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 이안 맥켈런 주연 영화 [미스터 홈즈] 원작 소설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1
미치 컬린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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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겨우 자기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인간에게는 어쩔수 없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수가 없어서, 인생에 순응하듯 나이를 먹어간다. 동안이든, 노안이든, 나이가 드는 것은 마찬가지. 언젠가 세상에서 소멸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독자들이 아는 그 시간,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는 인간은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는 신도, 영웅도 없다.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의례 한번쯤은 읽어봤을 만한 추리소설의 고전이
아가사 크리스티 시리즈와 셜록홈즈 시리즈인데, 그중에 이제는 누가 들어도 "명탐정"이라는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린 셜록홈즈의 또다른 이야기가 <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이다.
여러 작가들이 쓴 셜록 홈즈의 외전격되는 소설들 중 하나.
미치 컬린의 이름은 <타이드랜드>라는 소설로 내게 기억되었는데,(물론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셜록 홈즈 이야기와는 또다른 깊이와 매력에 빠져 작가마저 기대하게 되었다.
 
한때 세상의 모든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다 풀수 있을 것만같던 영웅 셜록홈즈도, 언젠가는 늙는다. 이 책은 그 노년의 셜록홈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49세에 꿀벌에 빠져, 양봉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로열젤리 매니아가 되었으며,
이제는 나이가 들어 기억력도, 통찰력도 예전같지 않은, 90세가 넘은 평범한 노인 셜록 홈즈.
어린 아이들은 싫어했지만, 한 소년을 바라보며 사랑스러움을 느꼈고,
살인사건을 다루기보다는 자연에 파묻혀 남은 일생을 보내는 홈즈의 모습은 몹시 평화로워 보이지만, 하루하루 줄어드는 남은 일생에 대한 불안감은 매일밤 그를 두렵게 만든다.

책은 일본을 여행했던 셜록 홈즈의 이야기와 양봉에 빠져 가정부와 가정부의 아들 로저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
그리고 49세 그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은퇴했던 결정적인 기억을 섞어가며,
인생의 황혼과 불가항력의 인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셜록홈즈의 모습을 그린다.
이야기 자체의 매력도라기보다는, 마음이 울렁대는 아름다운 장면들의 연출이 무척 수려하고,
노년의 홈즈가 느끼는 인간에의 연민이 깊이있게 표현된 멋진 소설이다.
작가 미치컬린의 아름다운 문장력에 반해 앞으로도 기대하게 될 것 같은 작가이다.
(<타이드랜드>는 정말 읽고싶은데, 왜 아직도 안나오는지..!!!)
 
로저를 잃은 가정부와 홈즈의 먹먹한 대화를 들으면서,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지, 슬픈건지, 아련한건지 알수 없는 복잡다난한 감정을 느꼈다.
홈즈는 내게 있어, 전설에나 존재할 법한 영웅같은 명탐정으로써, 소설속의 개성적인 "캐릭터"로써 기억되었지만, 이 책 만큼 홈즈를 인간으로 느끼게 해준 책은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 중 하나도 없었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늘어간다.
그것은 논리만으로는 어쩔수 없는 세상을 알고, 인간에의 연민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가끔씩 젊은이들의 입에서 "서른이 넘으면 죽어버릴 거야!!"하는 농담조의 극단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겠지만, 더 살아보라고 늘 말하고 싶었다.
아무리 인생이 절망적이라 해도, 나이가 한살씩 먹어갈수록, 삶에 대한 집착과 사랑도 한살씩 먹어가는 것 같다.
쉽게 얘기할수 없는 것이 인생. 나 역시 더 살아봐야 알게되지 않을까.
인생이 뭔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결코 알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걸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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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0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년이 된 셜록홈즈 이야기, 특이하네요
서평을 읽으니, 인생의 쓸쓸함이 묻어있는 작품 같아요. 특히 노년의 향혼.
미스터리면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관심가는 책이에요^^

Apple 2008-01-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내용자체의 참신성보다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예요.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하다고 느낄수 있는 소설인지라, 선뜻 추천하기는 그렇네요.^^;
 
황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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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우선주의의 어느 방송사에서 집단수용소 시스템을 돌리기 시작하고,
무작위로 사람들을 잡아가두고 그들을 학대, 착취하기 시작한다.
식물원을 산책하다가 무작정 잡혀들어간 숭고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 파노니크,
비열한 성품을 인정받아 포로들을 수용, 관리하는 "카포"가 된 즈데나는 포로 파노니크를 보고 반해버리고, 그 관심의 표현으로 파노니크를 더더욱 학대하다가,
CKZ114로 불뤼는 파노니크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단 한번만이라도 듣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파노니크에게 몰래 초콜렛을 찔러주기 시작하는 카포 즈데나, 함께 수용된 포로들에게 그 초콜렛을 나누어주며 포로들 사이에서 성녀가 되어버리는 파노니크,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카메라.
매번 최고 시청률을 갱신해가는 방송사는 드디어 절대 시청률 100%를 꿈꾸고, 이 고통의 쇼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드디어 리모콘 하나로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 소설답게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되는 <황산>.
충분히 흥미로울수 있고, 생각의 여지를 둘수 있는 소재를 늘어놓고도
이야기를 제대로 수습하기도 전에 지루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물론 비현실적인 소재이기는 하지만) 방송사의 시청률 우선주의를 좀더 신랄하게 꼬집어 주었다거나,
집단 생활에서 올수 있는 동포(?)들 사이의 감정적 대결을 좀더 부곽시키거나,
카포 즈데나와 포로 파노니크 사이에 흐르는 동성애적 무드를 좀더 활용하여,
파노니크가 일방적으로 즈데나의 애정을 이용하는 비열함을 보여준다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두 여자 사이의 뜨거운 애정행각이라도 보여 주었더라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의 작가의 무성의함은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초반부, 아멜리 노통브의 책이 두 라이벌간의 피튀기는 설전이 주를 이루었다면,
<황산>, <머큐리>, <공격>은 "미녀와 야수"의 각색판 암흑동화같은 느낌이 풍기는 소설들이다.
(왠지 이것도 시즌제인 것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1년에 한번은 꼭 책을 낸다는 아멜리 노통브, 그럭저럭 읽기는 재밌지만 몇가지 소설에서 비슷한 소재를 사골처럼 울겨먹는 것을 보면, 상상력의 부재라던가 프로다운 마인드가 살짝 부족한 건 아닐까 싶다.
좀더 신선한 이야기, 새로운 표현방식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미녀와 야수 설화를 버전만 살짝 바꾸어서 내놓는 이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최대 장점인, 자극적인 감정선을 제대로 살리면서 좀더 성의있게 이야기를 꾸려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작가로 남을수 있을텐데....
 
더불어 제목이 <황산>인 이유를 도무지 알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소설 내에서 황산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얘기 자체와는 별로 관계없기 때문에
이건 뭐... 소설속에서 아무 단어나 집어서 제목을 만들어도 이것과 마찬가지 느낌일 것 같기도 하다. (아예  "그리고"나 "하물며"같은 제목을 지어도 무관!!!)
이제 또다시 왠만큼 아멜리 노통브 소설을 읽었으니, 당분간은 아멜리 노통브여 안녕...
다음에 볼때는 더더욱 신선한 이야기로 만날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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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이 이상했어요. 황산보다 다른 근사한 소재가 있는데 말에요^^
<공격>이나 <머큐리>는 정말 재밌었는데, 이 작품은 설정에 공감이 전혀 안갔더라는ㅋㅋ

Apple 2008-01-06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좀 억지스럽다는..^^;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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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를 마치 패러디라도 한듯이 나온 주제 사라마구의 도시 완결편 <눈뜬 자들의 도시>.
책을 읽어나가는 순간부터, 얼마전에 있었던 대선이 겹쳐지면서, 이런 상황을 가정하면서 보게되었다.그래도 소설은 소설인지라, 비현실적인 설정이긴 했지만,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다소 가벼운 듯, 뼈를 담고 있는 풍자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책은 소설같다는 느낌보다는
한편의 우화같다는 느낌이 더더욱 들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거의 모든 책을 본 본인으로써도, 그간의 주제 사라마구의 모든 책들중에서도
가장 '읽혀지기 힘든' 책이라는 점은 부정할수 없다. (사라마구의 책들은 대부분 다소 가독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백색 실명증이 도시를 휘감아 버리더니,
그후로부터 4년이 지난 후,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백색투표병이 도시를 휘감아 버린다.
전작에서 보여졌던, 백색실명증이라는 국민적 재앙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사건 해결 방법(감염자들을 정신병원에 가두어버리는...)을 떠올리면,
그로 부터 4년후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임도는 뻔하지 않겠는가.
누가 국민을 버리는 정부를 지지하겠는가.
폭우로 인해 선거율은 고작 70%에 그쳤고, 설상가상으로 어쩔수 없다는 듯 이루어진 재선 선거율은 83%에 그쳐버린다.
정부와 정치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수치, 아마도 누구나 4년전 백색 실명증 사건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결과를 이해할수 있으리라.

그러나 정부는 엉뚱한 결론을 내버린다. 이것은 4년전 백색 실명증과도 비슷한, 백색 투표증이라고.
괴씸해진 정부는 또다시 국민을 을 버리고 달아나버리고, 그대로 방치해놓은 채,
무정부상태의 아비규환이 될 도시를 기대한다.
그러나 도시는 너무나도 평화롭다. 이전에 그랬던 적이 없을 정도로.
더더욱 괴씸해진 정부는 유치하게도 극적인 사건을 조장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리고,
얼토당토않게 이 백색 투표병을 조장한 사람이 있다고 몰아가고,
용의자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주인공이었던 유일하게 눈멀지 않은 여자, 의사의 아내를 지목하면서, 소설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겹쳐지기 시작한다.
 
정치풍자 우화같은 이 소설은 주제 사라마구다운 예리한 통찰력과 평범한 인간군상들에 대한 따듯함이 돋보인다.
특히 눈물 핥아주는 개가 등장하는 씬에서는 왜 갑자기 마음이 아렸는지 모르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마지막 남은 희망이자 기적이었듯이, 눈물 핥아주는 개 역시 어리석은 자들이 만든 세상의 또다른 기적이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는 희망이 있지만, 눈뜬 자들의 도시에는 희망이 없다.
눈을 뜨고만 있을 뿐, 진실을, 인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마지막 기적이 사라지고, 눈은 뜨고 있으되 눈이 먼 사람들만이 존재하게 된 세상을
우리는 대체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인가.
 
드디어 세상은 눈을 떴지만, 눈뜬 장님들은 참담한 현실을 만들어간다.
좀더 격렬하게 재앙에 가까웠지만, 폐허에서 꽃이 피듯 마지막 희망의 여지를 남겨주던 전작과는 달리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좀 더 냉혹한 현실의 인간을 이야기한다.
눈을 떠도 알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
참 두렵지 않은가. 멀쩡히 눈을 뜨고도 바로 거기 놓여있는 진실은 절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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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어요^^ 주제 사라마구 책 거의 다 읽으셨다니, 부러워요~
저도 읽어보려고 <도플갱어>읽다 중간에 말았어요ㅋㅋㅋ

Apple 2008-01-04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케..^^;;안맞는 사람들에게는 잘 안읽히기도 하지요..^^흐흐..
 
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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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전설이다>를 읽은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리처드 매드슨이 이렇게 글을 잘쓰는 사람인 줄은!!!!
특히 이 책은 <나는 전설이다>와 마찬가지로, 장편 <줄어드는 남자>를 포함해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나는 전설이다>에 수록된 단편들에 약간 실망해서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들이 이렇게 재밌는지는 처음 알았다.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줄줄줄 재빠르게 읽어 내려갔는데, 최근 빠져있었던 독서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달까.
 
키 183cm의 건장한 아버지 스콧은 어느 날부터인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조금씩 줄어들어 어느새 아내보다 키가 작아지고, 또 하루하루 조금씩 줄어들어 어린 딸보다 키가 작아진다.
처음에는 병원도 열심히 다녔다. 희귀병이기 때문에 병원비를 충당할수 없어졌을 때 쯤에는 병원에서 연구 목적으로 치료비 지원도 해주었다. 약도 먹고, 치료도 받았는데, 이 몹쓸 병은 고쳐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키가 조금씩 줄어들 때마다 가장으로써의 자신감도 줄어들기 시작하고,
세상이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것만 같아 매사가 짜증스럽게 느껴지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비겁하고 한심한 어린애같은 남자로 타락해가는 자신을 느껴가면서도, 스콧은 매일 매일 일상에서, 세상에서 줄어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어쩔수 없다.
 
그렇게 작고 작아져, 찬 겨울 바람에도 날려가는 나약한 신세가 되었을 때는
그는 지하실에 남아 누군가의 구조를 바라고 있는데도 누구도 알아챌수 없을만큼 작아져버려서,
지하실이라는 거대한 정글에 혼자 남겨진 채 손수건을 잘라 옷을 해입고, 작은 흑거미와 싸우는
인간 세상에서 무존재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제 몇일 후 그가 더 작아져 0센티미터가 되는 날, 그는 완벽하게 소멸해버리는 것일까.


매일 매일 줄어드는 키와 함께 사라져가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비통한 심정과
타인의 불행을 잣대 삼아 자신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대한 통렬한 비판, 스릴 넘치는 거미와의 추격전, 거기다가 묘하게 가슴을 아리는 감동까지, 이 <줄어드는 남자>만으로도 올해 최고라고 말해도 좋을만큼  멋진 소설이었지만, <줄어드는 남자> 이후에 실린 단편들 역시 하나같이 재밌어져버리니, 이 책을 내가 올해 읽은 가장 재밌는 소설이라 말하는 것은 말해봤자 소용없는 당연한 말!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2만 피트 상공의 악몽>과 <시험>, <배달>이었지만, 감히 모든 단편이 훌륭했다 말하겠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예전에 TV에서 방영한 적 있던 <환상특급> 에피소드의 원작이라고 한다.(아쉽게도 나는 환상특급은 보았으나 이 에피소드는 못보았다.)
비행기 화장실에서 못 볼 것을 본 한 남자, 비행기 날개에 붙어있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리처드 매드슨 답게 신경질적인 긴장감이 넘치는 멋진 스릴러 단편이었다.
 
<시험>은 단편들 중 유일하게 씁쓸한 슬픔을 남기는 단편으로, 현대판 고려장과도 같은 느낌의 단편이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5년에 한번씩 시험을 본다.
너무 나이가 들어 인식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정부에서 데려가 그 노인들을 안락사 시켜 버리는 언젠가의 미래.
어느 가정에서는 할아버지의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시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반면, 부모에 대한 애정으로 복잡한 심정으로 시험을 기다리고,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시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뒤돌아 눈물을 흘린다.
기어코 시험을 보기위해 떠나는 노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가슴이 뭉클해지고, 쓸쓸해지는 단편이었다.


<배달>에서는 원초적 악인이 등장한다.
동네에 이사온 남자는 예의바르게도 이웃해있는 집들에 이사인사를 가는데, 이 남자, 뭔가 꿍꿍이가 이상하다. 평화로운 동네로 이사온 한 남자가 각 가정들을 도미노 무너뜨리듯이 파멸시켜가는 이야기. 짧지만 무척 임팩트가 큰 단편이었다.
 
그외, 사망자수를 예측할수 있는 남자가 등장하는 <홀리데이 맨>,
10년을 10분으로 단축시켜버리는 영화편집처럼 인생의 긴 시간들이 재빨리도 흘러가버리며,
주인공이 기억나지 않는 세월에 대한 허망함을 느끼게 되는 <몽타주>,
<결투>나 <파리지옥>처럼 현실에서 일어날수 있는 짜증스러운 사건을 긴박감넘치게 써내려간 단편들이나, 예약손님을 받는 이발소에 대한 섬뜩한 이야기 <예약 손님>이나, 버튼하나로 세상 어딘가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하나 죽이는 댓가로 돈을 받을수 있는 부부의 이야기 <버튼, 버튼>같은 괴담같은 이야기도 재밌다.
 
스릴과 극도의 긴장감, 신경질적인 감정선, 그리고도 인간이라면 느낄수 있는 고독감과 허망함이 담긴 리처드 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
나는 <나는 전설이다>도 참 재밌게 읽었지만, <줄어드는 남자>에서는 그의 소설이 완벽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겨울, 즐거운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리처드 매드슨의 더 많은 작품을 읽을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캬~정말 멋지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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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0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거 같아요. 시즈님이 이 정도로 추천하신다면요^^

Apple 2008-01-04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정말 재밌어요..^^
 
공범 - 현대세계추리소설선집 3 현대세계추리소설선집 3
이언 뱅크스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는 이언 뱅크스의 소설 <공범>.
내게 이언 뱅크스는 <말벌 공장>으로 기억되는데, 그는 사실 SF 소설작가라고 한다.
어쩌다보니, 유일하게 읽은 두 책은 그의 몇권 안되는 순문학들이었는데, 푸석푸석한 듯 건조한 문체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이야기의 아귀를 맞추어 나가는 솜씨는 여전하다.
<말벌공장>의 기억이 머릿속에 꽤 각인되어버린 건지, 이 소설 <공범>의 주인공 카메론을
어쩐지 소년이라고 생각하면서 보게되는 이유는 뭘까.
컴퓨터 게임, 마약, 술, 기이한 섹스...중독될 수 있는 것에는 다 중독되어버린 세상 귀퉁이에
세상을 비꼬며 살아가는 (그럼에도 전혀 행동할 생각은 없는) 염세적이고도 나약한 사춘기 소년같은....
 
책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의문의 참혹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냉소적이고 어딘지 반사회적인 저널리스트 카메론은
자신이 썼던 비평글속의 인물들이 살해된다는 것을 알게되고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이에, 카메론은 누명을 벗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너'로 표현되는 의문의 살인자를 책속의 인물들에서 찾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은 범인을 찾아야 모든 것이 풀리는 퍼즐게임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점에 얽매이지 않고 봐야하는 책이다. 부패해 썩어들어가는 세상, 누구나 마음속에서는 품어보았을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결코 실행에 옮기려 하지 않는 살의. 범인의 살의는 악랄한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상 누구나 꿈꿔본적은 있어도 해본적은 없는 완벽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무척 독특하다. 정의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를 그린 무척 푸석푸석한 작품이다.
사실 소설자체에서는 그다지 감명 받을 것이 없었지만,
삐뚤어진 세상을 살아가며 단단히 세상에 매달릴 것이 필요해 무언가에 중독되어서
끊임없이 중독을 갈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래전부터 위시리스트에 담아놓고 잊어버리고 있던 책들은 필요할때 찾으면 꼭 절판이다.
이 책이 딱 그런 경우.
오랜만에 이 책이 떠올라 결국 도서관에까지 가서 빌려오는 엄청난 노동(?)을 한 이유는
올해 보았던 <뜨거운 녀석들>이라는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옥의 티 같은 것은 잘도 찾아내는 나는, 잠깐 스쳐가는 그 장면을 찾아내고,
위시리스트 구석에 있던 이 책을 기억해내고, 결국은 읽고 말았다.
아아, 이 무시무시한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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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12-1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밌을거 같아요~ 염세적 분위기, 스릴러, 연쇄살인 와~ ^^
영화속 한장면을 보고 기어이 빌려오신 집념~ㅋㅋㅋ

아...이언 뱅크스 신작나왔어요 <플로베르를 생각하라>인가 뭐시기-_-

Apple 2007-12-1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저도 나중에 주문하려고 담아놓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