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처럼 제것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없는 편입니다. 특히 만원버스이건 경기장이건 감히 제 주머니나 소지품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커다란 실수일 정도로 소매치기나 도둑에는 아주 강하답니다. 실제로 제 물건에 손을 대었다가 콩밥을 먹은 사람들도 몇 명이 될 정도입니다. 민감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 주머니속에 다른 사람의 손이 들어오는것은 재빨리 느낄 수 있어서 다행히 물건을 잃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식당에가서 우산을 두고 온다거나 손에 들고 있던 소지품을 놓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랍니다. 그와는 반대로 남들이 두고 간것은 눈에 잘 띄어, 열심히 주인을 찾는 노력을 많이 해 본 경험이 있는 편이지요...

2. 그런데, 이제는 늙어가나봅니다. 서서히 노망(치매)의 초기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을 하는것인지 급기야 그저께 저녁에는 소중한 지갑을 잃어버리고야 말았습니다. 제 물건을 처음 잃어버리는지라 그 황당함과 허무함이란 이루 말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리니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것이 아니겠어요? 지갑속에는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이 있었고, 2개의 신용카드와 2개의 현금카드, 그리고 대한항공의 Skypass 카드가 들어 있었고 일화 3만엥과 현금이 20만원 가량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재산인데 다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생계가 막막해 질 수 밖에요....

3. 그날 저녁....감독 몇 사람이 저녁에 분당에 생태찌개를 잘 하는 집이 있으니 식사를 하러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늦은 저녁이었고 거리도 가까운 편은 아니라서 조금 망설였는데 수서<-->분당간 도시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금방 간다고 하여 속으로는 별로 내키지 않음에도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막상 가보니 그 잘한다던 생태찌개는 점심의 서비스 메뉴이고 저녁 메뉴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메뉴를 보니 생태찌개는 5000원으로 비교적 적당한 가격이었는데 고객 유치를 위해 이득없이 점심에만 나오는 메뉴라는 것이며, 저녁은 비교적 가격이 조금 나가는 음식들이기에 일행은 꽃게탕을 시켜서 정말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4. 문제는 식사가 끝난 다음에 발생을 했습니다. 식후 차를 마시는 시간에 저는 식사값을 치루려고 잠시 카운터에 갔는데 제가 식사값을 치루는것을 보고 달려온 일행들이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실갱이 아닌 실갱이가 벌어졌고, 저는 감독들에게 등을 떠밀려 결국은 제가 식사값을 내지도 못하고 먹던 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조금은 어색해서 지갑을 주머니에 넣지도 못하고 그냥 상위에 내려 놓았었고, 그마저 어색해서 식탁 아랫쪽 제 발 앞에 두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거의 식당이 문을 닫을 시간에 마지막 손님으로 그 식당을 나왔습니다.  제가 지갑을 두고 온것을 알게 된것은 신나게 꿈나라를 들락거리던 밤를 새우고 아침에 출근을 할 때 였습니다. 다른 소지품은 다 있는데 지갑만 없는 것입니다. 어제의 일을 생각해 내고는 "아~ 식당에 두고 왔지..."라는 생각을 하며 출근을 하였습니다.

5. 출근 후.... 전화를 했지만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전화는 받지를 않았고, 대충 정리를 하고는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식당에 도착하니 이제 막 출근을 해서는 청소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갑 이야기를 하니 보지 못했다는 것이고....저희가 앉아 있던 식탁에 가니 그 식탁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데도 그 식탁을 담당했던 여자분은 지갑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 답답하더군요.....다른 손님들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 식당의 문을 나서자 마자 바로 앞에 제 차가 있어서 어디 다니지도 않고 왔는데 말입니다. 그 집 사람들이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다구치면서 왜 모르느냐고 할 형편도 못되고 해서 그 식당을 떠나왔습니다. 직원들이 바로 분실신고를 하라고 했지만, 식당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것 같기에 분실 신고를 하지 않고 다녀왔었고, 허무하게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이곳 저곳에 분실 신고를 했습니다. 그 분실신고라는것이 모두 전화 다이얼을 눌러대는 ARS라는 편리한 방법으로 되어 있더군요.

6. 당장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카드를 사용해야함에도 신고후 15일 정도 지나야 새 카드로 발급을 해 준다더군요. 다행히 S은행에서는 은행으로 오면 바로 해 주겠다고 해서 재발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갑에는 제 주소지를 알 수 있는 명함이 있음에도 혹시나 연락이 올까...라는 생각에 하루를 꼬박 기대감 속에서 보냈지만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으로는 영원히 연락이 올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신분증 재발급이다, 운전면허증 재발급이다 해서 괜한 걸음을 할 일만 남았습니다.

7. 오늘로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 연락은 없습니다. 제가 지갑이나 남의 물건을 습득한 경우에 정말로 기를 쓰고 주인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하여 주인에게 돌려 주었었고, 돌려받는 주인들의 표정에서 그동안의 걱정을 말끔히 씻어버리는 웃음을 보았기에....그 웃음을 찾아준다는 의미로라도 습득물의 주인을 찾아 주는 일이 재미있기도 했었습니다. 저도 은행 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신분증 등은 돌아오기를 기다릴겁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돈만 빼고 신분증은 우체통에 넣는다던가..또는 하수도에 버린다고 하는데 한번 보름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 볼 참입니다. 우선은 제 연락처가 있음에도 아직 연락이 없음은 누군지는 모르나 온전하게 돌려 줄 의사는 없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신분증은 그 중요함을 아시는 분이라면 돌려 주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이곳에 " 여러분....제 지갑 온전한 상태로 돌려 받았습니다" 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그렇게 될까요?

치매 초기증세임을 부인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셈인지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으로만 끙끙 거리지만 실은 처음 겪는 일이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제 지갑이 제 손에 돌아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믿음은 사회에 대한 믿음이자 상실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믿음 일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지갑을 분실한것은 어디까지나 제 실수이지 다른 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기에....믿어보고 싶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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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3-0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도를 가지고 치매 초기면 전 이미 말기겠군요. ^^
옛날에는 1-2년에 한번꼴로 지갑을 잃어버려서 동사무소의 제 주민등록 대장은 사진 붙일 칸이 모자란답니다. 지금은 오히려 덜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4-03-05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음....가을산님의 치매 증상은 말기---> 중기---> 초기---> 정상 의 순서로 가시는 모양입니다.지갑은 예전에 쓰던 지갑으로 바뀌었지만 그 속에는 겨우 어제 재발급 받은 은행 카드와 오늘 재발급 받은 운전면허증 뿐이랍니다.조금은 허전하지만 그래도 보름 정도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감기약 선전처럼 "치매 조심하세요~~"라고 해야하는건지....

ceylontea 2004-03-0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갑을 잃어버린 것도 속상한데... 그 후속조치를 하다보면 더 화가 나지요... 전부다 분실 신고하고, 재발급 받아야 하고.. 더러는 직접 방문해서 조치를 해야하니.. 잃어버린 지갑에 돈에 후속조치에 따른 시간까지..
요즘엔 저도.. 회의가 많아 이리저리 다니다가 제 물건을 이리저리 흘리고 다니는 심각한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심해야겠어요...
수수께끼님 지갑이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비로그인 2004-03-05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어느날 택배가 와서 지갑이 고스란히 담겨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다면 실론티님께도 기쁜 소식을 재빨리 전해 드릴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아무리 보잘것 없더라도 원 소지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수도 있기에 항상 소지품 관리에 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ceylontea 2004-03-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저는 오늘 백화점 가서 쇼핑하고 사은품 타러 갔다가... 카드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지금은 카드분실신고 하러 들어왔다가 잠간 들렸지요... 카드를 잃어버리고 나니.. 수수께끼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바로 어제 물건 흘리고 다닌다고 조심해야지 하고서... 오늘 흘리고 오다니... ㅠ.ㅜ

비로그인 2004-03-0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실신고를 하셨으니 다행입니다만, 정말 잠깐의 방심이 의외로 일을 번거롭게 만들더군요. 실론티님의 카드도 좋은 분이 습득하셔서 고이 돌려보내지기를 기다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