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한 잔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 자신이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는 <켄지 & 제나로>시리즈의 첫권이자 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이다.
1994년작. 지금은 2009년. 15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현재 헐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된 데니스 루헤인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냈을 당시 신인이었을텐데도 노련한 솜씨로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몰아치듯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놀라운 데뷔작 <전쟁 전 한잔>.
그려놓은 듯 선명한 캐릭터들의 이미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센스넘치는 유쾌한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은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방식인듯 싶다.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뒷권부터 먼저 읽은 상태라 주요 캐릭터들의 관계도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끝난 상태이지만, 지금의 켄지를 있게 한 성장과정이라던가, 켄지와 제나로가 함께 있을수 있던 관계의 시발점 같은 것을 확인할수 있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담백한 폭력주의자 부바가 제일 좋아서, 부바만 등장하면 눈을 부릅뜨고 보게되기도 했다. 앞으로 부바의 활약상이 더 많다면 좋으련만....잇힝~)

이야기는 사립탐정 켄지가 한 유명 정치인을 만나 사건을 의뢰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얘기인 즉슨, 제나라는 흑인청소부가 그에게 중요한 문서를 들고 사라졌으니 그녀를 찾아 문서를 되찾아오라는 것이다.
켄지는 자신의 파트너 앤지 제나로와 함께 사라진 여자를 찾아나서는데, 사라졌던 여자를 찾으니 이 여자는 또 정의를 위해서는 절대 문서를 내줄수 없다고 뻐기지 않나.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면서 그녀가 훔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하는, 밝혀져야할 진실과 지키고자 했던 정의는 무엇일까.

정치와 암흑세력의 결탁을 다룬 책들은 너무나 많으니 아주 독특한 소설이라고 할수는 없는 셈이지만, 데뷔작 <전쟁 전 한잔>에서부터 이어지는 데니스 루헤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개성넘칠 정도로 뚜렷하고도 맥빠진다.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할수도 있을 법한데, 그의 소설을 읽고나면 느껴지는 찝찝한 뒷끝, 올바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무기력은 이것이 올바르지는 못해도 적어도 현실이기는 한 것 같아서 항상 기분이 우울해진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 흑인과 백인, 선과 악, 권력 그리고 탐욕.
사회적 정의란 윤리교과서에나 등장할만한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사회 정의를 헤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은 가난한 나쁜 놈이 아니라 부유한 나쁜 놈이지 않을까. 모든 것을 가지고도 자기 독선과 탐욕에 빠져버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세상은 계속 그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비정하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뭔가 해보려는 듯 움직이다가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은 또 그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물림 하게되고, 몇백년을 그렇게 돌고 돌다가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믿고 싶지 않은 폐배주의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이 또 그렇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는 어렵다.

자신에게서 멀어져서 그럼에도 살려고 했던 어느 소년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그는 원래 자신이었던 어떤 존재로 부터 멀어져서, 자신이 원래 어땠는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려고 했었는지를 잊었다. 아무데도 돌아갈 곳도 없고, 누군가가 망쳐버린 삶속으로 어쩔수 없이 뛰어들어가야 하는 그 소년의 뒷모습은 이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 세상이 상처가 끊이지 않는 고리처럼 이어져 개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그럼에도 그 고리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자신의 배에 새겨진 다리미자국을 바라보면서, 정의의 뒷꽁무늬라도 쫓으려는 켄지처럼.
정의란 보이지 않는 환타지일지도 모르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지옥은 찾아오지 않을거라고,
그래도 아직은 믿고 싶다.


"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면서 싸움이 끝나면 그도 평화롭게 살 거라며 자위했겠지만 그건 가능한 바람이 못된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단 몸안에 침투한 오점은, 피의 일부가 되어 피를 모두 희석시키고 심장까지 침투해 버린다.
그리고 심장을 빠져나온 피는 이제 온몸을 휩쓸며 가는 곳마다 오염시키고 마는 것이다.
오점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빠져나오지도 않는다. 그걸 믿는 건 어린애들이나 바보들 뿐이다.
조금이나마 가능성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오점을 통제하고 단단한 공으로 만들어 한쪽 구석에 꼼짝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 뿐이다. 그리하여 평생 짐으로 떠안고 사는 것." -p293~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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