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First you dreamed, then you died.
처음에는 꿈을 꾸었고, 그리고 죽었다.

한 호텔방에서 뇌졸증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코넬 울리치의 사후에 남겨진 작품들 중에,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쓰려고 했던 작품의 리스트에 속해있던 제목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저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처음에는 꿈을 꾸었고, 그리고 죽었다.
이 말처럼 코넬 울리치의 삶과 소설을 대변하는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써 추리소설계에서 길이 남는 <환상의 여인>을 남겼던 코넬 울리치는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일찌기 고독을 알았다.
자신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해 두번의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그는 소설에 매달려 어머니와 단둘이 호텔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일류소설부터 삼류소설까지 무척 다작을 했다는 코넬울리치는 자신의 이름 하나로도 부족해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을 만들어 두 사람 분의 소설을 세상에 내뱉어냈고,
그로 인해 부자가 되었음에도 그는 음울한 도시의 밤을 사랑했고, 고독을 사랑했다.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이 줄수 있는 숨막히는 서스펜스와 신경질적인 감정선,
그리고 몹시 쓸쓸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주는 애수로 대표된다.
서스펜스를 잘 그리는 작가는 넘쳐난다. 아마 추리소설가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코넬 울리치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고독과 밤과 두려움에 있다.

 그는 언제나 "환상의 여인"을 꿈꾸었을런지 모르겠다.
평생을 고독히 살았음에도, 언젠가는 자신을 밤의 고독으로부터 구원해줄 환상의 여인이 있을거라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환상의 여인들은 언제나 환상처럼 모호하게 나타나 강렬한 사랑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랑을 믿지 않았고, 두려워했으면서도, 그는 사랑을 꿈꾸고 있었고, 그리고 죽었다.
그가 그리는 허무한 사랑들은 그의 숨막히는 서스펜스도, 첨예한 심리묘사도 넘어서서
독자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 남아 그를 '그림자의 시인'으로 기억하게 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 코넬울리치의 두권짜리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을 1년만에 읽었다.
코넬 울리치를 너무도 사랑하고, 또 이미 죽은 작가여서
더 많 작품을 보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껴두었다가 읽고 싶었다.
두권의 책은 서로 느낌을 달리하는데, 1권에서는 서스펜스를 강조한 단편들이 다뤄지는 편이고,
2권에서는 코넬 울리치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가 깔린 단편들이 다뤄진다.
대중적으로 보기에는 1권의 단편들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2권이 코넬 울리치의 매력을 느끼기에 더 좋지 않나 싶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담배> <동시상영> <엔디코트의 딸> <윌리엄 브라운 형사>
<색다른 사건><하나를 위한 세 건><죽음의 장미>이지만,
그 것을 다 합쳐도 맨 마지막 단편 <뉴욕 블루스>만큼 좋을수는 없었다.
코넬 울리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담아 고독과 환상과 애수가 넘쳐나는,
그리고 코넬 울리치 특유의 명문장들이 작렬하는 <뉴욕 블루스>는 저자 프랜시스 네빈스가 썼듯이
코넬 울리치의 마지막 작품이었다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을 뻔한 단편이다.
호텔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며, 환상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자-
이 사람은 어쩌면 코넬 울리치 자신이 아닐까.
내가 기대하던 코넬 울리치는 이 단편에 모두 담겨 있다.
<밤 그리고 두려움> 은 이 단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밤을 사랑했고, 그림자속에서 살았던 작가.
그의 소설에서는 밤안개가 보이고, 모두 잠든 밤의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담배냄새를 맡을수 있으며,
잠 들수 없는 밤 떠올리는 오래전에 지나간, 어쩌면 다시 없을 사랑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그의 환상의 여인은 오지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꿈을 꾸었으나, 죽고 말았다.

 다작작가였고, 또 아주 유명한 장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구해볼수 있는 작품이 얼마 없어서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Black 시리즈를 모두 너무나도 보고싶은데, 어디서 안내주려나.
내 평생동안, 다시 코넬울리치의 소설을 볼수 있을까.
몇년이 걸리더라도 좋다. 내가 죽기전까지만 이라도.....
제발 전집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다.
정신이 산채로 매장되는 것이며, 밝은 곳으로 기어 나오려고 애를 쓸때마다
그 위에 새롭게 묘지의 흙을 덮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죽음에서는, 결코 완전히 죽을 수는 없다.

-코넬 울리치 <뉴욕 블루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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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1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소원입니다. 우리 같이 빌어보아요.

Apple 2007-02-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ㅠ ㅠ 출판사를 막 쪼아보고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_ㅠ 아흑...좀 내주지!!!
 
인간의 증명 - 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아서, 세상의 그 수많은 우연들은 어쩌면 필연으로 귀결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전생과 환생이 존재한다면,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우리는 만나서 알게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본인들조차 알지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인연들에 숨겨진 비밀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
<인간의 증명>.
인간의 무엇을 증명한다는 것일까.
당신의 무언가를 증명해보라고 하면, 당신은 어떤 것을 증명해보일 것인가.
인간은 무엇때문에 인간으로 불뤼는 것인지,
인간은 무엇을 찾기 위해 이다지도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바는 과연 무엇일지....
소설을 읽고 나서 많은 철학적인 물음들이 머릿속에 주어졌다.

뉴욕 할렘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던 흑인 청년 하나가 먼 일본 도쿄에 와서 살해당한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아니 빠듯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남루한 삶을 살던 이 흑인청년은
무슨 돈으로 일본까지 여행왔으며, 하필이면 여행중에 도대체 누구에게, 왜, 살해당한 것일까.
또 한편으로는 뜬금없는 고국에서 조차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 흑인청년의 부고소식에
내심 귀찮아하는 일본 형사가 이 사건을 두고 난감해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후, 미군에게 죽도록 맞아 아버지를 잃은 과거가 있다.
세상을 향한 배신감과 복수심으로 그는 형사가 되었다.
그는 살인자를 잡고 싶어한다. 흑인 청년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 악랄한 세상을 향해 복수하기 위해서이다.

또 다른 편으로는 뉴욕의 한 경찰이 등장한다.
건물 몇개를 사이에 두고, 엄청난 부자들의 천국과 생존본능과 폐배감만 남은
온갖 쓰레기같은 인생들이 버글대는 할렘이 공존하는 뉴욕-
갖가지 이유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나가는 악의 구렁텅이 할렘에서도 모잘라서,
골치아프게 어느 얼간이가 일본까지 가서 살해당했다.
귀찮다. 그러지않아도 해결해야할 일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조사해보기로 한다.

또 다른 편으로는 일본의 한 가정이 등장한다.
국회의원인 아버지에, 아름답고 다정한 어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엄청난 명성속에서
이 가정은 동화속에서나 존재하는 아름다운 가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머니와 매스컴의 긴밀한 결탁, 아들마저 출세에 이용하려는 어머니의 야심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아들 교이치는 허래허식밖에 남지않은 가정에서 혼자 빠져나와
부모의 돈을 펑펑 써가며 고급 맨션에, 고급차에, 매일같이 무리를 끌고 다니며
마약과 방탕한 섹스에 취한 전형적인 부잣집 골치덩이 아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안정적이기 그지 없는 가정,
그러나 펼쳐보면 그 안에서 아이들은 상흔으로 썩어 들어간다.

또 다른 편으로는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가 등장한다.
데리고 다니면 누구나 한번쯤 뒤를 돌아보고, 세상 어느 남자나 침을 흘리는 아름다운 아내.
혼자만 숨겨두고 보려했던 아내가 남편의 실직과 건강 악화로 고급 술집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지고 만다.
남편은 애타게 아내를 찾아나선다. 경찰에 말해봤자 바람나 도망쳤다는 말을 들을게 뻔하기에,
자기 두 발로 아내를 찾아나선다.

이 수많은 주인공들은 도대체 어떤 인연이 있기에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되는걸까.
소설을 거의 다 봐 갈때까지만 해도, 부분적으로 예상할수는 있었으나 전체적인 감이 오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느낌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아!!"하는 탄성이 지어진다.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무척 좋고, 어두운 사회 구석구석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시선도 멋지다.
사실, 나는 본격추리보다 사회파 소설쪽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하는데,
볼 때마다 나의 경직된 사고에 반성하게 된다.
세상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에서, 보여지는 것만으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어쩌면 단지 '귀찮기 때문에' 더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보려 하는 노력을 할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사회파 소설을 읽을때 느껴지는 작가들의 속 알맹이를 파보려는 집요하고도 유연한 사고에
언제나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화자는 언제나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나도 그럴 때가 많다. 자기부터 챙기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지 않나.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듯,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인척 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한다.
누구나 타인에게 질책당하는 것 보다, 나의 피해 사례를 털어놓고 내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이해받고,
동정받기를 바란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지하게 되면 절망에 빠질지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나의 과거의 오류를 다시금 생각해보고,
사고의 유연함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떳떳히 인정하며, 모든 일에 있어 피해자가 나만이 아님을 정확히 알게될 때 쯤에 우리는 더 강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찾기 위해 삶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를 인간으로 규정짓는 것- 최소한의 진심이 아니려나.
우리는 가끔, 인간따위 믿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상 외의 믿음을 보기위해 기대한다.
그것이 깨어지면, 다시 "그럴줄 알았어"라고 비웃어버려도, 내심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다.
인간에 지치고 삶이 고단한 소설속의 모든 사람들-
인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르는 희박한 믿음을 그리워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기분으로....

나는 기대를 깨어버리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기대를 깨어버리는 인간이 아니길 바란다.
세상이 어떤 우연과 오해의 소용돌이로 나를 절망으로 떨어뜨릴지 몰라도,
사실 우리모두는 그런 것을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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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참 좋아서 증명 시리즈 다 봐야지 했다가 야성의 증명에서 무너졌습니다^^:;;

Apple 2007-02-09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래요? 야성의 증명도 볼까...생각했는데....

물만두 2007-02-1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볼만은 합니다. 추리적으로는요. 근데 무지 찝찝합니다. 나쁜넘이 많아서요.
 
사이코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
로버트 블록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히치콕의 그 유명한 영화 <사이코>를 몇번이나 보았던가.
아마 제대로 본것과 중간중간 지나치면서 대충 본 것까지 합치면 스무번은 족히 되지 않으려나.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 어릴때부터 학생시절까지는 TV에서 매년 히치콕 영화를
한편도 방영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TV가 점점 가벼워져 가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사이코>가 신작인 사람들이 세상에는 분명 있을텐데 말이다.)
뜬금없이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사이코>의 소설버전을 보게된 것은 얼마전 읽었던 심리학책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다시 보려다가 원작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은 명작이 된 <사이코>.
영화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묻혀져버린 원작 소설 <사이코>가 여기에 있다.

소설 <사이코>는 영화 <사이코>보다 훨씬 음산한 기운을 더한다.
매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둡고 음산한 노먼의 모텔처럼.
내용 자체는 거의 같으나, 영화와 소설의 재미가 서로 다르다.
소설속의 샤워실 살해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은 히치콕은 이 영화를 계획하게 되었고,
1분도 안되는 그 장면을 일주일이나 공들여 찍어 샤워실 살해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중에 하나가 되었고,
많은 후배 감독들이 그 장면을 히치콕의 오마쥬로 사용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 너무나 어머니를 사랑해서 같은 운명을 가진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랬고,
그녀의 배신을 참을 수 없었던 아들.
아들을 너무나 걱정한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이 지나쳐온 더럽고 추악한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내려하지만,
그것은 삐뚤어진 애정이 낳은 집착이 되어 두 사람을 아무도 없는 음산한 모텔속에 귀속된
억제된 본능으로 자기자신조차 잃어버리는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용납할수 없는 진실과 고통스러운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보고하기 위해 심약한 노먼이 선택한 결정은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해리성 장애를 다룬 가장 유명한 영화와 그 원작.
인간의 뇌란 참으로 신비로워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해리시켜 버리고,
공상과 기억상실로 자신의 현재를 가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해리성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그저 "소설"일 뿐이라 말할수는 없는 문제같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아주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뇌에서 엔돌핀을 내보낸다는 사실만 보아도,
인체의 미스테리함이란 실로 대단하다.

히치콕의 <사이코>도 무척 좋아하지만, 소설을 읽고나니 소설쪽은 상상외로 더더욱 멋있었다.
이 음산한 분위기와 비장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팽팽한 감정선.
이것이 공포소설의 걸작중의 걸작이라 말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서스펜스와 긴장구조를 사랑하는 히치콕이 반하는 것이 당연했던 소설이다.
후반부를 모르고 봤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죄다 알고 봤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눈을 뗄수 없이 재밌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나면 영화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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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영화에 가려 좋은 소설과 작가가 빛을 못봤어요.

Apple 2007-02-05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도 영화이지만, 소설도 정말 멋지더군요!!!
 
아수라 걸
마이조 오타로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게 요상한 소설이다.
주인공 '아이코'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 모험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소설이 너무나 요지경인데다가 소녀가 화자인 것 치고는 상상을 초월하게 대담하다.

인터넷에 모여 무시무시하게 엽기적인 대화를 나누는 중학생들과 세쌍둥이 어린아이를 토막살해하고 유기한 소문의 빙글빙글 마인,
그를 잡아 처단하자는 고등학생들이 거리에서 아무 중학생이나 처단하려 하는 자칭 '아마겟돈'.
그 엽기적인 요지경의 변두리에는 주인공 아이코가 있다.
좋아히도 않은 남자애와 섹스를 하고 찝찝해하기는 하는 아이코는 어떤 면으로는 수다스럽고 평범한 소녀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남자아이 요지-요지는 작중 인물들중에 독보적으로 바른 인간-를 앞에 두고서 생각하는 거라고는
그저 어떻게 잘까 하는 것밖에 없는, 이 역시 엽기적이기 이를데 없는 소녀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하다.
다 읽고 났는데도, 심지어는 아주 잘 읽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얘기인지 정신이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타락한 중학생들의 심리를 알아보고자 했음인지, 빙글빙글 마인으로 불뤼는 살인마를 잡기 위함인지,
아니면, 아이코의 요지에 대한 욕정인지, 정신이 없어서 무슨 얘긴지 도통 모르겠다.

그나마 소설의 반정도는 그럭저럭 읽으며 이해할수가 있는데,
갑자기 유체이탈을 해 저 세상으로 건너갈 뻔하는가 하면, 아이코의 상상속의 친구인 샤스틴의 뜬금없는 엽기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고,갑자기 빙글빙글 마인의 헛소리를 풀어놓다가, 갑자기 이 아이코가 자기 어머니도 때리는 망나니같은 살인마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고 하질 않나,
말도 안되게 아수라와 부처님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즐겁게 사는게 제일 좋은거라고 마무리 짓는 이 난감함을 어쩌란 말인가?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이런 책을 써냈을까.
아무 생각없이 쓴걸까. 그렇다면 아무 생각없이 쓴 소설이 왜 출판되어 나오는걸까.
소설 표지를 직접 만들며, 매스컴에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얼굴없는 작가 마이조 오타로의 정신세계가 심히 궁금하도다.

내 평생 이런 이상한 소설은 처음 본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상한 소설을 쓸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색다르다 못해 거부감이 들 정도. 일탈적이라 보기에도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심하다.
이 책은 설명 불가능한 악몽에 가깝고, 너무 요상해서 충격적이라 뭐라 정리를 해야하는지 알수 없다.
근데 이 작가, 도대체 남자야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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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그렇죠? 근데 뭐라고 하기엔 뭐가 있는 듯도 하고... 저도 통 감을 잡을 수 없더라구요.

Apple 2007-02-0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그냥 단순히 막쓴 걸 낸 것 같지도 않고.....하여간 되게이상해요.

scsc 2007-10-0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다
 
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추리소설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최초의 작가는 아가사 크리스티였다.
(두번째는 역시 당연한 듯이 코난도일의 홈즈 시리즈였고..)
밀실 살인, 숨겨진 범행 도구, 발자국, 알리바이, 시간계산, 다잉 메세지...등등으로 나타나는 고전추리소설 특유의
미스테리한 "트릭"이 그 시절에는 얼마나 놀라운 것들이었는지....
사실, 그런 트릭이나 추리소설에서 주는 정보는 굳이 알지 않아도 살아가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몰라도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것들은 알고보면 재밌다.
트릭과 사건 증명이 주는 두뇌 유희 놀이가 언제는 지겨웠던 적이 있었나.
(뭐든,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 급한 사람들에게는 부적합한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밤이 새도록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범인을 찾아보고, 소설속의 트릭 증명에 뭔가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냥,
"아!!그렇구나!!!"하면서 거의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리소설에 매달려 밤이 다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묘한 향수와 낭만에 젖어들수 있는 소설이 나타났다.
 
시마다 쇼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몇번 발간이 된 적이 있고,
"신본격 추리소설"(일본 사람들은 참 단어만들기를 좋아한다.)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단어야 이렇게 애매모호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고전 추리소설을 현대로 다시 되살려낸 작품-
고전적인 트릭도 있으나 좀더 현대적인 취향에 맞춰진 작품군들이라고 정리해보면 될것이다.
조금 더 진화된 복고로의 회귀랄까.
굳이 일본에서 고전 미스테리를 부활시키고자 한 작가들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은 미스테리의 로망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지.
 
이 책 속에도 그런 사실을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하는데, 일본은 추리계에서는 내노라 하는 위치를 확보한 나라이다.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추리소설만 해도,
그 기발함은 영미권 추리소설과 또다른 매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트릭보다는 반전과 고발을 무기 삼아 현실적인 스릴러에 가까워져버리는 사회파 소설들에 비해
신본격 추리소설은 좀더 로망에 가득차 있고, 비현실적이다.
현실의 범죄에는 트릭이 존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현실의 범죄는 우발적으로 일어나거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본의 아니게 미스테리하게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또 계획적으로 일어난다 해도 범행현장을 깨끗히 처리하고,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길지언정,
굳이 남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트릭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현실과는 유리된 트릭이라는 수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은 더더욱 재밌어지는 것이다.
마구 헝클어져 있던 퍼즐이 딱딱 맞아들어가는 카타르시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트릭 증명이 주는 매력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이다. 현실이 아니다.
그러니, 뭐하나 딱히 변하지도 않는 평범해서 지긋지긋한 일상을 잠시나마라도 잊어버리고,
단순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즐겨주시길.
 
신본격 추리소설의 포문을 열었던 "점성술 살인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이다.
증명을 다 듣고 나면 더 요구할 것도, 흠잡을 데도 전혀 없는 트릭에 즐거운 고민이 한방에 날라가버리고,
홈즈와 왓슨을 떠오르게 만드는 엉뚱한 미타라이와 성실한 이시카와 커플을 보는 것도 즐겁다.
(묘하게도 이 작가는 홈즈에 원한이라도 사묻혔는지 작품내에 홈즈를 엄청 씹어대고 있다.)
자, 즐거운 미스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여드시길.
"알고보면 간단한 이야기"라고 추리소설에서는 언제나 말하지만, 그거야 짓는 사람 입장에서야 그렇지.....
이 사건은 아주 미스테리하고, 궁금증을 마구 유발한다.
 
1. 삐뚤어진 탐미주의를 가진 화가가 엽기적인 생각을 하나 해낸다.
그는 연금술과 점성술에 의거해, 별자리가 모두 다른 자신의 여섯딸들을 이용하여,
이상적인 신체 부위를 절단하여 하나의 여인으로 만들어 완벽하게 이상적인 존재 '아조트'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삐뚤어진 이상을 실현하기도 전에,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다.
완벽한 밀실. 단서라 할만한 것은 미스테리하게 남겨진 눈위의 발자국.
 
2. 시집간 화가의 첫째딸 가즈에가 자택에서 살인당한 채 발견된다.
 
3. 아조트의 환상을 가지고 있던 화가가 죽었는데도, 아조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여섯딸의 신체가 각각 다른 지방에서 절단된 채 발견된다.
 
자, 범인은 누구이며, 범행동기는 무엇일까?
40년이 넘게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다던(물론 소설속에서-) 이 미스테리한 사건의 전말은?
정답은 책속에서 확인하시라....
 
 
p.s 1. 책속의 타이프체가 무척 거슬린다. 특히 회색으로 된 부분이 나왔을 때는 거의 좌절이었다.
(눈이 멀 것 같은 고통이란....)
읽기 적당한 글자체를 골라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모양은 예쁘나, 꽤 많은 내용을 읽기에 부적합한 글자체이다.
p.s 2.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이 트릭을 훔쳐갔다던데, 김전일은 띄엄띄엄 본적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김전일"에서 이 트릭을 본 사람들에게 이건 무지막지한 테러 아닌가.
p.s 3.  엉뚱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교고쿠도 시리즈"의 교고쿠도의 출연을 바랬다.
소설의 반절정도가 사건의 해설인데, 교고쿠도가 해결사였더라면, 사건 전말을 다 듣고 난후,
점성술의 효시부터 시작해서 일장 연설을 하신 다음, '결코 발로 뛰지 않고' 방에 앉아서 완벽히 증명했을 것 같다는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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