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1
기리노 나츠오 지음 / 다리미디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그로테스크를 읽은 후에 읽은 아웃.
순서를 뒤집어서 읽었지만, 어쩐지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로테스크 역시 무척 재밌었고, 후유증도 긴 소설이었지만, 아웃만 하랴.
무섭도록 재밌고, 공허하며, 역겹기까지하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나, 거의 공포소설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이 불결한 세상과 인간들에게 소름이 끼쳐졌다.
 
사건은 순종적인 현모양처형 주부가 남편을 우발적으로 교살해버리면서 시작된다.
이 살인으로 같은 도시락공장에서 일하는 세명의 여자들이 이 여자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잘게 다져 쓰레기처럼 나누어 버린다.
거의 성공적이라고 할수 있을 만한 은폐작전임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실수로 이 토막살인사건은 세상의 주목을 받게된다.
만약 이 토막살인사건을 위한 수사가 내용의 전부였다면 무척 평범한 추리소설이 되어버렸겠지만,
이 사건은 여기저기 예측하기 힘들게 튀어나가 버린다.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살인을 저지른 여자는 점점 범죄사실을 잊어가기도 하고,
한번 경계를 넘은 이 아줌마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복수하기위해 실종된다.

 
소설속의 모든 주인공들이 삶은 공허하고 갑갑하다.
도시락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네명의 아줌마들 중에서, 그나마 경제사정이 나은 마사코의 삶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버린 시계와도 같다.
특별한 이유없이 서서히 망가져가기 시작한 가정은 되돌이킬수 없이 서로에게 문을 닫아버렸다.
남편은 퇴근후면 자기방에 틀어박혀 한마디도 걸지 않고, 퇴학당한 아들은 몇년째 말을 하지 않는다.
20년간 금융업계에서 일한 마사코는 능력이 있음에도 나이든 여직원이라는 경멸을 받으며 회사에서 나올수 밖에 없었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니 겨우 대화한마디 제대로 오고가지 않는 가정에서 피신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생활루트와는 정반대로, 야간에 일하는 도시락공장에 다닌다.
누구도 믿지 않고, 냉철하고 머리가 좋으며 책임감도 투철하지만,
마사코의 기계같은 행동은 무척 공허하다.
 
"사부"라는 별명으로 불뤼우며 일처리를 무척 잘하고 모성애와 책임감이 뛰어난 요시에의 삶은
말만들어도 갑갑한 상태.

남편은 죽었고, 몸져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하며,
큰 딸은 멋대로 집을 나가 결혼했으면서 틈만 나면 엄마의 뒷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이고,
아직 어린 작은 딸 역시 점점 삐뚤어져가고 있다.
좁아터진 집에는 언제나 분뇨냄새로 가득하고, 작은 딸이나마 2년제 대학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수학여행비조차 대주지 못해 남에게 빌려야만 하는 가난하고 딱한 주부.
살림이고 생활이고, 자기가 없으면 모두 망가져버리기 때문에,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고, 살림을 하면서도, 도시락공장은 단하루도 쉴수가 없다.
언젠가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 도망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버릴수 없는 요시에는 소설속의 어느 주인공보다도 따뜻하고 인간적이지만,
그런 책임감과 모성애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 역겨운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되지만,
요시에의 삶은 벗어날수 없을 것처럼 갑갑하다.
 
뚱뚱한 쿠니코는 허영심에 가득찬 여자이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써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명품백이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고 폐배감에 젖어 빚까지 지면서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그런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려는 걸까.
멍청하고, 책임감도 없으며, 입도 싸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흐트러지는데에 언제나 껴있는 인물이다.

 
가장 싫은 것은 남편을 죽인 야요이.
30대 주부로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타인에게 상냥하지만,
멍청하고 사람을 너무나 잘 믿어버리는 데다가, 어떤 면으로는 무척 잔인하고 죄의식이 없다.
애초에 남편을 죽인 것은 야요이이고, 멋대로 마사코에게 의지해 버리고 책임을 전가시킨 주제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결국 그들에게 등을 돌려버린다.
의지력없이 타인에게 기대기만 하는 존재.
남편을 죽이고도 일말의 죄책감따위 갖지 않으며, 서서히 자기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조차 망각해간다.
야요이는 비겁하다.
 
치열하면서도 공허한 소설속의 삶들은 결국 탈출구를 찾았을까.
잔인무도한 살인자이면서도, 나쁘다고만 매도할수는 없는 주인공들이
갑갑한 현실로부터 Out할수 있기를...
 
 
기리노나츠오는 어쩌면 인간 혐오자가 아닐까.
그로테스크처럼 독자로 하여금 소설속의 모든 인물에게 조금의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진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웃을 읽는 내내 작가자체가 인간을 무척 싫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쌓였다.
작가가 어느 주인공에도 진심으로 애정을 쏟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가슴아픈 사연이 있어도, 불쌍한 면이 있어도,
동정을 하려는 찰나에, 주인공들은 어느새 시체처럼 차가워진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냥 생동감과 현실감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도 인간 혐오자란 소리가 아닐까.
 
시종일관 차가운 태도를 유지한 채, 소설은 마구 뛰다가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도저히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극단적인 플롯들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교묘하게 잘 연결되어서
마치 모든 것이 단절된 현실의 악몽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기리노 나츠오는 무척 멋진 작가이다.
극단과 현실을 오고가면서,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줄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끼게한다.
그것은 당연한 듯이 반복되면서도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평화롭진 않아도 비정상적이지는 않은 일상의 공포.
그것을 들켜버린 당혹스럽고 창피한 기분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몽환적인 영혼의 소통.
기리노 나츠오의 소설은 이질적이면서도 그 공허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녀의 책에서의 섹스는 무척 폭력적이면서 애절한 구석이 있다.
섹스는 살인과 연결되어있고, 살인자는 피살자를 증오하면서 사랑한다.
언제나 공허하기 때문에, 인생의 단 한가지 빛줄기도 찾을수 없기 때문에,
섹스로 영혼을 교감하고 상대방의 속으로 녹아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껴안으며, 증오하고, 흥분하며, 찌른다.
변태성욕과 공허한 영혼.
새까만 구멍으로 쑥 꺼져들 듯이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
그들은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사이코적이지도 않다.
그녀의 소설에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때는 폭력과 섹스가 오갈 때 뿐이다.
건조하고, 슬프게도...
 
 
2권으로 내도 되었을 분량을 3권으로 나눠낸 얍삽한 출판사가 좀 밉지만,
800페이지, 3권짜리가 되는 소설이 한권짜리 소설보다 더 박진감넘쳤다.
무척 재밌으면서 무섭고 슬프다.
몹시 마음에 드는 작가라서 기리노 나츠오의 다른 소설들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위가 극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p.s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다가, 기리노 나츠오의 얼굴이 소설속의 마사코의 외향 묘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인해보이고 건조한, 바싹 마른 속을 알수 없는 아줌마.
그런 인상이었달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6-04-1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오싹합니다.
세 권이라니,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보관함에.
(땡스투는 아까 눌렀는데...)

Apple 2006-04-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정말로 오싹하지만, 또 오싹하게도 재밌기도 하다는...^^
세권이지만 한권처럼 빨리 읽을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