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1
기리노 나츠오 지음 / 다리미디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그로테스크를 읽은 후에 읽은 아웃.
순서를 뒤집어서 읽었지만, 어쩐지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로테스크 역시 무척 재밌었고, 후유증도 긴 소설이었지만, 아웃만 하랴.
무섭도록 재밌고, 공허하며, 역겹기까지하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나, 거의 공포소설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이 불결한 세상과 인간들에게 소름이 끼쳐졌다.
 
사건은 순종적인 현모양처형 주부가 남편을 우발적으로 교살해버리면서 시작된다.
이 살인으로 같은 도시락공장에서 일하는 세명의 여자들이 이 여자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잘게 다져 쓰레기처럼 나누어 버린다.
거의 성공적이라고 할수 있을 만한 은폐작전임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실수로 이 토막살인사건은 세상의 주목을 받게된다.
만약 이 토막살인사건을 위한 수사가 내용의 전부였다면 무척 평범한 추리소설이 되어버렸겠지만,
이 사건은 여기저기 예측하기 힘들게 튀어나가 버린다.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살인을 저지른 여자는 점점 범죄사실을 잊어가기도 하고,
한번 경계를 넘은 이 아줌마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복수하기위해 실종된다.

 
소설속의 모든 주인공들이 삶은 공허하고 갑갑하다.
도시락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네명의 아줌마들 중에서, 그나마 경제사정이 나은 마사코의 삶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버린 시계와도 같다.
특별한 이유없이 서서히 망가져가기 시작한 가정은 되돌이킬수 없이 서로에게 문을 닫아버렸다.
남편은 퇴근후면 자기방에 틀어박혀 한마디도 걸지 않고, 퇴학당한 아들은 몇년째 말을 하지 않는다.
20년간 금융업계에서 일한 마사코는 능력이 있음에도 나이든 여직원이라는 경멸을 받으며 회사에서 나올수 밖에 없었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니 겨우 대화한마디 제대로 오고가지 않는 가정에서 피신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생활루트와는 정반대로, 야간에 일하는 도시락공장에 다닌다.
누구도 믿지 않고, 냉철하고 머리가 좋으며 책임감도 투철하지만,
마사코의 기계같은 행동은 무척 공허하다.
 
"사부"라는 별명으로 불뤼우며 일처리를 무척 잘하고 모성애와 책임감이 뛰어난 요시에의 삶은
말만들어도 갑갑한 상태.

남편은 죽었고, 몸져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하며,
큰 딸은 멋대로 집을 나가 결혼했으면서 틈만 나면 엄마의 뒷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이고,
아직 어린 작은 딸 역시 점점 삐뚤어져가고 있다.
좁아터진 집에는 언제나 분뇨냄새로 가득하고, 작은 딸이나마 2년제 대학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수학여행비조차 대주지 못해 남에게 빌려야만 하는 가난하고 딱한 주부.
살림이고 생활이고, 자기가 없으면 모두 망가져버리기 때문에,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고, 살림을 하면서도, 도시락공장은 단하루도 쉴수가 없다.
언젠가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 도망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버릴수 없는 요시에는 소설속의 어느 주인공보다도 따뜻하고 인간적이지만,
그런 책임감과 모성애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 역겨운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되지만,
요시에의 삶은 벗어날수 없을 것처럼 갑갑하다.
 
뚱뚱한 쿠니코는 허영심에 가득찬 여자이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써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명품백이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고 폐배감에 젖어 빚까지 지면서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그런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려는 걸까.
멍청하고, 책임감도 없으며, 입도 싸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흐트러지는데에 언제나 껴있는 인물이다.

 
가장 싫은 것은 남편을 죽인 야요이.
30대 주부로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타인에게 상냥하지만,
멍청하고 사람을 너무나 잘 믿어버리는 데다가, 어떤 면으로는 무척 잔인하고 죄의식이 없다.
애초에 남편을 죽인 것은 야요이이고, 멋대로 마사코에게 의지해 버리고 책임을 전가시킨 주제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결국 그들에게 등을 돌려버린다.
의지력없이 타인에게 기대기만 하는 존재.
남편을 죽이고도 일말의 죄책감따위 갖지 않으며, 서서히 자기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조차 망각해간다.
야요이는 비겁하다.
 
치열하면서도 공허한 소설속의 삶들은 결국 탈출구를 찾았을까.
잔인무도한 살인자이면서도, 나쁘다고만 매도할수는 없는 주인공들이
갑갑한 현실로부터 Out할수 있기를...
 
 
기리노나츠오는 어쩌면 인간 혐오자가 아닐까.
그로테스크처럼 독자로 하여금 소설속의 모든 인물에게 조금의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진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웃을 읽는 내내 작가자체가 인간을 무척 싫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쌓였다.
작가가 어느 주인공에도 진심으로 애정을 쏟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가슴아픈 사연이 있어도, 불쌍한 면이 있어도,
동정을 하려는 찰나에, 주인공들은 어느새 시체처럼 차가워진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냥 생동감과 현실감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도 인간 혐오자란 소리가 아닐까.
 
시종일관 차가운 태도를 유지한 채, 소설은 마구 뛰다가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도저히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극단적인 플롯들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교묘하게 잘 연결되어서
마치 모든 것이 단절된 현실의 악몽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기리노 나츠오는 무척 멋진 작가이다.
극단과 현실을 오고가면서,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줄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끼게한다.
그것은 당연한 듯이 반복되면서도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평화롭진 않아도 비정상적이지는 않은 일상의 공포.
그것을 들켜버린 당혹스럽고 창피한 기분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몽환적인 영혼의 소통.
기리노 나츠오의 소설은 이질적이면서도 그 공허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녀의 책에서의 섹스는 무척 폭력적이면서 애절한 구석이 있다.
섹스는 살인과 연결되어있고, 살인자는 피살자를 증오하면서 사랑한다.
언제나 공허하기 때문에, 인생의 단 한가지 빛줄기도 찾을수 없기 때문에,
섹스로 영혼을 교감하고 상대방의 속으로 녹아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껴안으며, 증오하고, 흥분하며, 찌른다.
변태성욕과 공허한 영혼.
새까만 구멍으로 쑥 꺼져들 듯이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
그들은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사이코적이지도 않다.
그녀의 소설에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때는 폭력과 섹스가 오갈 때 뿐이다.
건조하고, 슬프게도...
 
 
2권으로 내도 되었을 분량을 3권으로 나눠낸 얍삽한 출판사가 좀 밉지만,
800페이지, 3권짜리가 되는 소설이 한권짜리 소설보다 더 박진감넘쳤다.
무척 재밌으면서 무섭고 슬프다.
몹시 마음에 드는 작가라서 기리노 나츠오의 다른 소설들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위가 극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p.s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다가, 기리노 나츠오의 얼굴이 소설속의 마사코의 외향 묘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인해보이고 건조한, 바싹 마른 속을 알수 없는 아줌마.
그런 인상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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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4-1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오싹합니다.
세 권이라니,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보관함에.
(땡스투는 아까 눌렀는데...)

Apple 2006-04-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정말로 오싹하지만, 또 오싹하게도 재밌기도 하다는...^^
세권이지만 한권처럼 빨리 읽을수 있어요..^^
 
진단명 사이코패스 -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
로버트 D. 헤어 지음, 조은경.황정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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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어디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이좋은 두 자매가 친척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난다.
언니는 남자에게 반했고,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후
언니는 동생을 칼로 찔러 죽였다.

이유는 그 남자를 보기위해서.
또다른  장례식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보는 내내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야기속의 언니는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목적과 수단이 묘하게 튀틀린 것 같은 타고난 살인자.
양심도, 하다못해 가족에의 정도 없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손쉽게 이용할수 있는 이상인격자.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언어자체는 생소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이코패스들을 영화속에서 보았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책속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이다.
양들의 침묵을 보았을때, 나는 초등학생이어서 아주 상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떠올려보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유명해져버린 유영철의 경우가 그렇고, 영화 "케이프 피어"에서의 로버트 드니로의 역활 역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란다.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코-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들의 정신을 멀쩡하다.
정신이상이 아니라, 인격 이상인것이다.
오히려 무서운 점은 그런 점이다.
멀쩡하게도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죄책감따위 느끼지 못하는 무서운 이상인격자.
이들의 범죄에는 이유가 없다.
아니, 있긴 있지만, 일반인으로써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이유만이 존재한다.
파티에 가던 도중, 지갑을 잊고 나온게 생각나서 집으로 가기 귀찮은 나머지 근처 편의점을 털어버린다던가,
거추장 스럽기 때문에 자기 배로 나은 아이를 죽여버린다던가,

살인을 해놓고 자신의 살인사실과 밝혀지지 않았던 이전의 범죄까지 자랑스럽게 얘기해버리는
보통의 정신과 양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일을 저지를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이코패스는,
정신이상이 아니다.

후천적으로 세상이나 인간을 믿지 않아서라던가, 인생을 좌지우지할만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이코패스.
때문에, 치료법이 없고, 그들을 교화하려다가 오히려 더 삐뚤어져나가버리고,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다 되고 나서까지 감옥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버린다.
신은 인간에게 무슨 억화심정이 있길래, 태어날때부터 이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게 인간을 만들어버린걸까.
솔직히 말해서, 책을 보는 내내 무섭다기 보다는 조금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하나의 불치병이구나...라고 생각하고보니, 이 사이코패시들 역시 일종의 장애인이 아닐까.
이걸 불쌍히 여겨야하는지, 파렴치한 경우로 여겨야하는지,
그것도 잘 정리되지 않는다.

결국 책을 보기 시작할 때부터 왜 이런 선천적으로 악할수 밖에 없는 인간이 태어나는지 궁금했지만,
보고나서 역시 오리무중.
무엇이 원인인지도, 어떻게 치료해야하는지도, 오랫동안 사이코패스를 연구해온 작가본인도 모른다.
왕성한 성생활로 씨뿌리고 다니기에 헤프다는 사이코패시들이 세상에 얼마나 더 늘어날지 정말이지 두려운 이야기.
꼭 범죄자에만 국한되지 않은, 보통사람의 얼굴을 하고, 보통사람의 생활을 하면서
사실은 사이코패스인 사람이 도처에 얼마나 도사리고 있는지 생각하다보면
세기말적인 암울한 기분에 휩쌓이는 느낌도 들고...
나 역시 사람을 잘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을 보는 내내 저자에게
겉으로 봐서는 티가 나지 않는, 아니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사이코패시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의심해봐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게 모두 믿어버리지 않고 살기엔 너무 각박하지 않은가.
오히려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끌려다니지 않기를 충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책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다소 똑같은 얘기의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심없는" "죄책감없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같은 단어들을 얼마나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360 페이지가 조금 헤프게 느껴지기도 했고,
내용 중간중간 끼어드는 다른 책들에서의 인용 역시 조금 정신없는 느낌이라
읽고 있는 부분의 흐름을 깨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여러가지 정보는 되는 책이었으나, 머릿속에 오래남아서 언젠가는 써먹을 지식이 되지는 못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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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의 구리 반지 - 로마의 명탐정 팔코 3 밀리언셀러 클럽 28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희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조금 뒤늦게 읽은 책 "베누스의 구리반지".
(베누스는, Venus 비너스란다.)
개인적으로 역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중에 그리스라던가 로마의 얘기는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
읽기 꺼려졌던 것이 사실.
막상 펼쳐든 책은 생각보다는 훨씬 역사물에서 멀어진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읽는 팔코 시리즈인데, 이책이 타 추리소설에 비해서 좀 이색적이라고 느껴지게하는 이유는
탐정 팔코의 캐릭터때문이었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치고는 무척 속물스럽고, 재치만점에 옷차림에 신경쓰는 화려한 성질을 가진 탐정.
길을 돌아다닐 때마다 근처 여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듯이 구는 로맨티스트.
타 추리소설의 탐정들이 냉소적이거나, 어딘가 가슴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점에 비한다면, 어딘지 나사빠진 장난꾸러기같은 팔코의 이미지는 독특하다고 할수 있다.
보는 내내 귀엽다고 느낀 것은 팔코의 행동 하나하나의 묘사가 어쩐지 바람끼 다분한 한량같은 이미지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팔코의 추리는 어딘지 날카로운 면이 없이 소박한 정황들을 이용한 잔지식이라던가
인간관계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되고 만다.

이런 캐릭터 자체의 매력을 제외하고는, 사실 모든 것이 평이한 소설이었는데,
배경을 로마로 설정한 것과 소설의 내용과 거의 무관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현대물과의 차이점을 그닥 느낄수 없었던 점이다.
대사체라던가 사고방식, 행동, 모든 것이 현대인들의 그것과 별다를바 없어서 조금 부조화라는 느낌도 들었으며
읽는 동안 내가 로마시대가 배경인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또한, 트릭이나 사건 자체의 독특함 또한 없다.
두꺼운 책임에도 무척 빨리 읽힌다는 점은 나름대로 장점일수 있으나,
그만큼 아무 생각도, 아무 감흥도 없이 읽을수 있다는 단점도 있는 듯 싶다.
위트가 넘치는 어쩐지 밝은 분위기의 소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쪽이 잘 맞지 않는 듯 싶어서
특별히 재미없게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캐릭터의 매력에 100% 기대고 있는 소설이라는 느낌도 지울수가 없었다.

나는 추리소설에서 현란한 기교라던가, 복잡한 트릭, 명쾌한 해석 같은 것은 사실 바라지 않지만,
이 소설은 조금 더 현란해져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무척 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족이 많고 어딘지 좀 비었다는 느낌이 든달까...
그게 매력이라면 또 매력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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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악랄한 인간이라도, 자세히 사정을 알고보면 연민을 품을수 밖에 없는 점이 있다는 얘기겠지.
이책을 읽으면서 그런 얘기가 아주 강하게 생각나는 것은,
고작 얼마 안되는 돈때문에, 선량하고 무고한 한 가족을 몰살해버린 두 살인자 딕과 페리를
무작정 싫어할수만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딕은 비록 타인의 고통을 간접적이나마 느낄수 없고 양심의 가책 또한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일지라도
사실 그 인간 자체는 허풍을 좀 떨어서 그렇지, 냉정하지만 쾌활하고 가식이 없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언제나 인기있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페리는 비록 환상속에서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잘 모르는 정신분열증 환자이지만,
언제나 쓸쓸하게 길가에 버려진 개처럼 살아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 한사람의 인생을 진심의 감정을 가지고 파해쳐 보면,
온전히 자기 잘못때문에 악랄해진 사람은 아마도 없다.
그들의 과거에, 또는 그들의 차가운 피에 새겨진 유전자에, 또는 그들의 운명에
그러한 불행의 기운이 서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그런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처럼,
딕과 페리의 모습은 어딘지 위태로워보여서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들을 증오해야하는지 좋아해야하는지
애정도 증오도 아닌 애매모호한 감정을 품으면서 보았다.
그들의 모든 행동(특히 범죄에 있어서는)을 모두 이해할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도 언젠가는 아이였고, 상처받았고,
그리고 모두들 그런 것처럼 죽을 운명을 타고난 보통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범죄이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네명이나 죽였다.
피맺힌 복수라던가, 아니면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데에서 쾌락을 느낀다던가 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두 전과자는 돈이 없었고,
그래서 부잣집에 처들어가서 돈을 훔치려고 했지만 집에 현금 따위 놓지 않아서
결국 네명이나 죽이고 4,50달러 밖에 훔치지 못했다.

어릴적부터 무척 많이 봤지만 아직까지 무서운 영화 "엑소시스트"가 정말로 무서웠던 이유는,
귀신들린 아이뿐만이 아니라, 아이가 왜 귀신에 들렀는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무슨 잘못을 한것도,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도 아닌,
잘 살고 있는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음이 외로워져 버린 한 평범한 어린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아무 죄 없이 귀신에 들렀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범죄가 무서운 것은, 이 범죄에 그럴듯한 "사연"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날 잘 살고 있다가, 아무 죄 없이 그냥 살해당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몰살당한 클리터씨 가족은 그야말로 선량한 사람들이다.
홀컴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 클리터가족이 살해를 당하는 세상이라면
살해당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두려움에 떤다.
아무 사연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운이 나빠서 클리터가족이 이런 불행에 걸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의 공포는 더더욱 심각하다.
부자에다가 행복하고, 게다가 착하기 까지 한 완벽한 배경이 죄가 된다면 죄가 되었을까.
이렇게 사연없고 이유없는 범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이 무섭다고들 하나보다.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6년동안 홀컴마을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며 책을 써낼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논픽션.
하지만 완전히 논픽션인 것은 아니고, 딕과 페리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은 어느정도 작가가 창작해놓은 것이라고 봐야겠다.
따라서 이 소설 역시 진실은 아니다.
트루먼 카포티의 시선은 객관적이지 않다.
그는 두 살인자중 페리에게 유독 끌리고 있는 듯, 그를 무척 가련한 영혼으로 그리고 있다.
(그에 비해 딕은 어딘지 비열하게만 그려지고 있다.)
책을 보는 독자가 이 살인자 페리를 싫어할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작가가 진심으로 페리를 동정하고, 또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트루먼 카포티가 이 소설을 연재할 당시에 페리를 사랑하는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었다고 한다.

책 말미에 역자가 써놓은 해설 글을 보니, 영화 "카포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정말로 페리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페리를 또다른 자기자신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처럼 애정에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수 있는 걸까.
해설 글을 보고나니, 영화 "카포티"도 무척 보고싶어졌다.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깨고, 무척 재밌고 가슴에 와닿는 소설이었다.
보고나니, 잔인함이나 분노보다도, 길가에 버려진 개를 보는 듯한 쓸쓸한 연민이 마음속에 아른거린다.
소설이 한장 한장 넘어갈수록, 계단을 한계단씩 내려가는 것 같은 우울함이 침잠하는 소설이다.


모두 알고 나서 타인으로부터 받을 것이 증오밖에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따져서는 범죄 자체에 대한 생각이 흐려지기 때문에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좀 위험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그래도, 죄는 죄이니까 감정적으로만 용납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일가족 학살극중에서 르포르타쥬 논픽션 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이나
픽션이지만, 르포르타쥬이며 비슷한 소재의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함께 비교해서 읽어보아도 괜찮을 듯 싶다.
아, 물론, 이책이 제일 재밌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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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0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진단명 사이코패스를 보심 되겠습니다^^

Apple 2006-04-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스인가요?^^;;큭...저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두책 다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에 딱 정확히 한가지 사실만이 진실인 경우는 얼마나 될까.
사람을 30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있다고 치자.
과연 그 연쇄살인이 온전히 연쇄살인범만의 잘못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수 있을까.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던가,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수 있을 정도로 삐뚤어진 교육만을 해온
부모가 배후에 있을수도 있으며, 또는 인생전체를 핍박만 받아오면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모피코트를 자랑스럽게 입고다니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이런 행위를 동물애호가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즐기기 위해 보통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또다른 한쪽에서는 살기위해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동물을 살상하고 섭취한다.
이 사실들중 어느 것이 정확히 올바른 일이라고 판단할수 있을까.
감히 인간이라는 보잘것 없는 존재가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보편적인 정의가 있어야하고,
그것이 완벽히 바르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그런대로 만족하고 살기위해서는 "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결과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머지 심성의 저 안쪽부터 파괴되어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만으로 죄를 묻는다.
그것이 완전히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설사 그 연쇄살인범에게 동정이 가는 구석이 있더라도
죄는 죄로 심판을 받아야하는 것이 세상이다.


이 책 "폭스 이블"은 누군가의 죽음, 또는 누군가의 고통에는 단 한사람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폭스 이블이라는 수상쩍은 이름의 잔인무도하고 교활한 범죄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단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작은 마을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고 뒷수작 피우기 여념이 없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향상을 위해, 또는 시덥지도 않은 불필요한 관심때문에,
타인을 헐뜯어 모욕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거기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미움과 질투의 시선은 "폭스 이블"이라는 사람으로 대변되어 범죄로 구현되었을뿐,
모두가 선량한 인간은 아니다.
모두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모두가 또다른 타인에게 상처를 입는다.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서로의 명예와 자존심에 흠집을 내기위해 존재하는 듯이,
물고 뜯고 미워한다.

살면서 누구나 당치도 않은 소문을 직접 목격을 하게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의심을 받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당치도 않은 소문을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들어온 모든 사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진실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기 위해서 발벗고 나서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남의 소문따위에 시간을 투자하기는 귀찮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피해로 돌아온다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것이 인간,

자기만 알고, 자기가 가장 중요한게 결국 인간이라는 교활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얼마전, 동생과 밥을 먹으면서 TV를 틀어놓았는데,
머리가 아주 긴 세자매의 이야기를 보면서 동생이 왜 저렇게 길게 머리를 기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지하철에 머리가 껴서 다쳐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서,
"너는 왜 모르는 사람한테 악담을 하냐?"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그제서야 동생도 얘기가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조용해졌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세상에는 왜이리 쓸데없는 미움으로 가득차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어차피 남의 얘기이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나처럼 관심을 끄고 살수가 있다.
굳이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을 두고 악담을 하거나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타인을 헐뜯고 우월감을 느끼려는 간사한 마음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또다른 방식의 폐배감이고, 열등감이다.
나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이고, 내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꼭 악이나 잘못이 아니라도 바보이고 비상식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만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 인간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불쌍한 인간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끝도 없이 서로를 헐뜯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소문이 한 인간을 망가뜨려가는 과정, 무엇이 진실인지를 놓고 저 먼시간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책의 구술방식은
무척 훌륭하지만, 다소 권선징악의 기운이 풍기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데, 나만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권선징악으로 결말이 나는 소설이나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나도 소설속의 못되처먹은 아줌마 둘이 죽도록 얄밉긴 했지만 말이다.)
뒤로 갈수록 다소 힘이 딸리는 것이 보여서 밀도가 떨어지고,
뭔가 끝내주는 반전을 기다린 것도 아니지만 결말은 조금 허술하다 싶을 정도로 시시해서,
그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두꺼운 책임에도 쉽고 재밌게 읽을수 있었던 책이다.
읽기 편하게 깔끔한 번역과 섬세한 편집도 무척 마음에 든다.


p.s 여주인공 격이라고 볼수 있는 낸시의 캐릭터는 별로 매력적이지가 않다.
여군으로 나오는 낸시는 얼핏 좀 오버된 관념의 패미니스트를 연상시키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패미니스트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타입의 여자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s 2.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감탄했던 점은 작가의 욕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_-;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된소리발음의 욕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용하는 단어들만으로도 충분히
타인에게 모욕적인 감정이 들수 있게끔 만드는 신랄하고 베베꼬인 대사처리는 정말로 훌륭하다!
번역가 역시 이런 험담이나 욕을 무척 잘 와닿게 해석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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