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 마거릿 미첼(1900-1949) 소설
[문학와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원작 마거릿 미첼/감독 빅터 플레밍]
가장 좋아하는 소설과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서슴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꼽는다. 요즘의 시각과 감각으로 보면 다분히 구식인 이 소설과 영화가 아직도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애틀랜타의 한 여기자가 쓴 이 소설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곧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이 책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폭풍처럼 몰아쳤던 남북전쟁의 패배로 미국 남부의 부와 영광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노예가 없어진 지주들은 경작이 불가능해진 농장을 포기했고 북부의 뜨내기들은 남부로 몰려들어 헐값에 그 토지를 가로챘다. 불타버린 저택과 몰락한 가문과 갑자기 찾아든 빈곤 속에서 남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명예와 자부심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무력감 속에서 목격해야만 했다.
마거릿 미첼(1900∼1949)이 1926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집필해서 1936년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강인해지고 성숙해가는 한 여인의 삶을 서사시적으로 그린 대작소설이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마치 전통적인 남부처럼 오만하고 제멋대로이며 콧대높은 방년 16세의 아름다운 대지주의 딸이다. 그녀는 이웃남자 <애슐리>를 좋아하지만 애슐 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와 결혼하려하자 복수심으로 애슐리 동생의 약혼자이자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와 결혼한다. 그러나 찰스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고 북군들이 몰려오자 스칼렛은 극도의 가난과 고초를 겪게 된다. 온갖 궂은 일을 전전하던 그녀는 동생의 약혼자인 <프랭크>와 결혼해 애틀랜타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사업체 중 하나를 애슐리에게 맡긴다. 그러나 프랭크 역시 결투 중에 죽고 스칼렛은 다시 독신이 된다.이제 27세가 된 스칼렛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레트 버틀러>와 결혼한다.
그러나 애슐리를 잊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에 레트는 결국 그녀를 버리고 떠난다. 사촌 멜라니가 죽은 후에도 애슐리가 자기를 거부하자 스칼렛은 비로소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레트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록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성숙해지고 강인해진 스칼렛은 자신의 땅 타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그곳으로 떠난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 소설의 종반부는 보기 드물게 힘차고 아름다운 산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9년에 데이비드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감독) 역시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작명화로 평가된다. 스칼렛역을 위한 수많은 오디션, MGM사에서 빌려온 레트역의 클라크 게이블, 감독의 교체 등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이 영화는 오래 걸린 제작기간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영국배우 비비언 리는 스칼렛 오하라의 이미지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서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상영시간 4시간의 이 방대한 대작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평단의 화려한 각광을받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과 허무감을 그리고 있지만 궁극적인 주제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투혼」이라고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지금도 많이 팔리고 있고 영화 역시 부단히 재상영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미국인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저자 사후에 속편인 「스칼렛」이 쓰여지고 영화화된 것도 바로 원작의 그러한 인기에 힘입은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소설도 영화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 남는 불멸의 작품이 될 것이다.
---글 김성곤(서울대교수·영문학), [동아일보] 1996.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