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르나르
이동민 지음 / 재원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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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앗, 이건 만화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림들이 있다. 대부분 아르누보 미술품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데, 아르누보 미술작품들이 일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떠올리면 이런 느낌이 아주 틀린 감상은 아닐 것이다 다른 어떤 그림들 보다도 그 현상에 정지된듯한 느낌이 강하고, 디자인적이고 장식적이면서도 평면적인 느낌을 받게되는 아르누보 그림들. 그 몽롱하고 퇴폐적이며 여성스러운 그림들을 나는 사랑한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처음 본것이 10년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외국에서 나온 화보집 이외에 알폰스 무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을수 없었다. (내가 처음 알폰스 무하의 화보집을 보게된 것도 무척 우연이었는데, 아는 사람이 동네에서 어느 집 이사가면서 버리고 간 책들중에 껴있던 알폰스 무하의 책을 발견하고 광분하며 집으로 가져왔다고 하여 나 역시 보게되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엄청나게 아름다운 화보집을 버리고 갔을까 하는 의문도 가졌더랬지.)
어쨌거나 알폰스 무하의 그림에 처음 빠졌을 때 그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찾기 힘들었었고,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유명해져서 여기저기서 그의 그림을 볼수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의 생애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이 책은 주요 활동범위가 프랑스였기 때문에 알퐁스 뮈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던 알폰스 무하와 그의 페르소나였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책을 보면서 왜 이 화가의 이야기가 알려져있지 않을까...하던 예전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의 삶에는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흐처럼 평생 무명작가로 살지도 않았고, 고갱처럼 완벽한 보헤미안도 아니었으며, 로트렉처럼 장애를 딛고 일어서지도 않았고, 클림트나 에곤쉴레처럼 퇴폐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가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주로 포스터나 잡지표지, 책 일러스트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사실에서도 알수 있듯이, 그는 철저한 상업화가였던 것이다. 화가라면 누구나 그렇듯, 어느 정도 고생을 하며 유명화가가 되기 이전의 삶을 살았지만,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공연 포스터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유명세를 타며 끊임없이 그림의뢰가 들어오던 화가였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그에게는 여러 포스터 권유가 들어오기시작해서, 그때부터 엄청난 다작의 포스터와 장식작품을 제작했다. 화가 본인도 그림에서 최대한 직접적이고 강렬한 표현은 잘 하지 않은 이유 역시 그의 그림이 팔리기 위해 제작된 그림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렇다고 평생 상업적으로 이용된 그림을 그린 것만은 아니지만, 그의 주요 인기작품들은 대부분 상업적 용도로 제작된 그림으로, 뛰어난 장식미와 세련된 디자인, 특유의 여성스러운 곡선이 매력적인 그림이었다.

책에 얘기되어있지 않았지만, 감히 예상해보자면, 어쩌면 이 작가는 동료작가들에게 시샘이 섞인 비난을 듣지 않았을까 싶다. 상업예술이 판을 치는 요즘은 그런 것이 하나도 흠이 되지 않지만, 장식성과 디자인성으로 승부보는 이런 그림들은 순수예술에서는 조금 멀어져보이니까. 오히려 지금으로 따지면 디자인이나 만화쪽에 가깝다. 순수예술, 정통성같은 것을 더 중요시 여겼던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비난의 대상일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제대로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하니, 이 화가의 그림은 당대에는 인기 많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반짝반짝 최신 유행이자 아르누보의 아이돌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예술가의 고뇌와 우울함보다는, 화려하고 화사한 꽃과같은 그림들을 그리던 사람. 어쩌면 다른 예술가들은 그의 풍족함과 대중적인 재능과 인기를 미워하고 질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알폰스 무하가 살았던 시대의 프랑스에서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대부분이었고, 또 다행히 외곬수 예술가도 아니고, 많이 버는 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던 인정많은 사람인지라 많이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선물받은 책인데, 보고있으면 황홀해지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과 그의 일생이 담긴 책이라 참 좋았지만, 제목에 명시되어있는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르나르>의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아 아쉽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이 책과 표지가 다른데, 재판을 찍으면서 표지를 달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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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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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그럭저럭 무시무시하지만, 결코 비관적이지 않은 책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다카노 가즈아키 책을 읽고 있다보면, 비록 소재는 그럴지라도 언제나 어느 정도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흩뿌려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선같은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낙관주의는 참 좋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어떻게 되지 않는다-같은...
단편이라고 해야할지 장편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것이, 매 단락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케이시라는 미래를 내다볼수 있는 남자가 등장하기 때문에 연작 단편으로 보아도 무리없겠다.

미래를 내다볼수 있다면, 또는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6시간후에 죽을수도 있고, 60년 후에도 죽을수 있으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고, 바로 눈앞에 드라마 뺨치는 기가 막힌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 주위에 미래를 내다볼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당연히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게 될것이다.
그래서 이 미래를 내다보는 청년 케이시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미래를 알려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간혹 자신이 먼저 다가가 그 사람의 미래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 책은 케이시와 관련되어 자신의 미래를 알게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처음과 끝이 맞닿아있는 소설이다. 행복한 이야기 따위 하나도 없는데, 읽는 내내 꼭 행복한 동화처럼 느껴졌다.

표제작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서는 그닥 감흥이 없었는데, 두번째 단편부터 마지막까지 나는 빠져들고 말았다.
아주 독특한 이야기는 아니다. "시간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어린시절의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는 이미 영화나 소설에서 여러번 보아왔던 이야기이고, 전체적으로 다소 밍숭맹숭한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왜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이 날 뻔했는지....
"시간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플롯 라이터의 고단한 삶이라던가, "돌하우스 댄서"에 등장하는 꿈을 잃어가는 어느 댄서의 이야기가 꼭 내얘기 같아서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꿈인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확실하게 주어졌던 꿈.
오직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한때는 여렸던 마음에 얼마나 많은 굳은 살이 배기게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극본가가 되기 위해서 근근히 내일 하루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몸 아끼지 않고 일하는 플롯 라이터의 이야기.
열심히 노력했고 어딘가 특별히 잘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코 눈에 띄지 않는 무명댄서의 이야기.
그 얘기들은 꼭 내 얘기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가 가슴이 따뜻해지다가 눈물이 날 것 같다가....그랬다.
그리고 다카노 가즈아키가 그들에게 주었던 운명이라는 것, 그 끝은 보여주지만 결코 그 과정은 보여주지 않는 점이 냉혹하다면 냉혹하고, 배려심있다면 배려심 있는 결말 같았다.
내일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지치고 고단한 몸을 채찍질해 다시 달려나가는 것, 또는 현실에 좌절해 꿈을 잃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 어느 삶을 선택하더라도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고, 어느 쪽도 어리석지 않은 선택이라고 내게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지더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래서 좋다. 누구에게 들어도 뻔한 위로같아보여도, 소설에서 읽으면 그 느낌이 다르다.
아마도 책속의 주인공을 나라고 감정이입하면서 보게되어서이겠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더라도, 후회스럽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 순간 행복했더라면, 충실했더라면, 그걸로 괜찮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내 미래가 궁금해졌다. 점쟁이라도 찾아가 볼까, 사주라도 봐볼까.
케이시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한번쯤 물어보고 싶다. 내 인생은 어떠냐고.
어쩌면 "너는 10년후에 죽어."라고 말하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운명은 예정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운명은 거스를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일은 누구도 알수 없다.
그 내일들의 사소한 변수들이 내 운명을 또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가 어떻다 하더라도, 어쩌면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내일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또 다른 내일도 있으니 그리 찌푸리고 있지 말자.
아직도 살아갈 날들은 많고, 해야할 일도 많고, 수많은 내일이 남아있으니....
알수 없는 것 투성이인 인생, 그래서 모두 미래를 알고 싶어하면서도 현실에 충실해야만 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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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9-04-18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이거 단편집이군요
다카노 가즈아키의 단편집이라...여러모로 의미있는 작품 같아요^^

Apple 2009-04-19 02:50   좋아요 0 | URL
단편이기는 한데, 메인주인공이 하나 등장하는 단편이예요..^^
아주 막 흥미진진하지는 않은데,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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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쩌다 되돌이킬수 없는 죄를 저지른다면 어떻게 해야 속죄할수 있을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복잡해서, 미운 놈은 이리해도 밉고 저리해도 밉기 마련인지라, 그저 "잘못했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해도, 분노를 품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이 고깝게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던 생각은 효과적인 속죄에 대한 것이었는데, 도무지 해답이 나지 않는 문제더라.
실수든, 고의든,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다면, 그 죄를 평생 마음속에 품어야 할 것은 당연하지만, 찾아가 잘못을 뉘우친들 여유롭게 용서할수 없는 피해자의 입장도 당연하고, 행여나 문전박대당할까 자신의 진심을 믿어주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용기내지 못하는 가해자의 입장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천사의 나이프>는 일본의 소년법-14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처벌하지도 않는 법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히야마는 네살된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남자이다. 딸이 갓난 아이던 시절 아내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처참한 시신으로 죽었는데, 심지어 그 범인은 13세 소년들이었다. 오락실 갈 돈을 뺏으려다가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살해 당한 것이다. 소년법에 의해 가해자 소년들은 당연히 인권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소년 A,B,C로 불뤼우며, 피해자는 그들의 이름 하나 알지도 못한 채, 소년원에서 그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갱생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분노를 터트릴수 밖에 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한순간에 잃었는데, 살해당한 사람의 인권은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의 인권을 고려해 피해자측에서는 그들이 저질렀던 사건에 대한 반성을 충분하게 했는지, 새사람이 되어 더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4년이 지나고, 매스컴에서 소년 B라 불뤼던 소년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나머지 소년 A,C 역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경찰측에서는 당연한 듯 피해자의 입장이었던 히야마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하기 시작하고, 히야마는 그제서야 가해자 소년들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갱생은 어떤 의미였을까.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인권이라는 것은 당연히 존재해야하지만, 법 역시 인간이 만든지라 완벽할수는 없어서 간간히 이렇게 헛점 투성이 법이 나타나곤 한다. 피해자의 인권과 알 권리는 존중되지 않으면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피해자의 인권은 꼬박 꼬박 챙겨진다.
어쩌면 우리는 매우 감정적으로 사람을 죽인 놈한테는 인권따위 존중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법이라는 것이 모두 다 같이 살기위해 존재하는 룰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응은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으로써 어쩔수 없는 것이다. 옆집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보다 우리집 쌀이 떨어진 것이 더 걱정인 것이 인간이고, 내가 가해자이며 피해자일수도 있으면서 절대적으로 피해자의 입장에 서고 싶어하는 마음도 당연한 것이다.

간혹 사회파 일본 추리소설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흥미위주의 이야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 법의 모순이나 보통사람들이 걸려 넘어질수 있는 현실의 사기행각들을 파해쳐서 모르고 지나가기 쉬운 일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주니까. 이런 소설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어쩌면 모두가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세상을 한각도씩 바꾸게 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나와 상관없다고 지나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얄팍한 사회의식, 이런 것도 세상을 그대로 멈춰있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그래서 이렇게 쉽고도 재밌게, 나와 상관없지만 한번쯤은 생각을 바꿔볼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 이 나라의 추리소설이 부러울 때가 종종 있다.

신인이라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매끄러운 진행과 강한 흡인력, 던져주는 사회적 화두가 참 재밌는 소설이어서, 틈틈히 끝까지 쭉 읽어버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래도 추리소설이니 후반부에 반전을 의식 한 것인지, 중반부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던 사실들이 후반부에 우후죽순으로 한꺼번에 등장하는 점, 지나친 우연이 중첩되는 점과 작위적일 정도로 이리저리 얼키고설킨 관계도를 만들어버린 점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정도면 멋지지 않은가. 첫작품인데 주제의식 한번 뚜렷하고 심지어는 재밌다.
그리고 책을 보고나서도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일을 평생 끌어안고 가게 될까.
아니면 그 역시도 첫사랑 기억이 흐릿해지듯 시간이 지나면 흐려져버리는 걸까.
죄를 지어 벌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갱생할수 있게 되는 걸까. 자신이 저지른 죄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미안하다고 다 용서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잘못을 뉘우쳤다고 속죄가 되는 것은 아닐진데,
이 세상에는 왜 이리 복잡하고 단정지어 얘기할수 없는 것들이 이리도 많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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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rum46 2009-04-1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므흐흐흐흐흐 ... *-_-*

Apple 2009-04-17 00:15   좋아요 0 | URL
너 누구얏!!! 꺄르르륵!!!!*-_-*
 
악의 영혼 1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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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샤탕의 악의 삼부작중에 가장 늦게 읽게 된 <악의 영혼>. 악의 3부작중에 초반부를 가장 늦게 읽게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강렬한 인상과 헐리우드식의 진행, 프랑스식의 철학적 사유까지 곁들여져서 프랑스 장르문학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라는 것을 알게된 작가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와 바로 이 막심 샤탕인데, 만약에 "악의 삼부작"중의 제일 첫편인 이 <악의 영혼>을 가장 먼저 보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막심 샤탕의 소설을 다시는 안보게 되었을지도 모를 터이다. 그렇다면 이 작가의 재능을 알게해준 <악의 심연>또한 만나지 못했을 터.
그래서 결과적으로 거꾸로 읽게되어 다행이었다. 적어도 나는 막심샤탕의 재능을 보았다.

"악의 삼부작"의 시작이면서, 막심샤탕의 데뷔작인 <악의 영혼>은 일명 포틀랜드 인간백정이라 불뤼우는 연쇄살인범을 잡아들이면서 시작된다. 1년후, 분명히 범인은 그자리에서 죽었는데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되고, 범죄후에 발견되는 여러가지 증거물들은 그때 죽었던 인간백정이 아니면 저지를수 없다는 결론을 말해줄 뿐이다.
형사면서도 미식축구선수처럼 잘생겼기 때문에 쿼터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뤼우는 브롤린은 포틀랜드 인간백정 사건의 최후 생존자인 줄리에트를 만나 마음의 끌림을 느끼게 되고, 하나씩 터지는 사건으로 줄리에트를 보호해야할 지경에 이르른다.

자, 여기까지만 들어보아도 이 책이 뻔할 뻔자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무수히 많은 헐리우드 스릴러에서 보여졌던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 한다.
연쇄살인범의 등장, 단하나뿐인 미모와 지성과 몸매를 모두 갖춘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탐정격의 형사(또는 경찰), 지적이면서도 고독하고 동시에 잘생기기까지한 형사, 여주인공을 연쇄살인범이 노리고 있고, 여주인공에게 겁주기위해 여주인공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살해당함, 정확히 사건을 추정할 단서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마치 계획이라도 한듯 후반부가 되면 수많은 단서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함, 이 연쇄살인범은 보통 똑똑한 놈이 아니고 심지어는 남의 머릿속을 헤집어 정신교육까지 시킬줄 암, 범죄동기의 사이코틱함.....
헐리우드 스릴러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를 간직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다지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것도 없다.
(게다가 단테의 신곡은 대체 얼마나 많은 소설에서 울겨먹어야 되는건지....)
이 책을 읽다가, 200페이지쯤 읽다보면 뒤에 어떻게 될지 모두 예상할수 있는데, 정말 놀랍게도 그 예상은 하나도 빗겨나가지 않는다. 나는 천재인 걸까? 아니, 그보다도 이 책은 너무 많은 뻔할 뻔자의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참 잘 읽히고 재밌다. 다만, 다 보고 나서 이 책이 스릴러의 명작이라는 둥 하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 같고 책을 읽고 난 후 후폭풍따위도 전혀 없는 소설이다. 그저 잘읽히는 페이지터너정도랄까.
그래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더라면 막심샤탕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 이 작가의 이미 성숙된 작품을 먼저 읽어서 그런지, 그런 뻔한 점들이 단점으로 작용한다기 보다는, 이 작가의 시작은 이랬군...그리고 이렇게 많이 성장했군...하는 정도로 생각된다.
읽기 나쁜 작품도, 읽고 시간이 아까웠다 후회하는 소설도 아니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그저 너무 뻔한 레파토리의 반복이 신인작가의 미숙함이라면 미숙함이다. 오히려 글을 이끌어나가는 힘이나 안정적인 구도, 연결력은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을 보여준다.

이 책으로 악의 삼부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참고 <악의 심연>부터 보라고 말하고 싶다.
후에, 이 재능있는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인지 알게된 후에 그의 조금 미숙한 작품을 확인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다분히 미국적인 소설, 프랑스 스릴러의 느낌은 거의 받을수 없었던 <악의 영혼>이었지만, 악의 삼부작의 다른 작품들부터는 분명 그런 느낌이 존재했으니까.

자, 이제 내게 남겨진 막심샤탕의 소설은 단 하나이다.
설령 이 작품이 조금 실망적이었다고 할지라도, 데뷔작의 미숙함은 애정으로 극복하자. 나는 아직도 막심샤탕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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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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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릴적, 어느날 엄마가 읽고 있는 검은책이 궁금해졌다. 새까만 바탕에 고양이눈 한쌍이 그려져있던 무광택 표지. 여름방학중이던 나는 그 책을 밤새 탐독하다가 너무 무서워져서 잠에 들지 못했다.
그 이야기들이 주었던 충격적인 공포는 당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괴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더 검고 음습한 뭔가가 더 있었기에 영문도 모르는 채 대체 무엇이 무서운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책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 책의 이름은 "검은 고양이". 그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책의 저자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읽은 에드거 앨런 포는 어렸던 마음에 충격적인 공포를 주었던 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그간 더 많은 공포를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에는 확실히 더 검고 음습한 뭔가가 있다.
그 뭔가의 이름은 절망이었다.
후에 접하게 된 에드거 앨런 포의 살아생전 시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러한 음습한 상상력의 원동력이 어쩌면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으니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가슴아픈 일이더라.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소설가로는 러브크래프트가 있는데 그의 삶 역시 에드가 앨런 포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평생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루한 삶을 살다가 요절하거나 비참하게 생을 마치는 천재들의 삶이 그렇듯.
에드거 앨런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공포의 저 이면에 현실적인 절망과 그 절망에 시달리며 몽롱한 섬망에 가까운 공포심을 읽는 나는 어쩌면 괜찮은 독자가 아닐까?(훗!!)

어쨌거나 내게는 특별한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
조엘로즈의 <가장 검은 새>는 살아생전의 에드가 앨런 포를 상상력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모든 팩션들이 그렇듯, 이 책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읽는 내내 에드가 앨런 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허구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다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총기업자 새뮤얼 콜트가 진짜로 존재했던 45구경 총을 발명했던 사람이라지 않은가!!!(어쩌면 이렇게 정보가 이어지는 독서+영화 관람을 할수 있는지!! 가끔 이런 경우 놀랍다!!!)
그렇다면 새뮤얼 콜트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존 콜트 역시 실존 인물인가. 또 살해당한 아름다운 시가가게 아가씨 메리 로저스 사건도 실제이며, 에드가 앨런 포가 자신의 일련의 몇가지 시리즈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뒤팽 역시 책속에서 등장하듯 상급치안관 헤이스를 모델로 삼은 게 진실인걸까.
팩션을 볼때 늘 그렇듯 어디까지가 진짜 정보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알수가 없다. 책을 다 읽고 작가 후기를 보고나서 몇가지 미스테리가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몇몇가지 사실들은 헷갈린다.
이것이 또 팩션이 줄수 있는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책을 시작하면서 세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신사들에게 동경과 애정을 한몸에 받고 있던 아름다운 시가가게 아가씨 메리 로저스가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또 한쪽에서는 존콜트라는 사람이 자신을 협박하던 담당 편집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또 한쪽에서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을 기다리게 될 갱단 두목 타미 콜먼이 등장한다.
세가지 사건의 담당자로써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상급치안관 헤이스는 이 사건이 시인이자 비평가로 유명한 에드가 앨런 포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를 용의자로써 지켜보기 시작한다.

이런 스타일의 추리, 스릴러 소설들이 그렇듯 일련의 관련없어보이던 세가지 사건이 종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에드가 앨런 포의 생애에 집착하여 초반부와 이야기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게되어서 그 점이 아쉽다. 그러다보니 세가지 사건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복선도, 연결고리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해서 독자의 추리와 생각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정해놓은 결론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책을 볼때 확실한 장르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앞에 얘기했던 몇가지 단점들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추리, 스릴러 소설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더라. 따라서 긴박감이 많이 떨어지고, 읽다보면 "메리 로저스를 누가 죽였을까?"라는 처음의 질문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해놓은 정보들, 19세기 뉴욕의 풍경, 익히 알고 있는 에드가 앨런 포의 재해석은 흥미롭지만, 장르소설로써의 매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추리, 스릴러소설을 기대하고 읽었다가는 큰코 다칠 책이다.

제목 "가장 검은새"는 에드가 엘런 포를 일컫는 말이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절망에 가득찬 듯 똑같은 대답만 뱉어놓는 갈가마귀처럼.
오만한 천재의 감수성과 노력해도 따라주지 않는 부와 폐배주의에 찌들어 애꿎은 다른 작가들에게 혹평을 늘어놓는 열등감, 결핵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더불어 애정에 대한 강한 집착, 삶이라는 가장 큰 공포.
그 어디쯤에 에드가 앨런 포가 살고 있었을까.
누구나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 생을 마감한다면 그건 무척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살아생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절망감에 시달리다가 죽는 예술가들의 삶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들을 동경할수는 있더라도, 누가 감히 그들의 삶을 살아도 좋다고 말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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