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 주의!!

올해가 거의 가는 시점에서 문득 떠올려보니, 올해에는 유난히 스티븐킹 소설을 많이 읽었다.
딱히 스티븐킹 매니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작가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좋아하는 편인 작가인데, 우연히 올해에는 읽을 기회가 많이 생겨서,
다섯권의 이야기, 권수로는 10권을 읽어버렸다.
그것(1,2,3), 애완동물 공동묘지(1,2) 스켈레톤 크루(1,2)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
그리고 마지막이 스티븐킹의 가장 최신작 "셀"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전설이다"의 리처드 매드슨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영화감독 조지 로메로에게 바친다는 말이 나오듯이,
<셀>은 일종의 좀비물이면서 좀비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조지 로메로의 최신작 "랜드오브데드"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무명만화가가 출판사에서 갓 계약을 성사시키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기분좋게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주변풍경을 감상한다.
재잘재잘 떠들며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하는 삐삐머리의 두 소녀,
한손에는 강아지 줄을 들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통화하며 아이스크림을 사는 도도한 아가씨.
그리고 한순간에, 이 삐삐머리 소녀들과 아가씨가 미쳐버린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물어뜯고, 괴성을 지르며,
어디선가 찢어진 양복을 입은 남자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똑같이 미쳐버린다.
세상은 아비규환,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던 자는 그대로 좀비화 되어버리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쥔 자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물어보려 핸드폰을 쥔 자도,
다 핸드폰을 쥐고 좀비가 되어버리고,
상상도 못할 정도의 속도로 하루 아침에 세상이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리고 만다.
속칭 "펄스"라고 불뤼우는 핸드폰 바이러스.
핸드폰으로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 하고 있던 사람들의 모든 기억을 포맷시켜버리고,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폭력성을 일깨우는 이 바이러스로,
세상은 살아남은 자들과 펄스에 노출된 좀비들로 나뉘게 된다.
여기에, 주인공 만화가 클레이의 아들, 부모도 안가진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멀리사는 아들이
혹시나 펄스에 노출되어 좀비가 되었을까 걱정하며, 클레이는 아들과 전부인을 찾기위한
머나 멀고 험난하며, 비참한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이 좀비물이면서 좀비물이 아닌 첫번째 이유는, 펄스에 노출된 좀비들이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비처럼 걷고, 좀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다.
멍청한 눈, 여기저기 찢기고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공허함,
어딘지 비틀리게 걷고, 제대로 말도 못하는 겉모습은 좀비와 똑같으나,
그들은 금새 진화한다.
캐캐묵은 올드팝을 듣고, 점차 폭력성을 줄여가며, 그중에 지도자도 나타나고,
심지어는 좀비 주제에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한다.

 
이 소설이 좀비물이 아닌 두번째 이유는, 이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관계있다.
이것은 그저 누군가의 장난 이었던 것이 아니라,
한순간에 또다른 존재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물갈이였던 것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 <셀>에서의 새로운 종의 기원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세상에 어디있는가.
어쨌거나 인간은 진화하기는 했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존재- 추측은 할수 있으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기계가 없는 삶을 꿈꿔본 적이 없는 우리들.
손에는 늘 핸드폰이 들려있고, 매일같이 이어폰이나 스피커, 또는 어디선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컴퓨터를 키고,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쬐며,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천재적인 누군가가 펄스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간 물갈이를 하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아주 손쉽게 한번에 바꿔버릴수 있는 이 세상-
너무나 익숙해진 편리함 뒤에 숨겨진 독을 우리는 늘 잊고 살아간다.
 
인간은 기계로 편리함을 얻고, 기계는 인간을 지배해버린다.
아니라고 느낀다면, 핸드폰이 없는 세상, 컴퓨터도, TV도, 불빛도,
그 어떤 기계와 전력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길.
얼마전에 문득 든 생각이지만, 당장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어느날 핸드폰이 불통이 되어버리면,
나는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연락처를 모두 잃어버리게된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섬뜩해졌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일일히 외우거나, 수첩에 차곡차곡 적어놓았을텐데,
나는 핸드폰을 전적으로 믿고,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외우려하지 않고,
그 누구의 전화번호도 적어놓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별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도태될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핸드폰에 중독되어있고, 나 자신의 기억력보다 이 손바닥만한 기계를 더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핸드폰이 참 섬뜩한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은 초반부터 무척 잔혹하고 밀도높게 시작되고,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진행된다.
그래서 두권이나 되는 분량에도 빠르게 읽어내려갈수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스티븐킹의 가장 큰 장점이 치밀한 묘사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단점 역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티븐 킹의 치밀하다못해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보여주려는 듯한 묘사는 뒤로 갈수록 사람을 지치게 든다.)
어찌된 일인지, <셀>은 그런 면에서는 무척 깔끔하다.
해야할 묘사말고 더이상 덧붙이지 않고, 그래서 끝까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술술 읽혀서,
바로 전에 읽은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와 같은 작가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스티븐킹에게 뭔가 변화가 있었던 걸까.
번역자 후기에 적혀있듯이 스티븐킹의 소설이 영화화 되어버린 걸까.
잘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훨씬 깔끔하고 의도를 파악하기에도 적합해서 마음에 든다.
 
 
나는 공포영화중에서는, 다른 학살극이나 귀신영화보다  좀비물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인간이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버린 세상"이라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인간 종말을 앞둔 묵시록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모두 갖춘 좋은 소설-
재밌기도 하지만, 생각할 바도 던져주는 멋진 소설이었고,
미국 문화에 손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피식피식할만한 유머도 곁들여져서
몹시 재밌었고, 올해 읽은 다섯개의 스티븐킹 소설중에서 최고라고 말해본다.
(정말 좋아하는 돌로레스 클레이본과 캐리가 있기에, 감히 스티븐킹 소설중에서 최고라고 말할수는 없다...)


p.s 1. <호스텔>의 일라이 로스에 의해서 영화화 된다고 하는데 영화는 언제쯤 만날수 있을까.
또 을마나 잔인할지...재밌겠다...!!

p.s 2. 책을 다 읽고 잠을 잤는데 꿈에서 새 핸드폰을 사는 꿈을 꿨다.
미국 소설을 봐서인지, 핸드폰에 애플사 마크(벌레먹은 사과)가 살포시 박혀져 있더라.
좀비가 되도 좋으니, 새 핸드폰좀 샀으면..-_ㅠ 3년이나 막 굴려가며 써도 도무지 고장이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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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11-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저는 원래 올빼미인간이라 아침에 잡니다..^^;;;

lg 2006-11-2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인데 글씨가 너무 작아요~ 그리고 스포성 글도 좀 잇는듯..

Apple 2006-11-2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스포일러를 굳이 얘기할필요 없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표시안했는데, 지금이라도 스포일러 주의 표시를 해야......^^;;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