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릴적, 어느날 엄마가 읽고 있는 검은책이 궁금해졌다. 새까만 바탕에 고양이눈 한쌍이 그려져있던 무광택 표지. 여름방학중이던 나는 그 책을 밤새 탐독하다가 너무 무서워져서 잠에 들지 못했다.
그 이야기들이 주었던 충격적인 공포는 당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괴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더 검고 음습한 뭔가가 더 있었기에 영문도 모르는 채 대체 무엇이 무서운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책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 책의 이름은 "검은 고양이". 그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책의 저자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읽은 에드거 앨런 포는 어렸던 마음에 충격적인 공포를 주었던 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그간 더 많은 공포를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에는 확실히 더 검고 음습한 뭔가가 있다.
그 뭔가의 이름은 절망이었다.
후에 접하게 된 에드거 앨런 포의 살아생전 시절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러한 음습한 상상력의 원동력이 어쩌면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으니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가슴아픈 일이더라.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소설가로는 러브크래프트가 있는데 그의 삶 역시 에드가 앨런 포와 많이 다르지 않았다.
평생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비루한 삶을 살다가 요절하거나 비참하게 생을 마치는 천재들의 삶이 그렇듯.
에드거 앨런 포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공포의 저 이면에 현실적인 절망과 그 절망에 시달리며 몽롱한 섬망에 가까운 공포심을 읽는 나는 어쩌면 괜찮은 독자가 아닐까?(훗!!)

어쨌거나 내게는 특별한 소설가 에드가 앨런 포.
조엘로즈의 <가장 검은 새>는 살아생전의 에드가 앨런 포를 상상력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모든 팩션들이 그렇듯, 이 책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읽는 내내 에드가 앨런 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거의 허구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제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다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총기업자 새뮤얼 콜트가 진짜로 존재했던 45구경 총을 발명했던 사람이라지 않은가!!!(어쩌면 이렇게 정보가 이어지는 독서+영화 관람을 할수 있는지!! 가끔 이런 경우 놀랍다!!!)
그렇다면 새뮤얼 콜트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존 콜트 역시 실존 인물인가. 또 살해당한 아름다운 시가가게 아가씨 메리 로저스 사건도 실제이며, 에드가 앨런 포가 자신의 일련의 몇가지 시리즈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뒤팽 역시 책속에서 등장하듯 상급치안관 헤이스를 모델로 삼은 게 진실인걸까.
팩션을 볼때 늘 그렇듯 어디까지가 진짜 정보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알수가 없다. 책을 다 읽고 작가 후기를 보고나서 몇가지 미스테리가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몇몇가지 사실들은 헷갈린다.
이것이 또 팩션이 줄수 있는 매력이라면 매력이겠지만...

책을 시작하면서 세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신사들에게 동경과 애정을 한몸에 받고 있던 아름다운 시가가게 아가씨 메리 로저스가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또 한쪽에서는 존콜트라는 사람이 자신을 협박하던 담당 편집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또 한쪽에서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을 기다리게 될 갱단 두목 타미 콜먼이 등장한다.
세가지 사건의 담당자로써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상급치안관 헤이스는 이 사건이 시인이자 비평가로 유명한 에드가 앨런 포와 관련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를 용의자로써 지켜보기 시작한다.

이런 스타일의 추리, 스릴러 소설들이 그렇듯 일련의 관련없어보이던 세가지 사건이 종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에드가 앨런 포의 생애에 집착하여 초반부와 이야기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게되어서 그 점이 아쉽다. 그러다보니 세가지 사건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복선도, 연결고리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해서 독자의 추리와 생각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정해놓은 결론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책을 볼때 확실한 장르를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앞에 얘기했던 몇가지 단점들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추리, 스릴러 소설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더라. 따라서 긴박감이 많이 떨어지고, 읽다보면 "메리 로저스를 누가 죽였을까?"라는 처음의 질문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해놓은 정보들, 19세기 뉴욕의 풍경, 익히 알고 있는 에드가 앨런 포의 재해석은 흥미롭지만, 장르소설로써의 매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추리, 스릴러소설을 기대하고 읽었다가는 큰코 다칠 책이다.

제목 "가장 검은새"는 에드가 엘런 포를 일컫는 말이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절망에 가득찬 듯 똑같은 대답만 뱉어놓는 갈가마귀처럼.
오만한 천재의 감수성과 노력해도 따라주지 않는 부와 폐배주의에 찌들어 애꿎은 다른 작가들에게 혹평을 늘어놓는 열등감, 결핵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더불어 애정에 대한 강한 집착, 삶이라는 가장 큰 공포.
그 어디쯤에 에드가 앨런 포가 살고 있었을까.
누구나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 생을 마감한다면 그건 무척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살아생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절망감에 시달리다가 죽는 예술가들의 삶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들을 동경할수는 있더라도, 누가 감히 그들의 삶을 살아도 좋다고 말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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