 의미가 쇠퇴한다고는 하지만, 일단 농활은 자신의 방학기간의 여유시간을 봉사라는 이름으로 버리는 것이기에 대상 농촌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고려되어야 할것입니다. 물론, 제가 심하게 심하게 꾸짖기는 했지만 농활을 떠나는 요즘의 대학생 농활이 문제 야기를 목적으로 출발하지 않았으리라는것은 당연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최종 결정을 내렸었더라면 이번 사태와 같이 지탄을 받는 일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발불고 행차를 알리며 거대한 규모로 농활을 출발하기보다는 어디 정말로 일손이 필요한 깊은 산골에 혼자 가더라도 진정으로 일손이 부족한 농촌을 도울수 있는 농활이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