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에 딱 정확히 한가지 사실만이 진실인 경우는 얼마나 될까.
사람을 30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있다고 치자.
과연 그 연쇄살인이 온전히 연쇄살인범만의 잘못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수 있을까.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던가,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수 있을 정도로 삐뚤어진 교육만을 해온
부모가 배후에 있을수도 있으며, 또는 인생전체를 핍박만 받아오면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모피코트를 자랑스럽게 입고다니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이런 행위를 동물애호가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즐기기 위해 보통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또다른 한쪽에서는 살기위해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동물을 살상하고 섭취한다.
이 사실들중 어느 것이 정확히 올바른 일이라고 판단할수 있을까.
감히 인간이라는 보잘것 없는 존재가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보편적인 정의가 있어야하고,
그것이 완벽히 바르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그런대로 만족하고 살기위해서는 "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결과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머지 심성의 저 안쪽부터 파괴되어 연쇄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만으로 죄를 묻는다.
그것이 완전히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설사 그 연쇄살인범에게 동정이 가는 구석이 있더라도
죄는 죄로 심판을 받아야하는 것이 세상이다.


이 책 "폭스 이블"은 누군가의 죽음, 또는 누군가의 고통에는 단 한사람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폭스 이블이라는 수상쩍은 이름의 잔인무도하고 교활한 범죄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단지 온전히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작은 마을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헐뜯고 뒷수작 피우기 여념이 없다.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의 지위향상을 위해, 또는 시덥지도 않은 불필요한 관심때문에,
타인을 헐뜯어 모욕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거기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미움과 질투의 시선은 "폭스 이블"이라는 사람으로 대변되어 범죄로 구현되었을뿐,
모두가 선량한 인간은 아니다.
모두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모두가 또다른 타인에게 상처를 입는다.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서로의 명예와 자존심에 흠집을 내기위해 존재하는 듯이,
물고 뜯고 미워한다.

살면서 누구나 당치도 않은 소문을 직접 목격을 하게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의심을 받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당치도 않은 소문을 누군가에게 전해듣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들어온 모든 사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진실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기 위해서 발벗고 나서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남의 소문따위에 시간을 투자하기는 귀찮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피해로 돌아온다면 그때서야 움직이는 것이 인간,

자기만 알고, 자기가 가장 중요한게 결국 인간이라는 교활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얼마전, 동생과 밥을 먹으면서 TV를 틀어놓았는데,
머리가 아주 긴 세자매의 이야기를 보면서 동생이 왜 저렇게 길게 머리를 기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지하철에 머리가 껴서 다쳐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라서,
"너는 왜 모르는 사람한테 악담을 하냐?"라고 되물은 적이 있다.
그제서야 동생도 얘기가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조용해졌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세상에는 왜이리 쓸데없는 미움으로 가득차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어차피 남의 얘기이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나처럼 관심을 끄고 살수가 있다.
굳이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을 두고 악담을 하거나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타인을 헐뜯고 우월감을 느끼려는 간사한 마음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또다른 방식의 폐배감이고, 열등감이다.
나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이고, 내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꼭 악이나 잘못이 아니라도 바보이고 비상식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만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 인간은 얼마나 보잘것없고 불쌍한 인간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끝도 없이 서로를 헐뜯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소문이 한 인간을 망가뜨려가는 과정, 무엇이 진실인지를 놓고 저 먼시간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책의 구술방식은
무척 훌륭하지만, 다소 권선징악의 기운이 풍기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데, 나만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권선징악으로 결말이 나는 소설이나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긴, 나도 소설속의 못되처먹은 아줌마 둘이 죽도록 얄밉긴 했지만 말이다.)
뒤로 갈수록 다소 힘이 딸리는 것이 보여서 밀도가 떨어지고,
뭔가 끝내주는 반전을 기다린 것도 아니지만 결말은 조금 허술하다 싶을 정도로 시시해서,
그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두꺼운 책임에도 쉽고 재밌게 읽을수 있었던 책이다.
읽기 편하게 깔끔한 번역과 섬세한 편집도 무척 마음에 든다.


p.s 여주인공 격이라고 볼수 있는 낸시의 캐릭터는 별로 매력적이지가 않다.
여군으로 나오는 낸시는 얼핏 좀 오버된 관념의 패미니스트를 연상시키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패미니스트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타입의 여자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s 2.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감탄했던 점은 작가의 욕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다.-_-;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된소리발음의 욕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용하는 단어들만으로도 충분히
타인에게 모욕적인 감정이 들수 있게끔 만드는 신랄하고 베베꼬인 대사처리는 정말로 훌륭하다!
번역가 역시 이런 험담이나 욕을 무척 잘 와닿게 해석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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