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기억
다카하시 가츠히코 지음, 오근형 옮김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 독특하다.
어떤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서 트라우마로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너무 충격적인 나머지 뇌에서 삭제가 들어가기도 한다.
예전에, 임신부가 아주 극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뇌에서 자체적으로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충격적인 기억을 삭제해버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본능에 가까운 기억상실인 셈이다.
 
아주 먼 얘기 말고 자기자신의 얘기를 상상해보자.
누구나 아주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을 정확히 기억해낼수는 없다.
어떤 기억은 생생히 떠오르고, 어떤 기억은 아주 잊혀졌으며,
어떤 기억은 반쯤만 남아서 앞뒤를 구분할수 없는 미스테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몇개쯤 있다. 잊어버리고 있었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생각나버리는 경우가.
고등학교때 언젠가 시험기간에 책상에 앉아있는데, 아주 충격적인 기억이 하나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기억인데, 별 사건없이 갑자기 떠올라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생각해보니 거의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이 희한하게도 모르던 도중에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나는 한번도 기억해내지 못했던 기억인데, 어떻게 그게 나도 모르는 새에 사고방식까지 바꿔놓은 계기가 된 것일까.
아마도 나는 그 사건을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니라
없었던 거라고 덮어두고 나서 이성적으로 차례를 맞추어 보기를 포기해버렸던 것이 아닐까.
그 때 쯤부터 나는 뒤를 돌아다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내 어느 부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살면서 종종, 어린시절에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한 장면 한장면씩이 어떠한 계기도 없이 연결되어서 생각날 때마다,
별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어렸을때라서 소름이 끼칠때가 있다.
그것은 거의 끼워맞추어진 퍼즐처럼 내 기억에 아직도 존재하지만,
떠올린 과정이 굉장히 뜬금없고, 그 기억속의 내 나이가 너무나 어리기 때문에,
이것이 환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만큼, 기억이 뇌에 남아져 있는 형태가 희한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환상이었다고 치부하기엔 그런 쓸데없는 기억을 만들어내서 뭐하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카하시 가츠히코의 "붉은 기억"은 간단히 말해서,
기억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일곱가지의 다른 이야기를 환상특급의 분위기로 풀어내고 있는 단편집이다.
단편속의 모든 기억은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의 트라우마로 작용하며, 파국으로 연결되어있다.
90년대에 나온 이 책이 지금와서는 어쩐지 좀 뻔해진 감이 있어서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고는 할수 없으나,
한여름밤, 누군가의 괴담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꽤 재미를 느낄수 있는 책이다.
언뜻 언뜻 소름끼치게 기분나쁜면도 존재하기 때문에, 겁이 많은 사람이한밤중에 읽는다면,
덜덜 떨면서 읽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환상특급이나, X파일류의 "진실은 저 너머에..."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만족할 만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진실은 기억안에..."로 바뀌어 있지만 말이다.
 
책 제목이 되어버린 <붉은 기억>은 너무나도 뻔해져버린 이야기라 조금 실망적이었지만,
식중독과 엄마 뱃속의 기억을 버무린 <살갗의 기억>이라던가,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이야기이지만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면 꽤 스산한 <뒤틀린 기억>이나,
마지막 한줄에 소름이 돋아버린 <머나먼 기억>은 무척 흥미로웠다.
아쉬운 점은 모든 이야기가 살인이나 죽음,강간과 연관되어 있는 점이지만,
짧게 끊어읽을 괴담류의 이야깃거리로는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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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1
키리노 나츠오 지음, 권남희 옮김 / 산성미디어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어릴 때 이명이 심했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어린 시절에 많이 예민했던 내가 새로운 환경에 놓여졌을 때 적응하지 못한 스트레스가
이명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엄마와 어딘가 다녀오다가 버스에서 자다가 내렸을때,
명절이라 부모님이 나를 친척집에 두고 갔을때,
낮잠중에 악몽을 꾸고 일어났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럴때마다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마치 귓속에서 보일러라도 돌아가듯이 소리는 웽웽대면서 기분을 한없이 몽롱하게 만들었다.
커가면서 차츰 이명은 사라져 갔지만, 그 기분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느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이런 느낌이었다.
현실인데 현실이 아닌 느낌.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전혀 종잡을수 없는 느낌.
 
기리노 나츠오의 책을 읽다가보면 종종 그런 느낌을 받는다.
특히 거의 황당무계하다고까지 말할수 있는 결말로 가면 꼭 그런 느낌이 든다.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척 기분이 나빠지고 동시에 몽롱해지면서 무서워진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내가 뭘 잘못본 것 같은 두려운 기분.
단지 시시한 결말이라고 말하기엔 뒤끝이 길어버리니,
이 해괴망측하고 당혹스러운 결말을 내버리는 작가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책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는 기리노 나츠오의 책 치고는 좀 유하다 했다.
어딘지 확실하게 땡기는 부분도 미미하고, 특유의 날카로운 혐오의 분해도 매우 미미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마지막까지 다 읽지 않았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히 충격적이라고 말할수 있는 이 결말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잃어버린 아이 유카의 시선으로 풀이해버린 것이 맞는지, 아니면 이것조차 꿈인지.
보고나서 어찌나 무서웠던지 다시 읽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사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닐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것을 무서워한다.
내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부분을 송곳으로 해체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뒤를 돌아다보지 않는 여자 카스미와 모든 것이 갖춰진 남자 이시야마가 사랑에 빠진다.
평범한 연애라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둘다 애가 둘이나 딸린 유부남, 유부녀.
한때의 불장난이 아닌, 진지한 감정으로 불타오르는 두 남녀는 겁도 없이 서로의 가족들과 다함께 별장으로 놀러간다.
그러다가 아이를 잃어버린다.
엄마 카스미를 묘하게 닮은 딸 유카를.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른다.
산중에서 잃어버린 아이의 생사를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산중의 마을이라 사람도 얼마 없고, 범인으로 지목될 만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
1년, 2년,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이.
유카를 잃어버린 순간, 카스미와 이시야마의 불타는 로맨스도 끝난다.
카스미의 권태로운 결혼생활도, 이시야마의 부족할것 없어보이는 결혼생활도 결국은 다 끝나버린다.
유카를 잃어버린 순간부터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다.
일찌감치 포기한 남편과는 다르게, 카스미는 몇년이고 유카를 찾아 헤맨다.
사랑에 빠져 아이를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이 끝장나버린 후에 놓아버린 것들을 하나씩 주워담기 위해서 였을까.
홀홀단신으로 유카를 찾아헤매는 카스미앞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위암환자이자 전직 형사인 우츠미가 가새해
함께 찾기 시작한다.
우츠미는 왜 거의 죽어가면서 남의 아이를 돈도 받지 않고 찾아주겠다고 나섰을까.
 
카스미와 우츠미가 찾는 것은 진짜 유카였을까.
아니면 앞을 보느라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던 두 사람이 버려놓았던 것들을 찾는 것일까.
보는 내내 기분이 거의 바닥까지 기어내려 갔다.
무엇을 찾아야하는지, 무엇을 향해 가야하는지, 어떤 것들을 남겨두어야하는지
살면서 많은 것들이 희미해져간다.
문득 문득 그런 사실이 떠올라버리면 세상은, 그리고 살아가는 것은 참 두려워져 버린다.
무언가 하나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모든 것이 산산히 부숴지지나 않을까.
조각 하나가 빠지면 실패해버리는 도미노처럼.
그만큼 사는 것은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카스미와 우츠미가 유카를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뭣하다.
유카가 왜 없어졌는가.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명쾌한 해석을 바란다면 분명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을 소설이다.
보고난 후에 마음에 찬바람이 쌩쌩 돌 정도로 공허한 느낌이 남는다.
슬프고, 너무나 무섭고, 허무하다.
 
 
p.s 전체 오타라고 해야할지 일부러 이렇게 한건지 모르겠다.
책의 원제는 "부드러운 볼"이고, "부드러운 볼"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던데,
다시 찍어낸 책의 제목은 "내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왜 책 한장 한장마다 "부드러운 볼"이라고 당당히 써있는것인지...-_-;
어쩐지 표지와 제목만 살짝 바꿔내고 내용물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듯한 출판사가 약간 괘씸해진다.
한권에 내도 될만한 분량을(합치면 550페이지 정도?) 두권으로 나눠낸 것도 괘씸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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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 메피스토(Mephisto) 2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무언가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들의 내면은 공허하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빠져있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할수 있는 마지막 방법인 사람들의 내면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것이 약이든, 마약이든, 음식이든, 술이든, 담배든, 섹스든.
그리고 여기엔, 뻔뻔하기 그지없는 섹스 중독자가 있다.
 
척팔라닉의 섹스중독자의 이야기 "질식".
첫장을 피자마자 독자는 작가에게 욕을 먹게된다.
이딴 얘기 읽을 시간이 있으면 가서 TV나 보라고 꺼져버리란다.
난잡하기 이를데없는 섹스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보고있노라면, 저절로 속이 울렁해져서 질식할 것 같다.
척 팔라닉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다 읽고 나서도 내가 뭘 봤는지 긴가민가해지는 소설.
한참후에나 얘기의 전체 굴곡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그때서야 알게된다.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고 봤지만, 다 보고나니 재밌었다고.
그래서 척팔라닉은 내가 지금까지 본 작가들중에서 가장 특이한 작가이다.
더럽게 재미없는데 다보고나서는 무지하게 끌린다.
이게 중독. 안되는 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중독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섹스중독자 빅터 맨시니의 삶은 어쩐지 척박해보인다.
그가 살아가는 방법은, 질식을 연기해서 타인의 동정을 얻어내는 것.
그것으로 엄마의 요양원 비용도 대고, 먹고살고 있다.
참 쓰레기같은 인생이지. 그는 타인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타인은 그가 없으면 더 잘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공생관계. 어느 한쪽이 비대하게 커지고, 다른 한쪽은 더없이 초라해지는 공생관계.
하지만 이런 루저로써의 삶을 빅터 맨시니는 조금도 창피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지껄인다고나 할까.
자기자신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용감한 빅터 맨시니.
더럽게 꼬였지만, 아주 최악의 인간은 아니고, 섹스 중독자이지만 그게 사는 이유는 아니며,
거칠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꽤 쿨한 인간.
척팔라닉소설의 주인공들은 참 독특하다.
루저인 동시에 어떤 면으로는 꽤 당당한 자존심을 지닌 인간들이다.
이 소설이 자전적인 얘기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섹스 중독자의 이야기라고 난잡한 섹스파티를 상상한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척팔라닉의 소설에서는 섹스가 추잡한 동시에 건조할테니.
탄탄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전개를 바란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척 팔라닉의 소설은 읽기가 버거울 정도로 산만하다.
다른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도 일기처럼 사건을 나열하는데 비해서,
척 팔라닉의 소설은 현상을 설명하기 보다는 감정부터 먼저 나가버린다.
그래서 다 읽는데는 너그러이 봐주는 관용과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읽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거의 마지막까지 긴가민가하기 때문에-
죽어라 집중이 안되고, 몇페이지 안되면서 죽어라 책장도 넘어가지 않지만,
보고나면 또 빠져버리는 것은 뭐란 말인가.
 
지난 번에 읽었던 다이어리 보다는 덜 충격적이지만, 이 소설을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정도로
척팔라닉다운 책이었다.
울렁거리는 더없이 몽환적인 느낌.
자기중심적인 전개구조.
읽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막 나가면서도, 그럼에도 매력적인 신기한 척 팔라닉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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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2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척 팔리니는 패스했습니다 ㅠ.ㅠ

Apple 2006-04-2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그게 현명한지도..-_-;
 
아웃 1
기리노 나츠오 지음 / 다리미디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그로테스크를 읽은 후에 읽은 아웃.
순서를 뒤집어서 읽었지만, 어쩐지 잘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로테스크 역시 무척 재밌었고, 후유증도 긴 소설이었지만, 아웃만 하랴.
무섭도록 재밌고, 공허하며, 역겹기까지하다.
추리소설이라고는 하나, 거의 공포소설에 가까울 정도로 무서운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이 불결한 세상과 인간들에게 소름이 끼쳐졌다.
 
사건은 순종적인 현모양처형 주부가 남편을 우발적으로 교살해버리면서 시작된다.
이 살인으로 같은 도시락공장에서 일하는 세명의 여자들이 이 여자의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잘게 다져 쓰레기처럼 나누어 버린다.
거의 성공적이라고 할수 있을 만한 은폐작전임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실수로 이 토막살인사건은 세상의 주목을 받게된다.
만약 이 토막살인사건을 위한 수사가 내용의 전부였다면 무척 평범한 추리소설이 되어버렸겠지만,
이 사건은 여기저기 예측하기 힘들게 튀어나가 버린다.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가 하면,
살인을 저지른 여자는 점점 범죄사실을 잊어가기도 하고,
한번 경계를 넘은 이 아줌마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업을 시작하게 되고,
범인으로 지목된 자는 복수하기위해 실종된다.

 
소설속의 모든 주인공들이 삶은 공허하고 갑갑하다.
도시락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네명의 아줌마들 중에서, 그나마 경제사정이 나은 마사코의 삶은
이미 오래전에 멈춰버린 시계와도 같다.
특별한 이유없이 서서히 망가져가기 시작한 가정은 되돌이킬수 없이 서로에게 문을 닫아버렸다.
남편은 퇴근후면 자기방에 틀어박혀 한마디도 걸지 않고, 퇴학당한 아들은 몇년째 말을 하지 않는다.
20년간 금융업계에서 일한 마사코는 능력이 있음에도 나이든 여직원이라는 경멸을 받으며 회사에서 나올수 밖에 없었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니 겨우 대화한마디 제대로 오고가지 않는 가정에서 피신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생활루트와는 정반대로, 야간에 일하는 도시락공장에 다닌다.
누구도 믿지 않고, 냉철하고 머리가 좋으며 책임감도 투철하지만,
마사코의 기계같은 행동은 무척 공허하다.
 
"사부"라는 별명으로 불뤼우며 일처리를 무척 잘하고 모성애와 책임감이 뛰어난 요시에의 삶은
말만들어도 갑갑한 상태.

남편은 죽었고, 몸져 누워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들어야하며,
큰 딸은 멋대로 집을 나가 결혼했으면서 틈만 나면 엄마의 뒷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이고,
아직 어린 작은 딸 역시 점점 삐뚤어져가고 있다.
좁아터진 집에는 언제나 분뇨냄새로 가득하고, 작은 딸이나마 2년제 대학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수학여행비조차 대주지 못해 남에게 빌려야만 하는 가난하고 딱한 주부.
살림이고 생활이고, 자기가 없으면 모두 망가져버리기 때문에,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고, 살림을 하면서도, 도시락공장은 단하루도 쉴수가 없다.
언젠가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 도망치기를 바라면서도,
자기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버릴수 없는 요시에는 소설속의 어느 주인공보다도 따뜻하고 인간적이지만,
그런 책임감과 모성애 때문에 돈을 벌기위해 역겨운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되지만,
요시에의 삶은 벗어날수 없을 것처럼 갑갑하다.
 
뚱뚱한 쿠니코는 허영심에 가득찬 여자이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써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명품백이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고 폐배감에 젖어 빚까지 지면서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그런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려는 걸까.
멍청하고, 책임감도 없으며, 입도 싸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흐트러지는데에 언제나 껴있는 인물이다.

 
가장 싫은 것은 남편을 죽인 야요이.
30대 주부로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타인에게 상냥하지만,
멍청하고 사람을 너무나 잘 믿어버리는 데다가, 어떤 면으로는 무척 잔인하고 죄의식이 없다.
애초에 남편을 죽인 것은 야요이이고, 멋대로 마사코에게 의지해 버리고 책임을 전가시킨 주제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결국 그들에게 등을 돌려버린다.
의지력없이 타인에게 기대기만 하는 존재.
남편을 죽이고도 일말의 죄책감따위 갖지 않으며, 서서히 자기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조차 망각해간다.
야요이는 비겁하다.
 
치열하면서도 공허한 소설속의 삶들은 결국 탈출구를 찾았을까.
잔인무도한 살인자이면서도, 나쁘다고만 매도할수는 없는 주인공들이
갑갑한 현실로부터 Out할수 있기를...
 
 
기리노나츠오는 어쩌면 인간 혐오자가 아닐까.
그로테스크처럼 독자로 하여금 소설속의 모든 인물에게 조금의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진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웃을 읽는 내내 작가자체가 인간을 무척 싫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쌓였다.
작가가 어느 주인공에도 진심으로 애정을 쏟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가슴아픈 사연이 있어도, 불쌍한 면이 있어도,
동정을 하려는 찰나에, 주인공들은 어느새 시체처럼 차가워진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냥 생동감과 현실감이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나도 인간 혐오자란 소리가 아닐까.
 
시종일관 차가운 태도를 유지한 채, 소설은 마구 뛰다가 갑자기 멈추기도 한다.
도저히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극단적인 플롯들은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교묘하게 잘 연결되어서
마치 모든 것이 단절된 현실의 악몽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기리노 나츠오는 무척 멋진 작가이다.
극단과 현실을 오고가면서, 독자로 하여금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줄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끼게한다.
그것은 당연한 듯이 반복되면서도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평화롭진 않아도 비정상적이지는 않은 일상의 공포.
그것을 들켜버린 당혹스럽고 창피한 기분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몽환적인 영혼의 소통.
기리노 나츠오의 소설은 이질적이면서도 그 공허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녀의 책에서의 섹스는 무척 폭력적이면서 애절한 구석이 있다.
섹스는 살인과 연결되어있고, 살인자는 피살자를 증오하면서 사랑한다.
언제나 공허하기 때문에, 인생의 단 한가지 빛줄기도 찾을수 없기 때문에,
섹스로 영혼을 교감하고 상대방의 속으로 녹아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껴안으며, 증오하고, 흥분하며, 찌른다.
변태성욕과 공허한 영혼.
새까만 구멍으로 쑥 꺼져들 듯이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
그들은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사이코적이지도 않다.
그녀의 소설에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때는 폭력과 섹스가 오갈 때 뿐이다.
건조하고, 슬프게도...
 
 
2권으로 내도 되었을 분량을 3권으로 나눠낸 얍삽한 출판사가 좀 밉지만,
800페이지, 3권짜리가 되는 소설이 한권짜리 소설보다 더 박진감넘쳤다.
무척 재밌으면서 무섭고 슬프다.
몹시 마음에 드는 작가라서 기리노 나츠오의 다른 소설들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위가 극도로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꼭 추천해주고 싶다.
 
 
p.s 작가의 프로필 사진을 보다가, 기리노 나츠오의 얼굴이 소설속의 마사코의 외향 묘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잔인해보이고 건조한, 바싹 마른 속을 알수 없는 아줌마.
그런 인상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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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4-1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오싹합니다.
세 권이라니,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보관함에.
(땡스투는 아까 눌렀는데...)

Apple 2006-04-1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정말로 오싹하지만, 또 오싹하게도 재밌기도 하다는...^^
세권이지만 한권처럼 빨리 읽을수 있어요..^^
 
베누스의 구리 반지 - 로마의 명탐정 팔코 3 밀리언셀러 클럽 28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희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조금 뒤늦게 읽은 책 "베누스의 구리반지".
(베누스는, Venus 비너스란다.)
개인적으로 역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중에 그리스라던가 로마의 얘기는 더더욱 관심이 없어서
읽기 꺼려졌던 것이 사실.
막상 펼쳐든 책은 생각보다는 훨씬 역사물에서 멀어진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읽는 팔코 시리즈인데, 이책이 타 추리소설에 비해서 좀 이색적이라고 느껴지게하는 이유는
탐정 팔코의 캐릭터때문이었다.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치고는 무척 속물스럽고, 재치만점에 옷차림에 신경쓰는 화려한 성질을 가진 탐정.
길을 돌아다닐 때마다 근처 여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듯이 구는 로맨티스트.
타 추리소설의 탐정들이 냉소적이거나, 어딘가 가슴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는 점에 비한다면, 어딘지 나사빠진 장난꾸러기같은 팔코의 이미지는 독특하다고 할수 있다.
보는 내내 귀엽다고 느낀 것은 팔코의 행동 하나하나의 묘사가 어쩐지 바람끼 다분한 한량같은 이미지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팔코의 추리는 어딘지 날카로운 면이 없이 소박한 정황들을 이용한 잔지식이라던가
인간관계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되고 만다.

이런 캐릭터 자체의 매력을 제외하고는, 사실 모든 것이 평이한 소설이었는데,
배경을 로마로 설정한 것과 소설의 내용과 거의 무관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현대물과의 차이점을 그닥 느낄수 없었던 점이다.
대사체라던가 사고방식, 행동, 모든 것이 현대인들의 그것과 별다를바 없어서 조금 부조화라는 느낌도 들었으며
읽는 동안 내가 로마시대가 배경인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또한, 트릭이나 사건 자체의 독특함 또한 없다.
두꺼운 책임에도 무척 빨리 읽힌다는 점은 나름대로 장점일수 있으나,
그만큼 아무 생각도, 아무 감흥도 없이 읽을수 있다는 단점도 있는 듯 싶다.
위트가 넘치는 어쩐지 밝은 분위기의 소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쪽이 잘 맞지 않는 듯 싶어서
특별히 재미없게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캐릭터의 매력에 100% 기대고 있는 소설이라는 느낌도 지울수가 없었다.

나는 추리소설에서 현란한 기교라던가, 복잡한 트릭, 명쾌한 해석 같은 것은 사실 바라지 않지만,
이 소설은 조금 더 현란해져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무척 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족이 많고 어딘지 좀 비었다는 느낌이 든달까...
그게 매력이라면 또 매력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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