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느긋한 휴일 낮,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잠을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왜 였을까. 제목에서 오는 느낌탓인지, 나는 이 책을 "트릭깨기" 위주로 흘러가는 다소 가벼운 두뇌놀이 스타일의 소설일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니 왠걸? 반쯤 읽어가다보니 트릭이고 나발이고,  이 미스테리한 일련의 사건들의 배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못참게 될 지경이라, 꽤 두꺼운 분량에도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었다.
작가와 동명의 이름의 주인공을 탐정격 인물로 내세운 것이라던가, 탐정격인물과 함께 아버지가 보조 탐정격으로 등장하는 점이라던가, 작품의 스타일도 엘러리 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 노리즈키 린타로는 솔직히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앞으로는 가장 기다리는 작가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천재 조각가가 오랜 슬럼프를 극복하며, 투병생활 중에서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딸을 주인공으로 한 석고상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세상에 선보이기 전, 조각가는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조각가의 장례식 후 그 마지막 작품의 머리가 사라진다. 조각가의 회고전을 준비중이던 미술 평론가는 이 사건을 경찰에게 알리기보다는 조용히 해결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추리소설가가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사람을 모델로 해 만들어진 석고상의 머리가 잘려나갔다는 것은 일련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고장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조각가의 딸 에치카의 주변인물들을 조사하던 중, 예전에 그녀를 스토킹해왔던 질나쁜 사진가 도모토 슌의 존재를 알게되고, 사건이 점점 알수없는 미궁에 빠져들어가는 새에, 에치카가 실종된다.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들 가운데 가장 꼼꼼한 소설이 아니었나 싶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제목만큼 사건이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그 사건들의 내막에 깔린 이야기의 충격과 무게감에서 깊이를 느낄수 있는 작품이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추리소설가이기 이전에, 추리소설 평론가라고 하던데 이러한 내력 때문인지, 간간히 일본 추리소설에서 느낄수 있었던 얄팍한 깊이감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 자체가 갖가지 예술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고 느꼈고, 그로써 무척 지적인 소설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반면, 탐정격으로 등장하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존재는 여타 다른 소설들의 탐정격 존재들과는 다른 무척 평이하고 다소 어리석은(탐정이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캐릭터로 만들었는데, 이 점 또한 현실적이고 신선했다.
또, 여타 다른 일본 추리소설처럼 굳이 잔혹성을 필두에 세우지 않고, 다소 냉정하고 담담하게 사건의 내막을 파고들어가는데도, 소설속 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탄탄히 만들어놓았기 때문인지 내내 긴장감을 가지고 볼수 있었다.
전형적인 트릭깨기 스타일의 추리소설처럼 시작해 소설 중반을 지나면 질펀한 악연들과 그 악연들이 펼쳐내는 끔찍한 인간의 모습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의심과 오해, 오랜 증오와 잔혹한 이기심.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수 있는 이런 감정적인 문제들이 꼼꼼하게 만들어진 인물들의 관계성과 공정하게 주어지는 복선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초반부의 이야기들이 다소 늘어지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흩뿌려 놓기만 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책의 마지막을 다 확인하고 나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필요했던 과정임을 알게되었다.

나는 일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할 뿐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좋아하는 일본 추리 소설도 무척 한정적이다.
몇년간 읽었던 일본 소설들의 대부분이 다소 가벼운데다가, 언어적 유희나 사고방식의 전환을 통한 막판 반전 한방을 노린 소설이 많았었는데, 그런 소설은 킬링타임으로 읽기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고는 말할수 없겠더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 눈을 쏙 잡아끌었던 무척 즐거운 소설이었다.
이 책의 주요 사건의 내막들은 유행하는 반전 소설들처럼 한방에 속아넘어가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않는데, 차분히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간의 모든 복선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지나갔던 말한마디들이 꼭 들어맞는 퍼즐처럼 맞춰져서 책의 마지막 한장까지도 버릴 이야기가 없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의 시초이자, 마지막이 되는 결말부분의 론도 형식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작가 자신이 흥분하지 않되, 세련되고 차분하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매력을 가졌던 소설인데, 아마도 이런 건 재작년에 읽었던 <제물의 야회>이후로 처음으로 느끼는 흥분감이었던 것 같다.

이 대단한 소설을 덮으면서 나 역시 기시 유스케의 찬탄에 동감할수 밖에 없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라고.
노리즈키 린타로의 다른 소설들이 또 언제 출간 될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탄신일을 기념하야, 3월 10일 0시를 치자마자 보게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바타를 보고나오면서 3D가 살짝 궁금해졌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꼭 3D로 보자 싶었는데 역시 인기만발 아이맥스 디지털 3D였기 때문에, 새벽에 볼 수밖에.
아..뭐랄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내용자체야 조금 실망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팀버튼스러운 으스스하며 귀여운 분위기는 여전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양념이 하나 빠진 분위기. 조금 더 그로테스크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건 그냥 개인적인 바램일뿐이고....
사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새로 경험하는 디지털 3D가 너무나 신기해서 정신을 쏙 빼놓고 보았다.
입체영상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는데, 눈앞까지 다가오는 인물, 원근감이 확실히 느껴지는 공간감같은 건 정말 감탄할 정도로 신기해서 보는 내내 그것만 즐기는데도 재밌어 죽겠더라.
(디지털 3D는 영화배급사 로고부터 입체다. 감동..ㅠ ㅠ)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기발하다 싶을 정도로 톡톡 튀면서도 아름다워서 언젠가 써보리라 나도 몰래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었고, 기괴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들도 만족! 총천연색의 동화속 세상도 예쁘고 귀엽고 흥미로웠다.

영화를 본건지 디지털 3D를 구경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보다가 어떤 사람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뭔가를 잡으려는 손짓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실 나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았다;;
다 보고나오면서 다음 3D 영화도 빨리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무리 봐도 신기해 신기해....♥

p.s 생일을 기념해서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 친구에게 감사를....♥
p.s 2. 언젠가 집에서도 3D 영상을 감상할 날이 오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넬슨만델라를 소재로 삼은 영화이지만, 정치영화가 아니고, 럭비를 소재로 삼은 영화지만 스포츠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평화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
넬슨 만델라와 남아공의 현실을 바탕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났는데, 정치 영화도 스포츠 영화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드라마. 어느새 부터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추구하던 그것이 이 영화에도 녹아있었다.
잔잔하면서 지루하지 않고, 과도하게 끓어오르지 않으면서 열정이 느껴진다.
넬슨 만델라 그 자신이 된 것 같은 모건 프리먼의 연기, 그리고 언제나 감동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 또한 좋고, 맷 데이먼의 연기도 좋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딱지를 달고 있는 것 같은 정직한 스토리 텔링, 잔잔한 분위기, 다 좋다.

그냥 개인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자국민도 창피해할 정도로 형편 없던 팀이 기합 받았다고 짧은 시간 안에 월드컵 우승까지 이루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하는 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2002년 월드컵이 생각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겠지.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은 참 소름돋는 일이면서도, 아무리 인종차별은 그만하자 백번의 말을 하느니 다른 건 다 재쳐두고, 형편없는 자국 럭비팀에 지원해서, 스포츠로 국민을 대동단결 시켜버리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현명함은 찬탄할 만하다.

흑백 차별을 다룬 영화도,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영화도 많다.
그 영화들 마다 항상 등장하는 클리쉐들이 있기 마련인데, 어떤 영화에서는 그 클리쉐가 너무 빤히 내다보여서 보는 사람을 부끄러워지게도 만들지만, 이 영화처럼 그 클리쉐를 이용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온건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싶었다.
먼저 말했듯이, 이 영화는 넬슨만델라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영화도, 형편 없던 럭비팀이 럭비월드컵에서 우승하기까지를 다룬 스포츠 성공 영화도 아니다.
자국의 현실을 안타까이 보면서도, 억지로 바꾸려 노력하지 않고 조금 더 온건한 방법으로 국민을 바꾸어낸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랑을 느낄수 있는 영화이고, 인간이 자신과 다른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만드는 인간애에 관한 영화이다.
걸작이라기엔 영화가 너무나 소박하지만, 보는 내내 가슴에서 무언가 꿈틀댔던 영화.

*인빅터스가 무슨 뜻인가 싶어서 내가 모르는 영어단어인줄 알았는데, 라틴어로 "굴하지 않는"이라는 뜻이란다.
영화속에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로 인빅터스라는 시를 읊는데, 아아... 모건 프리먼 목소리는 언제들어도 너무나 감동적이다.
만수무강하소서. 모건 할아버지, 클린트 할아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타볼라 밀리언셀러 클럽 107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작가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색깔을 조금 달리한 것같다. 물론 이전의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역시 완전히 추리소설에 가깝다고 할수는 없지만,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기이한 사건보다는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 싶고, 그에 따라서 주인공들이 어떤 사건에 개입된다기보다는 어떤 사건을 거치고 나오면서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 나가는 성장드라마에 가까워진 것 같다.
그래도 <다마모에>에서는 사람을 향한 일말의 희망이나 따스함이 남아있었는데, <메타볼라>에서는 한없이 절망적이고 안타까운 심정만 전달될 뿐이다. 어쩌면 <다마모에>가  저 나름대로 풍파를 다 겪어온 중년을 넘어선 여자의 이야기이고, <메타볼라>가 어찌됐든 현재는 이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단도직입적으로 까놓고 말해 이 책에는 희망이 없다.

어느 날 깨어보니 깊은 산속. 왜 이런 곳에 버려져있는 건지 알지도 못한채 산을 내려가려던 <나>는 자신처럼 산을 내려가려던 한 청년을 만난다. 잘생긴 얼굴에 여유로움과 권태를 덕지덕지 바르고, 허우대만 멀쩡한 한량인 이 남자의 이름은 아키미쓰. <나>를 주워준 생명의 은인이며, 깊은 산속에서 기억상실인 채로 깨어난 <나>에게 긴지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다.
이렇게 산을 내려온 가진 것 없는 두 청년은 마침 잘생긴 아키미쓰에게 반해버린 연상녀의 집에서 전전하다가, 귀찮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자 그 집도 나와버린다. 가진 것 하나 없는 긴지가 가까쓰로 취직하게 되고, 자신을 최고의 리조러버라고 생각하는 아키미쓰가 해안봉사단으로 들어가게되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서로 다른 인생을 각자 살아가게 된다.

두 청년의 인생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면서, 기리노 나쓰오는 이 책을 통해 사회에 짓밟히고 잡아먹히는 청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애초에 가진 것 없는 긴지도, 보통사람보다 타고난 것이 많아 자신의 노력만 있었더라면 누구보다도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아키미쓰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물을 받고, 그 크기에 알맞는 절망을 선물받는다.
이제 조금 희망의 빛이 보였다 싶으면 나타나는 갖가지 절망들, 도저히 한 곳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의 시스템, 자신도 어쩔수 없는 감정의 문제 등등.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자꾸만 찾아오는 절망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은  "내가 겨우 이런 것 때문에 열심히 살았나?"하고 말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두 청년의 삶을 가만히 바라보다보면 답답함에 가슴을 치게 되고, 보다보면 괜시리 나까지 절망에 물들어버려서, 읽는 내내 이런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긴지가 꼭 나같아서 참 괴로웠다.
성실한 사람은 언젠가는 인정받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은 인정받을 뿐만이 아니라 이용도 당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이지만,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사는 내내 끝없이 주어지는 아주 보잘 것 없는 희망을 믿고 살아가기에 삶의 절망은 너무 거대하고 가혹하다.
기억을 잃은 긴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후에 그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 받았던 절망은 또다시 그를 찾아올 것이고, 그가 또 똑같은 일을 저질러 버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쉽사리 깨어지는 가족이라는 허상. 그 허상에 기대어 살다가 그것이 파괴되어버렸을 때 남겨지는 엄청난 무력감.
그렇게 세상을 나와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건만, 고작 이런 거라니....
절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그리고 또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우리는 개구리 왕눈이도 아니고 캔디도 아니기 때문에, 대체 이런 걸 몇번이나 반복해야 스스로 만족할 만한 행복을 얻을수 있는건지 아무도 알지 못해서 더 절망에 빠져든다.
긴지의 말처럼, 절망이 가져다주는 건 또다른 절망일 뿐 희망이라던가 행복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닐런지도 모른다.
인생이 동화라면 자꾸 넘어지고 일어서면 강해져야 되는데, 의욕적으로 다시 일어섰는데도 자꾸 넘어지면 주저앉고 싶은 것이 인간이니까.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몇번이나 그만 읽자 싶었는데, 그래도 왠지 이들의 삶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한 마음에 끝까지 읽어버렸는데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너져버리는 것 같았다.
절망에 절망을 거듭한 끝에, 그들이 얻게되는 것은 또다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실낱같은 희망 하나 주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뜬구름잡는 희망을 쥐어줄 바에는 차라리 절망속에 빠뜨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결국 크게 일어설 것이 아니라면, 그냥 이대로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살아지니까 산다고, 눈뜨면 또 내일이니까 산다고-.
도저히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망속에 빠져서도,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거짓말 하지 말고 차라리 생존하기 위해 살아있다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리라.

기리노 나쓰오의 작풍은 이전과 많이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소설이 좋다.
쉬운 말로 희망을 얘기하지 않고, 그래도 세상 살아 볼 만 하다는 말로 쉽게 위로하지 않으니까.
무력감만 느끼게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 잡아먹히는 청춘에 대한 기리노 나쓰오의 한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녀의 이전의 소설들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바로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되었다는 것.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쓰고 있다는 것.
어쩌면 세상에서 우연히 이런 청년을 만나면 우리는 참 한심한 인생들이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보면 나쁜 사람 없듯이, 저들도 저들 나름대로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는 것- 지지리 운도 없었고, 절망에 다리가 부러져 무력감만 거대하게 부풀려진 채 폐배감에 물들어버렸다고- 그렇게 그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봐 줄 수는 없을까.
더 희망을 가지라 말하지 못해도, 더한 절망감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또 세상이 그렇게 녹록치 않지....


p.s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을 읽다보면 항상 외국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주인공의 삶에 개입하거나,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왜일까. 일본소설에서 나타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조금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녀가 보고 있는 일본 사람들은 대책없이 고독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0-02-2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읽으면 정말 우울해져요....

Apple 2010-02-28 07:08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왠지 현실같아서 더 우울해져요...ㅠ ㅠ읽는데 얼마나 갑갑했다구요..흑...
 
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거의 다 읽을 때까지 이 책의 제목이 왜 "신성한 관계"일까 의아했었는데, 책을 거의 다 읽고나니 알게되었다.
이 책의 전 내용을 통틀어 데니스 루헤인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하고.
이 시리즈의 바로 전 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 굉장한 생명의 위협과 함께 마음으로 아끼고 있던 사람을 잃은 박탈감에 빠져있던 켄지와 제나로가 오랜 세월 연인이라기엔 부족하고, 친구라기엔 서로의 삶을 연민을 가지고 대하는 그들이 "신성한 관계"-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를 깨닫고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 반대로 신성한 관계로 맺어져 각자에게 지옥을 선사하려는 악질적인 관계로 거듭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악질적인 관계에는 항상 거짓과 위선이 등장한다.

트레버 스톤이라는 어마어마한 갑부가 시한부를 받아놓고 패트릭과 앤지를 납치해온다.
그는 엄청난 돈을 쥐어주며 패트릭과 앤지에게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고 얘기한다.
하루하루 삶을 갉아먹어가는 육식성의 슬픔을 논하면서.
지난번 사건으로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당분간 쉬기로 했던 패트릭과 앤지도 결국 이 어마어마한 돈에 무릎을 꿇고 사라진 딸 데지레 스톤을 찾아나서는데, 어머니와 남자친구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시한부 선고까지 겹치며서 엄청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던 데지레 스톤과 그녀의 주변인물들의 흔적을 일종의 사이비 종교인 슬픔 치유원에서 찾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데지레 스톤의 흔적이 눈앞에 보일때쯤에,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패트릭과 앤지는 진짜가 무엇이고 가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신성한 관계>는 켄지&제나로 전 시리즈 중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는 조금 약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에 따라서 깊게 생각하면서 봐야할 부분도 그닥 없는 편이었지만, 이야기가 다섯개나 되는데 이런 작품 하나 있다고 이 시리즈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부바의 활약이 가장 미미했기 때문에 아쉽긴 했지만...)
권력과 탐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점과 이 시리즈의 강력한 매력중 하나인 재치있는 대화법 또한 주제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안에서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다른 작품보다 조금 가벼워 보이는 이유는 이 작품의 결말이 어떤 한 사건을 종결시키는 의미를 지녔다기 보다는, 지긋지긋한 두 인물을 말그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나와버리는" 나름의 코믹함을 가지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 시리즈중 가장 패트릭과 앤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고, 저마다 상처입은 부분을 보듬어 안아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고.

그러나 가벼워 보인다고해서, 그것이 결코 깃털처럼 가벼운 것은 아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점철시키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서로를 신성한 관계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또다른 희망일테니까.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것에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을수가 있다.
외모, 성격, 사고방식, 취향, 지식의 유무, 보유재산 등등, 사람을 만나는데 누구나 조금씩은 보는 조건들일수는 있지만,
그 관계가 다른 차원의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특별한 무언가 있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내 인생만큼이나 네 인생도 가엽다 여기고,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노력부터가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완전히 타인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욕심이나 이기심은 사라지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 또는 "신성한 관계"라 부를지도 모른다.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이제 모두 읽게 되었다.
출간 순서대로 읽어서 패트릭과 앤지의 관계가 변화하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서, 언젠가 한번쯤은 이 시리즈를 순서대로 다 읽어보고싶다.
대체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