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박 3일의 일정으로 우리 나라의 가장 험준한 지역에 자리잡은 최전방에 다녀왔습니다. 흔히들 '철책'이라고 부르는 남북 장벽이 가로 놓인 155마일의 휴전선중에서 가장 험난한 지역이라는 화천의 금강산 댐(운암댐이라고 합니다)이 바라다 보이는 지역이었습니다. 첫날인 월요일은 그리 춥지가 않아 이동중에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는데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서울을 출발하였으나 그 지역에는 7시간 반이 걸려서 도착을 하였습니다. 중간에 워낙 지형이 험난하여 차량은 차량대로 보내고 사람은 또 걸어 올라가야했는데 1천미터가 넘는 산 꼭대기에 위치한 부대막사까지 올라가는 일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 부대가 위치한 지역은 역시 고산지역답게 매서운 바람이 온 몸을 감싸돌아 당장이라도 얼어버릴것 같았습니다.  가장 높은 지역에 올라가 주변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눈 덮인 산악 지형 가운데 북의 초소가 눈 앞에 가물거리고 그 산 사이의 협곡에는 금강산 댐이 자리하고 있는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0여분 지형 설명을 들었지만 어찌나 추위가 매운지 눈에서는 눈물이 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이런 높은 산에서 나라를 위해 몸 바쳐 경계임무에 임하는 장한 젊은이들은 군대에 들어와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며, 이곳 경계임무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였습니다.

3. 소초에 배정을 받고는 이른 저녁을 먹었습니다. 반찬이야 별로 특별하지 않았지만 어찌나 식욕을 돋우는지 두번씩이나 밥을 가져다 먹었습니다. 식사후에는 경계임무에 임하는 교육을 받고 바로 초소로 투입이 되었습니다.  경계근무를 체험한다는것이 자칫  정상적인 경계임무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를 걱정하면서 제가 담당한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그 시간도 짧은 시간이 아닐만큼 상당한 거리였습니다. 여기서 경계형태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저도 방한복을 지급 받아 착용을 하였음에도 잇빨이 딱딱~ 부닦치는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온도계의 눈금은 영하 15도....하지만 강하게 부는 바람을 생각하면 체감온도는 자그마치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 간다고 하는데, 역시 젊음이 좋은지 꺼떡도 하지 않는 병사들이 늠름해 보였습니다.  저도 긴장감속에서 아래윗니가 딱딱~ 부닦치는것을 겨우겨우 참아가며 전반야 근무를 마칠수 있었습니다.

4. 소초 내무반은 경계근무를 마친 병사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습니다. 페치카나 갈탄 난로가 아닌 보일러 시설로 밖의 기온과는 거의 40여도 차이가 날 정도로 아주 훈훈했습니다. 장비 검사를 마치고 더운물로 간단히 씻고는 바로 병사들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고 잠시 밖에 나가니 역시 매서운 바람(진짜 칼바람이라는 말이 맞았습니다)이 회오리 바람처럼 계곡을 감싸며 후려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황쏘가리만 빼고 다 잡는다"....  내무반 입구에 붙여진 구호였습니다. 참 이상하죠? 적은 다 잡는다도 아니고 왜 황쏘가리인지...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자유롭게 황쏘가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연기념물이라는것은 알고 있었고 저도 크다는 황쏘가리를 몇번 본적이 있지만 여기의 황쏘가리는 어른 하체만한 길이라고 합니다. 수명이 몇년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남북이 대치되기 시작할 때 살기 시작한 황쏘가리라도 벌써 50년을 넘게 살았으니 ...  그만큼 크게 자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남북대치 속에서도 천연기념물인 황쏘가리는 잡지 않고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읽을수 있었습니다.

5. 이곳의 여름은 보통 장마가 져서 북한의 운암댐을 열면 물의 깊이가 30~40미터는 올라간다고 합니다. 한동안 여론에서 금강산댐의 방어댐이 사기다 뭐다하고 떠들어대고 그나마 대응댐 공사도 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실상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 병사의 말이었습니다. 직접 경험을 했기에 북의 금강산댐이 같은 위험성에 대해 너무도 잘 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 사병은 나중에 전역을 하고 사회로 복귀를 하더라도 금강산 댐의 위험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저도 의아합니다만 여론의 힘에 밀려 대응댐의 건설이 사기라는 말로 넘어가 버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정말로 금강산댐이 위험하다는 그 병사의 말처럼 위험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판단을 해야할것 같습니다. 금강산 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 병사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모두가 군에 가기 싫어하고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해외로 줄행랑을 놓는 비겁자도 있는 반면 대한의 남아임을 인식하고 군에 입대하여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여기를 지키는 장병들 모두는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의지가 충만해 있었고 저도 마음속으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2박 3일간의 전방 GOP체험은 제 입장에서는 무척 힘이 들고 괴롭기도 했으나 마치고 부대를 떠나올때는 무엇인지 모를 쾌감이 가슴속에 자리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세대 병사들이라서 안보의식이 해이되리라던 생각은 완전히 고칠 수 있었고 오히려 신세대 병사들에게 맞는 근무여건을 조성해 주려는 군 당국의 세심한 배려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계임무에 단 한치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우리 나라의 가장 험준한 지역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남북 분단에 이은 대치상황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 가운데 존재하는 그들이 겪는 고충을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잊고 살고 있는지 몰랐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번 전방 경계체험을 다녀오는 일행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한결같이 한가지 결론이었습니다.  "우리는 편하게 살고 있다" 였습니다. 그 편함이 바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었던 체험이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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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2-05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이 많으셨군요! 몇개월 전 군에 갔던 청년 하나가 첫 휴가로 집에 왔다가 저희 병원에 왔었습니다. 그때가 11월 초 밖에 되지 않았었는데도 귀랑 손에 동상이 걸려 있었어요.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는 안스러운 눈빛만 보일 뿐, 아무 말도 않구요. 이름 없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 덕분에 편히 지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가을산 2004-02-05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제가 고등학교때 아주 친했던 친구가 '군인 마누라'가 되어서 계룡대에 있습니다.
그동안은 저도 수련 받느라 바빴고, 친구는 결혼하고 계속 전방에서 근무하는 남편 따라 살다보니 연락이 끊겼다가 작년에 비로소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났답니다.
학생 때 공부를 참 잘 했던 친구인데(S대 나왔어요), 사회 활동도 못하고 십여년 만에 후방으로 와서 지금 최고로 편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 친구 재능이 아깝고 속상한데 본인은 '군인 마누라 정신'으로 이겨내고 있네요.

어제 몇달만에 같이 점심을 했는데요, 이 친구는 자기도 고생이 많으면서 대전에 나올 때면 직장 다니느라 살림이 엉망일거라며 김치나 밑반찬까지 챙겨주어서 마치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로그인 2004-02-0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사관생도의 모습이 뭇 여성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답니다. 그러나 군인(특히 육군)의 아내라는 자리는 멋과 위엄을 동반하지는 않는다는것을 친구분은 아마도 뼈져리게 느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친구분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자기의 남편이 늠름하게 수행해 나감에 아마도 크지는 않을지라도 긍지를 가지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인으로서 그 어느 임무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일이지만 최 전방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대할때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것은 아마도 저 자신이 그와는 반대로 편하게 생활을 했던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껍니다. 가을산님 친구분은 군인의 마누라가 아닌 "군인의 아내"로서 언제나 부하들을 챙겨주는 자상함이 몸에 배어 가을산님께도 먹거리를 가져다 주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한가지 부탁이요~~ 친구분 잘 대해드리세요...정말로 고생을 많이 하셨을꺼거든요~~~

마립간 2004-02-0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외가가 문산이고, 군복무지역이 그 동네여서, 도라 전망대도 방문하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군부대는 춥습니다. 부대가 신도시 옆에 있었는데 도시로 나오면 추운 것을 잘 모르겠는데, 부대안에만 들어가면 추웠습니다. 처음에는 정신적인 것이 아닌가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도시에서 내뿜는 매연과 난방시설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부 전선에는 대학생 전방입소때 가 보았습니다. 저의 학년이 마지막 입소였습니다. (이거 자동적으로 학번이 나오네.) 둘러보니 산만 보이더군요. 군의관 가족(아내)중에는 이런 환경을 견디지 못해 정신과 상담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텐데.

가을산 2004-02-05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도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고, 제 여동생도 아이디가 manura라서 무심코 쓴 단어가 좀 적절치 못했나보네요, 죄송!

그리고, 저도 한가지 부탁 드립니다. 여촌재님께 부탁해서 될 일은 아니겠지만....
군인의 아내로서 친구가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오지에서의 생활이나 박봉, 문화생활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군인 아내들 사이의 역학 관계였습니다.
남편의 지위와 부인의 지위가 동일시 되는 분위기와 남편을 위한 치맛바람 등...

군인이 서로를 평가할 때 아내들의 행동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아내들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느라 그런가봅니다.
위에서부터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솔선수범 해서 없앨 수는 없는지...

비로그인 2004-02-0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의 답글에서는 제가 일부러 그런 말을 빼버렸습니다만, 실은 가을산님에 대한 배려가 역학관계에 있어서의 아내의 역할속에서 몸에 밴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육군이 아니라서인지 이런 역학관계는 80년대말에 벌써 사라진지 오래 됩니다만, 아직도 전방 오지에서 근무하는 육군의 입장에서는 음성적으로 자행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그런 정도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것이 사실이지만 자칫 관행을 벗어나고자 하는 일이 되바라지고 건방진 모습으로 비칠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내조라는 탈이 자존심을 버려야만 하는 현실로서 진급이나 보직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계시기에 상급자가 원하지 않아도 바득바득 그런분들도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하급자의 아내가 악착같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단호하게 물리친다면 그런 나쁜 관행은 점차적으로 사라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매우 투명한 사회가 되었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정착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어느 한 사람에게 총애를 받아 출세를 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그런 가운데 진급이나 보직이 결정됨을 알수 있습니다. 저도 국방부라는 정책부서에 오래 근무를 하였지만 이제는 많이 사라졌다는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