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 자신이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켄지 & 제나로>시리즈의 첫권이자 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이다.
1994년작. 지금은 2009년. 15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현재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된 데니스 루헤인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냈을 당시 신인이었을텐데도 노련한 솜씨로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몰아치듯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놀라운 데뷔작 <전쟁 전 한잔>.
그려놓은 듯 선명한 캐릭터들의 이미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센스넘치는 유쾌한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은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방식인듯 싶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뒷권부터 먼저 읽은 상태라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도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끝난 상태이지만, 지금의 켄지를 있게 한 성장과정이라던가, 켄지와 제나로가 함께 있을수 있던 관계의 시발점 같은 것을 확인할수 있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담백한 폭력주의자 부바가 제일 좋아서, 부바만 등장하면 눈을 부릅뜨고 보게되기도 했다. 앞으로 부바의 활약상이 더 많다면 좋으련만....잇힝~)

이야기는 사립탐정 켄지가 한 유명 정치인을 만나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얘기인 즉슨, 제나라는 흑인청소부가 그에게 중요한 문서를 들고 사라졌으니 그녀를 찾아 문서를 되찾아오라는 것이다.
켄지는 자신의 파트너 앤지 제나로와 함께 사라진 여자를 찾아나서는데, 사라졌던 여자를 찾으니 이 여자는 또 정의를 위해서는 절대 문서를 내줄수 없다고 뻐기지 않나.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그녀가 훔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밝혀져야할 진실과 지키고자 했던 정의는 무엇일까.

정치와 암흑세력의 결탁을 다룬 책들은 너무나 많으니 아주 독특한 소설이라고 할수는 없는 셈이지만, 데뷔작 <전쟁 전 한잔>에서부터 이어지는 데니스 루헤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개성넘칠 정도로 뚜렷하고도 맥빠진다.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할수도 있을 법한데, 그의 소설을 읽고나면 느껴지는 찝찝한 뒷끝, 올바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무기력은 이것이 올바르지는 못해도 적어도 현실이기는 한 것 같아서 항상 기분이 우울해진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흑인과 백인, 선과 악, 권력 그리고 탐욕.
사회적 정의란 윤리교과서에나 등장할만한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사회 정의를 헤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은 가난한 나쁜 놈이 아니라 부유한 나쁜 놈이지 않을까.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기 독선과 탐욕에 빠져버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세상은 계속 그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비정하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뭔가 해보려는 듯 움직이다가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은 또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물림 하게되고, 몇백년을 그렇게 돌고 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은 폐배주의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이 또 그렇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는 어렵다.

자신에게서 멀어져서 그럼에도 살려고 했던 어느 소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그는 원래 자신이었던 어떤 존재로 부터 멀어져서, 자신이 원래 어땠는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려고 했었는지를 잊었다. 아무데도 돌아갈 곳도 없고, 누군가가 망쳐버린 삶속으로 어쩔수 없이 뛰어들어가야 하는 그 소년의 뒷모습은 이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이 상처가 끊이지 않는 고리처럼 이어져 개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그럼에도 그 고리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배에 새겨진 다리미자국을 바라보면서, 정의의 뒷꽁무늬라도 쫓으려는 켄지처럼.
정의란 보이지 않는 환타지일지도 모르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지옥은 찾아오지 않을거라고,
그래도 아직은 믿고 싶다.


"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면서 싸움이 끝나면 그도 평화롭게 살 거라며 자위했겠지만 그건 가능한 바람이 못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몸안에 침투한 오점은, 피의 일부가 되어 피를 모두 희석시키고 심장까지 침투해 버린다.
그리고 심장을 빠져나온 피는 이제 온몸을 휩쓸며 가는 곳마다 오염시키고 마는 것이다.
오점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빠져나오지도 않는다. 그걸 믿는 건 어린애들이나 바보들 뿐이다.
조금이나마 가능성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오점을 통제하고 단단한 공으로 만들어 한쪽 구석에 꼼짝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 뿐이다. 그리하여 평생 짐으로 떠안고 사는 것." -p29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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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의 땅 Medusa Collection 5
니키 프렌치 지음, 노진선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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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만약 혼자사는 독신 여자이고, 어딘가로 사라져 한달동안 연락이 없다면, 누가 나를 찾아줄까?
나를 아는 친구들은 그저, 내가 바쁜가보다 하고 생각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매시간 연락하고 살 수는 없으니, 그들이 먼저 연락을 해오더라도 그저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으려니, 또는 어딘가 여행이라도 갔으려니 생각할테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얘기하도록 하자. 2주이상 내 존재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면 좀더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내가 자의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 아닌, 끔찍한 유괴사건에 휘말려 있을지 모르니까.
전화도 없고, 문자도 없고, 자주가는 커뮤니티나 블로그, 홈페이지등에 그간 움직인 흔적이 전혀 없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나를 추적해달라고.
영국이라는 나라가 참 무섭다. 아니, 무서운 건 영국이 아니라 이 세상인지도 모른다.
2주동안 사람이 사라져 지하에서 결박당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쌓여 정체를 알수도 없는 범죄자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데, 아무도 사라진지 몰랐다. 그녀의 친구들, 옛연인, 심지어는 부모님까지도.

니키 프렌치의 강렬한 소설 <산 자의 땅>은 여주인공 애비게일이 기절상태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된다.
머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자신의 정체도, 지금 있는 곳도 확실히 알수 없었다.
그리고는 곧 끔찍한 악몽속에 놓인 자신의 상태를 알게된다. 손발이 결박당한 채, 두건을 쓰고, 자신의 배설물위에 누워 자신이 썩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누군가에게 유괴당해 이렇게 지하에서 물건처럼 버려져있다고.
정체를 알수 없는 범인은 간간히 찾아와 물을 주고, 먹이를 준다. 몇일이나 지났는지, 밤인지 낮인지도 알지 못하는 채, 그녀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른다.
차라리 죽자 싶어서 자살하려던 순간, 뜻밖의 탈출의 기회가 찾아와 그녀는 그 악몽속에서 도망친다.
머리에 받은 충격으로 이 사건전에 자신이 어떻게 해서 잡혀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자신을 돌봐주던 의사들과 경찰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했다. 한때 옛남자친구에게 맞은 경력을 들이밀며, 지나친 폭력에 시달린 나머지, 이런 이야기를 꾸며내 도움을 청하고 있는거라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여자를 다섯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에게 잡혀있었는데, 자신이 여섯번째 희생자가 되려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니.
악몽에서 뛰쳐나왔더니 또다른 악몽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고, 그녀가 실종된 약 2주간의 기간동안 그녀의 행적을 찾으려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고, 그저 불쌍하다는 듯이 동정할 뿐이다.
애비게일은 기억나지 않는 사건전 자신에게 일어났을 몇일의 기억을 추적하기로 한다.

몹시 폭팔적인 에너지를 가진 책이었다. 초반부부터 강렬하며 흡인력이 있어서 책을 편 순간부터, 도저히 덮을 용기가 나질 않아서 잠도 자지 않고 다 읽어버렸더니 낮이더라...(....이건 뭐....밤을 샜다고 하기도 뭣하고.....)
책을 보면서, 말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있었던 사실도, 진심도, 세치 혀를 거치면 훨씬 가벼워져 버린다.
모두가 믿어주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을 추적하는 애비게일의 노력이 눈물 겹기는 했지만, 책을 보면서도 나 역시 혹시 그녀가 정말 미쳐버린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하게 막판에 미친여자의 자작극이었소-하는 반전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기억이라는 건 또 얼마나 모호한가. 매순간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면서도, 매순간 망각의 시간속으로 사라진다.
내일이 되면, 일주일전의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 거의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데도 꼭 기억해내야할 특별한 순간도 있나보다. 애비게일이 찾던 그 몇일간의 기간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 몇일동안 일어난 일을 알아야 그녀는 범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모두 망각속으로 사라져가는 순간이라고는 해도, 그 순간 순간들이 다음에 올 순간들에 영향을 주고 있었나보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그제 뭘했는지 자세히 떠올려 보려고 하니 그닥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멀쩡히 살아갈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사건을 겪은 애비게일처럼 하루하루 흔적을 추적하며 기억속에 살다가는, 모두 피곤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추리, 스릴러 소설들이 더더욱 중점을 둬야할 부분은 "결말"보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잘나가다가 결말에서 다 망쳐버리는 소설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나온 추리, 스릴러 소설들을 보면 지나치게 반전의 의식한 나머지, 과정을 모호하게 흐려버리고, 뜬금없이 반전을 펼쳐놓아서 결말을 망쳐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과정이 즐겁다면, 이미 추리, 스릴러 소설은 의무를 다한 거 아닐까.
중요한 건 "누가?"라기보다는 "왜?"니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은 스릴러 소설중에는 이 소설이 가장 강렬했다. 하나씩 밝혀지는 애비게일의 몇일의 흔적, 뜻밖의 이야기들, 첨예한 심리묘사까지, 심리스릴러로 이보다 더 스릴넘치고, 흥미로울수 없어서 말그대로 손에 땀을 쥐게 되더라.
애비게일이 범인을 맞딱뜨리는 순간이 생각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역시 소설이 계속 그랬듯이 꽤나 강렬하다.

작가 니키 프렌치는 한명이 아니라 두명의 사람이다. 아내인 니키 제라드, 남편인 숀 프렌치의 이름이 합쳐져서 나온 필명이란다. 필명을 여자이름으로 지은 이유는 그들의 첫 공동작품의 주인공이 여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책을 읽으면서 마냥 여류작가의 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남자작가의 박력과 여자작가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합쳐져서 이렇게 놀랍도록 강렬한 느낌을 만들어낼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자작가들의 나약하고 섬세하기만 한 소설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이보다 더 좋을수 없는 소설이었다.
남편과 아내의 공동작업이라니. 그것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아닌 악몽같은 심리스릴러라니. 참으로 독특하신 분들이다.
앞으로 니키 프렌치의 다른 소설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 부부가 만들어낸 폭팔적인 에너지를 지닌 기억의 세상속으로 다시 한번 빠져들고 싶다.

P.S 다 보고나니 메두사 컬렉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보니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도 메두사 컬렉션이었는데...
왠지 컬렉션을 하나씩 찾아봐야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건 왜 일까???
그나저나 책 표지 좀.....어떻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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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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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골때리는 소설을 만날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정말 글자를 읽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미쳐버리겠다. 그래서 그런 소설들은 왠만하면 아껴 읽으려고 하지. 추리적 요소가 가미되면 그 즐거움은 한층 더 음흉해진다.
어쩌면 이 소설도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이 빗나가는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책을 처음 펴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동화책을 손에 들고 있는지 알아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은 롤러코스터같다."라는 누군가의 평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 그정도로 이 소설은 참으로.............글자가 적다..................정말 신속히 읽을수 있는 책이다.......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깨어난다. 오기와라는 이 남자, 28살의 말끔하게 생긴 유부남. 어쩌일인지 자신은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져 누워있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뚱뚱한 아저씨 하나, 메뚜기같이 생겼고 오타쿠로 예상되는 젊은이 하나, 나이를 알수없는 검은옷의 여자 하나.
그리고 오기와까지 네명은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갖히고 말았다.
아내의 진통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봉변을 당해버렸는데, 자신을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참 태연하기 그지 없다.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태연히 자기소개나 하자고 하고.... 오기와의 속은 타들어가고, 하나는 전직 밤도둑에, 하나는 자신을 초능력자라고 얘기하는 니트족에(직업을 구하려 하지 않는 젊은이), 하나는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하려고 올라가는 길이었다질 않나.
이 이상한 밤은 언제쯤 끝날까?

우선 작가가 극작가 출신이라는 점을 밝혀두어야 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연극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폐쇄된 공간에, 제한된 등장인물, 다소 과장스럽다 생각되는 성격들까지 딱 연극 스타일인데,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조금 아쉽다.
큰 기대하지 않고 머리나 식힐 겸 가볍게 본다면 목적에 딱 알맞는 독서를 할수 있을만한 책이다.
추리소설로 보자면, 한없이 모자라고,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의 이야기도 작위적이다. 이 작위적임은 보통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소위 "괴담"이라는 것의 반전과도 비슷한 느낌이라, 개인적으로는 어떤 부분에서 놀라야하고, 어떤 부분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을 느껴야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냥 재밌는 괴담하나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재미를 보장받을 수 있을 책 같다.
중반부 이 사람들이 만드려는 밀실이야기는 추리소설로 치자면 어설프기 짝이 없고,(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어설픈 점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얘기가 가벼워서 기승전결을 제대로 갖춘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느 하룻밤의 소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마무리 시키는 반전이 아까도 말했듯이 작위적이고 다소 유치하다.

왜일까.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지만 정작 나는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할지도 모르겠고, 이라부라는 캐릭터에 불쾌감만 느껴졌던 <공중그네>와 이 소설이 겹치는 것은...(물론 이 소설은 불쾌하지 않다.)
나는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던 걸까?
이 책에 딸린 호평 일색인 서평들을 보면, 나만 이 책이 그저 그랬고, 내가 재밌는 포인트를 잡아내지 못한 건지, 단지 취향일 뿐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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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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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의 소설을 읽는 것은 "화형법정"이후로 두번째 인데, "화형법정"이 내게있어서는 가장 황당한 트릭을 가진 추리소설 중 하나로 기억되는 바, 그닥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던 작가이지만, 그저 제목과 표지에 혹해 사게된 <벨벳의 악마>는 꽤 좋은 독서였다.
서두부터 악마와 계약하더니, 2세기전으로 돌아가 과거의 독살사건을 막기 위해 타임슬립한다?
만화같은 설정이지만, 그후 2세기전으로 돌아간 영국의 모습에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뭐랄까. (굳이 욕하고 싶지는 않지만) 움베르트 에코식으로 역사서쓰듯, 장황하고 세세하게 나열해놓는 것보다, 존 딕슨카의 "아는 것 잘난척 하기"의 수법은 훨씬 교묘하고 현명하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기 보다는, 보통 알기 힘든 그 시대의 사고방식, 행동방식, 검술수준부터 시작해 화법에 이르기까지, 현대와는 당연하게 많이 다를 모습들을 이야기에 흥미롭게 녹여낸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도 딱 질색이다.
하지만 과거와 현실의 같지만 다른 모습을 캐치해내는 것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아주 재밌는 역사추리소설이었으며, 매우 유쾌발랄한 활극이었고, 아주 잘 만들어진 만화같기도 했다.

니콜라스 팬튼 교수는 240년전 일어난 독살사건을 막기 위해서, 악마와 거래하고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니콜라스 팬튼경의 몸으로 타임슬립해간다.
이미 독에 물들어 몸이 망가져가고 있던 아내 리디아를 구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리디아가 독살로 죽게되는 시기는 이 시기로 부터 10일후, 예정된 독살사건의 배후를 파해치기 위해 펜튼 교수는 동분서주 하게된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대화- 요즘 남자들처럼 친구사이에 다정한 말따위 하지 않고 욕설로 상대를 지칭하는 것이 더 익숙하며(물론 지금 욕설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닐듯;;) 슬슬 비꼬면서도 그안에 정을 담아내는 대화들이 참 재밌다.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발랄하고 힘이 넘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처럼 전개 역시 화끈하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역사적 지식에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수 밖에 없고, 아주 무겁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도록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점 또한 무척 근사하다.

그러나 어째서 존 딕슨카는 항상 뒷끝이 좋지 못한 것일까.
이 작가의 작품을 두개밖에 읽지 않고 하는 말이라 좀 조심스럽지만, 꼭 어느 순간 황당한 순간이 오게된다.
그래도 <화형법정>처럼 트릭자체에 벙찌게 되는 경우는 아니었고, 아주 신선한 반전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밀실트릭 자체는 그럭저럭 수용가능한데, 문제는 마무리. 중반부 이후까지 강렬하고 재기넘쳤던 이야기가 마지막장에서 힘을 한번에 잃어버리고 무너져버리고 만다.
또 남자 캐릭터들에 쏟은 정성만큼, 여자캐릭터들에게는 비슷한 정성을 쏟지 못해서, 소설에서 아주 지대한 영향력을 가져야할 메리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팜므파탈의 매력이 조금도 다가오지 않을 뿐더러, 그녀의 감정이 호소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내가 소설 초반부를 정신없이 읽어서 캐치하지 못한건지 모르겠지만, 역사에 일어난 수많은 살인사건들중에서 왜 굳이 그 사건으로 돌아가 리디아 독살을 막아야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뒷부분에 뭔가 운명적인 해설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대로 끝나버리더라.)
여러가지 필연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고, 쓰다말아버린 것 같은 뒷부분도 아쉽다.

독창성같은 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적 매력은 차고 넘쳐 흐른다.
분명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고 푹 빠져들었는데, 내가 딕슨카 홀릭이 되기에는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다음에 만나게 될 작품이 기다려지기는 하는 작가, <부러진 경첩>도 조만간 읽어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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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에단 호크 지음, 우지현 그림,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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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호크의 소설을 보다보면 에단호크가 보인다. 나만 그럴까?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서도 그랬고 <웬즈데이>에서도 그렇다.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에단 호크와 오버랩된다.
아직도 어린 애같은 남자와 이혼의 상처가 있어 결혼이 두려운 여자가 만나고 또 헤어진다. 헤어지는 여자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남자는 자신을 떠난 여자를 무작정 쫓아가 청혼을 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그들은 결혼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고, 여러가지 일을 겪게되다는 얘기.
소설로 보기에는 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웬즈데이>.
책을 보다보면 에단호크가 출연했던 일련의 영화들과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소설의 주인공 지미 하트속을 에단호크로 바라보게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에 얼마나 얽매여 있느냐, 또는 과거에 얼마나 연연해야하느냐.
완전히 잊고 살기도 어렵지만, 완전히 잊고 살아도 불완전하다. 여러가지 과거가 쌓이고 쌓여 자신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미가 사랑하는 크리스티에게 강제적 결혼과 이혼이라는 상처가 없었다면, 지미는 과연 크리스티를 사랑했을까. 그녀의 옛결혼에 미친듯이 질투심을 느끼던 지미이지만, 아마도 그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그가 사랑했던 크리스티가 그가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있을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불완전한 삶에서,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나 그 불완전함마저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다.
어린시절 지미가 쏘아 전선에 매달린 채 죽음을 기다렸던 붉은 꼬리 매처럼, 불완전하게 죽음을 향해 하루씩 걸어가면서,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게 되겠지만, 이상할 것도, 잘못될 것도 없는 당연한 삶의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에단호크"라는 이름을 뺀다면 무척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는 소설이다. 이전에 보았던 <이토록 뜨거웠던 순간>은 더 괜찮았던 것 같다. 형평성없는 졸렬한 시선이기는 하나, 그가 유명한 배우이고, 또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다보니 어쩔수 없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소설 후반부에 등장했던 어느 노숙자 할아버지의 말이 묘하게 오래 남는다.
남자가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탱탱하고 더 매력있어서가 아니라 젊은 여자가 더 많이 웃기 때문이라는 말.
자기 변호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덜 웃게되었던 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더 웃고, 더 매력적인 나이든 여자가 되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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