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엮음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이 다루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에 대해, 자신은 도덕군자가 아니라던 말-
처음 이언 맥큐언을 들여다보게 된 건 그의 그런 의견이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언 맥큐언의 소설들에는 거의 금기에 가까운 소재들이 등장해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런 금기에 가까운 행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나는 통과의례처럼, 너무도 당연한 듯 건조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언제나 섬뜩하고 푸석푸석한 느낌을 자아낸다.
괴물이 등장하고,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그저, 인간의 무의식의 악랄함-
이런 불편하고 불쾌한 무의식조차 인간의 본성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무자비하고 악랄할 것도 없는 행동들이,
가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저 그렇게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충동에 불과하게 느껴지듯이. 이언 맥큐언의 소설이 불쾌한 것은 다른 이야기에서는 악인으로 등장할만한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 아닐지...
 
제목만 봐서는 꽤나 달콤할 것 같은 가면을 쓴 <첫사랑, 마지막 의식>에서는
근친강간부터 아동성추행까지 세상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성적 관계들이 줄줄히 등장한다.
폭력적이기 그지 없는 이런 행위들이 아주 건조하고 나른한 어투로 "그것도 어쩔수 없는 충동"인 듯이 풀이되어있다.
여기서 무엇을 봐야할 것인가. 이 행위를 정당화 시키고, 감싸 안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옳고 그름을 벗어나 그런 기이할 정도로 비틀어진 충동을 가만히 바라보고
현실에서 무의식속의 악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관찰해보자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남일인듯 바라보는 시선- 냉혹할 정도로 무심한 그 시선 때문에 이언 맥큐언의 소설들은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도 포르노그래피는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동성추행범들은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실린 "나비"에서 어째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린 소녀를 꼬여내어 터널로 끌고 들어가 여자아이를 보며 바지를 벗고 수음을 하다가 도망치던 소녀가 죽어버리자 운하에 버리고 오는 이 쓰레기같은 아동 성추행범의 이야기가 어찌나 나른하고 아련하게 그려지던지,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해버렸다. 이 이성과 감각이 충돌하는 모순지점인가보다.
안된다는 것 알면서도 한번쯤 보고싶은, 그런 이상한 충동을 발견한 듯한 찝찝한 기분이랄까.
소설 내내 그런 기분은 이어진다.
나 역시 그런 일에 동조한 파렴치한이고, 강간범이며, 범죄자인 듯, 기분은 몹시 불쾌하지만,
무섭도록 담담한 필력에서 나오는 방관자적 여유로움 때문인지 이런 불쾌한 소재들조차 매력적이다.
 
이 불쾌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선잠속에 꾸는 뭐라 말할수 없는 악몽처럼,
충격적일 것도 없이, 부끄러울 것도 없이 이어진다.
이런 것 또한 인간의 야수성이고 폭력성이라면 그럴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제발 벌어지지 않았으면.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충동같은 무자비하고 위험한 악같은 건 그저 마음속에서나 존재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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