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2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에 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갔던 <안네의 일기>.
살아도 죽은 듯 살아야하는 인간들, 숨어 있어야 안전한 범죄자같은 존재감.
눈치보며 숨죽여 목숨만 겨우 연명하는 삶의 공포가 얼마나 무섭던지, 그 소설을 보고나서 한참 동안은 전쟁이 나고 내가 쫓기고 숨는 악몽을 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런 것들이 무섭듯이, 나는 여전히 그런 것들이 무섭다.
숨쉬는 것 말고는 더이상 뭘 해볼수 없는 무기력감과 눈치보고 감시당하는 사회의 폭력성.
세상은 여전히 불합리해서, 안네에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훨씬 더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선뜻 말해줄 용기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들이 있긴 있다고는 말하고 싶다. 이 책 <책도둑>에서 내가 본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조금 독특한 방식의 소설 <책도둑>은 내게 안네의 일기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비단 같은 시대의 사람들-히틀러 치하의 나치독일이 배경이라는 이유 뿐만이 아니라,
자신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한사람이 지배하는 사회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역사와 이야기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너무 평범하고 또 선량했기 때문이다.
 
도망치던 기차안에서 죽어버린 동생, 어머니조차 버린 소녀 리젤을 맡아 키우게된 사람들은
은색 눈빛을 가진 아코디언을 부는 남자 한스와 누구든지 돼지라고 부르는 무뚝뚝하고 성깔있는 로자, 가난하고 없는 생활이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했다.
소녀에게는 도둑질 하는 버릇이 있었다. 동생을 뭍고 돌아오며 처음으로 훔쳤던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그야말로 무덤파는 장의사들을 위한 지침서였다;;;)를 시작으로 글을 읽지도 못하는 소녀는 읽을수도 없는 책을 훔친다.
양아버지는 리젤에게 밤마다 글자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더듬더듬 <무덤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를 함께 읽어나간다. 그리고 소녀는 계속 책을 훔친다.
책을 싸잡아 불태우던 그 와중에서도 어쩌다 살아남은 책을 몰래 훔쳐내오고,
어찌된 일인지 자신에게 잘해주는 시장 부인의 집에서도 책을 훔쳐내온다.
호기심으로, 또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 모든 소중한 자잘한 일상들. 책을 훔쳐다가 읽고, 친구와 동네에서 축구를 하고,
어머니에게 욕을 들어먹는 그 일상이 한 남자가 오면서부터 깨어지기 시작한다.
약속을 지키려는 아버지에게 찾아온 한 유대인, 아무 말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숨겨주는 부모님처럼 리젤에게도 그 사람은 지하실 저 아래 뭍어두는 비밀이었다.
배고프고 지쳐 깡마른 그 남자, 도망자로써 유대인으로써 존재감 자체에 죄의식을 느끼는 그 사람에게 리젤은 날씨를 알려주고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해주고, 구름을 선물한다.
아무것도 줄게 없는 남자가 자신을 살려준 고맙고도 증오스러운 히틀러 作 <마인 캄프>를 뜯어
페인트로 덧입히고 그리고 써내 리젤에게 선물한 <굽어보는 사람>.
가난하고 눈치보며 살아야하는 세상이었건만, 사람들 사이에는 없는 것도 퍼주려는 정이 넘친다. 그리고 말로 지배하려 하는 사람 히틀러에 의해, 전쟁과 폭격에 의해 그 소소한 일상들과 사람들이 모두 부숴진다.
 

이 책을 <안네의 일기>를 읽었던 당시의 내가 읽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좀더 감수성 넘치던 어린 아이였던 나는 이 책을 질질 울면서 보았을지도 모를테지.
그래도 메마른 어른의 감성으로는 눈물은 나오지 않더라.
비록 <굽어보는 사람>이 너무 선량하고 나약해서 아름답고 구슬프더라도...
재밌고 감동적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기에 내가 너무 세속의 때에 찌들어버린 걸까. 온정의 낭만을 느끼기에는 고독의 낭만에 너무 심취해버린 걸까.
조금의 감정 몰입도 없이 조금 심심하게 읽어 내려갔으니, 어지간히도 감동받지 않는 인간인가보다. (아니면 코드가 다르던가..)
 
독특하게도 사신의 시선으로 본 책도둑 리젤의 이야기이다.
언뜻 언뜻 기억이 떠올라 메모를 하듯이 적혀있는 메시지도 꽤 아기자기하니 귀엽고, 표현방식도 무척 독특해서, 꼭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느껴졌달까. 잘 써내려간 책이고, 독특한 서술방식을 가진 책임은 분명하다.
다만 내 구미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뭐 그냥, 그렇다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8-04-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시즈님한테는 왠지 맞지 않을거라 생각했음

Apple 2008-04-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조금 심심했어요.케케케케
 
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백인소녀와 중국인 백만장자의 이야기.
가난하면서도, 허세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집안일을 돌볼 하녀는 있는 집안.
열다섯 먹은 딸이 어린 창녀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그 사실을 묵인하는 (혹은 그런 치장으로 부잣집 남자 하나 물어오기를 은밀히 바라는) 무책임한 어머니. 집안 재산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노름꾼 큰오빠에 대한 그 어머니의 기이할 정도의 애정.
큰오빠에게 눌려사는 착한 작은오빠. 그리고 주인공 소녀 하나.
메콩강을 건너는 배안에서 만난 중국인 부자를 소녀가 무작정 따라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아버지의 인생도 물려받아야하는 잘 울고 나약한 남자에게
소녀는 어째서 자신을 창녀처럼 대해주기를 바랬을까.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결핍에 대한 중독이었는지 나는 알수 없다.
두 주인공이, 아니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잃어버린 듯 절망과 패배감에 가득차
무의미한 몸짓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에 대한 결핍이고, 무엇에 대한 패배감이었을까.
 
어머니는 노름꾼 자식에게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놀랄만한 애정을 보여주고,
그 삐뚤어진 애정 뒤에는 이런 자식을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한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녀는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큰오빠에 대한 죽이고 싶을 만큼의 증오와 작은 오빠에 대한 모성애, 중국인 남자와의 중독적인 섹스로 위안받는다.
중국인 남자는 영혼없이 껍질만 남아 움직이는 꼭두각시같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가로지르는 허무함을 소녀에 대한 중독적인 사랑으로 겨우 이겨낸다.

그들은 삶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삶에서 고립당했다.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을 뚫린 채, 무언가에 미쳐있지 않으면 살아갈 자신이 없는 사람들,
관계와 자의식에 대한 패배감과 인생에 대한 절망,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속빈 강정같은 사람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뒤덮은 이미지는 그랬다.
삶보다는 죽음을, 충족보다는 결핍을, 사랑보다는 중독을, 그러다보니 허무해지고 쓸쓸해지는 삶의 모습들은 기억이 마음속에서 언뜻 언뜻 떠오르듯이 랜덤 재생되며 마음을 슬프게 만든다.
 
글쎄...<연인>이 소설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을 훔쳐본 것일까.
슬프고 나약한, 그럼에도 강박적으로 인생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어찌 이리도 허무해보이던지... 쓸쓸하고 아름다운 글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착 가라앉아서 떠오르지를 않았다.
오래전 보았던 이 영화의 기억이 떠올라서, 이번에는 소설로 보았는데 나는 소설쪽이 더 좋다.
내 기억속에 영화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소설의 주인공들의 모습과 조금 달랐던 것 같은데,
조만간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02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pple 2008-04-02 05:50   좋아요 0 | URL
앗...지적감사합니다..^^(어여 고쳐야지!!)
저도 워낙 어릴적에 본 영화라 기억이 살짝 가물가물하긴 해서 조만간 영화를 보려고요..^^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이 다루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에 대해, 자신은 도덕군자가 아니라던 말-
처음 이언 맥큐언을 들여다보게 된 건 그의 그런 의견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언 맥큐언의 소설들에는 거의 금기에 가까운 소재들이 등장해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런 금기에 가까운 행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나는 통과의례처럼, 너무도 당연한 듯 건조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언제나 섬뜩하고 푸석푸석한 느낌을 자아낸다.
괴물이 등장하고,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그저, 인간의 무의식의 악랄함-
이런 불편하고 불쾌한 무의식조차 인간의 본성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무자비하고 악랄할 것도 없는 행동들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저 그렇게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충동에 불과하게 느껴지듯이. 이언 맥큐언의 소설이 불쾌한 것은 다른 이야기에서는 악인으로 등장할만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 아닐지...
 
제목만 봐서는 꽤나 달콤할 것 같은 가면을 쓴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근친강간부터 아동성추행까지 세상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성적 관계들이 줄줄히 등장한다.
폭력적이기 그지 없는 이런 행위들이 아주 건조하고 나른한 어투로 "그것도 어쩔수 없는 충동"인 듯이 풀이되어있다.
여기서 무엇을 봐야할 것인가. 이 행위를 정당화 시키고, 감싸 안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옳고 그름을 벗어나 그런 기이할 정도로 비틀어진 충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현실에서 무의식속의 악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관찰해보자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남일인듯 바라보는 시선- 냉혹할 정도로 무심한 그 시선 때문에 이언 맥큐언의 소설들은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도 포르노그래피는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동성추행범들은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실린 "나비"에서 어째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린 소녀를 꼬여내어 터널로 끌고 들어가 여자아이를 보며 바지를 벗고 수음을 하다가 도망치던 소녀가 죽어버리자 운하에 버리고 오는 이 쓰레기같은 아동 성추행범의 이야기가 어찌나 나른하고 아련하게 그려지던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해버렸다. 이 이성과 감각이 충돌하는 모순지점인가보다.
안된다는 것 알면서도 한번쯤 보고싶은, 그런 이상한 충동을 발견한 듯한 찝찝한 기분이랄까.
소설 내내 그런 기분은 이어진다.
나 역시 그런 일에 동조한 파렴치한이고, 강간범이며, 범죄자인 듯, 기분은 몹시 불쾌하지만,
무섭도록 담담한 필력에서 나오는 방관자적 여유로움 때문인지 이런 불쾌한 소재들조차 매력적이다.
 
이 불쾌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선잠속에 꾸는 뭐라 말할수 없는 악몽처럼,
충격적일 것도 없이, 부끄러울 것도 없이 이어진다.
이런 것 또한 인간의 야수성이고 폭력성이라면 그럴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제발 벌어지지 않았으면.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충동같은 무자비하고 위험한 악같은 건 그저 마음속에서나 존재했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 이
이영수(듀나) 지음 / 북스피어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게는 듀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영수의 SF 소설집 "용의 이"는 세편의 단편과 한편의 장편이 수록된 내가 읽은 듀나의 첫번째 소설집, 그리고 듀나의 통상 네번째 소설집이다.
몇해전부터 인기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귀엽지만 염세적이고 삐뚤어진 느낌이 가득한 책이라고나 할까. (사실 그의 그림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 아니라 듀나의 소설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소설 후에 수록된 이 책에 대한 평들 중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이 소설을 "세계 몰락 프로젝트, 혹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앨리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소설만큼이나 인상적인 평이었다.
각기 네개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세기말의 느낌, 그리고 생소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모험같은 에피소드들과 도무지 겁도 먹지 않는 무뚝뚝한 소녀들-
그 말이 옳소. 이 소설은 꼭, 삐뚤어진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끌릴 마이너적인 캐릭터가 기이한 모험에 빨려들어가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앨리스 같다.

소설을 시작하는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부터 듀나의 상상력의 실체를 뚜렷히 파악할수 있다.
술취한 아버지가 동생을 강간하려는 것을 막으려다가 아빠를 죽여버린 소녀,
동생과 소녀는 창고에 아빠를 묻어버리는데, 아빠는 밤마다 무덤속에서 깨어나 자매의 피와 살을 노리는 좀비가 되어버린다. 겨우 초등학생들인 이 꼬마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밤마다 살아나는 좀비아빠를 밤마다 죽이고 파뭍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빠를 찾던 아저씨까지 좀비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일이 점점 커지고 만다.
소녀와 강간, 부자와 가난한 자들, 죽음과 좀비와 무덤의 이야기가 이 어우러지는 데도 어둡다고만 볼수 없는 것은 작품 내내 흐르는 어딘가 낙천적이고 무심한(예를 들면 무서운 상황에 빠져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들이라던가) 정서가 재밌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단편 전반적으로 흐르는 다분히 세기말적인, 그러나 세계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듯 자기애가 강렬히 표현되는 아이다운 잔인함과 낙천성이 이 단편의 큰 장점인데, 이는 이어지는 다른 단편과 장편에서도 계속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어 햇빛속에 녹아들어가버리기 전에 장치에 가두어놓는다는 설정의 "천국의 왕", 다른 세계에 떨어진 소녀들의 여정기같은 두 작품 "겨울너머로 가다"와 "용의 이"의 느낌 또한 그렇다.
나약하고 쉽게 바스라질 것 같은 소녀들을 세상속에 던져놓지만, 세상에 그닥 애착을 가지지 않는 이 소녀들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 뿐 커다란 희망이나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무심함을 보여준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독특함의 정체는 바로 이 소녀들의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뚝뚝하고 건조한 정서이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해듣는듯한 느낌이 이어졌던 것은 건조한듯, 무심한듯, 그러나 쫀득쫀득 재밌게도 이야기를 포장해놓는 작가의 센스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너네 아빠 어딨니?"와 "천국의 왕"이 재밌었고, 막상 장편이자 표제작인 "용의 이"는 지나치게 길어진 분량과 이미지로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지지 않는 세계관때문인지 조금 실망스러웠다.
단편들 만큼 장편들이 좀더 간결한 매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에서 펼쳐지는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환타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맘대로 이름 붙였다던 "동네 SF"라는 말에 무척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하며 귀엽고도 냉소적인 소설집이었고, 무거운 얘기도 무겁게 전달하지 않는 작가의 마인드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8-03-28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듀나 영화게시판 가끔 가는데, 책도 괜찮나 보네요.
나중에 읽어봐야 겠어요^^

Apple 2008-03-30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꽤 독특하고 괜찮더라고요..^^
 
악의 심연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 이름이 재밌었기 때문에(사탕과 사탄을 동시에 연상케하는 아이러니한 느낌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악의 심연>을 최근에 들려오는 끔찍하기 그지 없는 살인사건 소식을 매일같이 접하면서 보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요 몇일간은 악의 심연을 허우적거리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하다.
말 그대로, 악의 심연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듯이, 이 책은 무척 잔인하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작가후기에서 작가가 말하듯, 책에 묘사된 범죄들이 실현가능하고,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섭고 잔혹하고 씁쓸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책의 결말이 허무맹랑하다거나, 말도 안되는 뜬 구름잡는 소리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이 조금만 더 미숙하고 허무맹랑했더라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란, 특히 인간의 광기란, 광기의 심연이란,
이렇듯 뜬 구름잡 듯, 올바른 이성과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실종되고 1년을 외로움과 절망에서 살아오던 여형사 애너벨은
한밤중의 전화를 받고 사건 현장으로 뛰어나오게 된다.
눈내리는 어느 추운 겨울밤, 알몸으로 공원을 뛰어다니는 여자, 머리가죽이 일부 벗겨진 채 잔혹한 고문을 당한듯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디선가, 또는 무엇으론가 도망치는 여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발견된 여자의 몸에 세겨진 알수없는 숫자 문신을 근거로, 애너벨은 범인을 쫓던 중 범인을 사살하게 된다.
그리고 범인의 집에서 발견된 지옥도,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에서 그들은 알게된다. 고문을 당한 채 공포과 무기력으로 고통받는 수십명의 사진을.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님을, 이것이 연쇄살인이며, 배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이비종파가 관련되어 있음을....

이 분야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다는 막심 샤탕의 두번째 소설은 무척 강렬하게도 이렇게 시작된다. 단지 두번째 소설에서 독자를 이렇듯 완벽히 몰입시킬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작가의 나이가 아직은 어리다는 점 또한 놀랍다. (76년생, 우리나이로는 33살이다.)
또 이렇듯 아직 젊은 작가가 단순히 잔혹한 묘사로 이루어진 흥미위주의 연쇄살인극이 아닌
철학과 비판을 담고 있는 꽤 묵직한 소설을 써냈다는 것 또한 놀랍다.
책을 읽는 내내, 여기까지만 읽고 자야지-하는 순간을 얼마나 많이 놓쳤던가.
무서울 정도의 속도감과 몰입도, 작품전체에 흐르는 끈적하고 기분나쁜 악의 심연.
오랜만에 만나는 롤러코스터같은 작품으로, 잠드는 순간마저 빼앗가버린 훌륭한 범죄스릴러 작이었지만,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으로 우연이 계속되어 실마리는 잡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단점을 상쇄할수 있을 정도로 작품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 단점이 있음에도, 나는 이 책이 세계 최고의 범죄스릴러 소설 중 하나라고 느꼈으니.
 
자칫 생각을 삐뚤게 먹기 시작하면 인간의 악은 얼마나 깊은 심연속으로 치닫을수 있을까.
그리고 그 악이 넘쳐나는 심연속에, 얼마나 잔혹한 지옥도를 만들어 버릴까.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악인지...
소설속의 범죄자들이 저지른 악만이 악인지, 아니면 선의의 목적으로라는 변명을 달고 많은 현대인들이 저지르는 행동 역시 악인지, 인간이 정해놓은 선과 악의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하고, 또 거기에는 수많은 변수와 수많은 변명이 존재할수 있다는 것은 참 혼란스러운 일이다.
최근에 벌어진 흉흉한 살인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이 책에 묘사된 지옥같은 인간의 악의 심연이란 것이 단지 소설속에서 벌어지는 범죄 환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무섭다.
'밤이 되길 기다렸다, 어두워지면 스탠드를 켜고 이 책을 읽으라'
막심 샤탕은 책 서두부분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책을 다 읽고, "아쉽게도 책속의 범죄들과 수법들은 사실에서 기인해있다."는 말이 더더욱 무서웠던 것은 나뿐만일까.
천사에서 악마까지, 어떤 모습으로든 변할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기묘한 동물이구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8-03-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시즈님도 저렇게 생각하셨군요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격으로 우연이 계속되어 실마리는 잡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 부분이요^^ 저도 그랬는데ㅋㅋㅋ 우연이 좀 심하죠ㅋㅋㅋ
그래도, 좋은 작품이에요^^ 샤탕도 멋지고ㅋㅋ

Apple 2008-03-2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정말 재밌더라고요.^^ 우연으로 밝혀지는 실마리가 너무 많기는 하지만...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