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말하자면 입 아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남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와 여자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참 많이 다르다.
보통 남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이 수동적이거나, 또는 팜므파탈이거나, 또는 평범하거나,
또는 끌어안아줄 나약한 이미지라면,
여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들의 모습은 교활하고, 적나라하며, 터프하며 서글프다.
그리고 여자인 나는, 남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1차원의, 기껏해야 이중성정도만을 지니고 있는 여자주인공들보다, 여성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복잡미묘하고 치열한 다중성의 여자주인공들을 좋아한다.
그것이 진짜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성의 소설이든, 여성의 소설이든 모든 일의 원인에는 남자가 깔려있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여성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훨씬 단순하고 얄밉고, 여자들은 더더욱 복잡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들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으로써, 또 흑인으로써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토니 모리슨의 두 여자의 이야기 "러브"가 그렇다.
제목은 "사랑"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 소설 내내 두 주인공은 싸운다.
30년동안 지속된 싸움, 서로를 깍아먹지 못해 안달난 두 여자의 이야기의 제목이
"증오"가 아닌 이유는 아마도 이런 다중적인 여자들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 아닐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듯이, 서로를 향한 무려 30년이나 지속된 증오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기반으로한 일종의 애증이 아니었을까.

 
열 한살. 해변가에서 두 소녀가 만난다.
상속녀가 될 가능성이 큰 부잣집 외동딸 크리스틴과 찢어지게 가난하고 작은 히드.
두 소녀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급속도로 친해진다.
친구가 없는 일상을 생각지도 못했던 그 때에, 크리스틴의 할아버지 빌 코지가 등장해
열한살짜리 히드를 신부로 맞이한다.
동갑내기 가장 친한 친구를 할머니로 맞이해야하는 크리스틴의 심정은 어떨까.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를 빼앗겼음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히드에게 깍듯이 대해야했고,
심지어는 집밖으로 내몰리는, 한때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던 크리스틴의 심정 말이다.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기엔 너무나 어렸던 그녀가 히드에게 증오심을 갖게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돈을 위해서라면 딸이라도 내다팔 비정한 가난뱅이 집안에서 큰 히드의 심정은 어떨까.
크리스틴을 너무나 좋아했다.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남녀간의 애정 따위 신경쓰이지도 않을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뻘 되는 빌 코지에게 시집을 왔다.
어린 히드는 그렇게 하면 크리스틴과 영원히 함께 지낼수 있을줄만 알았다.
크리스틴과 크리스틴의 엄마 메이의 차디찬 증오를 받으며 살아가는 히드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가진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벌레라도 되듯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가 가진 자존심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력을 사용해보려 해도 무시당하기 일쑤,
그래도 의지하고 있던 남편 빌코지의 여자들의 숫자는 어느 순간부터 세어보기도 포기했다.
결혼 5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스물도 안된 나이에 미망인이 된 히드와
결국은 집으로 돌아와 하녀같은 생활을 연명하는 크리스틴은 빌 코지가 사라진 30년후에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증오한다.
 
소설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빌코지는 이미 죽은 인물로 되어있어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속의 모든 주인공들의 삶을 지배한다.
흑인으로 자수성가한 부자에 여유로운 성품, 존경받는 지위,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기 아이를 갖지 못해 열한살짜리 꼬마아이를 아내로 맞은 남자.
크리스틴과 히드를 갈라놓고, 죽어서까지도 그들을 증오하게 만든 남자.
크리스틴과 히드, 두 여자의 이야기에는 빌코지의 그림자가 깊이 깔려있지만,
누구도 빌코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빌코지는 강한 생존본능이었을테고, 또한 오해를 낳는 증오의 도화선이었다.
 
사람은 왜 극한 상황이 닥쳐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수 있는 걸까.
죽을때나 되어서야 서로를 사랑했고 그리워했음을 실토하는 크리스틴과 히드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지게 한다.
함께 보냈던 어린 시절이 그토록 아름답고 행복해서, 그들은 그 그리움을 증오로 표출했던 걸까.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지만,
후회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죽을때까지 간직하는 편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

 
노스텔지아. 그리움. 우정. 사랑. 증오와 오해. 질척거리는 관계.
그 모든 것에 사랑이 깔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터놓고 이야기할수 없는 것들-내가 먼저 말해버리면 지고 들어가는 기분같은 것은
어떤 성별, 인종,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든 마찬가지인가보다.
마음속의 사랑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해지는 현실의 인간관계는 참 씁쓸하다.
너무나도 자유롭게 바뀌는 시선의 변화때문에 다소 읽기 힘들었던 책이었지만,
책의 후반부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 "컬러 퍼플"을 떠올렸는데,(비슷한 점은 별로 없다. 흑인 여성의 이야기라는 것밖에는...)
이 책을 다 읽고 컬러 퍼플의 소설도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니 모리슨의 책은 처음 보는데, 글을 읽어가는 느낌이 묘하다.
표현이 무척 수다스러워서 얼핏 흑인들의 랩을 듣는듯한 느낌이지만,
책의 흐름 자체는 다소 느긋한 편이라 째즈를 연상캐한다.
그래서 토니 모리슨이 "째즈"라는 소설을 쓴 것일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째즈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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