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조각에 신라인은 어떻게 미를 접목시켰나에 대해 말씀드렸고, 오늘은 신라 회화에 나타난 미의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신라의 회화를 이해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은 현존하는 신라의 회화가 거의 전무하다는데 그 이유가 있답니다. 사실, 신라는 국가에서 채전(彩典)이라 하여 국가에서 관장하던 일종의 화원 양성소도 설치하였었고, 덕만공주(德曼公主)의 예에서 나타나듯 당시에 당나라와 빈번한 왕래를 통한 회화의 교류가 있었음을 판단하면 회화에 대한 신라인의 열의는 고구려나 백제 못지않게 활발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회화의 발전된 모습 또한 대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남아 있는 신라의 회화라고 할 수 있는것은 경주의 천마총(天馬塚)과 98호 고분에서 출토된 공예품들 뿐입니다. 여기 말이 나왔으니 하고 싶은 말입니다만, 우리가 천마도라고 하는것은 지금은 천마라기 보다는 기린이라는 동물이 아닐까 하는 점이랍니다. 왜냐하면 천마와는 달리 기린은 서기(상서로운 기운)을 내 뿜는 상상의 동물인데 천마도는 일반적인 말이라고 보기 보다는 기린이라고 보는것이 합당한것 같습니다. 이런 천마도나 기마, 인물도, 서오도(瑞烏圖), 우마도 등 출토품의 수준은 고구려나 백제의 회화와 비교하면 상당히 그 수준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분에서 출토된 미술품을 단순하게 일반 미술품과 비교할 수 없다는 비교 방식의 차이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고분 출토품들은 고구려 고분 벽화와 같은 회화라기 보다는 공예품에 그려진 공예화로서 신라 회화의 본 모습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천마도를 살펴보면 고구려 벽화의 말 그림 처럼 강렬함이나 위풍당당한 기세가 없으며, 백제의 산수문전(山水文塼)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천마도에서는 무엇인가 할말을 다 하지 않고 할 말을 담고 있는듯한 그림으로 우리는 고요와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한편, 의도적으로 통제되고 절제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반가사유상에서 느끼듯 "내재된 세계의 함축미"라고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신라인의 회화 작품으로 신라인의 미의식을 담고 있는 회화로는 유일하게 국보 제 196호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光佛華嚴經變相圖)"가 있는데 감지에 金銀泥로 그려졌으며 여기에서 나타나듯 화려하고 풍요로운 화풍은 신라 회화의 주류를 이루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특히 인체 표현에 나타난 부드러운 곡선과 후덕한 얼굴, 몸매의 유연한 자태, 호화로운 분위기 등은 신라 예술이 불교와 더불어 극도로 세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光佛華嚴經變相圖)"는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중인데 변상도의 가운데 부분은 모두 녹아 없어지고 양쪽 갓쪽만 남아 있으나 이 부분에 나타나있는 회화만으로도 신라인의 회화적 솜씨가 상당하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2회에 걸쳐 신라의 조각과 회화에 나타나는 신라인의 미의식을 살펴보았는데, 신라는 통일전인 삼국시대부터 당나라와 활발한 교역을 통하여 당나라의 문화를 수용하였으며, 특히 통일 이후에는 철저한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더욱 포근하고 풍요롭게 아름다운 미의식으로 활발한 문화활동을 했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신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정치적 불안 속에서 조성된 작품들이 상당히 흔들리고 있음을 볼 때 신라인의 미의식 또한 정치적 불안과 더불어 많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의 예술은 불교라는 교리를 바탕으로 불법을 이루려는 의지 아래 하나의 완성된 미의식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라인의 예술적 감각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에 걸쳐 불교를 대상으로 신앙심의 절정에 이르면서 예술품 또한 절정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의 예술은 불교의 정신적 바탕위에 이룩된 하나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불교를 받아 들여 정신적 지주로 삼으며 인간이 이루지 못하는 세상을 부처가 이루고, 인간의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난 부처로서의 승화된 형상을 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예술의 꾸준한 발전을 가져 왔으며, 그 발전의 결정체로 신라 예술은 절정의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신라인의 미의식은 불교와 더불어 그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지극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방법으로 정착하며 보다 세련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라인의 미의식을 알아 볼 수 있는 작품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한정된 미술품이라도 충분한 연구를 통하여 조금 더 考察해야 하겠으며 앞으로는 상대적으로 고구려, 백제인의 미의식과 비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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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2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해박함에 날로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다만 천마가 아니라 '기린'이 아닐까 하는 학설에 대해서 전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이재중씨의 주장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로부터 부장품에 저승세계에 가는 길잡이로서 '천마'가 즐겨 그려졌고,
더군다나 그려진 위치가 말장식이었음을 감안할 때
전 오히려 기존의 '천마설'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여집니다.

비로그인 2004-05-2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린설은 이재중씨 뿐만 아니라 장충식 교수등 일부 학자들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습니다. 비록 마구에 사용된 그림이지만, 중국의 마구에서 우리 천마와 동일한 그림이 발견이 되었으며, 이것을 말이 아닌 기린으로 명문화 되었다는데서 이재중씨도 이론을 제기했던 것인데, 원래 상상의 동물의 시원은 우리 나라가 아니기에 그 시원을 따져 쫒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으로 다수의 학자들이 기린설에 동조를 하는 입장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천마총은 그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는 무덤이나 무덤의 규모로 보았을 때 상당한 지위의 인물로 판단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후 세계를 동경하는 입장에서의 염원으로 기린이라는 상상의 동물을 그렸다고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연구는 향후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공동 연구가 추진된다면 밝혀질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기린이 상상의 동물이 아닐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기린의 뼈로 추측되는 짐승의 머리 뼈가 발견 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조선인님의 반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선인 2004-05-3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다 자세한 말씀에 대해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