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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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받은 충격으로 당분간 켄지, 제나로 시리즈를 사놓고 유보해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펼쳐든 "비를 바라는 기도".
이 책은 뭐랄까.... 좀더 스피디하고, 즐겁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도 느꼈듯이, 켄지, 제나로 시리즈의 색다른 매력은
베베꼬이다 못해 쿨하기 까지한 등장인물들의 대화인데,
그 점에 마치 아주 재밌는 외화를 보는것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주말을 투자해 끝까지 다 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그런 외화 말이다.
재빠른 진행과 즐거운 블랙유머,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깨진 켄지와 제나로의 관계 회복이나
정말 색다른 주인공 부바의 매력이 부곽되는 등의 잔재미를 주는 소설-
그래서 "가라 아이야 가라"와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비를 바라는 기도"는 켄지에게 찾아온 한 여자의 사건의뢰로 시작된다.
양말도 다림질해입을 것같은 깔끔하고, 단아하고, 또 소심하고 선량해보이는 여자 카렌은
내내 자신을 괴롭히는 스토커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하고,
스토커 사건 해결 이후 한참이 지나, 켄지는 차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카렌의 자살소식을 접한다.
자신의 안일한 부주의때문에 카렌의 응급전화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찝찝함 때문이었을지
켄지는 이 사건에 매달리게 되고, 친구 부바와 돌아온 똑똑이 제나로의 도움으로
이것이 단지 한 여자의 자살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는 사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빼앗고 삶의 이유마저 빼앗아가는 범인.
이리저리 날고 들고 뛰어도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도 않고, 딱히 잡아갈 죄목도 없는 범인-
사막에서 "비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조각을 모아 퍼즐을 맞추기는 커녕, 피해자 역시 입을 다물어버리게 만들어
해결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어버리는 범인-
켄지-제나로앞에 나타난 이 범인과의 심리전이 이 책의 가장 큰 관람 포인트라고 할수 있겠다.
 
"가라 아이야 가라"보다 캐릭터의 매력이 한층 살아난 것도 책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는 보조자격으로 느껴졌던 부바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배운 것도 별로 없고, 사람을 겁먹게 할만큼 거구이며,
여기저기 총을 갈겨버리길 바라는 다분히 폭력적인 취향을 가진 이 러시아 마피아 부바는
어려울 적 자신을 도와준 켄지를 잊지 않는다.
이 잔인무도한 불곰 부바가 켄지-제나로를 지키기 위해 몰래 저지르는 행동들에
책을 보는 내내 부바가 어서 등장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말투도 엄청 웃기기도 했고...히힛)

 
사건 해결을 위해서 협박도 불사하는 이 뵈는 것없는 두 탐정들.
하기사 그들은 형사나 경찰이 아니라 탐정이기에, 범인과 똑같은 협박을 해도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범죄자의 인권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의 90%정도가 불법인 셈이지만,
이런 불법으로 일관된 자가응징이 통쾌하다는 것,
이런 것이 또 하드보일드의 매력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따라서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와 같은 법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찝찝함은 없어서
훨씬 통쾌하게, 재밌게 볼수 있는 책이었고, "가라 아이야 가라"와 다른 느낌의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앞으로 읽을 사람에게 알려두자면, "가라 아이야 가라"를 먼저 읽고 읽는 것이 좋겠다.
이어지는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켄지-제나로의 관계가 순차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잔재미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시적이고 쿨한 하드보일드의 매력-아아, 나는 이런 베베꼬인 블랙유머가 너무 좋더라...
이런 유머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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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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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입 아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남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와 여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참 많이 다르다.
보통 남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이 수동적이거나, 또는 팜므파탈이거나, 또는 평범하거나,
또는 끌어안아줄 나약한 이미지라면,
여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들의 모습은 교활하고, 적나라하며, 터프하며 서글프다.
그리고 여자인 나는, 남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1차원의, 기껏해야 이중성정도만을 지니고 있는 여자주인공들보다, 여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복잡미묘하고 치열한 다중성의 여자주인공들을 좋아한다.
그것이 진짜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성의 소설이든, 여성의 소설이든 모든 일의 원인에는 남자가 깔려있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여성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훨씬 단순하고 얄밉고, 여자들은 더더욱 복잡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들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으로써, 또 흑인으로써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토니 모리슨의 두 여자의 이야기 "러브"가 그렇다.
제목은 "사랑"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 소설 내내 두 주인공은 싸운다.
30년동안 지속된 싸움, 서로를 깍아먹지 못해 안달난 두 여자의 이야기의 제목이
"증오"가 아닌 이유는 아마도 이런 다중적인 여자들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 아닐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듯이, 서로를 향한 무려 30년이나 지속된 증오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기반으로한 일종의 애증이 아니었을까.

 
열 한살. 해변가에서 두 소녀가 만난다.
상속녀가 될 가능성이 큰 부잣집 외동딸 크리스틴과 찢어지게 가난하고 작은 히드.
두 소녀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급속도로 친해진다.
친구가 없는 일상을 생각지도 못했던 그 때에, 크리스틴의 할아버지 빌 코지가 등장해
열한살짜리 히드를 신부로 맞이한다.
동갑내기 가장 친한 친구를 할머니로 맞이해야하는 크리스틴의 심정은 어떨까.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를 빼앗겼음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히드에게 깍듯이 대해야했고,
심지어는 집밖으로 내몰리는, 한때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던 크리스틴의 심정 말이다.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기엔 너무나 어렸던 그녀가 히드에게 증오심을 갖게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돈을 위해서라면 딸이라도 내다팔 비정한 가난뱅이 집안에서 큰 히드의 심정은 어떨까.
크리스틴을 너무나 좋아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남녀간의 애정 따위 신경쓰이지도 않을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뻘 되는 빌 코지에게 시집을 왔다.
어린 히드는 그렇게 하면 크리스틴과 영원히 함께 지낼수 있을줄만 알았다.
크리스틴과 크리스틴의 엄마 메이의 차디찬 증오를 받으며 살아가는 히드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가진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벌레라도 되듯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가 가진 자존심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력을 사용해보려 해도 무시당하기 일쑤,
그래도 의지하고 있던 남편 빌코지의 여자들의 숫자는 어느 순간부터 세어보기도 포기했다.
결혼 5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스물도 안된 나이에 미망인이 된 히드와
결국은 집으로 돌아와 하녀같은 생활을 연명하는 크리스틴은 빌 코지가 사라진 30년후에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증오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빌코지는 이미 죽은 인물로 되어있어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속의 모든 주인공들의 삶을 지배한다.
흑인으로 자수성가한 부자에 여유로운 성품, 존경받는 지위,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기 아이를 갖지 못해 열한살짜리 꼬마아이를 아내로 맞은 남자.
크리스틴과 히드를 갈라놓고, 죽어서까지도 그들을 증오하게 만든 남자.
크리스틴과 히드, 두 여자의 이야기에는 빌코지의 그림자가 깊이 깔려있지만,
누구도 빌코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빌코지는 강한 생존본능이었을테고, 또한 오해를 낳는 증오의 도화선이었다.
 
사람은 왜 극한 상황이 닥쳐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수 있는 걸까.
죽을때나 되어서야 서로를 사랑했고 그리워했음을 실토하는 크리스틴과 히드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지게 한다.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이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해서, 그들은 그 그리움을 증오로 표출했던 걸까.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후회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죽을때까지 간직하는 편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노스텔지아. 그리움. 우정. 사랑. 증오와 오해. 질척거리는 관계.
그 모든 것에 사랑이 깔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터놓고 이야기할수 없는 것들-내가 먼저 말해버리면 지고 들어가는 기분같은 것은
어떤 성별, 인종,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든 마찬가지인가보다.
마음속의 사랑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해지는 현실의 인간관계는 참 씁쓸하다.
너무나도 자유롭게 바뀌는 시선의 변화때문에 다소 읽기 힘들었던 책이었지만,
책의 후반부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컬러 퍼플"을 떠올렸는데,(비슷한 점은 별로 없다. 흑인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밖에는...)
이 책을 다 읽고 컬러 퍼플의 소설도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 모리슨의 책은 처음 보는데, 글을 읽어가는 느낌이 묘하다.
표현이 무척 수다스러워서 얼핏 흑인들의 랩을 듣는듯한 느낌이지만,
책의 흐름 자체는 다소 느긋한 편이라 째즈를 연상캐한다.
그래서 토니 모리슨이 "째즈"라는 소설을 쓴 것일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째즈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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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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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포일러 주의!!

올해가 거의 가는 시점에서 문득 떠올려보니, 올해에는 유난히 스티븐킹 소설을 많이 읽었다.
딱히 스티븐킹 매니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작가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인 작가인데, 우연히 올해에는 읽을 기회가 많이 생겨서,
다섯권의 이야기, 권수로는 10권을 읽어버렸다.
그것(1,2,3), 애완동물 공동묘지(1,2) 스켈레톤 크루(1,2)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
그리고 마지막이 스티븐킹의 가장 최신작 "셀"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전설이다"의 리처드 매드슨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영화감독 조지 로메로에게 바친다는 말이 나오듯이,
<셀>은 일종의 좀비물이면서 좀비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조지 로메로의 최신작 "랜드오브데드"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무명만화가가 출판사에서 갓 계약을 성사시키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기분좋게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변풍경을 감상한다.
재잘재잘 떠들며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하는 삐삐머리의 두 소녀,
한손에는 강아지 줄을 들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는 도도한 아가씨.
그리고 한순간에, 이 삐삐머리 소녀들과 아가씨가 미쳐버린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물어뜯고, 괴성을 지르며,
어디선가 찢어진 양복을 입은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똑같이 미쳐버린다.
세상은 아비규환,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던 자는 그대로 좀비화 되어버리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쥔 자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물어보려 핸드폰을 쥔 자도,
다 핸드폰을 쥐고 좀비가 되어버리고,
상상도 못할 정도의 속도로 하루 아침에 세상이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리고 만다.
속칭 "펄스"라고 불뤼우는 핸드폰 바이러스.
핸드폰으로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 하고 있던 사람들의 모든 기억을 포맷시켜버리고,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폭력성을 일깨우는 이 바이러스로,
세상은 살아남은 자들과 펄스에 노출된 좀비들로 나뉘게 된다.
여기에, 주인공 만화가 클레이의 아들, 부모도 안가진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멀리사는 아들이
혹시나 펄스에 노출되어 좀비가 되었을까 걱정하며, 클레이는 아들과 전부인을 찾기위한
머나 멀고 험난하며, 비참한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이 좀비물이면서 좀비물이 아닌 첫번째 이유는, 펄스에 노출된 좀비들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비처럼 걷고, 좀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다.
멍청한 눈, 여기저기 찢기고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함,
어딘지 비틀리게 걷고, 제대로 말도 못하는 겉모습은 좀비와 똑같으나,
그들은 금새 진화한다.
캐캐묵은 올드팝을 듣고, 점차 폭력성을 줄여가며, 그중에 지도자도 나타나고,
심지어는 좀비 주제에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한다.

 
이 소설이 좀비물이 아닌 두번째 이유는, 이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관계있다.
이것은 그저 누군가의 장난 이었던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또다른 존재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물갈이였던 것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 <셀>에서의 새로운 종의 기원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어쨌거나 인간은 진화하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존재- 추측은 할수 있으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기계가 없는 삶을 꿈꿔본 적이 없는 우리들.
손에는 늘 핸드폰이 들려있고, 매일같이 이어폰이나 스피커, 또는 어디선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컴퓨터를 키고,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쬐며,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천재적인 누군가가 펄스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간 물갈이를 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아주 손쉽게 한번에 바꿔버릴수 있는 이 세상-
너무나 익숙해진 편리함 뒤에 숨겨진 독을 우리는 늘 잊고 살아간다.
 
인간은 기계로 편리함을 얻고, 기계는 인간을 지배해버린다.
아니라고 느낀다면, 핸드폰이 없는 세상, 컴퓨터도, TV도, 불빛도,
그 어떤 기계와 전력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길.
얼마전에 문득 든 생각이지만, 당장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어느날 핸드폰이 불통이 되어버리면,
나는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모두 잃어버리게된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섬뜩해졌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일일히 외우거나, 수첩에 차곡차곡 적어놓았을텐데,
나는 핸드폰을 전적으로 믿고,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외우려하지 않고,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적어놓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별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도태될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핸드폰에 중독되어있고, 나 자신의 기억력보다 이 손바닥만한 기계를 더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핸드폰이 참 섬뜩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은 초반부터 무척 잔혹하고 밀도높게 시작되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진행된다.
그래서 두권이나 되는 분량에도 빠르게 읽어내려갈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븐킹의 가장 큰 장점이 치밀한 묘사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단점 역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티븐 킹의 치밀하다못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보여주려는 듯한 묘사는 뒤로 갈수록 사람을 지치게 든다.)
어찌된 일인지, <셀>은 그런 면에서는 무척 깔끔하다.
해야할 묘사말고 더이상 덧붙이지 않고, 그래서 끝까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술술 읽혀서,
바로 전에 읽은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와 같은 작가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스티븐킹에게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걸까.
번역자 후기에 적혀있듯이 스티븐킹의 소설이 영화화 되어버린 걸까.
잘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훨씬 깔끔하고 의도를 파악하기에도 적합해서 마음에 든다.
 
 
나는 공포영화중에서는, 다른 학살극이나 귀신영화보다  좀비물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인간이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버린 세상"이라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인간 종말을 앞둔 묵시록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모두 갖춘 좋은 소설-
재밌기도 하지만, 생각할 바도 던져주는 멋진 소설이었고,
미국 문화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피식피식할만한 유머도 곁들여져서
몹시 재밌었고, 올해 읽은 다섯개의 스티븐킹 소설중에서 최고라고 말해본다.
(정말 좋아하는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캐리가 있기에, 감히 스티븐킹 소설중에서 최고라고 말할수는 없다...)


p.s 1. <호스텔>의 일라이 로스에 의해서 영화화 된다고 하는데 영화는 언제쯤 만날수 있을까.
또 을마나 잔인할지...재밌겠다...!!

p.s 2. 책을 다 읽고 잠을 잤는데 꿈에서 새 핸드폰을 사는 꿈을 꿨다.
미국 소설을 봐서인지, 핸드폰에 애플사 마크(벌레먹은 사과)가 살포시 박혀져 있더라.
좀비가 되도 좋으니, 새 핸드폰좀 샀으면..-_ㅠ 3년이나 막 굴려가며 써도 도무지 고장이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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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11-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저는 원래 올빼미인간이라 아침에 잡니다..^^;;;

lg 2006-11-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인데 글씨가 너무 작아요~ 그리고 스포성 글도 좀 잇는듯..

Apple 2006-11-2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스포일러를 굳이 얘기할필요 없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표시안했는데, 지금이라도 스포일러 주의 표시를 해야......^^;;헤헷...
 
범인에게 고한다 1
사즈쿠이 슈스케 지음, 윤혜원 옮김 / 마루&마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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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는 첫 느낌은 몹시 과묵해서 할말만 하는 중년 남자같은 느낌이었다.
좀 심심하게 책을 읽어내려가던 중, 놀랍게도 나는 책에 완전히 빠져있었고,
마지막까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잠이 들지 못할 것 같아서, 부랴부랴 읽어내려갔다.

젊은 시절, <영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뤼던 형사 마키시마.
어느날, 아이를 유괴해 몸값을 요구하는 사건이 일어나 본능적으로 사건에 빠지게 되지만,
쫓고 쫓는 치열한 수사과정에서 범인도 놓치고, 아이도 살해되어서 돌아온다.
설상가상으로,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딸이 아이를 낳다가 사경을 헤매게 되고,
윗선에서는 유괴사건의 모든 책임을 마키시마에게 돌리고, 약점을 잡지 못해 안달난 미디어 앞에서
마키시마는 감정에 격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 사건후로, 마키시마는 좌천을 당하게 되고, 이 사건은 잊혀지는 듯하다가,

7년후, 연쇄유괴사건이 다시 발생한다.
좌천당했으나, 직분에 충실히 범죄를 소탕하고 있던 마키시마는 또다시 가나가와로 돌아와
연쇄 유괴사건을 맡게 된다.
4명의 아이를 유괴, 살해하고, 당당히 미디어 앞에서 모두를 비웃은 범인.
미디어 앞에 드러놓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극장형 범죄"라고 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가나가와 경찰은 대담하게도, 마키시마를 내새워 "극장형 수사"를 펼친다.
카메라를 두고 범인과 벌이는 신경전.
어떤 추리 소설들은 지나친 우연의 연속으로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이 단서도 없는 파렴치한 사건에 단하나 떨어질 우연을 기다린다.
범인이 단 한번의 실수를 해서, 단서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로 그 순간을 잡는 것이 이 소설의 전략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살인의 추억>과 <박수칠때 떠나라>, 두 영화를 떠올렸다.
미디어를 통해 사건의 수사과정을 밝혀가며 진행되는 점에서는 <박수칠때 떠나라>,
그리고 어딘지 무겁고 진지한 느낌에서는 <살인의 추억>같은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남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당연하면서도 부끄러운 이기심이다.
마키시마가 죽어가는 딸을 두고 미디어 앞에서 경찰의 변론을 펼칠때 했던 그 솔직한 말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왜 그것을 비난할까.
모두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모두가 마음속에는 위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야 어찌됐든, 시청률 경쟁에 혈안이 된 미디어들이나,
대학 시절부터 짝사랑하던 여자를 다시 한번 유혹하기 위해 경찰 기밀을 누설하는 경찰,
남의 마음을 이용해서 특종을 잡으려는 아나운서,
열심히 애쓰고 있는줄도 모르고 드러나는 사실만을 비꼬고 책망하는 세상사람들-
그 누구도 남을 위해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왜 잊고 있을까.
그들에게도 역시, 자기 사정과 자기 말이 가장 옳고 당연하다는 것을-

농담 한번 하지 않는 무뚝뚝한 이 소설은 요즘 유행처럼,
기막힌 반전이라던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반부터 끝까지- 단한번도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한 마키시마경부처럼,
성실하게 사건을 풀이해 나가고 성실하게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취향이 좀 이상한 나로써는, 개인적으로 올곧고 성실한 주인공보다
어딘가 삐뚤어지거나 고독한 주인공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이 말수도 없고, 늘 혼자 생각하고, 남들이 뭐라든 자기길을 가는 My Way형의 중년의 남자
마키시마에게 푹 빠져들어 단서 하나 남기지 않는 얄미운 범인을 검거하고,
끈질기게 그를 괴롭히는 세상 모든 것에 그가 복수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자신의 이기심과 감상이 불러온 실수를 평생의 죄로 짊어지고 가는 자.
마지막 한장까지 무섭도록 몰입하며,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마키시마에 대한 연민이 일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재밌는 일본 추리  소설.
와, 이 소설 대단한걸?!!!
광고도 제대로 되지 않고, 별로 관심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글자를 읽어갈수록 정신없이 빠져들게되는 아주 재밌는 소설이라 강추하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비슷한 소재의 소설 데니스 루헤인의
<아이야, 가라, 아이야>와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아, 물론, 두 소설 다 몹시 재밌다.


p.s 하지만 이 정도 분량에 분권이라니, 심하잖아...................!!!!!!!!!!!!!!!!!!!!!!!!!!!!!!!!!
사즈쿠이 슈스케의 다른 소설들도 좀 보게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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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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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놈은 이빨이 있어서 그놈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너를 물어뜯을 수 있다.
그래서 간혹, 세상은 아홉살짜리 꼬마애를 물기도 한다.
 
야구 선수 톰고든을 동경하는 트리샤는 이혼한 엄마와 오빠와 사는 아홉살짜리 여자아이.
엄마와 소풍을 가다가 갑자기 싸우는 오빠와 엄마 등살에 밀리는 바람에,
볼일을 본다고 잠시 사라졌다가 광활한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소설은 시종일관 세상이 이 아홉살 짜리 여자아이를 물어뜯는 과정을 보여준다.
숲속의 트리샤는 모기떼와 깔다구떼의 끈질긴 러브콜을 받으며 넘어지고, 구르고, 굶는다.
공포는 또다른 공포를 낳는 법.
제대로 길을 찾아갈수 있을거라는 아주 약간의 희망마저 짓밟히고,
세상은 트리샤를 좀더 깊은 숲속으로 들이밀고,
죽은 동물의 사체와 조우하게 만들며, 먹어도 될지 말아야될지 모르겠는 음식들과 만나게 만들며,
엄마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공포심이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올 때,
정체모를 "그것"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공포심도 깨어난다.
 
숲에서 길을 잃은 트리샤에게 유일한 희망은 아직 망가지지 않은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하루종일 길을 잃고 헤매며 고생하는 트리샤가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은
자기 전 라디오를 조심스레 틀어놓고, 좋아하는 톰고든의 경기를 듣는 것이다.
그것은 지치고 두려운 일상을 잃어버리게 해주는 활력소이자,
숲속에 내버려졌다는 고독감을 증폭시키는 소리.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트리샤는 자신의 영웅인 톰고든이 자신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스티븐 킹의 소설치고는 단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뿐한 분량의 이 책을 보면서,
아홉살짜리 여자아이를 숲속에서 고생시키게 한다는 점 때문에 아동학대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터인데,
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공포보다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미 스티븐 킹 소설에 너무 길들여져서,
트리샤가 분명 집을 찾아가게 될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터이고,
TV 리얼리티 프로그램같은데서 그 때 길을 잃고 헤매며 고생했던 이야기를 재연하면서,
30년 이상 나이가 든 중년의 트리샤가
"그땐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그때의 그 고생이 지금의 강한 나를 만든 것 같아요.
난 이제 왠만한 일에는 쓰러지지 않는답니다."라고 말하는 성공스토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성장물에 가깝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넘어지고, 구르고, 마음속에서 공포심이 부추겨도, 또다시 일어나서 제가 가야할 길을 가는 트리샤.
길을 잃은 몇일사이에, 부쩍 성장한 트리샤.
마음속의 부추김을 이기고, 또다시 용기를 내보는 트리샤.
이것은 성장소설이 아닐까.
깔끔하고, 스티븐킹 답게 묘사도 무척 훌륭한, 재밌는 소설이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자주 영화화 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주연 : 트리샤 맥팔란드.
등장인물 : 등에 모기 떼. 깔따구들. 뱀. 비버. 곰. 죽은 사슴.............................................................
무슨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아니고 너무 단조롭다.
게임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숲속에서 길을 잃은 트리샤가 집까지 도달하는 이야기로.
끈질기게 귀찮게 구는 모기떼와 깔따구들을 때려잡고, 종종 뱀이랑 마주쳐서 뱀도 때려잡고,
진흙이나 백옥나무 열매나 너도밤나무 열매, 고사리 아이템을 얻으면서
집까지 찾아가는 모험을 하는 이야기로.
아, 이건 꽤 재밌을지도....



p.s 이 사람이 톰고든.
실제로도 존재하는 야구선수 톰고든은 이 소설을 읽어보았을까.
소설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길잃고 공포에 빠진 아홉살짜리 꼬마애가 톰고든을 안내자로 삼아
역경을 헤쳐가는 이야기를 보면, 본인으로써는 은근히 뿌듯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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