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심연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 이름이 재밌었기 때문에(사탕과 사탄을 동시에 연상케하는 아이러니한 느낌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악의 심연>을 최근에 들려오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살인사건 소식을 매일같이 접하면서 보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요 몇일간은 악의 심연을 허우적거리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하다.
말 그대로, 악의 심연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듯이, 이 책은 무척 잔인하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작가후기에서 작가가 말하듯, 책에 묘사된 범죄들이 실현가능하고,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섭고 잔혹하고 씁쓸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책의 결말이 허무맹랑하다거나, 말도 안되는 뜬 구름잡는 소리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이 조금만 더 미숙하고 허무맹랑했더라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란, 특히 인간의 광기란, 광기의 심연이란,
이렇듯 뜬 구름잡 듯, 올바른 이성과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실종되고 1년을 외로움과 절망에서 살아오던 여형사 애너벨은
한밤중의 전화를 받고 사건 현장으로 뛰어나오게 된다.
눈내리는 어느 추운 겨울밤, 알몸으로 공원을 뛰어다니는 여자, 머리가죽이 일부 벗겨진 채 잔혹한 고문을 당한듯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디선가, 또는 무엇으론가 도망치는 여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발견된 여자의 몸에 세겨진 알수없는 숫자 문신을 근거로, 애너벨은 범인을 쫓던 중 범인을 사살하게 된다.
그리고 범인의 집에서 발견된 지옥도,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에서 그들은 알게된다. 고문을 당한 채 공포과 무기력으로 고통받는 수십명의 사진을.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님을, 이것이 연쇄살인이며, 배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이비종파가 관련되어 있음을....

이 분야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다는 막심 샤탕의 두번째 소설은 무척 강렬하게도 이렇게 시작된다. 단지 두번째 소설에서 독자를 이렇듯 완벽히 몰입시킬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작가의 나이가 아직은 어리다는 점 또한 놀랍다. (76년생, 우리나이로는 33살이다.)
또 이렇듯 아직 젊은 작가가 단순히 잔혹한 묘사로 이루어진 흥미위주의 연쇄살인극이 아닌
철학과 비판을 담고 있는 꽤 묵직한 소설을 써냈다는 것 또한 놀랍다.
책을 읽는 내내, 여기까지만 읽고 자야지-하는 순간을 얼마나 많이 놓쳤던가.
무서울 정도의 속도감과 몰입도, 작품전체에 흐르는 끈적하고 기분나쁜 악의 심연.
오랜만에 만나는 롤러코스터같은 작품으로, 잠드는 순간마저 빼앗가버린 훌륭한 범죄스릴러 작이었지만,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으로 우연이 계속되어 실마리는 잡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단점을 상쇄할수 있을 정도로 작품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 단점이 있음에도, 나는 이 책이 세계 최고의 범죄스릴러 소설 중 하나라고 느꼈으니.
 
자칫 생각을 삐뚤게 먹기 시작하면 인간의 악은 얼마나 깊은 심연속으로 치닫을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악이 넘쳐나는 심연속에, 얼마나 잔혹한 지옥도를 만들어 버릴까.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악인지...
소설속의 범죄자들이 저지른 악만이 악인지, 아니면 선의의 목적으로라는 변명을 달고 많은 현대인들이 저지르는 행동 역시 악인지, 인간이 정해놓은 선과 악의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또 거기에는 수많은 변수와 수많은 변명이 존재할수 있다는 것은 참 혼란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벌어진 흉흉한 살인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이 책에 묘사된 지옥같은 인간의 악의 심연이란 것이 단지 소설속에서 벌어지는 범죄 환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무섭다.
'밤이 되길 기다렸다, 어두워지면 스탠드를 켜고 이 책을 읽으라'
막심 샤탕은 책 서두부분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책을 다 읽고, "아쉽게도 책속의 범죄들과 수법들은 사실에서 기인해있다."는 말이 더더욱 무서웠던 것은 나뿐만일까.
천사에서 악마까지,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기묘한 동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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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3-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시즈님도 저렇게 생각하셨군요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으로 우연이 계속되어 실마리는 잡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 부분이요^^ 저도 그랬는데ㅋㅋㅋ 우연이 좀 심하죠ㅋㅋㅋ
그래도, 좋은 작품이에요^^ 샤탕도 멋지고ㅋㅋ

Apple 2008-03-2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정말 재밌더라고요.^^ 우연으로 밝혀지는 실마리가 너무 많기는 하지만...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