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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심리상담가인 작가는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가스등>을 빌어
이상적인 배우자(혹은 부모, 친구)가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에게 지나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관점에서보다 타인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게 되는 현상을 "가스등 이펙트"라 명명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지만, 게중에는 심각할 정도로(영화에서처럼 자의식이 사라질 정도로)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사례도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규정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손발이 쿵쩍 맞아야 이 가스등 이펙트가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가스등 이펙트가 무엇인지 책속에서처럼 쉽게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여자에게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살짝 속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기 때문에,
거리에서 마주친 남자와 몇마디 건내는 여자를 보고 남자친구는 여자의 행동이 경박하다고 비난한다. 처음에 화를 내던 여자는 남자친구와의 싸움 끝에 진지하게 자신의 행동이 경박한 것이었는지 자문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경박함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마음고생을 시킨게 아닐지 걱정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남자친구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은 자기자신에게 있으며, 자기자신의 문제때문에 남자친구를 불쾌하게 했다는 사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점점 여자는 남자친구가 화내지 않는 행동을 하려 고심하게 된다.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 타인이 되는 현상, 어떤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거나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게 타인지향성이 되어버려서 자기자신 자체를 잃는 현상을 작가는 "가스등 이펙트"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추스릴수 없다는 것은 몹시 무서운 일이다.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타인이 되게 된다는 것, 나의 감정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내 모든 행동의 근원이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심리에서 나온다는 것 또한 몹시 무서운 일이다.
작가는 가스등 이펙트가 이루어지는 3단계와 가해자의 3가지 분류(선량한 가해자, 낭만적인 가해자, 폭력적인 가해자)로 나누어 설명하고, 차츰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소개해가며 그들이 잊지 말아야할 것,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사태를 진정시키고 관계를 더 낫게 만들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론부터 말해,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돈이 아깝다'였다.
가스등 이펙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나온 것은 좋다 이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개념을 만들고, 책을 내기 전에 모든 이야기에 있어 제 3자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그나마 정확한 의견을 낼수 있다는 것을 생각은 해본 것일까.
책속의 모든 사례는 작가가 '피해자'라고 명명한 한쪽방향에서만 설명되어, 선량하고 순진무구한 '피해자'를 가학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듯 매도해버린다.
마치 제일 친한 친구에게 내가 어디선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토로하고, 친구가 무조건적으로 내 편에 서서 내 입장을 옹호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물론 인간관계에서 그런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맺고 끊는 것이 지나치게 정확한 인간관계는 참 매정하지 않은가. 또 그런 편들어주기가 상당히 위로되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심리분석책에서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속에 등장하는 자기 의견만 고수하며 학대에 가깝도록 타인을 억누르기를 일삼는 폭력적인 가해자가 분명 존재하긴 하고 그들에게는 더욱 강경하게 대하거나 회피해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외의 낭만적인 가해자, 선량한 가해자같은 경우에는 사람일이니 만큼 여러가지 변수가 있다는 것과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은 왜 고려해보지 않았는가 모르겠다.
애초에 (그것이 범죄인 것은 아닌데)'가해자'이니 '피해자'이니 하는 분류부터가 사실 불쾌하기 짝이 없으며,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 나쁜 일이 생겼을 경우에는 누구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또, 사람들 중에서는 다소 자기의지가 나약한 사람이 있어서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것을 오히려 편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 역시 불쌍한 '피해자'로 만들어버리니 보는 내내 작가의 비약이 얼마나 거슬리던지.
좀 더 쉽고 일상적인 사례를 찾아서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려는 것까지는 좋은데, 인간관계에 있어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를 줄일수 있을 만큼 일반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개념도 아닌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상당히 지루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존재감을 찾는 것.
당연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지만, 말은 누가 못하나. 그런 생각은 누구들 안해보나. 말은 쉽다. 행동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책에서 말한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선을 긋는 행동을 하다보면 생기는 단점은 왜 없을까.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받고,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한다.
작가가 분류한대로 따져보면, 누구나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되는 것이 인간관계란 말이다.
자기 의견만 옳다고 고수하는 '가해자'집단을 상대하기 위해서 "누가 뭐래도 내게는 내 의견은 옳으니 난 내 입장을 고수할거야"라고 말하면서, 그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해자'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은 왜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또, 자신의 행동이 옳든 그르든 간에, 자신의 의견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의견 차이에 선을 그어놓는 것이 그렇게도 좋은 일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된 생각을 할수도 있다. 가끔씩은 내 의견이, 내 생각이 삐뚤어지고, 타인에게 폐를 입히는 것이 아닐지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것을 "배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지. 그런 배려마저 '타인에게 조종되는' 마음이라니.
참, 인간관계 각박하다.
자, 이런 상황은 어떨지 책에서처럼 예시로 설명해보며 글을 마치겠다.
예시로 들 상황은 책속에서 '낭만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라 명명한 경우의 이야기이다.
과연 누가 완전히 피해자이고 가해자란 말인가. 둘중의 누가 자기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란 말인가. 누구나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게 앞서는 법이고, 누구나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는 것이
인간관계의 현실이 아닐까.
여자(피해자): 어젯밤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봤더니 남자친구가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겠어요. 그는 매력적으로 웃으면서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고, 차 트렁크를 열었어요.
차 트렁크에서 수백개의 풍선이 날아올랐고, 그가 준비한 선물상자를 내밀었어요.
상자를 열어보니 반지가 들어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다이아몬드 였어요~
그는 분명 낭만적인 사람임이 분명해요. 나를 위해 이런 이벤트를 벌이다니...
하지만 기분이 조금도 좋지 않았어요. 기대에 가득차서 웃는 그를 보면서 나는 사실 불편한 마음만 들었어요. 나는 이렇게 요란한 이벤트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고, 그런 것은 부담스러울 뿐이며, 사실 동네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사람은 그렇지 않았어요. 자신의 행동이 도취된 듯 내 생각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것 같았죠. 꼭 자기자신이 만족하려고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남자(가해자): 여자친구 몰래 이 이벤트를 한달을 준비했어요.
꼭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언젠가 한번쯤 이런 낭만적인 이벤트를 벌여보고 싶기도 했고,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얼굴을 상상하면 이 이벤트를 구상하면서 보냈던 시간, 돈, 노력 아무것도 아깝지 않았어요.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녀는 좋아하는 얼굴이 아니더라고요. 불쾌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제 생각이 짧았던 건 아닌가, 내가 너무 거창하게 일을 벌였나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그보다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그래도 나 나름대로는 애쓴다고 한건데 조금도 좋아하지 않으니 많이 민망하기도 했고.... 제가 원하는 건 그저 그녀의 웃는 얼굴이었을 뿐인데 조금도 보답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니 서운하기도 했고요.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 겠지요? 내 이런 애정표현이 그녀를 불편하게 할 뿐이니...
어떻게 해야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을 그녀가 불쾌해하지 않을 방법으로 할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