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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우리 정서를 그리는 그림 작가 이억배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성 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이정표를 읽습니다. 좌전, 원삼, 용담 저수지, 고삼, 서삼……. 이억배 선생님 사시는 곳, 풍정 마을이 점점 가까워 옵니다. 산모롱이를 돌아 풍정 마을 입석과 급히 눈인사를 나누고 마을 고샅으로 들어섭니다. 언덕처럼 나지막한 산 옆에 선생님 사시는 집이 있습니다. 환히 웃으시며 마당으로 나오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수원 살다가 풍정 마을로 삶터를 옮긴 지 사 년 되었다는 선생님 집 마당은 어디 한 군데 허술한 데 없이 잘 손질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집을 가꾸고 삶을 가꾸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딸 한솔이의 작품과 가족 신문이 붙어 있는 마루에 앉아 역시 그림책 작가이신 정유정 선생님께서 내 주신 차를 마십니다. 두 분 선생님의 정겨운 미소와 따스한 햇살이 알맞춤하게 퍼지는 마루가 편안합니다.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글을 쓰고 그린 『솔이의 추석 이야기』의 주인공이던 한솔이는 벌써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고, 엄마 등에 업혀 있던 종익이는 봄이 되면 3학년이 됩니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그대로 있는데 주인공이었던 아이들은 세월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갑니다. 두 아이 모두 학교에 다니니 학부형으로서 걱정이 많은 선생님 부부와 저 또한 학부형으로서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주고받다가 작업실로 자리를 옮깁니다. 작업실 들어가는 문에 글라데스코 물감으로 선생님이 그린 호랑이 한 마리가 눈높이에 맞추어 앉아 있습니다. 호랑이는 퉁방울 눈을 뜨고 장난스레 입을 벌리고 그 방이 ‘이억배 정유정 작업실’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선생님 얼굴 가득 장난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는 까닭을 알 것 같습니다.

작업실 문을 열자 널찍한 마루 바닥 왼쪽으로 나지막한 책꽂이가 있습니다. 책꽂이 널을 지탱하는 기둥에도 선생님이 그린 닭 두 마리가 장난스레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책꽂이 위 한지로 바른 벽에는 새벽을 알리는 늠름한 수탉이 담장 위에 서서 인사합니다. 1997년에 그린 도서관 그림은 책을 사랑하는 작업실 주인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 옆에는 방문이 있고, 또 책꽂이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온 벽 가득 책이 꽂힌 책꽂이입니다. 직접 마름질하여 짠 책꽂이에 꽂힌 책들은 사랑을 듬뿍 받아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책꽂이 옆에는 선생님의 보물 창고인 오래 된 장롱이 있습니다. 장롱 문을 열면 켜켜이 지른 선반 위에 그림책 원화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맨 아래 칸에는 선생님의 그림책과 그 그림책으로 만든 기념품이나 인형 등이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는 세상에서 더 소중한 보물이지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에 나오는 솔이 인형도 누워 있습니다. 미국에서 책을 번역하여 출간하면서 만든 인형이지요. ‘Make Friends around the World’라는 시리즈로 나온 그 책은 미국의어린이에게 우리 문화를 소개했을 터이지요. 인형 솔이는 선생님의 딸 한솔이가 입었던 돌복을 본따 만든 색동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한솔이의 돌복을 미국에 보내 주어 만들었다는 색동 저고리와 치마는 안타깝게도 서양식으로 마름질이 되어 우리 한복의 느낌을 잘 살리지 못했다며 정유정 선생님께서 안타까워하십니다.

보물은 옷장 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방을 작은 공간과 큰 공간으로 나누고 있는 책꽂이 옆의 서랍장 안에도 보물이 꽁꽁 숨어 있습니다. 열 다섯 단이나 되는 널따란 서랍장 안에는 한지와 수채화 종이 등 여러 가지 종이가 종류별로 들어 있기도 하고, 최근에 그린 그림책의 그림, 그림책을 만들기 전에 고심한 흔적인 스케치와 더미 책들과 행사 때 그렸던 포스터 그림들, 자료 슬라이드들,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 둔 그림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보물 서랍에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의 더미 책이 나옵니다. 처음에 만든 더미 책에서 주인공 수탉은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 골목길 끝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을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골목길의 선이 살아난 장면이어서 아주 오랫동안 이 구도에 마음을 뺏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꾸 보니, 동네 모습은 마음에 드는데, 술에 취한 수탉이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버린 것 같아 구도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번째 더미 책에서 주인공 수탉은 다른 수탉들이 술을 마시는 천막을 벗어나 산길을 걸어 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선생님의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하지 않았나 봅니다.

결국 더욱 크게 그려진 천막 옆에서 술을 마시며 비틀거리는 수탉을 그리고 나서야, 주인공 수탉의 성격의 변화를 도드라지게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놓이셨나 봅니다. 그림책에는 세번째 더미 책에 그려진 그 장면이 실려 있습니다. 수탉이 팔씨름하는 장면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보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장면은 마치 서양의 원형 경기장을 보는 것 같고, 양계장의 닭장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 문화와 우리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로 배경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합니다.

서랍 속에서 나온 또 다른 주인공은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의 할머니입니다. 평소에 눈여겨본 여러 할머니들의 표정과 몸피, 옷차림, 유난히 커다란 손이 있는 할머니들이 서랍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할머니 가운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가 책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서랍 속에는 풍정 마을에 삶터를 꾸밀 때 마당에 어떤 나무를 심을지 정유정 선생님이 그린 나무지도도 있습니다. 지금 마당에는 그 지도에 그려진 자리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제법 주인티를 내고 있습니다. 이억배 선생님의 다른 그림들도 서랍 안에 고스란히 있습니다. 풍경도 있고, 놀아 달라며 아빠에게 떼쓰는 종익이 모습도 있습니다.

1995년에 나온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선생님이 처음으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입니다. “80년대 후반 들어 작가들이 스스로 기획하여 출간한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백두산 이야기』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가 그런 책이지요. 저도, 작가인 제가 작업을 시작해 출판사를 교섭하는 식으로 책을 내고 싶었어요. 그렇게 만든 책이 『솔이의 추석 이야기』예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전통 그림 기법을 섞어 그렸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그림에는 입체감이 없고 선이 살아 있습니다.

“우리 그림은 선으로 그리는 그림이지요. 형태와 형태의 경계를 선으로 정확히 나타내 줍니다. 동양화에서 입체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사물을 보는 관점 때문에 그랬지요. 서양에서는 그리는 대상을 물질로 보아 그대로 그리려 애쓰다 보니 빛의 변화에 따른 입체감이 두드러지게 된 것이지요. 반면에 동양에서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인격이나 정신의 표현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정조 시대에 청나라에서 서양의 원근법과 명암법이 도입되었는데 단원 김홍도가 그린 수원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 「삼세여래체탱」 그림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민화, 풍속화, 불화 등 우리 옛그림에 빠져 들었는데, 국립 박물관에서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았을 땐 가슴이 뻥 뚫리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선생님이 처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고구려 벽화나 옛 그림의 ‘행렬도’에 매료되어 작업을 시작한 현대판 행렬도로, 우리 식 풍속화입니다.

“문학이 모국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림도 시각적인 공감대를 이루려면 자기 삶의 근거에서 나오는 구체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영정조시대부터 그런 그림이 그려졌지요. 근대에 들어 서양화되면서 우리의 시각물들이 정리되거나 보존되지 않은 채 사라지게 되었지요. 생활사 자료 연구가 잘 안 되어 그림 그리는 데 어려움이 많아요. 장독대를 보기로 든다면 독의 쓰임새와 놓인 장소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른데 그런 자료가 없으니 우리 그림이 세부 묘사에 약할 수밖에 없어요. 세부 묘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무척 중요한 것인데 이것이 잘 안 되어 있으니 사실주의 그림이 발전하기 더욱 힘든 것이지요.

사실주의는 그리는 대상의 본성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고, 감수성이나 정신이 배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실주의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대상의 세부묘사를 사실주의로 오해하여 자칫 배경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주제인 땀냄새나 때, 시각적 흔들림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에즈라 잭키츠의 그림책 『안경』의 경우에도 그림이 추상적인 것 같아도 사회적 배경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그림책은 삶의 리얼리티를 바탕에 깔고 가는 것이기에 사실주의는 그림책 작업에서 무척 중요한 것이에요.

문화를 생각할 때, 민족 의식과 미술이 만나는 자리에 민화가 있어요. 우리 민화는 그리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움직이는 아주 특이한 그림이지요. 민화의 그림은 아이들 그림과 같아요. 아이들은 제가 그리고 싶은 주제를 부각시키지요. 즉 그리고 싶은 대상만 그립니다. 그래서 주제가 강하고 주관적인 그림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게 객관적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그림은 바로 아이들이 그리는 그런 방식으로 그린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 수탉은 다른 닭보다 훨씬 더 크게 표현되었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을 왜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민화가 자연주의와 표현주의를 다 안고 있다고 봐요. 민화가 장식적이고 발상이 자유로운 까닭은 그리는 이가 아는 세계를 그려서 그래요. 당시 사람들의 삶이 자연에 기반했기 때문에 자연에 있는 것을 주로 그렸지요. 민화나 아이들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진실되어요. 그래서 민화가 주는 힘은 바로 진실이 주는 힘이지요. 그림이 끌고 가는 힘은 인문학적 기본과 예술적 감동인데 그림책 혜택을 못 받고 자란 사람들이 그림책을 끌고 가니까 힘들지요. 그림책을 빨리 발전시키고 싶은 욕구가 높은 만큼 그림책에 대한 논의도 발전시키고, 작업 체계도 제대로 잡아나가야지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두 작품 다 한지에 그렸어요. 한지에 그림을 그리면 서양의 수채화지에 그린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요. 서양 수채화 종이는 종이 위에 물감이 덧씌워지고, 동양화 한지는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어 중첩되어 쌓이지요. 마치 얇은 옷감 사이로 속살이 비칠 때처럼 아련하고 그윽한 느낌을 주거든요. 물감을 여러 번 얹어 많이 쌓일수록 더욱 그윽하고 은은한 맛이 나는 것이 한지에 그리는 그림의 특징이에요.

『솔이의 추석 이야기』가 나온 95년에만 해도 한지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출판사 편집자들이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짓곤 했어요. 인쇄를 전제로 하는 그림책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한지의 느낌을 살릴 수 있을지 난감했기 때문이었지요. 농담을 조절하여 그리는 수묵화든 물감을 여러 번 올려 그리는 채색화든 편집자들에게는 더없이 골치 아픈 원화였던 거지요. 많이 변하긴 했지만 한지 그림은 지금도 편집하는 분들이 골치 아파하죠.”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 그림을 살리고자 고민한 편집자가 있었기에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한지의 장점을 살린 그윽한 그림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다른 나라에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대학에 입학하여 전공으로 조소를 택했지만 사회가 혼란했던 그 시절, 거의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갈 때쯤에는 민중 예술에 눈을 돌려 현장 미술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졸업한 후에는 안양에서 문화 운동 단체인 ‘우리 그림’과 ‘안양 문화 예술 운동 연합’에서 일하였고, 미술동인 ‘우리들의 땅’에도 참여하셨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공간으로 가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현장 미술 운동 쪽에서 활동했지요. 나름대로 미술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활동했어요. 예술의 민주화와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록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린이 그림책은 어쩌면 운동과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림책은 대중화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거든요. 문화 예술이 엘리트화되고 고립되어 있는데, 이런 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그림책 분야라고 생각해요. 판화 운동, 시민 문화 학교, 미술 학교 활동 등을 할 때, 살아가면서 즐겁게 활동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요. 이런 생각이 어린이와 연결되면서, 한솔이에게 그림책을 보여 주면서 자연스레 그림책을 그리게 되었던 겁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지요. 삶에 활력이 생겼고, 처음에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상처받은 정신을 위로받아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즐겁게 그림책 그림을 그렸어요. 어린이 그림책을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상태에서 내가 치료사가 되어 스스로 치유하게 되었지요. 그림책은 사막에서 얻은 물 한 모금처럼 나를 끌어당겼어요. 정말 매력적인 작업이었어요.”

선생님은 『떼굴떼굴 떡 먹기』『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새 하늘을 연 영웅들』『금덩어리에 깔린 욕심쟁이』에 삽화를 그렸으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으로 BIB (Biennale of Illustrations Bratislava Slovakia) 선정작가로 뽑히기도 했고 그림책『솔이의 추석 이야기』 『반쪽이』『쏙쏙 배움놀이 1』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그림책을 낸 지 참으로 오래 되었습니다. 까닭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지요, 오랫동안 그림을 못 그렸지요. 동네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통 작업을 못했어요. 동네에서 불과 1.2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진 곳에다 재벌 회사에서 납골당을 포함하여 40만 평이나 되는 묘지를 조성하려 했어요. 안 그래도 주변에 천주교 공원 묘지가 50만 평, 또 다른 교회 공원 묘지가 있는데, 그 묘지까지 들어서면 동네가 어떻게 되겠어요? 돈 되는 일이라면 지역 주민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고 그런 일을 하려 하면 안 되지 않겠어요?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반대 운동을 했지요. 조직을 만들고 만화 전단을 만들어 안성 시내의 여론에 호소했지요. 그 일을 일 년 넘게 했더니 마음도 몸도 아주 지쳐 버렸어요.”

그랬습니다. 삶터를 아름답게 지키는 일을 하느라 선생님은 일 년이 넘도록 그림도 못 그렸던 겁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날에 하던 일, 불의와 부당을 참지 못하는 선생님의 정신이 동네 일에 그토록 오랫동안 선생님은 붙들어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풍정 마을 사람이 되어 여기 이곳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니 새로 시작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어요. 혼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책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지요. 시 그림책이든 옛이야기든 단편 동화든 여유를 갖고 작업하고 싶어요. 표현 방식은 여러 방면으로 시도를 해 봐야 되겠지만 추구해야 할 주제나 관심 분야는 우리 그림, 우리 전통을 살린 그림이에요. 우리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정신적인 가치관이나 느낌, 우리만의 어떤 것들을 그리고 싶어요. 우리 문화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부분이 많아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파괴한 행동에는 자기 비하가 깔려 있는데, 이것을 극복해야지요.

중국이나 일본의 문화와 다른 어떤 것, 배타적 민족주의의 견지에서 보는 우리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에게 쌓여 온 어떤 것을 그리고 싶어요. ‘새벽에 우는 수탉’을 보고 느끼는 정서 같은 것이 바로 우리 것, 우리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치가 없으면 잘 못 먹는 밥 등, 무언가 우리다운 것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불화나 민화도 공부해 보고 싶고 현실 속에서 버리려 해도 안 버려지는 어떤 것을 찾아내어 표현하고 싶어요. 노력한다고 될지는 모르겠는데 스스로에게 내 준 숙제이지요. 여태까지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상당히 피상적인 부분도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생활 배경이나 사회적 배경을 살려 내려고 해요.”

창 아래 자리한 선생님의 작업대 옆으로 작업중인 그림과 화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널찍한 책상 위에는 활을 든 작은 사람이 물이 휘감아 도는 커다랗고 널따란 바위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무슨 그림이냐고 하니 심심해서 그린 그림이라며 빙긋 웃으십니다. 그 옆 높다란 책꽂이 위에 오래 전에 만든 장서표 세 장이 사이좋게 앉아 있고, 또한 그 옆으로는 딸 한솔이가 빚은 인형들이 이울어가는 햇님이 보내준 빛에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손수 나무를 마름질하고, 전기대패로 밀고, 지금도 가끔 매끈하지 못한 부분이 손에 만져지면 샌드페이퍼로 매끈매끈하게 다듬기도 한다는 마루 바닥 가운데 놓인 나지막한 상 옆에도 붓과 작은 접시와 그림책을 그릴 때 살펴야 하는 자료가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얼마 전에 그리기 시작한 삼국유사 전집 가운데 ‘선화공주와 서동’ 얘기에 쓰인 물감들이 앙증맞은 작은 접시에 제 흔적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 접시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놓인 작은 장 안에는 유리병에 얌전히 담긴 동양화 물감이 들어 있습니다. 진채 작업을 하실 요량으로 사다 둔 물감들입니다. 아교, 백반, 접착제와 발색제를 섞어 그리는 동양화 진채 물감이 고운 한지 위에 제 몸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슥해진 밤, 떠날 시간을 기다리며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쓴 자동차에 올라 선생님 부부의 따뜻한 배웅을 받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선생님이 찾는 우리다운 것을 생각합니다.

- 웹진 열린어린이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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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낭만적 현실주의자 바바라 쿠니(Barbara Cooney)

 

아이가 어렸을 때, 우리말로는 ‘수목원’이라고 번역하면 될 듯한 ‘Nature Center’에서 하는 ‘그 때 그 시절’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6-25때 경험을 해 보세요’하는 프로그램에서 꽁꽁 얼어붙은 주먹밥을 먹어 본다면 참 마음이 아프겠지만, 바바라 쿠니 Barbara Cooney 미국이란 동네는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한 것 외엔 ‘외적의 침입’을 받아 본 적이 없어 옛날 생활 경험 여행도 그저 한가하고 재미날 뿐이지요.

아이는 손으로 돌려야 하는 ‘짤순이’에 빨래도 넣어 짜 보고, 옥수수알을 분리해 내는 기계에 여러 색 알이 단단히 박혀 있는 옥수수도 연신 집어넣어 보았습니다. 물론 주변에는 한 150년 전쯤 되었을 듯한 그 때 그 시절 옷을 입은 아주 아주 촌스런 아줌마와 아이가 조그만 아시아 아이를 쳐다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바바라 쿠니(Barbara Cooney)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 그, 완벽한 촌아낙네가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햇볕에 탄 동그랗고 붉은 얼굴, 땋아서 한바퀴 돌린 머리, 일찌감치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칼, 그리고 100% 면임에 틀림없는 질박한 윗도리까지도!

 

 

 

도날드 홀 (Donald Hall)이 글을 쓰고 이 아낙이 그림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 (Ox-Cart Man)』에서 저는 남의 나라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깊어가는 10월에 한 해 동안 온 식구들이 애써 일한 것들을 소가 끄는 달구지에 실어 큰 마을의 장터에 내다 팔기 위해 농부는 언덕을 넘고 계곡을 지나 시냇가를 따라 걸어가지요. 그의 여행길을 작가는 아주 세세하게 묘사해냅니다. 가을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첩첩이 겹쳐 있는 둥근 산, 빨간 색 외양간, 하얀 색 교회, 노랗고 하얀 집들, 돌담, 단풍든 나무, 하늘색이 그대로 비치는 호수, 그리고 좁다란 노란 길…….

열흘 만에 도착한 포츠머스 마을의 장터는 길도 널찍하지요. 그곳에서 그는 4월에 깎아 두었던 양털과 아내가 만든 숄과, 딸이 짠 벙어리 장갑과, 모두 함께 만든 양초와, 직접 쪼갠 널빤지와, 아들이 부엌칼로 깎아 만든 자작나무 빗자루와, 감자와 사과와 꿀과 단풍나무 설탕과 거위털 한 자루를 다 팝니다. 그것만 파나요? 단풍나무 설탕을 담아 간 나무 상자도 팔고, 사과 통도, 빈 달구지도, 소와 멍에와 고삐도 다 팔지요.

이제 두둑해진 주머니……. 농부는 장을 봅니다. 딸에게 줄 수예 바늘, 아들에게 줄 주머니칼, 식구들 모두가 나누어 먹을 사탕을 새로 산 무쇠솥에 넣고 그 솥 손잡이에 막대기를 걸어 어깨에 척 걸치고는 남은 돈을 주머니 안에 넣고 그는 다시 여러 농장과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옵니다. 도합 이십 일이 걸렸을 그 길의 나무들은 이제 잎을 다 떨구었습니다. 저녁 서리는 허옇게 내렸는데, 하늘에는 푸른 빛, 붉은 빛 저녁 놀만 화려하군요. 작가는 너무나도 섬세하게 펜실베니아 산 속에는 겨울이 빨리 온다는 것까지 그림에 다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식구들은 겨우내 일을 하지요. 농부는 송아지에게 씌울 새 멍에를 깎아 만들고, 널빤지를 켜고, 농부의 아내는 천을 짜고, 딸은 아버지가 사다준 수예 바늘로 수를 놓고, 아들은 주머니칼로 빗자루를 만들고……. 4월에는 양털을 깎고, 5월에는 감자와 순무와 양배추를 심는데(그 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과나무 꽃 그림이 기막힙니다) 뒷마당에서는 거위들이 부드러운 깃털을 떨구지요. 이렇게 뉴잉글랜드 농부의 한 해를 한 바퀴 돌아 그려낸 작가는 이제 그림의 배경을 매사추세츠 주의 암허스트 (Amherst)로 옮깁니다.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라는 시의 제목만 겨우 기억하고 있는 제게, 참 오랫만에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이란 시인이 그림책을 통해 모습을 보여 주는군요.

 

 

 

마이클 베다드(Michael Bedard)가 글을 쓰고 바바라 쿠니가 그림을 그린 『에밀리 (Emily)』라는 제목의 이 책의 첫장에는 백합 알뿌리가 보입니다. 봄이 되면 꽃으로 피어날 알뿌리는 자신이 죽고 난 뒤 많은 사람들에게 뛰어난 시인으로 사랑받는 에밀리 디킨슨을 뜻하겠지요.

이 책의 화자는 ‘신비의 여인’ 과 같은 동네에 사는 어느 꼬마 여자애입니다. 파란 겨울 외투를 입고 빨간 장갑을 낀 아이가 눈썰매 줄을 잡은 채 눈 속에 서서 길 건너편 노란 집을 쳐다 보지요. 거의 20년 동안 자기 집을 떠난 적이 없어 미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듣는 그 여자는 이 꼬마에게는 그 누구도 아닌 ‘에밀리’입니다.

어느 날 피아노를 치는 엄마 앞으로 편지가 한 장 들어오지요. 아파트 현관에 우유투입구가 있듯이 이 시대에는 현관에 우편 구멍이 있군요. 그 편지는 바로 그 신비의 여인에게서 온 초대장이었어요. 납작하게 말린 꽃이 동봉된 편지에는 “저는 마치 이 꽃과도 같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저를 소생시켜 주세요. 그 음악이 저에게 봄을 가져다 줄 거예요.”라고 씌어 있었지요. 엄마와 아이는 그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아이의 호주머니에 뭔가 불룩한 게 들어 있군요.

그 집으로 들어가니 동생 아줌마가 접대를 하고 하얀 옷을 입은 언니 아줌마는 바람처럼 2층 계단을 돌아 올라가 버립니다. 엄마가 연주를 하는 동안 아이는 계단을 올라가 계단 위에 앉아 있는 언니 아줌마에게 다가갑니다. 그 아줌마는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종이와 연필을 들고 있었지요. 아이는 그 아줌마에게 봄을 내밉니다. 뭐냐고요? 바로 백합 알뿌리 두 개였지요. 아줌마도 급히 종이에 뭔가 써서 아이에게 내밀지요. ‘아마 머지않아 둘 다 꽃이 필 게다.’ 하며. 물론 마지막 장에는 새하얀 백합꽃과 에밀리 디킨슨의 자필 시가 나란나란 나와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은 아주 세밀해서 노란 불이 따스한 벽난로, 그 위의 촛대 둘, 특이한 모양의 빨간 셰리주 병과 잔, 은쟁반, 레이스, 고색창연한 시계, 섬세한 장식의 의자 등이 아주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시인의 글씨는 상당한 악필이군요. 천재는 악필이라는 것을 지금은 믿기로 하겠습니다. 작가는 말하지요. ‘나는 알고 있는 것만 그릴 뿐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아낙은 에밀리 디킨슨이 살던 집과 길 건너 집을 조사하고 스케치하기 위해 암허스트에도 다녀 왔군요.

억센 시골 아낙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섬세하지요? 증권업자인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1917년에 태어난 바바라 쿠니는 복 받은 셈입니다. 그 시절에 어머니의 방에는 물감, 붓, 종이 등 그림 재료가 풍부했으니까요. 거의 반세기 이후에 태어난 저도 갱지를 연습장으로 썼고 어쩌다 맨질맨질한 하얀 종이가 생기면 안 쓰고 보물처럼 아껴 두곤 했는데 말이죠.

 

                     

 

그녀는 스미스 대학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후에 뉴욕 대학에서 동판과 에칭을 공부합니다. 색깔을 아주 좋아하는 그녀가 할 수 없이 동판과 에칭에 시간을 쏟게 된 이유는 편집자가 그걸 요구했기 때문이었지요. ‘무채색으로 한 번 해 보세요.’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해야 그림도 잘 되는 법. 목탄이나 동판, 에칭을 이용한 그림들은 별 조명을 못 받은 반면 자신이 좋아하는 ‘full colors’로 그린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Chanticleeer and the Fox)』로 1959년 칼데콧 메달을 받았고, 앞서 말한 뉴잉글랜드 농부의 생활을 그린 『달구지를 끌고(Ox-Cart Man)』로 또 칼데콧 메달을 받았지요. 그밖에도 『바구니달(Basket Moon)』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The Remarkable Christmas OF THE COBBLER'S SON)』 『미스 럼피우스(MISS RUMPHIUS)』에 그림을 그렸지요.

 

     

 

바바라 쿠니의 특징은 아무래도 정확한 세부 묘사와 최대한 자연색에 가까운 색을 쓰는 데 있지요. 그녀는 『달구지를 끌고 (Ox-Cart Man)』을 최대한 진실성 있게 그리기 위해서 머리 스타일이나 의상뿐 아니라 풍경과 건물 세트까지 만들어 보았다고 합니다.

스스로도 ‘나는 낭만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다. 나는 오직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그렸다. 실은 난 다른 방법으론 그리지를 못한다. 나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모호한 선으로 무언가를 암시하지도 못한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사실을 사실대로 그릴 수 있는 것도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가 짧고, 또 자료와 역사적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새 천년 들어와 저 세상으로 일터를 옮겨갔습니다. 지금쯤 하늘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며 정밀화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글쓴이 서남희 - 웹진 [열린 어린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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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수학자로서의 루이스 캐럴

"성직자와 어린소녀들을 사랑하는 남자, 판타지와 지루한 수학교수, 몽환적인 이야기꾼과 논리학자... 이 정반대되는 성향이 어떻게 양립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 인물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그 점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 장 가텐노, <루이스 캐럴의 세계>


루이스 캐럴, 본명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라는 이 호리호리하고 내성적인 이 빅토리아 시대의 수학 교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었으면 아마 역사 속으로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당대의 재능있는 수학자이긴 했지만 수학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업적을 세운 것은 아니고, 뛰어난 인물사진가이긴 했지만 아마 사진사 연구자들에게나 관심을 끌었을 테니까.

그러나 도지슨이 그의 꼬마친구 앨리스 리델에게 주려고 쓴 앨리스 2부작은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써서 수학자이자 자연인인 도지슨과 동화작가로서의 루이스 캐럴을 엄격히 구별하려고 노력했지만, 앨리스 2부작과 그 뒤에 발표한 <실비와 브루노> 등의 작품 속에는 논리적 역설을 사랑하는 수학자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은 단 몇 줄의 문장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복잡한 인물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별다른 굴곡이 없이 평온하고 유복했다. 그의 일생은(1832-1898) 흔치 않게도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1837-1901)과 거의 일치한다.

국교회 사제의 아들로 형제들이 10남매나 되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안정된 어린시절을 보낸 그에게 평생의 직장이었던 옥스퍼드 대학은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재능있는 사람들, 지성인들, 기인들이 모여드는 쾌적한 분위기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쌓았다. 65세에 약한 기관기염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는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을 유지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였고 더할 나위없이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여왕을 존경하였고, 앨리스 리델의 아버지였던 헨리 리델 학장의 개혁적인 정책에 끈질기게 반대하였다. 하지만 그는 완고한 고집불통은 아니었다. 탁월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며, 어린이, 특히 소녀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였고, 당대의 유명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맺었다. 그의 고질적인 말더듬과 수줍음 타는 성격, 성적인 미성숙함(그는 연애다운 연애조차 한번도 못해보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등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면이다.

특히 예술에 대한 로맨틱한 감수성은 그의 보수적인 성격을 완화해 주었다. 그는 감상적이고 신비적인 라파엘 전파 회화에 매료되었으며 연극애호가이기도 해서,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나 연극배우 엘렌 테리 등 당시의 손꼽히는 예술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애정을 쏟았던 친구들은 뭐니뭐니해도 어린이들, 특히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가 어린 소녀들과 맺은 우정은 지금까지 수많은 억측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그가 찍었던 소녀들의 누드 사진과 페도파일(아동 성애)을 연관시키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그의 보수적이고 소심한 성격과 극히 신중한 태도, 그리고 어린이 누드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관념 등을 지적하고 넘어가는 데서 그치기로 한다. 빅토리아 시기의 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이의 누드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나 영감을 상징했다. 도지슨은 철저히 부모들의 허락과 감독 하에서만 사진을 찍었고, 그 소녀들이 자라났을 때 대부분의 누드사진들은 부모들에게 되돌려주거나 폐기되었다. 그가 찍은 누드 사진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단 네 점뿐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인물사진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이 점을 떠올릴 때는 당시만 해도 사진술은 아직 초기에 있었고 매우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새로운 표현방식에 즉각 매료되어 많은 어린 소녀들이나 유명인사를 찍은 훌륭한 사진들을 많이 남겼다.

수학자로서의 도지슨은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형식논리에 대한 그의 연구는 <상징적 논리Symbolic Logic>등의 저서를 통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틴 가드너에 따르면 그가 독보적으로 기여한 분야는 "수학 레크리에이션"이다. 그가 루이스 캐럴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픽션과 운문들, 어린 소녀들에게 보낸 편지, 일기에서는 다양한 수학 게임, 퍼즐, 논리적 역설, 수수께끼, 말놀이, 게임의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수학 퍼즐들을 진정으로 즐겼으며 (어린이들이 좋아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수학 퍼즐 책도 발간했다.

그 자신은 매우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지만, 그가 꼬마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나 어린이들을 위해 쓴 동화들의 내용은 교훈이나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그런 동화는 매우 드물었으며, 루이스 캐럴의 작품은 당시의 교훈적이고 형식에 치우친 표현방식과 대조되어 아주 새롭고 기념비적인 것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아이들에 대한 그의 이해심 많은 사랑과 호감의 산물이었으리라.

 
by Dorm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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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인물 사진작가로서의 루이스 캐럴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사진이란 걸 처음 배우려고 카메라를 구입한 1856년, 그의 나이는 스물 넷이었고 사진이 처음 발명된 지는 17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이미 미국에서만 매년 삼백만 장이 넘는 상업 사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게레오타입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상상을 초월했다. 흥행사 출신의 프랑스인 다게르는 발명부터도 그랬지만 그 상업적 가치를 활용하는데도 영국인들보다 한 발 더 빨랐다. 소위 상업 사진과 예술 사진의 갈 길은 시작부터 확연히 갈라졌다. 당시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던 방식은 영국인 탈보트가 발명한 칼로타입(calotype)이었다. 이것은 다게레오타입에 비해 선명도가 떨어지는 대신 복제가 가능하고 예술적인 효과를 추구하는데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1850년대의 사진은 고가의 장비 말고도 상당한 기계, 화학 지식을 요구하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성가신 취미는 게으른 귀족들에게 맞지 않았다. 영국에서 사진술을 가장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계층은 지주, 젠트리, 고학력 엘리트들이었다. 이제 막 크라이스트 처치의 전임 강사로 임명되어 안정된 지위와 수입을 누리게 된 도지슨 또한 이 비싸고 쿨한 유행에 합류했다. 당시 유행에 합류한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복잡한 기술과 값비싼 장비라는 벽에 부딪쳐 좌초하고 만 것과 달리, 그는 학교 내에 개인 암실과 스튜디오까지 차릴 수 있는 호사스런 이점을 살려 25년에 걸쳐 꾸준히 수천 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대부분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초상 사진에 있어 도지슨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과 함께 19세기 사진사에 중요한 양대 작가로 꼽힌다.

사진 촬영은 여러 면에서 도지슨의 성향이나 욕구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는 평소 미술과 연극을 비롯한 시각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그림을 그려 보려고 여러번 시도했지만 일찌감치 자기가 미술에 소질이 없음을 깨달았던 그에게 사진은 매력적인 대체물이었다. 심한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이 까다로운 수학자에게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현상과 인화의 과정이 성격에 잘 맞았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인 추측은 렌즈 속에서 아래위가 거꾸로 되고 정착액 속에서 흑백이 전도되는 영상의 마술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쓴 수학자의 감성을 건드렸으리라는 상상이다.

그에게 사진은 한번도 취미를 넘어서 본 적이 없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취미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사진기나 화학 약품의 선택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가 채택한 사진술은 당시 다게레오타입과 칼로타입의 장점을 취합해 새로 개발된 콜로디온 습판법(collodion wet-plate)이었다. 이는 유리판을 코팅하는데 매우 숙련된 시간 조절과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까다로운 방법이어서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기존의 종이판을 이용한 기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매사에 완벽을 기하려는 그의 성격은 사진의 기술적, 미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특히 종이판을 이용한 칼로타입에 비해 콜로디온은 사진의 선명도를 크게 높여 주었다. 세부적으로 섬세하고 명료하면서도 완벽한 자연스러움이야말로 그가 추구한 이상이었다.

그런 미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택한 피사체는 주로 인물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초상 사진
에 주력했다. 사진술이 아직 새로운 기술로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당시에 주변에서 사진찍을 자원자를 구하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사진을 찍을 줄 안다는 것은 당시에는 유명인사를 만날 수 있는 보증수표로 통했다. 여기에 옥스포드 대학 교수라는 도지슨의 사회적 위치가 이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도지슨은 그런 기회를 열성적으로 활용했다. 마이클 패러데이, 존 에버렛 밀레이, 알프레드 테니슨 등의 많은 유명인사의 사진은 그렇게 해서 찍혔다. 특히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사진을 찍기 위해 도지슨이 알음알음으로 몇 번에 걸쳐 읍소한 일은 유명하다. 그는 유명인사들의 사진 밑에 그들의 싸인을 받아 꼼꼼이 수집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훌륭한 사진들은 대부분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가족과 개인적인 친구들을 찍은 것들 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진가와 피사체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뛰어난 보석들은 뭐니뭐니 해도 어린 친구들을 찍은 작품들이다. 사실 사진작가로서 도지슨의 유명세는 주로 이 어린 소녀들의 사진에 기대고 있다. 전체 인물 사진의 약 반수를 차지하는 어린이들의 사진들은 당시 흔히 그랬던 것처럼 뻣뻣하고 경직되어 있지 않다. 그는 사진기 앞에서 오랫동안 부동자세를 취하기 위해 당시 스튜디오에서 흔히 사용하던 머리받침대같은 것을 거의 쓰지 않고, 어린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많은 지인들은 기꺼이 자기 아이들을 그의 카메라 앞에 데려 왔다. 그렇게 해서 찍힌 그의 사진 속의 소녀들은 모두 섬세하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의 소녀 사진은 - 누드 사진을 포함해서 - 빅토리아 시대에 어린이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의 많은 그림이나 조각, 사진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사춘기 이전 어린 아이의 '순수한' 육체를 감상적으로 다루는 이이런 유행은 크리스마스 카드 삽화와 같은 대중적인 취향으로 널리 소비되었는데, 랄프 칼데콧, 에밀리 거트루드 톰슨, 윌리엄 스티븐 콜먼, 알렉산더 먼로 등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비슷한 주제로 작업하였고 도지슨은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도지슨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모두 지체높은 집안에서 훌륭하게 교육받은 영애들이기도 하다. 그의 피사체는 자신과 같은 사회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자 자신의 미적 이상에 부합하는 사람들에 한정되었다. 그 기준은 어린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예술적 효과를 노려 앨리스 리델을 거지 소녀로 분장 시켜 찍기도 했지만, 그의 사진 속에 동시대 디킨스가 묘사했던 진짜 런던 빈민가 거지 소녀들이 등장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사실 빈민가의 부랑아나 노동 계급아이들 또한 어린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또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었다.)

그는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을 찍으면서도 사진 한 장 한 장을 예술 작품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상업 사진의 관습을 경멸하고 그로부터 되도록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1860년대 이후에 스튜디오에서 크게 유행한 까르떼-드-비지뜨(carte-de-visite)라는 명함판 사진은 제작비용을 크게 낮춰 많은 중산층 대중들을 사진기 앞에 최초로 불러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고객인 신흥 부르주아지의 기호에 맞추어 대개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배경에 화려한 옷을 입고 의자나 탁자에 기대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천편일률적인 구도를 띠고 있다. 도지슨은 그의 시 <사진사 히아와타>에서 사진기 앞에서 점잔빼는 중산층 가족을 묘사하며 까르떼-드-비지뜨의 관습적 의식을 풍자했다. 번들거리는 벨벳이나 앞섶에 손을 넣은 나폴레옹식 자세도 그의 세련된 취향에는 천박하게만 보였다.

도지슨이 선호하고 동경했던 모델은 당대의 유명한 사진작가였던 오스카 구스타브 레일랜더(Oacar Gustav Rejlander)의 사진들이었다. 레일랜더는 원래 초상화가로 이름을 떨치다가 사진작가로 전업한 사람으로, 고전적인 회화 형식을 사진에 도입하였다. 그의 작품은 주로 도덕적 메시지나 우화적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는 연작들인데, 당시에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그의 노골적인 상징주의나 고전 취향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통속적으로 보인다. 어쨌든 도지슨은 레일랜더의 영향을 받아 소녀들에게 무대 의상을 입히거나 연극적인 연출을 시도하고, 주제가 있는 연작 형태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빨간 모자 의상을 입은 아그네스 웰드의 사진이라든지, 성 조지와 용 이야기를 극화한 자일 키친과 그 남매들의 사진이 대표적인 예다. 연작으로는 거지 의상을 입은 앨리스 리델과 같은 장소에서 성장(盛裝)한 앨리스 리델의 사진, 그리고 중국 차(茶) 상인의 의상을 입은 자이 키친의 사진이 가장 유명하다.

도지슨은 동시대에 활동하던 인물사진가인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과도 안면이 있었지만 그녀의 사진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다. 오늘날 19세기의 가장 뛰어난 인물 사진가로 평가받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도지슨이 "초점이 안 맞고 머리만 거대한(요샛말로 대갈치기)" 사진이라고 혹평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확실히 인물의 상체를 잡은 안정된 피라미드 구도의 화면을 선호했던 도지슨에 비해, 카메론은 카메라를 인물 가까이 들이대어 프레임을 얼굴로 꽉 채우곤 했는데 그렇게 했을때 초점을 정확히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섬세한 디테일을 중시했던 도지슨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렇게 해서 찍힌 카메론의 사진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도지슨의 우아한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인물의 내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전해 준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현대 인물사진의 걸작들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개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지슨의 인물 사진 속에서 속물 취향과 뻣뻣한 관습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은 가끔씩 카메론의 것과는 또다른 종류의 현대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도지슨이 찍은 것 중에서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두 장의 사진을 감상하면서 이 긴 글을 끝내도록 하자.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은 캐틀린 타이디의 사진은 언뜻 보아 요즘 찍은 스냅 사진처럼 보인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상당부분 가리고 있는데도 우연히 가볍게 찍힌 장면처럼 생기에 넘친다. 어떤 의도로 찍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진은 그 시대 사진의 구도나 미적 관습에서 벗어나 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꽃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플로라 랜킨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오늘 수업 없어요(No Lesson Today)"라는 깜찍한 부제가 붙어 있다. 다시 한 번 노출 시간이 수십 분에 달했던 1860년대로 돌아가, 그 당시에 이런 찬란한 미소를 찍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과제였는지 되짚어 보지 않더라도 (19세기에 찍힌 많은 사진들이 왜 자는지 죽었는지 헷갈리는 사람들의 으시시한 모습을 많이 담고 있는지 잠깐만 생각해 보자.) 이 소녀는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찰스 다윈의 책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 자료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다.

by Dormouse
 
 
 

추가....

루이스 캐럴의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http://libweb2.princeton.edu/rbsc2/portfolio/lc-all-list.html
그림을 두번 눌러주시면 큰 사이즈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누드화도 많이 찍었으며 어린 소녀에 집착한 그를 두고 도슨이 소아성애도착증 환자가 아니었느냐는 논란도 일기도 했습니다만 도슨이 살던 빅토리아왕조 시대에는 초경전의 어린 소녀는 순결과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며 어린 소녀에 대한 도슨의 집착도 순수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었으며 평생 동안 앨리스 리들이란 소녀를 사랑했으며 앨리스 리들이 도슨의 영원한 「뮤즈」였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그가 찍은 누드사진들은 철저히 부모의 허락과 관리하에 찍었으며 그 모델이 된 소녀들이 자랐을 때 모두 돌려주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우리가 볼수 있는 누드사진은 네점밖에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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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크리스 반 알스버그와의 인터뷰

Interview
By Stephanie Loer

S.L.
Where do you get the ideas for your pictures and stories?
그림과 이야기를 위한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습니까

C. VA.
At first, I see pictures of a story in my mind. Then creating the story comes from asking questions of myself. I guess you might call it the "what if—and what then" approach to writing and illustration.
첫째 나는 머릿속에서 스토리 줄거리에 대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리고는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 스토리를 만들어내지요. “만약 이랬다면..그러면...“이런 식으로 질문을 해가면서 그림과 줄거리를 만들어 갑니다.

Polar Express started with the idea of a train standing alone in the woods. Then, I began asking questions: What if a boy gets on the train? What does he do? Where does he go? After the boy got on, I tried different destinations out in my mind. What about north? Who lives in the north? Then ideas of Christmas, Santa Claus, and faith began to take shape.
Polar Express는 숲속에 기차가 멈추었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지요.
이 기차에 만약에 한 남자아이가 탄다면?
그 아이는 뭘하게 될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이가 승차한 순간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행전지를 떠올리며 생각을 해봅니다.
북쪽은 어떨까?
누가 북쪽에 살고 있지?
그리고는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 기르고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형체가 갖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S.L.
How long does it take you to write and illustrate a book?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드나요?

C. VA.
I begin thinking about the idea. Then I come up with the pictures and the story—in my mind. The next step is putting the illustrations and story down on paper. At that point, it becomes intense work—all day, every day, even on weekends. From the time I come up with the idea, do the book, and deliver it to the printers, it takes about seven months.
나는 떠올려진 아이디어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림과 이야기 줄거리가 머릿속에 떠올려지게 되지요. 그 다음 단계는 그 그림과 스토리를 지면에다 옮겨 봅니다.
그 시점에서 작업은 아주 긴장감이 돕니다. 하루 종일, 매일, 그리고 주말에까지도 일을 집중적으로 하게 됩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책을 만들고 출판사에 전해지기까지 7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립니다.

S.L.
Would you like to create books for adults?
성인 독자를 위한 책을 쓰고 싶습니까?

C. VA.
I do create books for adults. My books are picture books, so they are thought of as books for children. But when I make them, I think of the books for everybody—for all ages.
On the other hand, if I were asked would I like to write novels—without pictures—for adults, my answer would be no. I'm very happy doing picture books for people who enjoy them.
나는 성인들을 위한 책도 썼습니다. 그런데 내 책들이 그림책이라서 그런지 대개 아동을 위한 도서라고 생각되어지나 봅니다.
그러나 책을 만들 때 나는 모든 연령층 남녀노소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만듭니다.
반면 성인독자를 위해 그림이 없는 소설을 쓰겠냐고 물으신다면 내 대답은 “No"입니다.
나는 그림책을 즐기는 독자들을 위해 책을 만드는 것이 행복합니다.

S.L.
What do you think makes a good story?
무엇이 좋은 이야기를 만든다 라고 생각합니까?

C. VA.
A good story must contain a psychological, emotional, or moral premise. I never set out to establish this when I begin a story, but it's always there when I end.
좋은 이야기는 심리적, 정서적, 도덕적인 면도 내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는 이러한 것들이 단정 지어져 있지 않지만 내가 작업을 마쳤을 땐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답니다.

For example: The Polar Express became a story about faith. Jumanji is a cautionary tale, but it also shows kids that
when they are frightened, they can persevere and find a solution. The Garden of Abdul Gasazi compares illusion to real magic. And Two Bad Ants says something about being faithful to your own nature.
예를 들어 [북극으로 가는 기차 The Polar Express]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주만지 Jumanji]는 경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 가운데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하면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압둘 가사지의 정원 The Garden of Abdul Gasazi]은 환상과 진짜 마법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마리의 개미 Two Bad Ants]는 각자 자신과 자신들만의 개성에 충실하라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Also, good stories—particularly in picture books—should make readers wonder about the outcome of the story. Ideally, in a picture book, the pictures and narrative work together to engage the imagination of the reader.
또한 좋은 이야기란, 특히 그림책에 있어서는 이야기의 결론에 대해 독자들이 궁금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상적으로 그림책에서는 그림과 이야기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함으로 해서 독자의 상상력을 끌어내야 하지요.

I have always been interested in plots. By plots, I mean what goes on in the story and how a sequence of events has an impact on the lives of the characters. I want my stories, my plots, to unfold as pieces of a puzzle, and on the last page I want all the pieces to fit quite definitively together.
나는 항상 플롯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플롯이란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며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이 등장인물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의 플롯들이 퍼즐조각처럼 펼쳐지다가 마지막 장에 가서 확실하게 맞춰지기를 원합니다.

Today, many picture books do not have plots. The story is only a simple description of events.
In a good picture book there should be events that are visually arresting; the pictures should call attention to what is happening. For me, as a picture book artist, I first consider scenes that are visually captivating, and my challenge is to weave a story around those pictures.
오늘날, 많은 그림책들에는 플롯이 없습니다. 이야기들은 단지 사건들만의 단순한 나열일 뿐이죠.
좋은 그림책에는 시각적으로 주의를 끄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림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의를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림책 아티스트로서 나는 첫 번째로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장면을 고려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짜 넣은 것이 저에게는 큰 도전이지요.

S.L.

Where did you get the idea for Jumanji?
주만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습니까?

C. VA.
When I was teaching a class at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I asked my students to find pictures of house interiors, then find pictures of wild animals and, finally, to do a drawing to convince the viewer that the animals were part of the interior space.
I did the assignment along with my students. And it was clear to me the pictures had power. So I began to think of a story to go with them.
Again, I asked questions of myself. What if two bored children discover a board game? What then? What if the board game came to life? What then?
내가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집안의 인테리어 사진들을 찾아보라고 했지요, 그런 다음 야생동물의 그림을 찾아보고 맨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야생동물이 인테리어 공간의 한 일부임을 느낄 수 있는 되는 그런 그림을 그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학생들과 같이 숙제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림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이 제게 아주 명확했습니다.그러한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힘이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했지요. 만약에 심심해 하는 아이 두명이 보드게임을 발견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만약에 그 보드게임이 살아난다면? 그 다음에는?

S.L.
Did you like the movie Jumanji?
영화 주만지를 좋아했습니까?

C. VA.
It's probably not the movie I would have made from the same source material. My own imagination leads me toward things that are more mysterious or peculiar and less kinetic and action-packed.
똑같은 자료에서 이런 종류의 영화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상상력은 덜 동적이면서 액션이 적은 미스테리나 괴이한 것에 더 많이 끌리게 되거든요.

The movie wraps another story around my original tale and adds more characters. This had to be done to make the story longer and complex enough to hold the audience's attention. But although there are changes, the movie remains true to my original ideas.
영화는 원래 나의 이야기 위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더 얹었으며 더 많은 캐릭터를 넣었습니다. 이것은 이야기가 관객의 주의를 충분히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겠죠. 비록 다른 것들이 있긴 했어도 영화는 내 원래의 아이디어에 충실했습니다.

S.L.

As a child, what did you want to do when you grew up?
어린아이였을 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까?

C. VA.
I really had no idea. But I am very happy I turned out to be an artist.
정말로 상상 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티스트가 된 것이 매우 만족해 합니다.

S.L.
How would you describe the artistic style in your books?
당신 책의 예술적인 스타일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C. VA.
The technique I use is called representational or figurative. But the style I'm trying to create is different. Think of it this way: although the pictures look quite representational—like everyday, ordinary things—underlying this orderly look of the drawings there is a somewhat mysterious or puzzling quality.
In other words, the style I use allows me to make a drawing that has a little mystery to it, even if the actual things I am drawing are not strange or mysterious.
To get this effect, I rely on certain artistic strategies. I use perspective, light and point of view to give the drawing a kind of portentous quality.
설명을 하자면, 상징적인 기법입니다. 그러나 제가 창의하고자 하는 작업과정은 좀 다릅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십시요. 일상적인 생활이나 평범한 물건들로 보이는 상징적인 물건들일지라도, 이런 보편적인 그림 밑에 뭔가 괴이하고 미스테리한 수수께끼가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을 하자면, 내가 그리는 사물들이 비록 아무런 신비감이 없는 것들이다 할지라도, 이런 기법으로 그리게 되면 신비감을 더하면서 그림이 완성되어지게 됩니다.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화법에 의존합니다.
그림에 어떤 괴이한 분위기를 느끼게끔 투시적 화법과 빛. 그리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하며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S.L.

If you were to do a sequel, what books would you select?
속편을 만든다면 어떤 책의 속편을 만드시겠어요?

C. VA.

I don't think I ever want to do a sequel. There are always great new ideas to work with—so why try to refashion an old idea?
속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이 작업을 할 수 있는 멋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언제든지 늘 있습니다. 그러니 왜 예전 아이디어를 고쳐서 재단장해야 하죠?

But, I realize that some of the books have the potential for a sequel, because of the way the plot was established within the story. There are many things left unresolved in some of my books. But I did not do that intentionally; it's just the way the story evolved. For example: no one knows what will happen to the two children who find the board game at the end of Jumanji. That's why a lot of kids write sequels to that story.
하지만 어떤 책들은 이야기 내에 내재되어 있는 플롯 자체 때문에 속편을 낼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책 몇몇의 경우에 많은 일들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거든요.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이야기가 진행된 방법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누구도 주만지의 마지막에 보드게임을 발견한 두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주만지의 속편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My own interests might draw me to The Widow's Broom, because the widow and the broom could have some more adventures. Also, Two Bad Ants might get in trouble again in a different room. Or Alan could go back to Gasazi and get into more trouble with the magician.
So, I guess if I ever do run out of ideas, there's lots of material to fall back on. But I doubt if that will ever happen.
저 개인적으로는 미망인의 빗자루에 더 끌리게 됩니다. 미망인과 빗자루가 많은 어드벤쳐가 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 두 마리의 개미가 다른 방에서 또다시 곤경에 처할런지도 모르죠. 아니면 Alan이 Gasazi에게 돌아와서 마법사에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런지도 모르지요.
이러니 어쩌면 내가 진짜로 아이디어가 궁하게 된다면 다시 의존할 수 있는 소재들이 많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과연 그럴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출처  http://www.eduplace.com/author/vanallsburg/

 

 

꼬랑쥐..

저 혼자만의 힘으로 끙끙대기를 며칠...급기야 시카고에 있는 친구의 도움까지 받아서 완성된 페이퍼이옵니다. 미숙한 부분이 많더라도....걍....원어로 읽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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