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의 사각지대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7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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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늦게 읽게된 모리무라 세이치의 <고층의 사각지대>. 증명 시리즈 두개 이후로 세번째로 읽게되는 세이치의 소설인데, 이 사람 굉장히 꼼꼼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책 읽는 내내 느낄수 있게 된다.
사건의 발단부터 정리해보자면, 고급호텔 사장이 어느날 살해된채 발견되고, 누군가 들어간 흔적도 없는 밀실에서 사장은 고요하고 평온하게 죽어있다. 사건을 수사해나가던 형사는 이 사건에 사장의 비서 후유코가 수상함을 알게된다.
사장이 죽던 날 밤새도록 짝사랑하던 후유코와 정사를 벌었던 형사 히라가. 형사가 밤새 함께 있었으니 알리바이야 있지만 그간 새침하게 밀어내던 그녀가 그날밤 죽자사자 덤벼든 이유가 뜬금없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사건에 후유코가 개입되어있음을 알게되고, 그녀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하려는데, 이건 또 왠걸.
갑자기 또 후유코는 독약이 포함되었다 추정되는 음료수를 마시고 죽어버렸다.
두개의 사건. 이 사건들의 인과관계. 그것을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과는 많이 다른 작품 <고층의 사각지대>는 조금 더 클래식한 느낌의 추리소설로, 밀실 트릭, 알리바이 깨기가 소설의 핵심이 되는 작품이다.
초반에 팔레스 사이드 호텔 사장의 죽음 부분은 밀실트릭을, 후유코가 살해된 중반이후부부터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한사람을 등장시켜놓고, 그의 알리바이를 깨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알리바이깨기 부분부터는 무척 박진감넘치면서도 토할정도로 정교하게 범인의 행적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숫자놀음을 보다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로 아파져 오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귀찮은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가사 크리스티식도 아닌, 코난 도일식도 아닌, 모리무라 세이치의 알리바이 깨기는 몹시도 정교하고 상식적이다.
여타 많은 탐정 추리소설처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탐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라,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가고, 충분히 흥미롭다. 또한 이런 경찰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의의 철벽 수호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것이다.

에도가와 란포상에 빛나는 <고층의 사각지대>. 한때 10년여간 호텔맨으로 살았다는 모리무라 세이치의 이력을 충분히 발휘한 멋진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처음 발간되었을 당시에는 많은 호텔맨들의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호텔에 대해 너무나 상세히 까발려 놓았기 때문이다.)
60년대에 나온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설득력 있고, 재밌다. 요즘은 이런 소설이 왜 많지 않을까?
오랜만에 동서 미스테리를 읽었더니 갑자기 땡겨서 생각난 김에 몇권 더 구입해서 읽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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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살인법
질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벨의도서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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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주인공 카밀은 신문기자로 편집장의 추천으로 윈드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치아를 모조리 뽑아간 파렴치한 살인범. 퓰리쳐상을 노리라는 편집장의 말에도 카밀이 이 사건을 조사하기 껄끄러운 이유는 윈드밀이 바로 그녀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독립해나와 시카고에서 살기 전까지 그녀의 모든 세계였던 윈드밀은 그녀에게는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동네이기 짝이없다.
좁은 동네의 특성상, 건너집 가족의 모든 것이 하루만에 퍼져버리는 곳.
그 좁은 동네의 유서깊은 자신의 가문, 호화찬란하고 상냥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냉랭함.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여동생의 죽음...
술, 마약, 섹스, 음주운전, 가쉽... 도축으로 생을 이어나가는 이 무료한 마을을 견디기 위해 모두 그것에 탐닉해있다. 집같지도 않은 집, 결코 섞일수 없어 겉돌기만했던 카밀은 일부러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일탈과 반항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충동을 이길수가 없었다.
긋고, 긋고 또 긋고.
끔찍하리만치 무료하고, 견디기 힘든 곳.
카밀은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혀낼수 있을까.

여자라면 누구나,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살수 없고 때로는 그것을 욕망한다.
부족한 관심이 독이 되듯이, 지나친 관심 역시 독이 되는 법.
소설속의 주인공 카밀은 그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되었던 케이스이다. 마을의 유명한 유지인 어머니, 삐뚤어져만 가는 카밀을 뒤쫓는 시선들, 착하고 말잘듣는 딸이 되지 못해 그녀를 늘 냉랭히 처다보던 어머니. 이 좁은 마을의 작은 관심들은 그녀에게는 너무도 폭팔적이었으리라. 온몸에 칼로 글자를 세겨넣는 자해 강박증, 모든 것을 잊고 쌓여가는 감정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세겨버린다.
카밀의 배다른 여동생 앰마는 또 어떤가. 고작 13살의 마약중독자이며, 제멋대로이고, 어딜가나 대장노릇을 해야하는 아이.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에게 있지 않는다면, 살해당한 아이도 질투하는 철부지 소녀. 지나치게 관심에 집착하는 것은 그녀에게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일에 딱 100% 정확하고 옳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만은, 또 똑같은 감정의 크기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은, 똑같은 행동, 똑같은 상황에서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을 저마다 달라지게 되어버려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옳고 정당한지, 어쩌면 평생 알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관심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부족하다. 어느 정도가 딱 적정선인지 레시피라도 있으려면 좋으련만.
관심 50%, 무관심 50%-이게 딱 옳다!라고 말할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느 부분에서 관심을 가져줘야하고, 어느 부분에서 무관심하게 지나쳐줘야하는지, 누군가는 정확히 알고 있을까.
처절할만큼 "관심"이라는 욕망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저질러버린 몹시 바보같고 이기적인 죄들.
마음이 먹먹한건지, 심장이 서늘해지는 건지 알수 없을 기묘한 인과관계들이 이어지고, 다 읽고나면 맥이 풀려버린다.

번역 제목부터 <그 여자의 살인법>이라서, 출판사에서 실수를 저지르는게 아닐까 싶었다. 범인의 정체가 여자임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셈이라, 무척 대담하게 스포일러를 뿌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책을 읽는 중반부까지만 들었다. 꽤나 한참 붙들고 있던 책이라, 작가가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를 너무 늘어지게 몰고나가는 것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런 불만도 딱 중반부까지.
중반부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에는 눈을 뗄수가 없어서 잠들어야하는 시간도 잊고 마지막페이지까지 확인해버렸다.
더디다고 생각되었고,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던 곳들도 책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두 필요한 내용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참 잘쓴 소설이다. 그리고 정말 재밌었다. 섬세한 감정선, 서두르지 않는 침착성, 안타깝고 기묘한 결말. 모두 마음에 든다.

연쇄살인의 가면을 쓴 이 책은 사실은 콩가루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가족에게는 "아픔"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다. 어떤 식의 아픔이든, 모두가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심"이라는 당연하고도 속물적인 인간적 욕망인데, 이것이 책에서 어찌나 가슴아프고 섬뜩하게 그려지던지 충격적인 사건들의 배후에 입안에 씁쓸함이 무한히 맴돌았다.
특히 여자들이라면 무척 공감하며 더더욱 서늘하게 볼 법한 책이고, 곧 이어질 열대야를 이겨낼 책을 누군가에게 딱 한권만 추천하자면 바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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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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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되었을 때, 이미 품절된 상태여서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싶다가 다시 가져다 주는 것이 귀찮아서 보지 않았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재발간되더라.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인만큼 나오자마자 질러놓고 두근두근 대면서 읽었었더랬는데...그랬는데....
왜 이 책의 재미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겠는 건지....두꺼운 책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책의 얇고 두툼함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데, 이 책은 유독 왜 이리 활자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아마도 몹시 취향에 맞지 않던지, 아니면 이 책이 소문만큼 재밌는 소설인 건 아닌가 보다.

교생실습을 나간 히로세는 교실에서 다카사토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무척 평범한 외모, 뭔가 튀는 구석 하나 없는데도 주위를 유리시켜버리는 마성의 아이가 바로 다카사토이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혼자 있으며, 아이들이 딱히 다카사토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다카사토는 은근히 뒤로 물러서있다.
표정없는 얼굴,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제어하는 듯한 말투, 딱히 나서서 선행을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나쁜 마음을 먹거나 타인을 미워하지 않는 아이. 아이답지 않은 초연함과 차분함이 더 비현실적인 아이.
아이들이 다카사토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다카사토에게 불행을 이끌고 다니는 아이라는 별명이 붙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묘하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고 했기 때문에 혹여나 저주에라도 걸릴까, 아이들은 다카사토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무서워 하고 있었다.
가미가쿠시. 어린아이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는데, 다카사토에게는 그런 과거가 있다.
어린 시절 1년동안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났고, 어디로 갔었는지는 다카사토 본인도 모른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 다카사토는 돌이킬수 없이 변해버려 지금까지 와버렸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아이. 원치않은 복수극에 죄책감만 가져야 하는 아이.
이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너무나 예상외의 책이라서 대체 이 책이 어떻게 끝나려고 그러나 싶었다.
이 책의 장르를 소개하기도 참 뭣한 것이, 미스테리+환타지+호러의 느낌이 들기 때문에 딱히 어떤 종류의 소설이라고 규정짓기도 어렵다. 예상밖의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즐겁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나는 적지 않은 실망을 했다.
너무 기대하고 있었던 탓일까?
본론을 얘기하기에 앞서 너무나 뜸을 들이기 때문에 도무지 무슨 내용으로 전개될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중반을 넘어서까지 낭비다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에피소드가 수없이 반복되고, 그러다보니 에피소드들이 늘어지기만 하고 힘을 잃어버린 것 같다. 게다가 뜬금없이 환타지로 끝나버리다니....
게다가 주인공들의 대사는 살짝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했으니....
이런 종류의 소설인줄 알았더라면, 아마 보지 않았을 것 같다.
환타지는 질색이다. 게다가 어딘가 끌리는 점이나 신비로운 점 또한 느끼지 못했다.

오노 후유미는 <시귀>라는 공포소설로 유명한 작가이다. <십이국기>와 <마성의 아이>, <시귀>정도가 작가의 대표작인 듯 싶은데, 이세계의 이야기를 다룬다거나 알수 없는 종족들이 나와버리는게 특징이라면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작가가 될 수밖에.
솔직히 내게는 시간낭비 밖에 되지 않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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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6-18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비슷한 에피소드의 반복에 동감 100표입니다.^^; 무척이나 유명한 소설인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책의 말미에 언급된 기린이니 하는 이야기가 [십이국기]의 세계관입니다. [십이국기]는 판타지소설로 꽤 재미있었어요. 물론 판타지 싫어하시면 해당사항 없는 이야기지만요.
[시귀]는 제가 꽤 옛날에 읽었는데 재미없었어요. 뭐랄까..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줄줄 늘어지는 느낌? 어찌보면 기복없이 밋밋한 이야기가 좀 늘어지듯 진행되는 게 이 작가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과거에 꽤 인기 있던 책이 현재에 이렇게 느껴지는 건 세월의 힘인지, 휘향의 문제인지..

Apple 2009-06-18 22: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예전에 친구가 <시귀> 추천해줘서 읽어보려고 했는데 권수가 꽤 많은책이다보니 그냥 별 생각 안하고 있었어요. 이런 스타일이라면 제 취향은 아닌듯;;;;

쥬베이 2009-06-1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노 후유미 <시귀>는 명작이에요ㅋㅋ 저는 많은걸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시즈님이 환타지를 싫어하신다니, 약간 놀랐어요^^

Apple 2009-06-18 22:38   좋아요 0 | URL
네..^^; 뭐랄까..환타지도 좋아하는 계열도 있는데요. 가상의 공간이 나오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뭔가 괴물이나 괴생명체 같은게 나오는 게 싫더라고요;;(이 책은 뭔가 밍숭맹숭하니 박력없어서 싫기도 했고요...)
또 희한하게 배경이 현실인데 괴물이 나오는 건 또 괜찮습니다.=_=;
특히 요정나오고 용나오고 기사나오는 중세풍 환타지는 정말 학을 띄고 싫어하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나름 환상적인 건 좋아하는데 중세풍 환타지에서는 환상을 찾을수가 없어요.
 
벨벳 애무하기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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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즐거움을 아는지.
별 특별한 사건이이어지지 않아도,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식상하기 짝이없는 내용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뭔가 손에서 놓아버릴수 없는 매력이 있다. (물론 모든 고전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동경이 무럭무럭 생겨나는 것도, 세상 그 어느 소설보다도 주인공에게 환타지를 입히고 싶은 욕망이 드는 것도, 바로 고전의 매력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전소설, 특히 빅토리아조 소설들에 열광해 있던 내게 "빅토리아"라는 단어만으로도 나는 참을수 없이 약해진다. ("빅토리아"에 "고딕"까지 붙는다면 나는 그 소설이 무슨 소설이든 사랑에 빠질수 있다.)
고전이 아니면서도 고전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라 워터스의 <벨벳 애무하기>.
세라워터스의 소설을 읽으면 좀더 방종한 찰스 디킨스가, 좀더 솔직한 샬롯 브론테가 떠오른다.
그녀가 지어낸 책들에 "빅토리안 레즈비언 3부작"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어서만은 아니고,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행동과 관습, 사고방식이 꼭 그 시대의 것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학위를 받기 위해 빅토리안 시대의 동성애자들의 자료를 조사하다가 쓰게되었다는 데뷔작 <벨벳 애무하기>에는 그녀가 공부했던 빅토리안시대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꼭 어린시절 보던 고전들중 내가 놓치고 읽지 않았던 것을 다시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달까.

어쨌거나 이야기는 윗스터블의 굴소녀 낸시가 남장여자가수 키티에게 반하면서 시작된다.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은 그 모습에, 그럼에도 미소년처럼 아름다운 그 모습에 반해버린 낸시는 열렬히 키티를 짝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키티와 친해지더니,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더니, 나중에는 그녀의 파트너가 되어 같이 공연하게 된다.
동성애 관계를 지속하며 함께 일하기란 힘든 법. 키티는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낸시와의 관계를 숨기느라 급급하고, 결국 굳건할줄 알았던 사랑을 저버리는 일이 생겨버려서 낸시는 키티에게서 도망쳐 온다.
그리고 낸시는 키티에 대한 복수심으로 남장한채로 거리의 남창이 되어버린다. (여자가 어떻게 남창이 될수 있는가 하겠지만, 낸시가 남장을 하면 너무 남자같아서 모두 남자로 본다.)
그러다가 돈많은 귀부인 다이애나의 눈에 띄게 되서 첩이 되기도 한다. 철저히 그녀에게 종속되어 자기 뜻대로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낸시는 그 생활에 만족한다. 왜일까? 윗스터블에서 런던으로 오면서 그녀는 우리가 흔히 말하듯 허파에 바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낸시는 한때 연예장의 스타였고, 윗스터블에서 굴껍질을 까던 기억은 이미 옛날 옛적에 꾸던 꿈이나 마찬가지로 희미해져버렸고, 좋은 드레스, 편안한 생활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낸시가 돈많은 귀부인의 아끼는 개가 되어 살아간다 해도 아무 문제 없었을터. 그러나 나태한 삶은 권태를 불러일으킬뿐이고, 서서히 그 화려하고 방탕한 세계에 질리게 될 때쯤, 낸시는 다시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여자 플로렌스. 사랑스럽지만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키티와도 다르고,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돈으로 사는 다이애나 레더비와도 다르다. 그녀는 철저히 독립적이고, 무척 선량하며, 성실하다.
그때문에 낸시는 그런 플로렌스에게 불만을 품지만 결국 서서히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전에 보았던 <핑거스미스>가 추리소설이라면, <벨벳 애무하기>는 성장소설에 가깝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살던 촌뜨기 소녀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고, 그 후에 자존감을 찾아가는 모험같은 이야기.
사람이라면 왠만해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힘들다.
살면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모든 사랑들을 떠올려보면서, 나는 그 사랑으로 많은 성장을 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랑들이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었고 많은 실패를 했기 때문에 나는 더 성장했다는 것 또한 깨닫는다.
한때 건방지던 내가, 한때 이해심부족하고 나밖에 없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받는 것을 반복하면서 또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참 기묘하고 멋진 일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그런 사랑을 통한 성장의 이야기이다.
소설 전반적으로 걸쳐 타인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이 낸시라는 아가씨가 책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물론 그 홀로서기 역시 자신의 힘만으로 이뤄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과 얽혀 살게되면서, 오로지 나 혼자만으로 뭔가를 이루어냈다고 자신하는 것 또한 교만일테니. 플로렌스라는 또다른 사랑을 통해, 지금까지의 사랑과는 달리 몹시 현실적이고 냉철하며 성실한 사랑을 통해, 그녀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를 드디어 찾게 된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때는 겉돌던 아이가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벨벳 애무하기>는 다소 울적했던 <핑거스미스>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쫀득쫀득하고, 제목처럼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담하고 관능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단어들에 깜짝 깜짝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도 함부로 입에 담기 힘든 표현들이 어쩌며 이리도 뻔뻔스럽게 자주 등장하던지... 호모포비아는 보기 힘든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미 영화로 먼저 보았기 때문에 내용은 거의 모두 알고 봐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앞서 말했듯이 고전적인 즐거움이 가득하고, 그럼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자체가 무척 독특해서가 아니라, 통속적인 뻔함을 아주 즐겁게 이야기해놓았기 때문에, 꽤 많은 분량과 빽빽한 글씨에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데뷔작부터 이렇게 재밌게 만들어버리다니, 처음부터 작가 세라워터스에게는 뭔가를 조사하고 공부하는 능력보다 소설을 쓰는 능력이 주어졌던 게 아닐까 싶다.
아...기다리던 <벨벳 애무하기>를 야금야금 아껴읽었는데도 다 읽어버렸으니 이제는 어쩌면 좋담?
빅토리안 레즈비언 3부작중의 두번째 작품 <끌림>만 아직 번역되어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또 이런 설렘을 간직하면서 그녀의 또다른 작품 <끌림>과 <나이트 워치>, 그리고 올해 나왔다던 <작은 이방인>까지 즐겁게 기다리게 될 것같다. <끌림>같은 경우는 더 우울하고 어둡다던데 그 편이 내게는 훨씬 좋으니 어서 나와주기만을 기다려본다.

p.s 개인적으로 <끌림>은 보라색으로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아, <벨벳 애무하기>의 핑크색 책과 핑크색 책실은 너무너무 귀엽고 예뻤다. (보라색 책실!!!보라색 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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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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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를 보고 무척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애타게 도착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같은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자'시리즈가 먼저 나와버렸다. 기대하고 있던 작가라서, 이번 책도 기대를 하면서 읽었고, 도착의 론도와 마찬가지로 현란한 서술 트릭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소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이 들던 <도착의 론도>와는 달리, 작품이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어떤 사건이 어떤 경위로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아니, 읽으면서도 내내 헷갈렸고, 내가 지금 이 책을 제대로 읽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고, 어지러웠다.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끝이 있을거라는 사실, 어딘가에서 이 두가지 사건이 겹쳐질것이 분명하다는 학습된 경험으로 꾹 참고 끝까지 내내 안개속에서 헤메이는 듯한 기분을 이겨낼수 있었던 것 같다.

안개. <행방불명자>의 전체적인 느낌은 꼭 안개같다.
어느날 돌연히 사라진 사람들의 존재가 묘연하듯, 소설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잡힐듯 잡히지 않는다. 한 일가가 돌연 사라져버린다. 한사람의 실종도 아니고, 다키자와 일가족 4명이 한번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느날 아침식사를 준비하다가 돌연 사라진 듯한 모양새.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기에 여자 르포라이터 미도리가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어떤 남자가 다른 사람의 범행을 뒤쫓고 있다. 어느날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몰리게 되 얻어맞는 남자는 억울한 마음에 자신을 모욕주었던 그 남자를 쫓아가게 된다. 언젠가 나타나서 꼭 사과를 받고 말리라 생각하는데, 뜻밖의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 흐린날에 부녀자들을 뒤쫓아 칼로 찔러버리고 사라지는 범인.
범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이 남자 하나. 소설가인 남자는 이 사건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소설 소재도 얻을 겸, 이 파렴치한 남자를 제손으로 응징할 겸, 남자를 뒤쫓게 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방관자 입장인 남자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 사건. 이 두사건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반전들이 주로 서술 트릭을 가진 소설들에서 자주 보여지는 속임수이다. 간혹 작가가 치사할정도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되는 서술 트릭들도 많지만, 다행히 이작품은 그 정도는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다 읽고나서 머리속이 터지는 듯한 희열감을 주기에도 부족했다.
왜냐면, 서술트릭이 시작되기 전까지 작가가 너무나 뜸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 트릭을 만나기전까지는 다소 지루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반전을 극대화 시키기 까지 얼마나 감정을 억제하면서 썼을까 싶기도 한데, 중간중간 그 트릭들의 단서들을 좀 더 많이 흘려서 독자도 추리하게 만들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식이라면 읽으면서 어쩐지 작가가 결말을 어서 보여주기를 기다리는 듯한 무척 수동적인 자세로 읽을수 밖에 없다.
또 하나, 지나치게 서술 트릭에 의지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라 아쉽다. <도착의 론도>역시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그 작품은 어딘지 장난 스러운 느낌이 들어서인지 이런 점이 크게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지만, 작품이 무거운 경우에는 "반전"하나만 노리고 승부보기에는 좀 허무한 느낌이 든다.
다각도로 사건을 조명해보는 것또한 좋은데, 1인칭 화자가 너무나 많이 등장하는 점 또한 여러가지로 헷갈리게 만드는 점중 하나이다. 꼼꼼하게 짜여진 트릭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걸 표현하는데 지나치게 힘이 많이 들어간 것은 아닐까. 1인칭 화자가 여러명 등장하고, 텍스트 트릭에 집착한 나머지 결말을 너무 꼬아놓아서 읽는데 상당히 피곤해진다. 그것 외에도, 일가족 실종사건의 배후라던가, 범인이 여자들을 칼로 찌르고 다니는 이유 같은 것이 그닥 잘 납득이 가지도 않고...
여러가지 점들이 아쉬운 소설이라, 다 읽고나서도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의구심이 들었고, 기대에는 못미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오리하라 이치의 다른 소설을 기다리는 것은, 이번 작품이 다소 실망적이었어도 아주 최악까지는 가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큰 재미를 선사할수 있을 것만 같은 작가가 내게는 오리하라 이치이다.
언젠가 또 즐거운 트릭속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즐거움에 비명을 지를수 있는 작품이 그의 손에서 나오길 바란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이 나오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출간될 다른 소설들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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