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 역사.전설.영화.소설로 보는 드라큘라와 뱀파이어 히스토리
레이몬드 맥널리.라두 플로레스쿠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흡혈귀 영화나 소설은 더이상 호러장르가 되지 못한다.
공포라고 하기엔, 흡혈귀 이야기는 너무나 로맨틱하고 탐미적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양 귀신(?)인 흡혈귀의 이야기가 달콤하고 에로틱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역시 가장 유명한 흡혈귀 영화중 하나인 <노스페라투>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1992년 작 <드라큘라>나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가 한몫했겠다.
드라큘라의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은 영화에서 보여진 이미지로 왜곡되어 알고 있다.
<노스페라투>나 <드라큘라>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을 바탕으로 깔고 있으나,
브람 스토커의 소설속에서는 악마로만 묘사되는 드라큘라 백작의 이미지를
'이룰수 없는 사랑에 집착하는 가련한 남자'의 이미지를 덧씌웠고,
뱀파이어를 통해 영생의 쓸쓸함과 에로틱한 탐미를 구축해낸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에서
결정적으로 뱀파이어를 악마나 괴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영생체의 이미지로 그려내어 흡혈귀는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500년전 실존했다는 드라큘라 백작의 실존 이야기는 어떨까.
어떤 경로로 그는 전설적인 흡혈귀로 둔갑해버렸을까.
이 책은 실존했던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흡혈귀 전설이 되고,
다시 한번 브람 스토커를 거쳐 100년이 넘도록 단한번도 절판된 적이 없고,
단 한번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친적이 없는 고전 <드라큘라>의 탄생과 그 후의 작품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왈라키아 공국의 영주였던 블라드 드라큘라는 "블라드 체페슈"-꼬챙이로 찌르는 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블라드 드라큘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블라드 2세 드라큘라는 실제로는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해 왈라키아를 수호해낸 영웅이다.
(드라큘-Dracul은 '용'이라는 뜻이란다.)
루마니아 지역에서는 이 드라큘라를 전설의 영웅이자 두려워해야할 존재로 인식한다.
나라를 지켜낸 영웅을 사람들은 왜 두려워 했으며, 그는 어째서 전설의 흡혈귀로 둔갑하게 된 것일까.
드라큘라를 둘러싼 흡혈귀 전설은 그의 어린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드라큘라는 오스만 투르크족의 잦은 침략으로 영주였던 아버지와 큰형을 잃었다.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큰형은 산채로 매장을 당하고, 둘째아들이었던 드라큘라와 막내동생이었던 라두는
끊임없이 투르크족의 협박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내온다.
소심하고 약한 성격이었던 동생과는 달리 본래부터 강인하고 반항적이었던 드라큘라가
성인이 되어 왈라키아 영주의 자리를 되찾고 난후, 적개심과 복수심을 갖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드라큘라는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하여 왈라키아를 수호하며, 포로들을 말뚝에 박아 사형시켰다.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을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복수심으로 적국 포로를 말뚝에 꽂아 죽였던 드라큘라가 나라의 귀족들을 그런 식으로 처형하고,
그의 국민들도 말뚝에 박아 처형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용맹했으나 자비롭지는 못했다.
그는 어쩌면 처음에는 복수심으로 적군을 공격했으나 그 폭력성에 너무 길들여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전 유럽이 그의 말뚝처형을 두려워했고, 그가 피를 들이킨다는 헛소문은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적군에게 목이 잘려 죽은 드라큘라 백작의 시신을 시간이 오래 지난후 파해쳐보니,
드라큘라의 뼈가 들어있어야할 자리에, 인간의 뼈는 없고
온갖 동물의 뼈가 산산히 부숴진채 매장되어있었다고 하니,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어디서 다 나왔는지 알수 있다.
피, 말뚝, 빈무덤, 잘려진 목- 드라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들이다.
흡혈귀의 가슴에 말뚝을 박고 머리를 잘라야 죽는다는 전설과,
매장되었지만,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 피를 찾아 돌아다닌다는 전설-
이 모든 것이 드라큘라의 실제 생애를 바탕으로 한 설화가 된 것이다.
트란실바니아 농민들은 마늘을 약용식물로 생각하여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즐겨먹었다고 한다.
병을 없애주는 것은 무엇이든 선한 "흰" 마술이었으므로 마늘이 흡혈귀를 퇴치한다는 전설이 생겨났다.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루마니아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설화였다.
실제로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나라는 드라큘라가 살았던 루마니아지역이 아니라 그리스라고 한다.
수많은 흡혈귀의 이야기와 드라큘라의 피비린내나는 생애에 대한 소문들이 오랜 시간동안 합쳐져
흡혈귀 신화가 탄생하게 되고, 빅토리아 시대로 건너오게 되어서는
당시 서서히 떠오르고 있던 고딕 호러 소설 붐을 타고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설화를 바탕으로 해 진화해나가 아직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허구의 한존재의 과거를 타고 올라가 실제의 드라큘라를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흡혈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진실과 허구를 구별해낼수 있게된 데 대한 희열까지 느껴지는 책이었다.
적절히 삽입된 사진들과 흥미로운 설명이 재밌었던 책으로,
흡혈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느 소설보다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 되겠다.
책 후반부에는 뱀파이어와 드라큘라를 소재로한 영화와 소설을 소개하고,
당시 동유럽의 지도와 간략한 역사까지 친절히 설명해주고 그를 둘러싼
루마니아, 독일, 러시아 등지의 소문들을 모아놓았다.
요즘 보는 책들은 이런 책들이 많은데,
이 책 후반부에 적어놓은 뱀파이어 작품들을 볼수 있는대로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수많다고 밖에 말할수 없이 너무나 많은 영화들이 있어서 다 보기엔 어렵겠지만 말이다.

꼼꼼한 구성과 재밌는 소재의 책.
진실과 허구 사이에 있는 드라큘라를 이 책 안에서 찾을수 있다.
드라큘라와 뱀파이어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할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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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두 눈은 겁이 가득 찬 두개의 웅덩이였다.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본 것이다.
그 웅덩이안에서는 두려움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도 겁이 나고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의 두 눈에 비친 나의 두려움을 보고 있을수가 없었다.
난 그녀에게서 확신과 위로를 얻고 싶었다.
그녀를 끌어당겨 꼭 껴안고,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내 마음속에서 새롭게 그녀에 대한 신뢰감을 불어 일으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두려움에, 역시 그녀의 두려움으로 맞섰다.
부드러워야 할 그녀의 두 눈은 비명을 토해내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번들거렸다.
 
그건 공격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우린,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고, 또 많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이 끼어들어, 우리둘 사이를 위험하기 짝이없는 낯선 사람들로 만들어버렸다.
그녀는 돌아서서 도망가려고 했다.
난 뒤에서 그녀의 스카프를 움켜쥐었다. 애원하고, 변명하기 위해서였다.
나를 구원할수 있는 단 한사람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그녀를 내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면 당길수록, 그녀의 생명은 조금씩 더 사라져버렸다.
마침내 내가 원하던 대로 그녀를 내 바로 앞까지 끌어당겼을 때, 그녀는 죽고 말았다.
나는 그런 것을 원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사랑해서 그랬는데, 결과는 반대로나타났다.
외로워서 그랬는데, 나의 외로움은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사랑이라고는 찾아 볼수 없는 혼자다.

-<코넬 울리치-뉴욕 블루스>중에서...
in 밤 그리고 두려움

남자는 사랑했다고 믿었고,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하지만.
여자는 도망치려고 하고, 그가 잡고 있던 그녀의 스카프는 그녀의 목을 죄어와
결국 여자를 죽여버리고 만다.
사랑이 착각이 되고, 집착이 되고, 독이 되는 순간.
 
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저런 식의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사랑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 뻔함이 드러나는 비극적이고, 전위적으로 표현된 장면들과
한때 지독히도 사랑했던 현실이었으나, 결국은 환영처럼 사라지는 여인들.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내려가다가 순간 쓸쓸함과 허무함에 마음이 싸해지는 그런 장면들......
환상속의 사랑. 환상속의 여인. 사랑에의 체념과 절망.
고독한 코넬 울리치가 꿈꾸고 있던, 의지하고 있던 마지막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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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늪과 제목처럼 밤과 어둠같은 작품들이죠.

Apple 2007-02-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First you dreamed, then you died.
처음에는 꿈을 꾸었고, 그리고 죽었다.

한 호텔방에서 뇌졸증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코넬 울리치의 사후에 남겨진 작품들 중에,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쓰려고 했던 작품의 리스트에 속해있던 제목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저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처음에는 꿈을 꾸었고, 그리고 죽었다.
이 말처럼 코넬 울리치의 삶과 소설을 대변하는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써 추리소설계에서 길이 남는 <환상의 여인>을 남겼던 코넬 울리치는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일찌기 고독을 알았다.
자신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두번의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그는 소설에 매달려 어머니와 단둘이 호텔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일류소설부터 삼류소설까지 무척 다작을 했다는 코넬울리치는 자신의 이름 하나로도 부족해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만들어 두 사람 분의 소설을 세상에 내뱉어냈고,
그로 인해 부자가 되었음에도 그는 음울한 도시의 밤을 사랑했고, 고독을 사랑했다.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이 줄수 있는 숨막히는 서스펜스와 신경질적인 감정선,
그리고 몹시 쓸쓸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주는 애수로 대표된다.
서스펜스를 잘 그리는 작가는 넘쳐난다. 아마 추리소설가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코넬 울리치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고독과 밤과 두려움에 있다.

 그는 언제나 "환상의 여인"을 꿈꾸었을런지 모르겠다.
평생을 고독히 살았음에도, 언젠가는 자신을 밤의 고독으로부터 구원해줄 환상의 여인이 있을거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환상의 여인들은 언제나 환상처럼 모호하게 나타나 강렬한 사랑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랑을 믿지 않았고, 두려워했으면서도, 그는 사랑을 꿈꾸고 있었고, 그리고 죽었다.
그가 그리는 허무한 사랑들은 그의 숨막히는 서스펜스도, 첨예한 심리묘사도 넘어서서
독자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 남아 그를 '그림자의 시인'으로 기억하게 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 코넬울리치의 두권짜리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을 1년만에 읽었다.
코넬 울리치를 너무도 사랑하고, 또 이미 죽은 작가여서
더 많 작품을 보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껴두었다가 읽고 싶었다.
두권의 책은 서로 느낌을 달리하는데, 1권에서는 서스펜스를 강조한 단편들이 다뤄지는 편이고,
2권에서는 코넬 울리치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가 깔린 단편들이 다뤄진다.
대중적으로 보기에는 1권의 단편들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2권이 코넬 울리치의 매력을 느끼기에 더 좋지 않나 싶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담배> <동시상영> <엔디코트의 딸> <윌리엄 브라운 형사>
<색다른 사건><하나를 위한 세 건><죽음의 장미>이지만,
그 것을 다 합쳐도 맨 마지막 단편 <뉴욕 블루스>만큼 좋을수는 없었다.
코넬 울리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담아 고독과 환상과 애수가 넘쳐나는,
그리고 코넬 울리치 특유의 명문장들이 작렬하는 <뉴욕 블루스>는 저자 프랜시스 네빈스가 썼듯이
코넬 울리치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을 뻔한 단편이다.
호텔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며, 환상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자-
이 사람은 어쩌면 코넬 울리치 자신이 아닐까.
내가 기대하던 코넬 울리치는 이 단편에 모두 담겨 있다.
<밤 그리고 두려움> 은 이 단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밤을 사랑했고, 그림자속에서 살았던 작가.
그의 소설에서는 밤안개가 보이고, 모두 잠든 밤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담배냄새를 맡을수 있으며,
잠 들수 없는 밤 떠올리는 오래전에 지나간, 어쩌면 다시 없을 사랑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의 환상의 여인은 오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꿈을 꾸었으나, 죽고 말았다.

 다작작가였고, 또 아주 유명한 장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구해볼수 있는 작품이 얼마 없어서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Black 시리즈를 모두 너무나도 보고싶은데, 어디서 안내주려나.
내 평생동안, 다시 코넬울리치의 소설을 볼수 있을까.
몇년이 걸리더라도 좋다. 내가 죽기전까지만 이라도.....
제발 전집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다.
정신이 산채로 매장되는 것이며, 밝은 곳으로 기어 나오려고 애를 쓸때마다
그 위에 새롭게 묘지의 흙을 덮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죽음에서는, 결코 완전히 죽을 수는 없다.

-코넬 울리치 <뉴욕 블루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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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소원입니다. 우리 같이 빌어보아요.

Apple 2007-02-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ㅠ ㅠ 출판사를 막 쪼아보고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_ㅠ 아흑...좀 내주지!!!
 
인간의 증명 - 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아서, 세상의 그 수많은 우연들은 어쩌면 필연으로 귀결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전생과 환생이 존재한다면,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우리는 만나서 알게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본인들조차 알지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인연들에 숨겨진 비밀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
<인간의 증명>.
인간의 무엇을 증명한다는 것일까.
당신의 무언가를 증명해보라고 하면, 당신은 어떤 것을 증명해보일 것인가.
인간은 무엇때문에 인간으로 불뤼는 것인지,
인간은 무엇을 찾기 위해 이다지도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바는 과연 무엇일지....
소설을 읽고 나서 많은 철학적인 물음들이 머릿속에 주어졌다.

뉴욕 할렘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던 흑인 청년 하나가 먼 일본 도쿄에 와서 살해당한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아니 빠듯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남루한 삶을 살던 이 흑인청년은
무슨 돈으로 일본까지 여행왔으며, 하필이면 여행중에 도대체 누구에게, 왜, 살해당한 것일까.
또 한편으로는 뜬금없는 고국에서 조차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 흑인청년의 부고소식에
내심 귀찮아하는 일본 형사가 이 사건을 두고 난감해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후, 미군에게 죽도록 맞아 아버지를 잃은 과거가 있다.
세상을 향한 배신감과 복수심으로 그는 형사가 되었다.
그는 살인자를 잡고 싶어한다. 흑인 청년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악랄한 세상을 향해 복수하기 위해서이다.

또 다른 편으로는 뉴욕의 한 경찰이 등장한다.
건물 몇개를 사이에 두고, 엄청난 부자들의 천국과 생존본능과 폐배감만 남은
온갖 쓰레기같은 인생들이 버글대는 할렘이 공존하는 뉴욕-
갖가지 이유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나가는 악의 구렁텅이 할렘에서도 모잘라서,
골치아프게 어느 얼간이가 일본까지 가서 살해당했다.
귀찮다. 그러지않아도 해결해야할 일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조사해보기로 한다.

또 다른 편으로는 일본의 한 가정이 등장한다.
국회의원인 아버지에, 아름답고 다정한 어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엄청난 명성속에서
이 가정은 동화속에서나 존재하는 아름다운 가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머니와 매스컴의 긴밀한 결탁, 아들마저 출세에 이용하려는 어머니의 야심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아들 교이치는 허래허식밖에 남지않은 가정에서 혼자 빠져나와
부모의 돈을 펑펑 써가며 고급 맨션에, 고급차에, 매일같이 무리를 끌고 다니며
마약과 방탕한 섹스에 취한 전형적인 부잣집 골치덩이 아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안정적이기 그지 없는 가정,
그러나 펼쳐보면 그 안에서 아이들은 상흔으로 썩어 들어간다.

또 다른 편으로는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가 등장한다.
데리고 다니면 누구나 한번쯤 뒤를 돌아보고, 세상 어느 남자나 침을 흘리는 아름다운 아내.
혼자만 숨겨두고 보려했던 아내가 남편의 실직과 건강 악화로 고급 술집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지고 만다.
남편은 애타게 아내를 찾아나선다. 경찰에 말해봤자 바람나 도망쳤다는 말을 들을게 뻔하기에,
자기 두 발로 아내를 찾아나선다.

이 수많은 주인공들은 도대체 어떤 인연이 있기에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되는걸까.
소설을 거의 다 봐 갈때까지만 해도, 부분적으로 예상할수는 있었으나 전체적인 감이 오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느낌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아!!"하는 탄성이 지어진다.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무척 좋고, 어두운 사회 구석구석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시선도 멋지다.
사실, 나는 본격추리보다 사회파 소설쪽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하는데,
볼 때마다 나의 경직된 사고에 반성하게 된다.
세상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에서, 보여지는 것만으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어쩌면 단지 '귀찮기 때문에' 더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보려 하는 노력을 할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사회파 소설을 읽을때 느껴지는 작가들의 속 알맹이를 파보려는 집요하고도 유연한 사고에
언제나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자는 언제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자기부터 챙기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지 않나.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듯,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인척 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한다.
누구나 타인에게 질책당하는 것 보다, 나의 피해 사례를 털어놓고 내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이해받고,
동정받기를 바란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면 절망에 빠질지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나의 과거의 오류를 다시금 생각해보고,
사고의 유연함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떳떳히 인정하며, 모든 일에 있어 피해자가 나만이 아님을 정확히 알게될 때 쯤에 우리는 더 강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찾기 위해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를 인간으로 규정짓는 것- 최소한의 진심이 아니려나.
우리는 가끔, 인간따위 믿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상 외의 믿음을 보기위해 기대한다.
그것이 깨어지면, 다시 "그럴줄 알았어"라고 비웃어버려도, 내심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인간에 지치고 삶이 고단한 소설속의 모든 사람들-
인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희박한 믿음을 그리워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기분으로....

나는 기대를 깨어버리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기대를 깨어버리는 인간이 아니길 바란다.
세상이 어떤 우연과 오해의 소용돌이로 나를 절망으로 떨어뜨릴지 몰라도,
사실 우리모두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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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참 좋아서 증명 시리즈 다 봐야지 했다가 야성의 증명에서 무너졌습니다^^:;;

Apple 2007-02-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래요? 야성의 증명도 볼까...생각했는데....

물만두 2007-02-1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볼만은 합니다. 추리적으로는요. 근데 무지 찝찝합니다. 나쁜넘이 많아서요.
 
사이코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
로버트 블록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히치콕의 그 유명한 영화 <사이코>를 몇번이나 보았던가.
아마 제대로 본것과 중간중간 지나치면서 대충 본 것까지 합치면 스무번은 족히 되지 않으려나.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 어릴때부터 학생시절까지는 TV에서 매년 히치콕 영화를
한편도 방영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TV가 점점 가벼워져 가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사이코>가 신작인 사람들이 세상에는 분명 있을텐데 말이다.)
뜬금없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사이코>의 소설버전을 보게된 것은 얼마전 읽었던 심리학책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다시 보려다가 원작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은 명작이 된 <사이코>.
영화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묻혀져버린 원작 소설 <사이코>가 여기에 있다.

소설 <사이코>는 영화 <사이코>보다 훨씬 음산한 기운을 더한다.
매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둡고 음산한 노먼의 모텔처럼.
내용 자체는 거의 같으나, 영화와 소설의 재미가 서로 다르다.
소설속의 샤워실 살해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은 히치콕은 이 영화를 계획하게 되었고,
1분도 안되는 그 장면을 일주일이나 공들여 찍어 샤워실 살해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중에 하나가 되었고,
많은 후배 감독들이 그 장면을 히치콕의 오마쥬로 사용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 너무나 어머니를 사랑해서 같은 운명을 가진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랬고,
그녀의 배신을 참을 수 없었던 아들.
아들을 너무나 걱정한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이 지나쳐온 더럽고 추악한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내려하지만,
그것은 삐뚤어진 애정이 낳은 집착이 되어 두 사람을 아무도 없는 음산한 모텔속에 귀속된
억제된 본능으로 자기자신조차 잃어버리는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용납할수 없는 진실과 고통스러운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보고하기 위해 심약한 노먼이 선택한 결정은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해리성 장애를 다룬 가장 유명한 영화와 그 원작.
인간의 뇌란 참으로 신비로워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해리시켜 버리고,
공상과 기억상실로 자신의 현재를 가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해리성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그저 "소설"일 뿐이라 말할수는 없는 문제같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아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뇌에서 엔돌핀을 내보낸다는 사실만 보아도,
인체의 미스테리함이란 실로 대단하다.

히치콕의 <사이코>도 무척 좋아하지만, 소설을 읽고나니 소설쪽은 상상외로 더더욱 멋있었다.
이 음산한 분위기와 비장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팽팽한 감정선.
이것이 공포소설의 걸작중의 걸작이라 말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서스펜스와 긴장구조를 사랑하는 히치콕이 반하는 것이 당연했던 소설이다.
후반부를 모르고 봤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죄다 알고 봤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눈을 뗄수 없이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나면 영화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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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영화에 가려 좋은 소설과 작가가 빛을 못봤어요.

Apple 2007-02-0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도 영화이지만, 소설도 정말 멋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