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5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 주의 


 
솔직히 고백하자면, 별 기대하지 않고 읽었다.
작가 이종호씨의 다른 책은 본적이 없기도 했었고,
이종호의 원작을 영화화한 분신사바를 떠올리면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내게는 그 영화가 별로 였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만약,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이상한 제목의 메일에 이야기의 힌트는 담겨있었으나, 보통 스벵가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무척 기묘하게 느껴지는 이런 제목의 메일-
만약 내게도 그런 메일이 도착한다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열어볼 것 같다.
 
"스벵가리의 선물"이라는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메일에 담겨진 자살자의 동영상을 받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묘하게 자신도 얽혀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고,
메일을 받은 차례차례대로 죽어나가고,
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과 일상이 뒤틀려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선우"는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며 빚을 지고 있는 과거의 자신을 맞딱뜨리며,
여대생인 "정희"는 비만과 짝사랑으로 걱정을 하다가도,
갑자기 짝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되며,
기자인 도엽은 얼굴을 다친 딸아이 문제만 아니라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알콜중독자에 폭력남편이 되어버린 "타인이 바라보는 자기자신"을 만나게 된다.
 
왜? 어째서?
이 사람들은 자신을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고,
또 하나씩 자기손으로 목숨을 끊게 되는 것일까.
그것을 하나씩 밝혀내 나가는 이야기가 이소설 <이프>이다.
 
"음..."하고 읽었다가, "어?" 하게 되고, "어엇...ㅠ ㅠ"하게 되는 소설 "이프".
속도감있게 단번에 깔끔하게 읽어내려갈수 있는 이 소설은, 묘하게도 앞보다 뒤가 더 재밌다.
좋은 소설은 원래 마무리가 좋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세상의 많은 좋은 소설들은 초반이 거창하다가 마무리가 아쉬워지기도 한데,
이 소설은 묘하게 뒤로 갈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소설이란 말이다.
초반에는 착신아리류의 뻔한 공포영화를 떠올리며 보다가,
막바지로 갈수록 독자의 예상을 비웃고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고, 막판에는 너무나 슬퍼진다.
이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가 했고, 또 누군가도 했을 생각들-
단한번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 괴로운 기억은 잊었으면 좋겠다면....하는 바램들이 떠올라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
 
망각은 선물일까 재앙일까.
가끔씩은 자고 일어나면 또다른 나 자신과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가끔씩은 상상해보곤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꿈속의 나이고,
언젠가 진정한 잠에서 깨어나면 좀 더 나은 내가 잠에서 깨어나며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상상.
다른 사람이 되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하는 상상.
아마도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으로 인한 공허한 바램이겠지.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이 이어질 것을 알면서도-
마치 그 망각이 인생역전이기라도 한듯, 가장 괴로운 것 딱 하나만 잊을수 있어도 괜찮겠다는 바램...
 
기분이 우울할때 읽으니 기분이 더 우울해지는 소설이었다.
<공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무섭다기 보다는 슬프다.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어있다는 환상에 빠진 무명작가의 이야기나,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쥐어터지고 희롱당하면서 자라 아버지 아이까지 임신하고
그 기억을 잊어보고자 아버지가 죽었다는 환상에 빠진 젋은 여자나,
죽은 아내와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령처럼 공허히 부유하는 가족들의 환상을 믿고 살았던 기자나.....
메일로 이어지는 연쇄자살의 공포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누구나에게나 있는 벗어날수 없는 갑갑한 현실의 공포이다.
 
누구나 잊고 싶은 것은 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의 한 조각이 흔들리는 순간, 내 모든 것이 송두리째 변해버린다.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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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이야....책을 이렇게도 읽을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독서.
책이 뭐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라, 바빠서 몸이 힘든데 뭔가 읽고는 싶고 해서 읽는다는게,
하루에 5분씩 열흘에 걸쳐 이책을 다 읽었다. 징하다 징해...
 
빠뜨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책 "오르가니스트".
그루누이가 후각의 천재였다면, 엘리아스 알더는 청각의 천재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뒤흔드는 섬광같이 귀가 트여버린 엘리아스.
사람은 들을수 없는 세상의 소리들을 들을수 있는 엘리아스가 천재적인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오르가니스트"는 추하나 고요한 천재 엘리아스의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의 사랑, 엄마 뱃속에서 희미하게 뛰고 있는 태아의 심장소리- 그것에 매혹당해
그 여자를 한평생 사랑하게 되는 불행한 남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이 누렇게 빛나는 눈과 함께 엘리아스를 향해 쏘아버린 천재성은
행운의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그 눈 때문에 부모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고,
그 결과로 평생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려고 하는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렸고,
유리 깨지는 듯한 목소리의 컴플렉스를 신이 준 청각에의 천재성을 이용해 교묘히 감춘다.
그의 인생은 가면-
추하나 솔직한, 자연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온 삶.
누구에게도 진실할수 없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할수 있을까.
지지부진하고 머뭇대는 엘리아스는 결국 고백한마디 하지 못한채 사랑하는 여자를 놓치고 만다.
 
"오라, 오, 죽음이여, 그대 잠의 형제여-"
잠든 자는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에 실패하고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에 허무함을 느끼던 엘리아스에게 그런 말이 들려온다.
잠든 자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잠이 들지 않은 채, 충분히 그녀를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학대한다.
잠의 형제인 죽음이 그에게 찾아올때까지.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사랑을 불태우며-
 
우리나라에 잘 소개되지 않는 오스트리아 작가의 소설이다.
눈에 익지 않기 때문에 다소 거칠어 보이고, 낯설긴 하지만,
주인공에게 국한되지 않고 주위 이웃들의 이야기에 눈을 돌리는 서사는 참 독특했다.
조금 산만해보이긴 했지만...
우울한 장송곡을 듣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수 있는 소설.
"향수"와 비교하면 조금 거칠긴 하지만, 기이한 예술가의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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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23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수라굽쇼!

Apple 2006-08-2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굽쇼!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 - 2권 세트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엮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독특한 작가 내력을 얘기하지 않을수 없겠다.
법학을 전공하고, TV에 출연해 유명해지는가하면, 한때 가수로도 활동했고,
"나는 살인한다"로 소설계에 입문했다.
이 복잡한 내력을 지닌 작가가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의 작가 조르지오 팔레띠.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사람처럼 느껴지듯이,
이 소설은 통속적이면서도 감상적인, 두가지 느낌을 동시에 갖춘 추리소설이다.
마치 다소 선정적인 스페인 영화를 보는 듯한 소설.
그러나 소설가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배경은 뉴욕이다.
여러가지로 알수 없는 작가이다.
 
스누피, 루시, 라이너스, 피그팬.
누구의 어린시절에나 존재하는 피너츠의 주인공들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을 그만둔 유능한 전직 경찰 조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남자친구와 눈을 동시에 잃고 각막이식을 받은 로마 경찰 모린.
두 사람앞에 놓여진 사건은 피너츠의 주인공들로 분장시킨 시체들이다.
여러가지 이야기와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분조분 침착하게 얽혀들어가면서,
죽은 자의 각막을 이식받은 모린의 눈앞에 죽은 자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 "디아이"에서 보았듯, 각막을 통해 보이는 죽은 지의 기억은 어쩐지 환상적인 소재여서,
자칫하면 환상에 의지해서 사건을 풀이해가는 약간 "알로 먹는" 스토리텔링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린의 각막 환각에 치우치지 않고, 조던의 추리 역시 함께 이어지기 때문에
만약 "각막의 환상"을 빼놓더라도, 사건은 풀이되었을 듯한 느낌이 들어 어색함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거대한 자본주의에 휩쓸리는 비정한 도시 뉴욕.
아주 소소한 장치에서조차 자기 사욕으로 이기적이고 비정해지는 책속의 인물들에 대한
꼼꼼한 묘사때문인지 소설이 살아숨쉬는 듯한 생생한 인상도 받았다.
작가가 여러가지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런 생동감과 연관있는걸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다소 뻔한 주제, 다소 뻔한 이야기를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권의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화려하게 장황하고 무거운 필체로 엮어가기 때문에
대중소설임에도 통속적이거나 천박하다는 느낌 또한 전혀 들지 않으며,
적당히 속도감 있게 책으로 빠져들수 있게 만드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속에 깊게 침체되어 있는
죄의식이나 회환, 슬픔을 요란하지 않게 적절히 해결해놓은 결말 역시 매우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바쁜일 때문에 꽤 난독증이라,=_=; 여러날 걸쳐서 책을 읽었지만,
한번에 쭉 몰아서 읽었다면 속도감 있고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더운 여름밤, 매미도 잠들지 않고 울어대는 긴긴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멋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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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8-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사놓은 책인데, Apple님의 평점이 나쁘지 않아 다행입니다. ^^

Apple 2006-08-0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헤헤...^^ 넵..재밌게 읽으실수 있을 거예요. 특별히 호불호가 극명히 가려질정도로 모난데는 없는 소설이라..

물만두 2006-08-0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괜찮죠^^

Apple 2006-08-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마음에 들었어요.^^
 
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조금 애매모한 제목의 책 "중력 삐에로".
최근 거의 러쉬라고 할 정도로 쏟아지는 이사카 고타로의 책중 하나인데,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은 이게 처음 인듯 싶다.

이 책에서 삐에로 앞에 붙은 "중력"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중력, 인간으로 태어나 어쩔수 없이 질수밖에 없는 굴레를 말한다.
그와 걸맞게, 악으로 인해 태어나 자신의 피에 세겨진 DNA를 거부하려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루. 무엇이든 잘하고, 동물 애호가이며, 게다가 절세미남이기 까지 한 매력적인 하루는
실은 어머니가 강간당해 낳은 자식이다.
하루의 형 이즈미와 하루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둘도없는 형제지간이지만,
그들은 반쪽만 닮은 형제, 어찌보면 이복동생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강간당해 가진 자식을 낳아 자기자식만큼 소중하게 길러준 아버지,
절세미녀에 다정한 돌아가신 엄마,
그리고 출생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는 두 형제.

책은 이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번지는 방화사건을 추리해나가고,
범인이라던가, 사건의 전말은 비교적 빨리 눈치챌수 있는 아주 쉬운 책이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가볍게 전달해야하는거야."라고 말하는 하루의 말처럼
이 책이 가볍기만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왜 내게는 그것이 부조화라고 느껴졌을까.
강간당해 낳은 자식이라던가, 복수심같은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전해버리려 노력하려는 의도는
짧게 짧게 끊어가는 호흡이라던가,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이야기를 해버리는 주인공들의 말투로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어째서 이것을 가볍게 보아야 할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내게는 그저, 자신안에 감추어진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재미없었냐 하면 그런것도 아니다.
어딘지 종잡을수 없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것은 부정적인 의미로써의 애매모호한 감정이다.)
초반부터 끝까지 두서없이 진행되는 과거 회상과 현재사건의 오버랩은 산만하기마저 했고,
소설 거의 마지막까지 이것이 무엇을 얘기하고자하는 소설인가가 불분명했다.
가족의 사랑? 아니면, 연쇄방화사건? 또는 태생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의지?
글쎄. 내가 보기엔 이도 저도 아닌것 같은데.

지나치게 DNA라던가, 태생에 주목하고 있는 점,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 버리는 위험한 논리-
(당한대로 갚아주자라는 함무라비 법전식의 논리라던가,
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연쇄적으로 벽에 낙서를 하고 방화를 저지르면서,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는 모습등)
거의 비슷한 서술의 반복 등, 여러가지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책이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삐에로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하루.
태생을 거부하고 이어받은 핏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중력을 거슬렀던가?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오랫동안 누군가를 위해 복수를 계획하는 모습 또한
그가 가지고 태어난 어쩔수 없는 "중력"의 영향력이라는 결론을 생각할수 있게 만든다.
당했다고 복수하는 것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절대"선(善)"도 아니고, 용서는 더더욱 아니며,
태생을 거부하고자하는 몸부림 또한 아니다.
중력을 거부하고자 했다면, 조금더 민폐끼치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삶을 택했어야하지 않을까.

가볍게 읽을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도 아니다.
다 보고 나면 "아 그래? 뭐 그런가보지..."하고 헛웃음이 나는 것은 나뿐일까.
오히려 생각하게 된 것은, 요런 분위기의 일본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조금 더 쉽게 살아보자" "조금 덜 생각하자"라는 듯한 암묵의 메세지에서
오랫동안 일본사람들안에 내재된 책임감이라던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는 생활방식이
그동안 그들을 꽤 억누르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억지로 "심각하지 않은 척 하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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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03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에 갑자기 공감하게 됩니다.

Apple 2006-08-0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헷....
 
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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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동굴 우화.
동굴에 결박당한 채 살아가는 인간은 고개도 돌리지 못한채 눈앞에 그림자만을 실체로 여긴다는 이야기.
오래전의 철학자의 이야기가 너무 현학적으로 여겨진다면,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떠올려보자.
그저 태어날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
그 밖에 어떤 진실이 숨겨진지 모른 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 당연한듯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제목을 빌려온 주제 사라마구의 "동굴"은
무자비하게 쏟아내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너무도 빨리 변해버리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채
뒤켠으로 물러나버리는 아날로그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을 안정적이고 올바른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도자기를 구우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가업을 물려받은 딸과 함께 "센터"에 도자기를 구워 팔아가며 먹고살아가는 도공이다.
어느날, 센터는 그에게 더이상 당신의 도자기가 필요없다고 한다.
좀더 값싸고, 좀더 튼튼한 플라스틱 그릇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기 때문에.
몇대째 내려온 가업인데다가 60년인생을 모두 받쳐왔던 자신의 직업의 존패위기에 닥친 이 도공은
딸과 함께 새로운 아이템으로 도자기 인형을 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인생과 진실이 담겨져 있는 일.
그러나 재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속에서, 이제는 바다도 비도 모두 인공으로 만들수 있는 거대한 세상속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두 도공은 좌절한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위덕에 이제는 센터에서 살게된 늙은 아버지와 딸은
첨단이다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센터안에서 생기를 잃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센터 지하동굴에서 발견된 여섯구의 시체.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처럼 결박당한체 죽어 해골만 남아버린 여섯구의 시체를 눈앞에 두고,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깨닫는다.
마지막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센터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는 떠난다.
 
늙은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 졸이고 그들이 잘되기를 바랬던 것은
이제는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들의 삶에서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 살아가기 급급한, 그나마도 위협을 받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에서
정말로 중요했던 것은 진실따위가 아니라 생활의 안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눈을 가린체 살아가도 불편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리며 하루 살아가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며 노예처럼 부려먹는 거대한 사회.
그 거대한 사회 역시 언젠가는 세상에서 도태되고 말겠지.
하루 하루 유행이 바뀌듯이, 물건도 생각도 인간도 한낱 소모품으로 바뀌어버릴 것이다.
불과 몇십년전, 누구나 자기 전화를 들고 다닐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참 무섭다.
금방 일어서고, 금방 무너져버린다.
이런 세상 어디에서 인간적인 것을 찾을수 있을까.
책을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독자에게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처음 그의 소설을 읽는 사람은,
따옴표하나 제대로 표시되지 않고 띄어쓰기조차 되어있지 않는 글에 갑갑함을 느낄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팔순을 넘긴 이 포르투갈 작가와 친해져야한다.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가 사랑하는 인간적인 가치를.
때로는 충고하며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위로하며....
 
주제 사라마구. 그는 진정한 인간이다.
삶의 가치를 알고, 인간의 가치를 알며, 삐딱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시대의 현자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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