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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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일을 기념하야, 3월 10일 0시를 치자마자 보게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바타를 보고나오면서 3D가 살짝 궁금해졌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꼭 3D로 보자 싶었는데 역시 인기만발 아이맥스 디지털 3D였기 때문에, 새벽에 볼 수밖에.
아..뭐랄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내용자체야 조금 실망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팀버튼스러운 으스스하며 귀여운 분위기는 여전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양념이 하나 빠진 분위기. 조금 더 그로테스크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건 그냥 개인적인 바램일뿐이고....
사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새로 경험하는 디지털 3D가 너무나 신기해서 정신을 쏙 빼놓고 보았다.
입체영상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는데, 눈앞까지 다가오는 인물, 원근감이 확실히 느껴지는 공간감같은 건 정말 감탄할 정도로 신기해서 보는 내내 그것만 즐기는데도 재밌어 죽겠더라.
(디지털 3D는 영화배급사 로고부터 입체다. 감동..ㅠ ㅠ)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기발하다 싶을 정도로 톡톡 튀면서도 아름다워서 언젠가 써보리라 나도 몰래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었고,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들도 만족! 총천연색의 동화속 세상도 예쁘고 귀엽고 흥미로웠다.

영화를 본건지 디지털 3D를 구경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보다가 어떤 사람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뭔가를 잡으려는 손짓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실 나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았다;;
다 보고나오면서 다음 3D 영화도 빨리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무리 봐도 신기해 신기해....♥

p.s 생일을 기념해서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를....♥
p.s 2. 언젠가 집에서도 3D 영상을 감상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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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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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만델라를 소재로 삼은 영화이지만, 정치영화가 아니고, 럭비를 소재로 삼은 영화지만 스포츠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평화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
넬슨 만델라와 남아공의 현실을 바탕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났는데, 정치 영화도 스포츠 영화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어느새 부터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추구하던 그것이 이 영화에도 녹아있었다.
잔잔하면서 지루하지 않고, 과도하게 끓어오르지 않으면서 열정이 느껴진다.
넬슨 만델라 그 자신이 된 것 같은 모건 프리먼의 연기, 그리고 언제나 감동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 또한 좋고, 맷 데이먼의 연기도 좋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딱지를 달고 있는 것 같은 정직한 스토리 텔링, 잔잔한 분위기, 다 좋다.

그냥 개인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자국민도 창피해할 정도로 형편 없던 팀이 기합 받았다고 짧은 시간 안에 월드컵 우승까지 이루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하는 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2002년 월드컵이 생각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겠지.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은 참 소름돋는 일이면서도, 아무리 인종차별은 그만하자 백번의 말을 하느니 다른 건 다 재쳐두고, 형편없는 자국 럭비팀에 지원해서, 스포츠로 국민을 대동단결 시켜버리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현명함은 찬탄할 만하다.

흑백 차별을 다룬 영화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영화도 많다.
그 영화들 마다 항상 등장하는 클리쉐들이 있기 마련인데, 어떤 영화에서는 그 클리쉐가 너무 빤히 내다보여서 보는 사람을 부끄러워지게도 만들지만, 이 영화처럼 그 클리쉐를 이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온건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싶었다.
먼저 말했듯이, 이 영화는 넬슨만델라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영화도, 형편 없던 럭비팀이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하기까지를 다룬 스포츠 성공 영화도 아니다.
자국의 현실을 안타까이 보면서도, 억지로 바꾸려 노력하지 않고 조금 더 온건한 방법으로 국민을 바꾸어낸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랑을 느낄수 있는 영화이고, 인간이 자신과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만드는 인간애에 관한 영화이다.
걸작이라기엔 영화가 너무나 소박하지만, 보는 내내 가슴에서 무언가 꿈틀댔던 영화.

*인빅터스가 무슨 뜻인가 싶어서 내가 모르는 영어단어인줄 알았는데, 라틴어로 "굴하지 않는"이라는 뜻이란다.
영화속에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로 인빅터스라는 시를 읊는데, 아아... 모건 프리먼 목소리는 언제들어도 너무나 감동적이다.
만수무강하소서. 모건 할아버지, 클린트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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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 Chlo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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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게된 <클로이>는....뭐랄까?
아주 훌륭한 영화는 되지 못했지만, 매력적인 영화는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정보를 그닥 찾아보지 않고 극장을 찾는 편이라서, 트레일러를 제외한 어떤 정보도 잘 보려고 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왠지 트레일러만 보고 뭔가 음모같은 것이라던가, 이 매력적인 여자 클로이에게 암울한 뒷배경이 있다던가-
뭐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영화를 먼저 본 사람으로써, 앞으로 볼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를 철저히 치정드라마에 입각해서 감상하시라.
그렇다면 괜찮은 영화가 나올테고, 더이상 뭔가를 바란다면 욕나오는 졸작이 될지도 모를테니.
이 영화는 훨씬 더 단순명료하다.

기대했던 점에서 조금 어긋난 것을 제외하고는 <클로이>는 꽤 괜찮은 영화였다.
재밌다기보다는 야릇하고 매력적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영화 되겠다.
이제 여신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초절정 매력만점 흡입력 만점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즐겁다. (아아..어찌나 예쁘시던지...!!!!!!ㅠ ㅠ<-라고 말하기엔 아만다가 너무 어리긴 하지만...)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나이들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까지나 매력적인 여자이고 싶은 캐릭터도 충분히 이해가고, 그럼으로써 남편을 의심하게 되는 뒷배경이나 자꾸만 클로이를 만나면서 확인하고 싶은 것 또한 설득력있다.
아마도 이 여자는 클로이를 만나면서, 남편을 보고싶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매력적이었던 여자.
한때 자신도 반짝 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아가씨였다는 사실을 클로이를 통해 대리만족 하고싶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 과정이 좀 비참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제목은 "클로이"인데, 주인공은 클로이가 아닌 줄리안 무어였구나 싶은 것은 시종일관 줄리안 무어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인데, 그에따라 다른 주인공들의 깊이가 약해서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긴 하다. (클로이의 마음이라던가, 남편이나 아들의 마음은 솔직히 그냥 추측만 해볼 뿐이랄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는 영화라, 사실 생각보다 약간 시시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누가 뭐래도 허전한 결말부분은 나 역시 불만족이긴 하지만, 그래도 단순히 몰입해서 보기에는 괜찮았다.
(글쎄...반전이라기엔 뭣하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의 이야기는 영화를 충실히 보았더라면 예측 가능하다.)
영화 전반적으로 흐르는 에로틱한 무드도 천박하지 않은 수준에서 꽤 잘 뽑아낸듯한 느낌도 들고 말이다.
요즘 인생이 무료하여 자극적이고 재미난 영화를 보고싶다면, 적극 추천해본다!
나는 무척 졸린 상태로 극장을 갔는데도 1분도 졸지 않고 열심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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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볼라 밀리언셀러 클럽 107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작가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색깔을 조금 달리한 것같다. 물론 이전의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역시 완전히 추리소설에 가깝다고 할수는 없지만,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기이한 사건보다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 싶고, 그에 따라서 주인공들이 어떤 사건에 개입된다기보다는 어떤 사건을 거치고 나오면서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 나가는 성장드라마에 가까워진 것 같다.
그래도 <다마모에>에서는 사람을 향한 일말의 희망이나 따스함이 남아있었는데, <메타볼라>에서는 한없이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심정만 전달될 뿐이다. 어쩌면 <다마모에>가  저 나름대로 풍파를 다 겪어온 중년을 넘어선 여자의 이야기이고, <메타볼라>가 어찌됐든 현재는 이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까놓고 말해 이 책에는 희망이 없다.

어느 날 깨어보니 깊은 산속. 왜 이런 곳에 버려져있는 건지 알지도 못한채 산을 내려가려던 <나>는 자신처럼 산을 내려가려던 한 청년을 만난다. 잘생긴 얼굴에 여유로움과 권태를 덕지덕지 바르고, 허우대만 멀쩡한 한량인 이 남자의 이름은 아키미쓰. <나>를 주워준 생명의 은인이며, 깊은 산속에서 기억상실인 채로 깨어난 <나>에게 긴지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다.
이렇게 산을 내려온 가진 것 없는 두 청년은 마침 잘생긴 아키미쓰에게 반해버린 연상녀의 집에서 전전하다가, 귀찮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자 그 집도 나와버린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긴지가 가까쓰로 취직하게 되고, 자신을 최고의 리조러버라고 생각하는 아키미쓰가 해안봉사단으로 들어가게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서로 다른 인생을 각자 살아가게 된다.

두 청년의 인생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면서, 기리노 나쓰오는 이 책을 통해 사회에 짓밟히고 잡아먹히는 청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애초에 가진 것 없는 긴지도, 보통사람보다 타고난 것이 많아 자신의 노력만 있었더라면 누구보다도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아키미쓰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물을 받고, 그 크기에 알맞는 절망을 선물받는다.
이제 조금 희망의 빛이 보였다 싶으면 나타나는 갖가지 절망들, 도저히 한 곳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의 시스템, 자신도 어쩔수 없는 감정의 문제 등등.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자꾸만 찾아오는 절망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은  "내가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열심히 살았나?"하고 말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두 청년의 삶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답답함에 가슴을 치게 되고, 보다보면 괜시리 나까지 절망에 물들어버려서, 읽는 내내 이런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긴지가 꼭 나같아서 참 괴로웠다.
성실한 사람은 언젠가는 인정받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은 인정받을 뿐만이 아니라 이용도 당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이지만,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사는 내내 끝없이 주어지는 아주 보잘 것 없는 희망을 믿고 살아가기에 삶의 절망은 너무 거대하고 가혹하다.
기억을 잃은 긴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후에 그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받았던 절망은 또다시 그를 찾아올 것이고, 그가 또 똑같은 일을 저질러 버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쉽사리 깨어지는 가족이라는 허상. 그 허상에 기대어 살다가 그것이 파괴되어버렸을 때 남겨지는 엄청난 무력감.
그렇게 세상을 나와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건만, 고작 이런 거라니....
절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그리고 또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우리는 개구리 왕눈이도 아니고 캔디도 아니기 때문에, 대체 이런 걸 몇번이나 반복해야 스스로 만족할 만한 행복을 얻을수 있는건지 아무도 알지 못해서 더 절망에 빠져든다.
긴지의 말처럼, 절망이 가져다주는 건 또다른 절망일 뿐 희망이라던가 행복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닐런지도 모른다.
인생이 동화라면 자꾸 넘어지고 일어서면 강해져야 되는데, 의욕적으로 다시 일어섰는데도 자꾸 넘어지면 주저앉고 싶은 것이 인간이니까.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몇번이나 그만 읽자 싶었는데, 그래도 왠지 이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한 마음에 끝까지 읽어버렸는데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너져버리는 것 같았다.
절망에 절망을 거듭한 끝에, 그들이 얻게되는 것은 또다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실낱같은 희망 하나 주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뜬구름잡는 희망을 쥐어줄 바에는 차라리 절망속에 빠뜨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결국 크게 일어설 것이 아니라면, 그냥 이대로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살아지니까 산다고, 눈뜨면 또 내일이니까 산다고-.
도저히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망속에 빠져서도,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거짓말 하지 말고 차라리 생존하기 위해 살아있다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리라.

기리노 나쓰오의 작풍은 이전과 많이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소설이 좋다.
쉬운 말로 희망을 얘기하지 않고, 그래도 세상 살아 볼 만 하다는 말로 쉽게 위로하지 않으니까.
무력감만 느끼게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 잡아먹히는 청춘에 대한 기리노 나쓰오의 한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녀의 이전의 소설들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되었다는 것.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쓰고 있다는 것.
어쩌면 세상에서 우연히 이런 청년을 만나면 우리는 참 한심한 인생들이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보면 나쁜 사람 없듯이, 저들도 저들 나름대로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는 것- 지지리 운도 없었고, 절망에 다리가 부러져 무력감만 거대하게 부풀려진 채 폐배감에 물들어버렸다고- 그렇게 그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 줄 수는 없을까.
더 희망을 가지라 말하지 못해도, 더한 절망감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또 세상이 그렇게 녹록치 않지....


p.s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외국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주인공의 삶에 개입하거나,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왜일까. 일본소설에서 나타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조금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녀가 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대책없이 고독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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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0-02-2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읽으면 정말 우울해져요....

Apple 2010-02-28 07:08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왠지 현실같아서 더 우울해져요...ㅠ ㅠ읽는데 얼마나 갑갑했다구요..흑...
 
울프맨 - The Wolf M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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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보고싶었던 딱 두가지 이유. 하나는 빅토리아시대 영국이 배경이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베네치오 델토로 때문에.
베네치오 델토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나오는 영화마다 열렬히 쫓아볼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영화를 유독 기대했던 것은 베네치오 델토로에게서 나는 늘 늑대를 보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 적절한 캐스팅이라 생각되어서 룰루랄라 <울프맨>이 개봉하기를 기다렸지.
다 보고나서의 감상은 그렇다.
공포를 기대하거나, 다른 -맨 시리즈들같은 액션을 기대하거나, 박진감넘치는 반전 대서사시를 기대하면 실망할 것이요, 베네치오 델토로의 짐승남 변신을 기대하거나, 비교적 잔잔한 스토리를 좋아하거나, 짐승남의 애달픈 비극을 사랑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나는 후자쪽 인간이었으니 그럭저럭 재밌게 봤던 것 같다.
(이상하게 나는 불쌍한 사연을 가진 짐승에 약하단 말이야....ex.킹콩)

내용은 간단하다. 배우로 활약하던 주인공이 형의 부고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언제나 약간 이상하고 냉정했던 아버지는 여전하고, 형의 죽음은 끔찍하며 기이했고, 남겨진 형의 약혼녀는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형의 약혼녀의 눈물어린 호소와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형의 기이한 죽음을 쫓다가 집시촌에서 늑대인간을 마주치게 되고, 늑대인간을 죽이겠다고 설치다가 물려버렸다.
그리고 결과는 누구나 예상하듯이 이 남자 역시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게 되어버린다.
이 영화를 "어쩌다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어 선의에 맞서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엄청난 오류이다.
오히려 이것은 고전적인 가족비극물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고,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고 볼수 있다.
종종 사람들이 지루하다 말하는 이유는 그 점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1세기 영화이면서도 20세기 이전의 방식으로 얘기를 전달하고 있으니까.
또, 늑대인간이 나와서 인간을 다 쓸어버리고, 킹콩처럼 여자를 지켜줬건만 짐승이기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류의 비극적인 애정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에도 역시 이 짐승남이 사랑하는 여자, 결코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 등장하기는 하나, 영화의 핵을 이루는 것은 짐승남과 여자의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이고, 영화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이다.

애정물보다는 비교적 가족비극물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무척 고전적이면서 멋진 영화였다.
영화의 CG부분, 남자주인공이 늑대로 변해가는 과정은 요즘 영화로써는 어쩌면 촌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의 고전적인 분위기에는 크게 누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음울하고 아름다운 배경들 또한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요소이고, 암울한 환타지에는 이 작곡가 만한 사람이 없다 싶은 대니앨프만의 음악도 좋았다.
어떤 장면들은 참 장중하고, 어떤 구도들은 참 아름답더라.
영화를 보면서 내용이 조금만 더 깊이감이 있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긴 했다. (특히, 아무리 비중이 그쪽에 있지는 않다 하여도, 여자주인공과의 사랑이야기는 건너뛰기 식이기도 했다.)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자연은 살아있는 생물인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태양이 밝음과 정열과 남성성의 상징이라면, 달은 차가움과 어두움, 여성성의 상징이다.
옛부터 보름달이 뜨면 정신병자들이 날뛰고, 범죄율이 급증한다고 했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눈앞의 사물을 확인할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밤을 두려워했다.
늑대인간이라던가 흡혈귀라던가 귀신이라던가, 밤과 달과 괴물이 얽히는 설화들이 많은 것은 그런 사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나는, 인간일까, 짐승일까.

p.s. 뭐니뭐니해도, 오랜만에 영화를 보니 너무 좋구나....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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