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지금처럼 수도관이 각 가정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꼭지만 틀면 콸~콸~ 물이 쏟아져 나오지만 서울에서도 수돗물을 먹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정수 시설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수도관을 지금처럼 거미줄 같이 땅 속에 매설할 형편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네마다 공동수도라는 것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꼭지도 지금의 꼭지보다는 상당히 컸었고 물도 틀기만 하면 땅바닥이 패일 정도로 콸~콸~ 거리면서 나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어깨에 맬 수 있는것이 책가방 말고 두 개가 더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똥통이었는데 이것은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메고 "똥 퍼요~~"라고 동네를 돌면서 소리를 질러댔지요...그리고 또 하나가 물통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만 하더라도 물통을 져 날라야 했는데 언제 세상이 이렇게나 편리하게 변해버렸는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키에 맞지 않는 지게를 메고는 공동 수돗가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일찍 간다고 가 보아도 물이 쏟아지는 수도꼭지는 저 멀리 보이고 양철로 만든 동그란 물통은 순서를 기다리며 늘 길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하여간, 그 당시에는 동네 철물점에서 파는것의 주종을 이루는 것이 낫, 삽, 호미, 쇠스랑, 그리고는 물통이었습니다. 양철판을 동그랗게 말고 바닥을 대고는 아구리에는 가로나무를 대서 중간 아랫쪽에 지게가 걸릴 수 있도록 홈을 판 것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면 공동수도에서 돈을 받는 아주머니에게 얼마간의 동전을 내고는 물통 가득 물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지게를 메는데 이 지게라는것이 등판을 이루는 나무판에 엇갈리게 긴 나무를 걸치고 그 끝에는 쇠갈고리 모양의 걸쇠를 달은 것인데 이 걸쇠를 물통의 홈에다 걸고는 집으로 돌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수돗가에서 물을 받을 때는 물통 가득한데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조심조심 해서 오면 4/5정도가 남고, 조심하지 않으면 물통에는 2/3 정도만 남아 있게 됩니다. 물론, 어른들이 지게를 진다면야 힘도 넘치고 하니 그리 많은 물을 쏟지 않겠지만 어린 아이들이 지는 지게는 요령도 모르고 지기 일쑤이기에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물은 마른 흙바닥을 튕기며 떨어져 나갑니다. 지게지는 요령이란 물이 흔들리는 주기와 맞추어 걸음을 옮기는 것인데 찰랑거리는 물이 앞쪽으로 쏠리냐 뒷쪽으로 쏠리냐는 단지 감으로만 느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나마라도 집에 도착해서 커다란 물독에 부으면 제법 독을 채울 수 있었고, 한 번, 두 번 물지게를 져 나르면서 물독의 차오르는 양으로 앞으로 몇 차례를 다녀와야 물긷기를 그만 할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 할 수 있었고, 너 댓번을 공동수도에 다녀와야 물긷기는 끝을 낼 수 있었습니다. 물긷기를 마치고 시장통에 심부름이라도 갈 때면 길게 늘어선 물 긷는 양동이를 보면 미리 물긷기를 끝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집에는 우물과 펌프가 있었으나 여기서 길어 올리는 물은 말 그대로 허드레 물로 사용할 정도입니다.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빗물이 고이는 우물이나 펌프로 퍼 올리는 지하수는 안심을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가뭄이 심하면 그나마 이런 우물물이나 펌프로 끌어 올리는 물 조차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물은 말라서 두레박이 바닥을 벅~벅~ 긁어대고 펌프는 아무리 밑물을 부어도 뾰옥~하며 지하로 빠져 들어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가뭄이 계속되면 서울시에서는 물차를 보냅니다. "물차 왔데요~" 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 집 저 집에서는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동원하여 들고 나갑니다. 트럭 뒷쪽에 꼭지가 달린 물 탱크 차량은 정신없이 들이미는 물통을 정리하느라 난리지만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받아가려는 사람들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트럭이 높으니 물통들은 얼굴 윗쪽으로 날라다니고...정말 난리 난리 이런 난리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식수를 받아 두어야 밥이라도 짓고 숭늉이라도 마실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채 아스팔트가 깔리기 전에 땅을 파고 수도관으로 사용되는 커다란 시멘트 관을 뭍기 시작한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의 일입니다. 어느 날, 집에는 계량기가 뭍히고 그 계량기 끝쪽으로 마당에 수도꼭지가 뭍히고는 급기야 몇 번 꺾이는 듯 싶더니만 학 대가리 모양의 수도꼭지가 설치 되고 그곳으로 물이 콸~콸~거리며 시원스럽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같이 더운날...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께서는 제게 커다란 선심이라도 쓰시듯 "얘, 거기 수돗물에 등목을 하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이라도 수돗물을 세게 틀어 놓으면 "물 아껴써라"고 말씀 하셨는데 땀으로 끈적거리는 웃 몸을 흐르는 물로 씯을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시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야금 야금 우리 생활 속에 파고 들던 수도는 아파트가 세워지고 집들이 편리한 양옥으로 고쳐 지어지면서 언제 그렇게 빨리 퍼져 나갔는지 어느 집이고 이제는 물을 쓰는데 불편함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제 어릴 적 이야기가 꽤나 먼 옛날 이야기 같음에도 실은 그리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은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왔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런 급속한 발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 때 물을 길어 나르던 시절을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소설속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당시의 고생을 이해하기 보다는 우리네 옛 물정에 동정이 일기까지 하는 것이겠지요....

 제 어깨는 지금도 딱! 벌어져 있습니다. 물론, 저보다 두 살 아래인 제 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둘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물을 길어 나른 경험이 있기에...키에 어울리지도 않는 물지게를 지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오늘은 이렇게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처럼 복잡하고 머리아픈 세상속의 자신만 앞세우는 삶 보다는 물차에서 물을 얻지 못한 이웃에게 내 먹을 물을 나눠주던 정이 담뿍 담긴 그런 옛날이 오히려 더욱 그리워 집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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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29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심에 사는 우리야 펑펑 수도물을 누리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라죠.
그게 옛날이 그리운 이유중 하나인 거 같네요...

메시지 2004-06-29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펌프경험은 있습니다만 물지게는 경험이 없어요. 펌프도 아주 어렸을때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신기해서 해본 것이 전부구요. 물지게는 대학때 연극하면서 후배가 물지게를 지고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소품 만들고, 연습시키느라 물지게 지는 척은 해본 적이 있어요.
불편하거나 부족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참 애틋한 것 같아요. 그 평범한 일상들이 다 보석같은 추억이 되는 것을 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