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박찬욱. 정서경 원작, 황세연 각색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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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와 함께 나온 친절한 금자씨의 책.
책 사서 읽을 만큼의 재미를 주지는 못하는데다가
전문 소설가가 아니라 표현방식이라던가 문체가 상당히 단순하지만,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산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화와 사뭇 다른 내용들이 눈에 띄고,
영화의 열배정도는 잔인한데, 그 잔인한 장면들을 보면서 박찬욱이 정말 악취미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달까.-_-;
(나름대로 악취미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해서 나는 상관없다.)

백선생의 어린 시절 부분은 보고있기 괴로울 정도로 음습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수많은 남자들에게 강간당해 태어난 백한상.
그나마 아껴주던 증조할머니가 2살때 돌아가시고
집안의 수치로 자라나 할머니와 어머니에 의해 끝없이 학대당하고,
부끄럽다고 갖혀지내면서 언젠가 하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꿈을 꾸던 백한상.
이미 어린 나이에 증오스러운 어머니와 할머니를 죽인 남자.
어찌보면 이 남자의 인생도 참 구질구질하고 비참하기 그지 없으나,
박찬욱은 백한상에게 감정이입을 시키지 않기 위해 무조건 잔혹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다니,
그래서 이런 어린시절 장면을 뺐는지 모르겠다.

집단 살인을 저지르는 후반부장면도 다른데,
부모들이 하나씩 백한상을 처치하기로 마음 먹은 장면까지는 같다.
소설에서의 금자는 백한상을 의자에 묶어둔게 아니라,
한손만 수갑을 채워 달아나지 못하게 한 다음에,
차에서 톱을 꺼내 도망칠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놀린다.
톱으로 열심히 수갑을 잘라보려다 안되자,
백한상은 어쩔수 없이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톱으로 썰어 잘라내고,
어느새 자기주위에 몰려든 부모들과 금자와 형사를 뒤로하고 피투성이가 된채 창문으로 기어가다가
은주 할머니가 은주의 가위로 목을 내리쳐서 죽는다.

제니와 금자의 대화를 백선생이 통역해주는 씬은,
소설에서는 폐교로 차를 타고 가던중, 어린시절 필리핀에서 살아서 영어를 할줄 아는 박이정이 통역을 해주고,
금자의 감방 동기였던 은행털이 부부는,
남편이 사실 전직 은행 결찰이었는데, 강도로 들어온 여자가 책상위로 올라가서 소리지르는 것을 보고 여신같아서 반해서 은행터는 일을 도와줬다는 설정.
그 외에도 감방동기들의 감방에 들어오기전의 사생활들도 살짝 나오는데,
느낌이 정말이지 끈끈하고 비참하다.

소설은 좀더 디테일하지만,
그래도 영화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빈칸으로 남겨진 부분이나 말없는 주인공의 행동들을 상상할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낸 출판사에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은,
이정도 양장을 할거면서 책값이 거의 만원에 다다른다는게 짜증난다.
일단 표지부터가 너무 안예쁘고,
책 뒤편에는 박찬욱이 직접 찍은 금자씨 촬영현장 사진이 꽤 여러장 수록되어있는데,
인쇄를 잘 못해서 어떤 건 글씨가 지워져있기도 하다.
다른 출판사에서 냈다면 더 좋았을걸....에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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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서스펜스 걸작선 1 밀리언셀러 클럽 19
엘러리 퀸 외 지음, 제프리 디버 엮음, 홍현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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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인형의 모험
사라진 13쪽
숨겨 갖고 들어가다
배트맨의 협력자들
주말 여행객
그 여자는 죽었어
원칙의 문제
힐러리 여사


이렇게 8편이 수록되어있는 단편집.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이책에 실린 단편들에 대한 내 생각은 아주 극단적으로 아주 재밌거나 아주 재미없거나 둘중에 하나였는데,
그래도 딱 한가지, 정말 마음에 드는 단편을 볼수 있어서 실망은 하지 않았다.

재밌게 읽었던 단편은 제프리 디버의 "주말 여행객"과 리사 스코토라인의 "숨겨갖고 들어가다."
프레드릭 브라운의 "그 여자는 죽었어"와 맥스 앨런 콜린스의 "원칙의 문제".

쌍동이의 아버지인 한 법조인이 아기보느라 미쳐가는 아내를 위해 하루 아기를 봐주겠다고 하고 법정으로 아기를 숨겨서 들어가는
"숨겨갖고 들어가다"는 단편소설다운 재기넘치는 치고 빠지는 조절과 재빠른 전개력이 아주 수려한
재치있는 단편이었다고 생각되는 반면, 사실 아기를 이렇게 학대해도 되는건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사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이 아버지가 혼나는 일이 생기길 바랬는데,
결국 그냥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아쉽다.
아내가 남편이 아기를 가방에 쑤셔넣고 종이로 기저귀를 만들고
몇시간동안 자게하기위해 유아용 타이레놀을 먹인 사실을 알았더라면 가만히 있었을까.

"그 여자는 죽었어"는 부유하게만 살아온 한 남자가 그가 가진 호사스러운 모든 것에의미를 찾지 못하고 인생의 활력도 없어져 버려
빈민가의 루저 생활을 하게되면서 시작된다.
그는 가장 천박한 거리의 가장 싼 직급에 만족하는 알콜중독자로 변해
완전히 망가진 삶자체를 즐긴다.
그러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창녀가 죽게되고, 그가 죄를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상태에 처하게 되면서 얘기가 진행되는데,
보는 사람이 속이 쓰릴 정도로 술을 들이붓는 주인공의 심리가 리얼하게 와닿는데다가
조분조분하나 몽환적인 전개력 또한 훌륭했는데,
솔직히 마지막은 조금 어이없었다.

"원칙의 문제"는 짧지만 굵은 단편이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나는 "복수는 나의 것"을 상상했는데,
그 영화처럼,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상황이 뒤집히기 때문이었다.
복수하려는 남자는 유괴범들을 죽이고, 유괴된 아가씨를 구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유괴범이 되고 끝나버리는데,
짧지만, 반전이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되는 단편으로 상당히 마음에 든다.

"주말 여행객"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으로 어쩐지 슬프기까지 했다.
인생이 제멋대로 맘껏 꼬여버린 두 남자가 편의점을 털기로 하는데,
바보같은 동료는 개념없이 사람을 몇명 죽여버리고 결국 조용히 편의점을 털지 못하고 경찰까지 동원되어버려서
결국은 인질을 한명 잡아서 도망쳐나온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주인공이 동료를 죽여버리고 인질과 둘이 남게되는데,
세일즈왕인 인질은 수려한 말발로 주인공을 꼬득인다.
마지막 가서는 어쩐지 너무 치열한 느낌이라 슬픈 느낌이 들었다.
범죄자들을 볼 때에는 누구나 그들의 죄를 볼뿐 인생을 보지 않는다.
언제나 모든 것은 결과가 중요하니 그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이 단편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런 점이었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고, 범죄를 저질러야 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범죄라는 극단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끝나는 단편이었고,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은 좋은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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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2복음 1
주제 사라마구 지음 / 문학수첩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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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하고 로마교황청에서 항의했다는 이책은
기독교 쪽에서는 확실히 이단이라고 폄하할수 있는 책이지만,
어차피 나는 무교라서 이 책을 보면서 "아..이럴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으로써의 예수라 아니라 인간으로써의 예수를 만날수 있는 책 "예수의 제 2복음"
대충 알고 있는 예수의 생애의 이야기와도 확연히 다른데다가
십자가를 지고 죽어가는 예수가 "하느님에게 속았다"라고 깨닫는 마지막씬만해도
충분히 이단이라는 말을 듣기 충분할 듯.

이 책에서의 예수의 모습을 잠시 설명해야겠다.
분명 보통사람들이 줏어들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과도 많이 다르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태어난지 얼마 안되서 수십명의 아기를 죽음으로 이끌었고,
그의 아버지 요한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아들 예수를 죽이는 꿈을 꾸고
죄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소년 예수는 아버지의 죽음후에 아버지의 비열한 행동을 알게되어 아버지 요한을 증오해서 가출을 하고,
어머니 마리아와는 갓 청년이 된 예수가 하느님과 대화한 것을 믿지 않아
예수가 거의 죽을 때까지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았고,
창녀로 살아온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와 사랑에 빠진 동거녀이고,
배신자의 대명사인 유다는, 배신을 하고자 한게 아니라 예수와의 합의하에 배신행위를 한 것이고,
예수는 하느님의 씨와 아버지 요한의 씨를 섞어 태어난 인간의 자식으로,
거의 죽을때까지 신으로써의 자각이나 확신이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참 이단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나
억지로 예수를 망가뜨리고자하는 적의는 없다.
단지,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고,
하느님으로 대변되는 절대 권력을 가진 지배자의 무책임한 명령에 대한 분노가 남을 뿐이다.
하느님은 예수에게 그의 아들이기를 강요한다.
예수는 이를테면, 하느님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도구와 다름이 없고,
메시아로 그려지고 있지도 않다.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내 맘이다"라는 식의 무절제한 의견을 예수에게 강요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예수는 아무리 병든 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해도
결국 그것은 피할수 없는 죽음을 잠시 눈가림하는 속임수나 다름없다는
하느님의 진리의 모순을 알아가면서 고뇌하고
죽어가며 모든 사람에게 "인류여, 하느님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분을 용서하라"고 외친다.

결국 하느님이 바란 것은 자기 권력의 확대일뿐,
인류의 구원이나 속죄나 용서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 하느님은 자기말고도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을 언급했는데,
다른 종교를 가진 나라에까지 자기 권력을 확대하기위한 수단으로 인간의 아들을 이용한 것이다.
역시 예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인류의 구원이나 그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희생이 없다.
이책에서의 예수는 메시아로써의 찬란하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신"이 아니라,
감당하지 못할 운명을 타고나 평생을 고달픈 삶을 살아간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가끔은 아버지도 증오하고, 어머니도 미워하며,
때로는 의도되지 않은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가진 신에 가까운 능력으로 다른 인간들의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사랑한다.
그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신성모독적인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식으로 예수를 볼수 있었는데,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예수라는 인간이 꽤 진보된 인간처럼 느껴졌다.
지금으로 말하면 생각이 깨어있는 새로운 세대같았다고나 할까.
하느님을 믿는것이 본능처럼 강요되는 사회안에서
예수는 다른 신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목자(후에는 마귀로 판명되지만,)와 별 문제없이 4년을 함께 살고,
모두가 지탄하는 창녀와 동거하고,
그것도 어머니뻘의 엄청난 연상녀였다.
예수가 정말 이런 사람이었다면,
당시로써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비주류의 인간이 아니었을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가학적으로 예수의 십자가형만을 중점적으로 그리지 않고있고,
오히려 그부분은 시시하다 싶을 정도로 짧게 끝나버리고,
부활에 관한 언급 역시 없다.

다른 사람 리뷰를 읽어보니,
성경 구절에 대한 패러디가 촌철살인의 대사로 이어간다는데,
성경을 잘 알지 못하니 어느 부분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히 성경을 자세히 알고 있다면 좀더 재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도 성경을 좀 찾아봐야겠다.)
개인적으로 갓 청년이 된 예수가 처음으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던 부분은
보다가 웃음이 나올정도로 웃겼다.
참을성없는 어린 아들과 가부장적인 마초아버지의 대화같았다고나 할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예수에게 하느님은 "거참 질문 되게 많은 놈이네.말좀 자르지 말아라."하고
짜증을 부린다.킥-
중간중간 별로 필요는 없는 이런 유머들이 종종 나오는데,
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이런 유머들이 너무 귀엽다.

이 책은 진리가 아니다.
단지 소설일 뿐.
작가도 자기말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진실이 어찌했든간에, 이런 상상을 할수 있는 인간도 세상에는 있는거니까.

p.s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것은 잘 읽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똑같은 이름이 너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놈의 요한과 마리아가 그리도 많이 등장하는지...
어릴때 내가 교회를 다닐적에는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는 다 똑같은 마리아인줄 알았다.
동명이인이나 동명삼인같은건 생각도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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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법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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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지 번역이 원래 그런건지, 동서 문화사 책은 이상하게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글씨체의 문제도, 제본의 문제도 아닌데, 게다가 이 소설같은 경우는 번역도 나쁘지 않은데,
도저히 몰입이 안되서 한참 띄었다 읽고 띄었다 읽고를 반복해서
겨우 어제서야 다 읽었다.

출판사 편집기자인 주인공은 어느날 담당작가의 새로운 소설을 받아들게 되는데,
소설과 함께 작가가 소설에 함께 첨부해주었으면 하는 사진이 끼워져 있는데,
아주 오래전 사진이지만, 그게 주인공의 아내와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였던 것이다.
18세기 전설의 마녀였다는 마리 도브리.
같은 얼굴의 현재의 평범한 아내 마리 도브리.
이 궁금증을 안고 한사람이 독살로 사망하고, 설상가상으로 묻었던 시체도 사라지면서
추리를 해 나가는 내용이다.

전개 부분을 빼고는 반은 추리 소설이고, 반은 오컬트 소설인데,
오컬트->추리->오컬트로 돌아오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아쉽게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추리와 오컬트가 적절히 어울리지 못해서
붕뜬 느낌인데다가 황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주인공들이 실컷 추리해놓으면 갑자기 미스테리한 존재가 나타나서 추리가 물거품이되고,
또 실컷 추리해서 범인 찾아놓으니 사실 알고보니 마녀의 짓이었고.
환상의 존재가 미신을 믿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범죄를 저질러버리니,
추리 자체가 별로 의미없이 느껴지기 까지 했달까.
차라리 오컬트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되는 설정이 이어지더라도
그 편이 훨씬 재밌었을거라고 생각된다.

가끔씩 추리소설을 보다보면, 지나치게 결벽스러운 시간 싸움이 지겨워질때가 있다.
알리바이를 얘기하다보면 "당신은 11시 15분경 무엇을 하고 있었지?"라고 물어보면
질문 받는 사람은 정확히 잘도 대답해 대니까.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진달까.
그래도 재밌으면 괜찮은데, 별로 재밌게 읽지 않아서인지 그런 시간 싸움이 조금 짜증날 정도였다.

책 표지에 "엽기채색 초특급 미스테리"라는 호화찬란한 문구가 적혀있다.
엽기적이지 않아도 별로 상관은 없는데, 저 문구 누가 쓴건지 도대체가 의심스럽다.
미스테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부분이 엽기적이었다는 것인지.
심지어는 살해 방법 또한 독살이라 그다지 엽기적이지는 않는데.
혹시 시체를 반으로 잘라서 화병에 숨겨놓은 장면때문에 그런 문구가 써있는 걸까?
솔직히 그 장면은 너무 말이 안되서 우습던데..-_-;
그 짧은 시간에 시체를 반토막 낼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보라고 그래...-_-;;
시체가 무슨 무 토막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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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1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 읽었어요 ^^ 근데, '시체를 두 조각으로 꺾는다'는건 토막 내었다는게 아니라 접었다는 얘기인듯합니다. 후에 시체를 안고 나가서 핸더슨 노인 집 흔들의자에 앉혀 놓은 장면이 나오니깐요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즈 지음, 용경식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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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흔히들 문화의 나라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인지 프랑스 소설들 보면 좀 황당할정도로 엉뚱한 게 많은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의 엉뚱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제목처럼, 주인공이 바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그가 너무 지적이기 때문이다.
지적이라는 건 꽤 큰 재산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지성이 자신에게 내려진 재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지식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지성이 넘치는 사람들은 정치가나 사회봉사자가 되고,
문화쪽에서 지성이 넘치는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거나 평론가가 되거나 할수도 있고,
학문에 지성이 넘치면 학자나 교수가 될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지성"은 어디 한군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폭넓고 깊이 얕은" 지성이라,
어디에 붙여넣을수도 없는 하잘것 없는 지성이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이 너무 넘쳐나서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바보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첫번째로는 알콜중독자 바보가 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맥주 반잔에 실신해버려서 포기하고,
두번째로는 자살하는 바보가 되려고 자살강의를 들었더니,
오히려 자살하고 싶지 않아지고,
마지막 세번째로 택한 방법이 약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친한 소아과 선생에게 약을 받아온다.
그 약은 그를 하루 종일 아무생각없는 기분좋은 상태에 머물게 하고,
그는 원하던 바대로 그를 세속에 물든 바보로 만들어버리게 되는데,
친구의 회사에 일하러 들어갔다가 유능한 딜러가 되는 바람에,
이전의 남루한 생활을 벗고, 그는 점점 부유하고 소위 "잘나가는" 인간이 되어간다.

생각많고 항상 우울하지만 다정했던 이전의 그는 사라지고,
그가 원하던 세속적이고 세상의 이치에 밝은 성공한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그는 타인의 행복을 뒤쫓아갈 뿐 자기자신의 행복은 찾지 못한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그걸로 만족"할뿐.

너무 비현실적으로 사람이 한순간에 성공한다는 점과,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결말을 빼고는 꽤 귀여운소설이었다.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현재에서 벗어나는 점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비슷하지만,
그것처럼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환타지는 아니라서 훨씬 보기 좋았다.
결말은 결국 자기자신에게도 돌아온 그를 표현하고자 했던것 같은데,
그 여자는 안나와도 되잖아..-_-;;
헐리우드 코믹 영화처럼 끝에 갑자기 사랑이 다가오는 암시를 주고 끝나는게
좀 어색했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소설 역시 거기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주지는 않는다.
소설에서는 확실히 "나 답고 개성있게 사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고 있지만,
성공한 바보의 인생이 더 좋아보이는 것은 왜 일까.
맥도날드를 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옷을 하나 봐도 원산지가 어디이며 혹시 아이들을 노동자로 쓰고 있는게 아닐지
걱정하는 지성인의 고달픈 생활에 비해서는,
차라리 바보가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타인의 규정에 맞춰서 모든 것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 역시 소심한 꼴불견이기도 하고...

무엇이 나에게 더 합당한 답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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