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First you dreamed, then you died.
처음에는 꿈을 꾸었고, 그리고 죽었다.

한 호텔방에서 뇌졸증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코넬 울리치의 사후에 남겨진 작품들 중에,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쓰려고 했던 작품의 리스트에 속해있던 제목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저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처음에는 꿈을 꾸었고, 그리고 죽었다.
이 말처럼 코넬 울리치의 삶과 소설을 대변하는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써 추리소설계에서 길이 남는 <환상의 여인>을 남겼던 코넬 울리치는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일찌기 고독을 알았다.
자신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두번의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그는 소설에 매달려 어머니와 단둘이 호텔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일류소설부터 삼류소설까지 무척 다작을 했다는 코넬울리치는 자신의 이름 하나로도 부족해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만들어 두 사람 분의 소설을 세상에 내뱉어냈고,
그로 인해 부자가 되었음에도 그는 음울한 도시의 밤을 사랑했고, 고독을 사랑했다.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이 줄수 있는 숨막히는 서스펜스와 신경질적인 감정선,
그리고 몹시 쓸쓸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주는 애수로 대표된다.
서스펜스를 잘 그리는 작가는 넘쳐난다. 아마 추리소설가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코넬 울리치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고독과 밤과 두려움에 있다.

 그는 언제나 "환상의 여인"을 꿈꾸었을런지 모르겠다.
평생을 고독히 살았음에도, 언젠가는 자신을 밤의 고독으로부터 구원해줄 환상의 여인이 있을거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환상의 여인들은 언제나 환상처럼 모호하게 나타나 강렬한 사랑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랑을 믿지 않았고, 두려워했으면서도, 그는 사랑을 꿈꾸고 있었고, 그리고 죽었다.
그가 그리는 허무한 사랑들은 그의 숨막히는 서스펜스도, 첨예한 심리묘사도 넘어서서
독자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 남아 그를 '그림자의 시인'으로 기억하게 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 코넬울리치의 두권짜리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을 1년만에 읽었다.
코넬 울리치를 너무도 사랑하고, 또 이미 죽은 작가여서
더 많 작품을 보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껴두었다가 읽고 싶었다.
두권의 책은 서로 느낌을 달리하는데, 1권에서는 서스펜스를 강조한 단편들이 다뤄지는 편이고,
2권에서는 코넬 울리치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가 깔린 단편들이 다뤄진다.
대중적으로 보기에는 1권의 단편들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2권이 코넬 울리치의 매력을 느끼기에 더 좋지 않나 싶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담배> <동시상영> <엔디코트의 딸> <윌리엄 브라운 형사>
<색다른 사건><하나를 위한 세 건><죽음의 장미>이지만,
그 것을 다 합쳐도 맨 마지막 단편 <뉴욕 블루스>만큼 좋을수는 없었다.
코넬 울리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담아 고독과 환상과 애수가 넘쳐나는,
그리고 코넬 울리치 특유의 명문장들이 작렬하는 <뉴욕 블루스>는 저자 프랜시스 네빈스가 썼듯이
코넬 울리치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을 뻔한 단편이다.
호텔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며, 환상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자-
이 사람은 어쩌면 코넬 울리치 자신이 아닐까.
내가 기대하던 코넬 울리치는 이 단편에 모두 담겨 있다.
<밤 그리고 두려움> 은 이 단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밤을 사랑했고, 그림자속에서 살았던 작가.
그의 소설에서는 밤안개가 보이고, 모두 잠든 밤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담배냄새를 맡을수 있으며,
잠 들수 없는 밤 떠올리는 오래전에 지나간, 어쩌면 다시 없을 사랑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의 환상의 여인은 오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꿈을 꾸었으나, 죽고 말았다.

 다작작가였고, 또 아주 유명한 장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구해볼수 있는 작품이 얼마 없어서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Black 시리즈를 모두 너무나도 보고싶은데, 어디서 안내주려나.
내 평생동안, 다시 코넬울리치의 소설을 볼수 있을까.
몇년이 걸리더라도 좋다. 내가 죽기전까지만 이라도.....
제발 전집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다.
정신이 산채로 매장되는 것이며, 밝은 곳으로 기어 나오려고 애를 쓸때마다
그 위에 새롭게 묘지의 흙을 덮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죽음에서는, 결코 완전히 죽을 수는 없다.

-코넬 울리치 <뉴욕 블루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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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소원입니다. 우리 같이 빌어보아요.

Apple 2007-02-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ㅠ ㅠ 출판사를 막 쪼아보고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_ㅠ 아흑...좀 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